162. 연기력 높이기
이 하얀 약을 그 이정훈이 줬다고…….
“이거 무슨 약인데요?”
“기분이 좋아지는 약이래.”
“약인데… 기분이 좋아지는 약이라고요?”
세상에 기분이 좋아지는 약이 있는가…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딱 하나. 마약밖에 없잖아.
“이거 마약 아니에요?”
“…설마 마약을 나한테 주겠어?”
“혹시 모르죠. 그 새끼라면.”
“에이, 아니야~”
정요셉이 아니라고 했으나 나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의 정답 풀이에 마약이라는 단어가 나왔으니까.
‘…왜 정답 풀이에 마약이 나오나 했더니, 이 새끼 때문이었구나.’
그러면 더더욱 이정훈을 경계해야 한다.
“이 약에 대해서는 저한테만 말했어요?”
“어~ 당연하지.”
“저한테만 말했다고요? 왜요?”
적어도 김연호에게는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정요셉은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우리 막내는 말을 안 할 것 같아서?”
“예?”
“만약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렸다가 찌라시라도 나면 어떡해.”
회사 사람이라도 함부로 믿으면 안 되긴 하지. 그렇다고 이걸 가볍게 넘길 수도 없는데.
‘…최대한 드라마와 정요셉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하는 수밖에 없는데.’
아니면 내가 이정훈을 직접 만나서 물어볼까? 드라마 촬영이 2화 정도 남았다고 했으니까.
“요셉 형, 드라마 촬영 2화 정도 남았다고 했잖아요.”
“어~”
“그러면 이정훈이랑 만나는 씬이 얼마나 있어요?”
“좀 있지?”
이정훈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거잖아. 앞으로 그 새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고. 그럼 결론은 하나다. 이정훈을 만나야 한다.
“…내일 제가 촬영장에 가도 돼요?”
“오려고?”
“형이 외롭다고 했잖아요.”
“아~ 내가 외로울까 봐 찾아온다?”
“…그런 거죠.”
정요셉이 광대를 씰룩이면서 장난기 섞인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왜요?”
“…흐음.”
왜 쳐다보는 거지. 그때 시스템창이 반짝하고 튀어나왔다.
【정요셉의 연기력이 올라갑니다. (1%)】
고작 드라마 촬영장에 가겠다고 말했더니 연기력이 올라갔다.
“그런 표정 짓지 말죠?”
“그런 표정이 뭐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요.”
“우리 막내가 형이 걱정된다고 같이 간다는데 어쩔 수 없잖아~”
어쨌든 내일은 스케줄이 따로 없어서 정요셉을 따라가도 된다.
‘그래도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니까.’
…간단하게 브이로그 찍을 목적으로 간다고 할까? 나는 정요셉을 보면서 제안했다.
“그럼 브이로그 하나 찍을래요?”
“웬 브이로그~?”
“드라마 촬영장 가는 김에 브이로그도 찍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요즘 다른 아이돌들도 드라마 촬영장에서 브이로그를 많이 찍으니까.
“오~ 괜찮은 방법인데?”
“그리고.”
“그리고?”
마약인지 아닌지 확인도 해보고.
“제가 이정훈에게 물어볼게요.”
“뭘 물어보려고요?”
“이 약에 대해서요.”
약통에서 흔들리는 하얀 약의 정체를 이정훈이 불지 안 불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꼭 알아야겠다.
“이정훈이 불까?”
“…나중에는 찌라시도 퍼트릴 거예요.”
“찌라시를?”
“예, 드라마에 마약을 하는 연기자가 있는 것 같다고.”
“그래도 돼?”
찌라시를 퍼트리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마약을 하는 것 자체가 나쁜 건데. 게다가 이번 해에는 대대적으로 마약 하는 연예인을 잡는다는 기사가 뜬다.
그걸 노리면 되겠지.
“그러니까 이 약은 제가 가지고 있을게요.”
“왜?”
“형은 물건 잘 잃어버리잖아요.”
“내가 언제? 우리 막내가 날 모함하네~”
“어제도 모자 잃어버렸잖아요.”
“그건 반박 못 하겠네.”
정요셉은 허락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허락할게. 약은 우리 막내가 가지고 있어~”
“감사합니다.”
이걸 감사하다고 표현하는 것도 웃기지만. 나는 가방에 약통을 집어넣고 침대에 누웠다.
“근데 있잖아. 그거 먹을 뻔했다~?”
“…예?”
나는 누워 있다가 다시 상체를 일으켰다.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니까. 이걸 먹으면 떨려도 연기를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정요셉이 싱긋 웃으며 이불 속으로 얼굴을 숨겼다.
“…형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요.”
“어?”
“형은 원래 연기를 잘했어요.”
어째서 이 약을 통해 연기를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건지. 그리고 정요셉의 연기를 까는 사람은 드물다.
‘…좀 더 잘하길 비는 사람은 존재하지만.’
【정요셉의 연기력이 올라갑니다. (5%)】
다시 한번 시스템창이 반짝이더니 연기력이 올라갔다.
“우리 막내, 불 끈다~”
“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정훈을 만나서 이야기 좀 해봐야겠다.
“고마워.”
“별말씀을.”
이정훈을 어떻게 하면 좋지?
* * *
THE END 촬영 장소인 산속.
나무로 빼곡한 풍경을 보면서 나는 김연호랑 따로 대화를 나눴다.
“그러니까 나비야, 오늘 여기에서 브이로그를 찍겠다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한 카메라를 김연호에게 보여주었다.
“카메라도 준비했어요.”
“…그러면 나는 뭘 하면 되는데? 이렇게 날 붙잡고 말을 하는 걸 보면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찌라시 좀 퍼트려 주세요.”
“찌라시?”
“뭐… 마약 하는 연기자가 있다는 정도로요.”
그러자 김연호가 눈을 껌뻑였다.
“나비야, 알고 있었어?”
“뭘요?”
“이번에 대대적으로 마약 하는 연예인들 잡고 있잖아.”
…아, 곧장 표정 관리를 하면서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김연호가 날 의심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설마 멤버들이.”
“아니에요, 연호 형.”
김연호는 걱정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진지한 어투로 계속 추궁했다. 네가 마약 하는 게 아니라면 다른 멤버들이 마약을 하는 건 아닌지.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놀라지 마세요.”
“알았어.”
“진짜로 놀라지 말고 들어요.”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 가방에서 약통을 꺼내서 김연호한테 건네주었다.
“마약이에요.”
“…뭐? 이게 왜 네 손에 들어와 있어.”
“요셉 형이 이정훈에게 받은 약이라는데, 무슨 약이냐고 물어보니까 기분이 좋아지는 약이라고 말했대요.”
“기분이 좋아지는 약이라고?”
기분이 좋아지는 약이라는 말에 김연호는 안경을 벗으며 눈가를 비볐다.
“정말로 기분이 좋아지는 약이라고 했어?”
“예, 마약이라고는 안 했지만…….”
이 정도만 말하자 김연호가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진짜로 마약인지 알려고 하는 거야?”
“네.”
김연호가 천천히 나를 응시했다.
“그래서 어떻게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이 약이 정말로 마약인지, 이정훈에게 물어보려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네가 엮이면?”
나는 김연호의 눈을 보면서 안심하라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럴 리는 없죠.”
“그걸 어떻게 알아…….”
“전 이정훈이랑 아무 관계도 아닌데 어떻게 엮겠어요. 드라마 촬영장에서 한 번 만났다는 걸로요?”
“기사에 같이 이름만 나와도 사람들은 그대로 믿을 텐데.”
“그땐 상황을 직접 설명하면 되고요.”
엮인다면 그거야말로 행운이다. 이정훈에게 마약을 받았다는 사실을 폭로하면 되니까. 나는 김연호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 이제 그만 일하러 가보라고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고.”
“네, 걱정하지 마세요.”
마약 사건은 키오 시절로 족하다. 저 멀리 김연호가 떠나자 나는 카메라를 들고 촬영 장소로 향했다.
오늘은 산속에서 촬영을 진행한다고 했는데, 아침이라서 그런지 날씨가 쌀쌀했다. 정요셉한테 줄 담요를 들고 곳곳을 돌아다니는데, 때마침 이정훈과 눈이 마주쳤다.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저번에 만났을 때 나한테 호되게 당하지 않았나. 실실 쪼개는 이정훈을 보면서 나는 표정을 유지했다.
“왜 여기에 있어요?”
“아, 요셉 형이 드라마 촬영을 할 때 브이로그를 찍으려고 왔습니다.”
“이거 허락받았어요?”
“감독님한테 허락받았습니다. 어차피 드라마가 나온 뒤 브이로그를 올릴 계획이라서요.”
그러자 이정훈의 표정이 달라졌다.
“우리 친하니까 반말해도 되지?”
“어, 네.”
“그럼 나도 찍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말에 나는 이정훈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럼 카메라 보고 인사하시죠.”
“안녕하세요. THE END에 출연하는 이정훈이라고 합니다.”
찍어도 2초 정도만 나오게 할 것이다. 일단 카메라를 내려놓고 촬영 상태를 유지했다.
그런데 이정훈이 떠나지 않고 계속 내 옆에서 서성거렸다. 나는 놓치지 않고 이정훈에게 물었다.
“할 말이라도?”
설마 벌써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
“…네?”
“아니야.”
이정훈은 망설이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넌지시 이정훈에게 미끼를 던졌다.
“어제 요셉 형의 기분이 좋은 것 같더라고요.”
“…어? 그래?”
“네, 그래서 드라마 촬영하며 좋은 일이 있었나 싶었어요.”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고?”
월척을 낚으려면 일단 거짓을 진실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정보를 넘기는 수밖에.
정요셉의 정보를 조금은 팔아볼까.
“오늘 촬영할 때도 기분 좋아 보이지 않았어요?”
“…그랬나.”
“요새 요셉 형이 우울해했거든요. 근데 어제는 유독 기분이 좋아 보여서, 멤버들도 좋아했어요. 보니까 무슨 약을 먹던데.”
“약? 정말로?”
그러자 이정훈의 표정에서 의심이 싹 가셨다.
“그 약, 내가 줬는데.”
“아, 그래요?
이렇게 빨리 말해준다고? 오히려 의심의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나도 어제 그 약을 먹었거든.”
“…오, 좋은 약인가 봐요.”
“비타민이지, 비타민.”
내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건가.
“고급 비타민이라서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거든.”
내 나이가 어리니까 뭣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래서 이렇게 술술 부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하려고 눈을 크게 떴다.
“비타민을 먹었다고 기분이 좋아져요?”
“어, 나도 주변 사람들한테 받은 거야.”
“와, 신기한 비타민이네요.”
“연예계에서는 유명한 약이야.”
계속 속이네, 이 새끼가. 그나저나 이 약을 어디서 얻은 걸까.
“그런 약은 어디서 가져와요?”
“그건 알려줄 수 없지.”
이건 안 통하네. 아무래도 마약 공급처가 있는 모양이다. 어찌 됐든 그것까지 내가 알 필요는 없으니까.
“아쉽네요…….”
한숨을 푹 쉬면서 카메라를 만지는데 이정훈이 반응했다.
“왜?”
“…기분이 좋아지는 약이라고 하길래, 형들한테 주면 좋을 것 같아서요.”
“기분이 좋아지길 바라?”
“어제 요셉 형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좋더라고요. 다른 멤버들도 기분이 안 좋을 때 이걸 먹으면 될 테니까요.”
그랬더니 이정훈이 덥석 미끼를 잡았다.
“너는 못 주고.”
“예?”
“요셉이한테 주라고 주는 거야.”
그러더니 은밀하게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서 가방에서 약통을 꺼냈다. 자세히 보면 평범한 영양제처럼 보였다.
“하루에 하나씩 먹으면 되거든.”
“…그래요?”
“이걸 요셉이한테 줘.”
이정훈에게 약통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였다. 주변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이정훈은 겁에 질린 표정을 하면서 허겁지겁 가방을 닫았다.
“어? 우리 막내, 여기에 있었네. 점심 먹으러 가야지.”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 됐어요?”
정요셉이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나와 이정훈을 번갈아 보았다.
“우리 막내, 여기서 뭐 해?”
“아, 뭘 좀 받으려고요.”
일단 자연스럽게 정요셉의 옆자리에 섰다.
“아, 정훈 형~!”
“어, 요셉아. 오늘 기분은 어때?”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 이정훈이 말을 더듬었다. 정요셉은 그 틈을 노려서 말했다.
“괜찮아요. 어제부터 기분이 좋았거든요.”
“아, 그래?”
“그래서 오늘도 연기를 잘할 수 있었어요.”
“그…….”
이정훈의 입이 열리는 순간 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원래 요셉 형은 연기를 잘했잖아요.”
“역시 우리 막내야~”
정요셉이 나를 끌어안으면서 이정훈을 쳐다보았다.
“이제 밥 먹으러 가시죠, 형도.”
“밥 먹어야지.”
그렇게 밥차로 향하는 중이었다.
“야, 그거 들었어?”
“뭐.”
“우리 드라마 배우 중에 마약 하는 사람이 있대.”
촬영 스태프의 입에서 나온 ‘마약’이라는 단어에 이정훈이 움찔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찌라시 퍼졌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