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안무 특훈(1)
화목현과 어머니의 만남이 잘 해결됐는데, 왜 아직도 별다른 시스템창이 떠오르지 않지?
‘…뭔가 더 있나?’
화목현은 거울 앞에서 미소를 유지하며 안무를 외우고 있었다. 다만, 평소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어.”
화목현이 안무를 잘 못 외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 동작을 외우는 시간이 거의 20분. 이건 딱 봐도 효율적이지 않았다. 저러다가 컴백 직전에 다 외우겠는데? 나는 그 모습을 찬찬히 살피면서 화목현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게 아닌데.”
화목현은 고개를 갸웃하며 계속해서 안무를 외웠다.
예전부터 화목현은 안무를 외우는 시간이 다른 멤버들보다 오래 걸렸다. 멤버들이 안무를 다 외우고 쉬고 있을 때, 화목현은 계속 외우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안무를 저렇게 못 외운다고?’
이번 안무가 꽤 어려워서 외우는 게 쉽지 않긴 했다. 혹시 안무를 외우지 못해서 시스템창이 뜨지 않는 건가?
【화목현의 예민함이 높아집니다. (16%)】
“아.”
화목현이 안무를 틀리자 다시 예민함이 높아졌다. 나는 안무 영상을 보고 있는 화목현의 옆자리에 착석했다.
“목현 형, 안무 열심히 외우던데 뭐 문제 있어요?”
“어, 나비야… 그건 아닌데…….”
“안무가 잘 안 외워져요?”
“어… 알다시피 내가 안무를 잘 못 외우거든. 나비는 안무 잘 외우잖아.”
나는 뭐.
“타고난 거죠.”
“…그래.”
내 발언에 화목현의 얼굴에 수심이 깊어졌다.
“이번에 안무가 빡세긴 하잖아요?”
거의 무대를 뛰어다니다시피 움직여야 해서 안무를 하나만 틀려도 잘 보였다.
“…많이 빡세긴 하지.”
“형, 안무를 너무 완벽하게 외울 필요는 없어요.”
“완벽하게 외울 필요가 없다?”
“네, 저도 완벽하게 외우진 않아요.”
“…그게 더 어려운데.”
“예……?”
“약간…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고 말하는 느낌이야.”
“그런 느낌이라고요?”
화목현이 한숨을 내쉬자 시스템창이 반짝였다.
【화목현의 예민함이 높아집니다. (20%)】
…4%나 더 올랐잖아.
‘이게 아닌데…….’
나는 당황한 표정을 숨기며 화목현에게 질문했다.
“그럼 목현 형은 뭐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어요?”
마른세수를 하는 화목현은 깊은 수심이 깃든 얼굴로 천천히 말을 꺼냈다.
“아니, 고민은 아니고. 그냥… 뭐, 연습생 몇 년 차인데 안무에 허덕이는 모습이 짜증 나서.”
사람이 한 가지는 잘 못할 수도 있는 법인데.
“목현 형, 안무를 얼마나 외웠는데요?”
“이든이가 가르쳐 준 1분까지?”
“1분?”
1분까지 외웠다고?
“그러니까… 음.”
플라워나 런엑스런 안무는 비교적 쉽고 간단해서 화목현의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화목현이 이렇게까지 안무를 못 외울 줄은 몰랐다.
“나비야, 놀랐어?”
“형이 안무를 못 외우는 모습을 봐서요?”
“응.”
화목현은 돌려서 말하면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솔직하게 답변했다.
“…네, 좀 많이.”
“나도 이렇게 안무를 못 외울 줄은 몰랐어.”
화목현은 어머니가 준 팔찌를 만지며 안정을 취했다.
“연습생 시절엔 춤을 못 추는 연습생도 많았거든. 그 사이에 끼어 있어서 그랬는지 나의 안 좋은 점이 두드러지게 보인 적은 없었어.”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데뷔조에 올라가면서 문제가 점점 눈에 보이는 거야. 다른 멤버들은 안무를 단숨에 외우는데… 나만 안무를 3주 내내 끌고 가는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오더라.”
도대체 어떤 안무였길래?
“어떤 안무였는데요?”
“동영상 보여줄까?”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추억은 다 간직하는 편이라.”
그리고 화목현은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안무 영상을 보여주었다.
‘…와.’
거칠고 빠른 템포의 춤이라서 화목현이 쉽게 외울 수가 없었겠네.
“기간은요?”
“일주일.”
“…어, 형은 며칠 만에 외웠는데요?”
“나? 일주일은 터무니없이 부족했지…….”
그러면서 화목현은 멤버들과 준비했던 영상을 틀어줬다. 거기엔,
“남주 형도 있네요?”
“응, 나가기 전이거든.”
이남주는 이남주고… 일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화목현의 모습 위주로 살펴보았다. 화목현은 주변 눈치를 보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때였다.
“잠깐 노래 끊자.”
팀장님이 나타났다.
“목현아,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아니라… 네가 못하는 건데 죄송할 건 없지.”
“네…….”
“왜 사람 눈치를 살살 보고 그러는 거야. 네가 죄를 지었어? 왜 그러는 거야.”
“제가 안무를 잘 못 외워서 민폐를 끼친 것 같아서.”
“민폐?”
팀장님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혀를 찼다.
“이건 실전이야. 네가 아이돌로 데뷔하고 무대 위에 올라가면 카메라가 널 찍을 텐데. 너, 그때도 눈치 살살 보면서 그럴 거야?”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화목현은 죄를 지은 것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알지, 목현아? 네가 여기 멤버로 들어올 수 있었던 건…….”
“…….”
‘얼굴 덕분이었다는 거’
…하긴, 주변 눈치 보면서 춤을 추는 건, 자신감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목현 형, 왜 눈치를 본 거예요?”
“…저때 조금 예민했어. 딱 한 번 실수하면 멤버들이 데뷔조에서 탈락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안무에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었군. 그래서 예민함이 있는 거고. 이런 고민은 쌓이면 쌓일수록 한꺼번에 터져 버릴 수도 있었다.
‘지금 발견한 게 다행인 걸 수도.’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타파하지.
“다음 영상은 안무 연습.”
우리는 다음 안무 연습 영상을 틀어서 문제점을 살폈다. 문제가 보이긴 했다.
“형은 원래 계획적으로 행동하잖아요. 약간 통제하는 성격도 있고.”
“그렇지.”
“그 성격을 안무랑 연결하려고 하니까 계속 엇나가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엇나간다?”
내 말을 조금 풀어서 말하자면,
“안무는 조금 틀릴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어? 틀릴 수는 없지.”
화목현은 쉽게 쉽게 가는 성격이 아니었다.
“조금 틀릴 수도 있죠. 무대 위에서 다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니까.”
“어……?”
너무 완벽주의적인 태도로 안무를 외우려고 하니까 효율성이 나지 않는 거다.
“형은 어떻게 안무를 외워요?”
“각도 하나하나 신경 써서.”
“어쩌면 그게 안 좋을 수도 있어요.”
“왜? 신경 쓰면 좋잖아.”
“그동안은 우리가 쉽고 느린 안무를 했지만, 언제까지 이런 안무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나는 화목현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그렇게 하다가 연말 시상식 때처럼 큰 실수가 일어날 수도 있어요.”
“…아.”
“그럼 지금부터 제 방식대로 안무를 외워보죠.”
“알았어.”
그렇게 화목현한테 안무를 알려주다가 손목에 낀 팔찌가 드러났다. 화목현의 시선이 팔찌에 닿았다.
“나비야, 팔찌 꼈네?”
“맨날 끼고 다니고 있어요. 형들도 잘 끼고 있다고 하던데?”
“아, 그래? 불편하진 않아?”
“그럼요.”
그러자 시스템창이 반짝였다.
【화목현의 예민함이 낮아집니다. (19%)】
그리고 예민함이 낮아졌다. 이거, 가만 보니…….
‘어머니가 준 팔찌를 끼고 다녀서 기분이 좋은 것 같은데?’
어머니를 만난 후, 화목현의 일상은 평소와 똑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수영장에 가고, 운동을 하며 자기 할 일을 끝냈다. 언제나 참 평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늘.
확실히 다른 모습이 엿보이긴 하는구나? 팔찌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이니 이걸로 예민함을 낮추는 방법도…….
‘설마.’
그렇게 쉽게 되겠어? 나는 넌지시 말했다.
“팔찌 예뻐서 죽을 때까지 끼려고요.”
“진짜? 예뻐?”
“그럼요.”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했던가. 다시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화목현의 예민함이 낮아집니다. (15%)】
예민함이 훅 낮아진 화목현의 낯빛은 화사햇다. 원래 화목현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듯 보였다.
‘이게 되네?’
그렇다면… 한 번으로 부족하지. 나는 천연덕스럽게 소매를 올리며 안무에 집중했다.
“각도는 형들이랑 있을 때 맞추는 편이 좋을 것 같고.”
“응.”
“일단은 안무를 대강 외운다는 느낌으로 가주는 게 좋아요.”
“그리고 형은.”
나는 화목현의 눈을 빤히 보면서 한마디 던졌다.
“실수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좀 가질 필요가 있어요.”
“…어, 어?”
“저도 무대에서 자주 실수하잖아요.”
네스트로 들어오고 무대에서 실수를 자주 하긴 했다.
“제가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에서도 안무 실수했던 사람인데요.”
“…아, 그랬지. 까먹고 있었다.”
“그래도 저, 꿋꿋하게 버텼잖아요.”
고작 실수 하나 했다고 세상이 무너지거나 그렇진 않았다. 잠깐 동안의 쪽팔림만 있을 뿐이지.
“한번 해볼까요?”
“…그러자.”
나는 거울 쪽에 붙어서 앉았다.
“제가 이제 목현 형을 심사할 거예요.”
“나비가 심사?”
“제가 형한테 1시간이라는 제한 시간을 줄게요. 그 시간 동안 목현 형이 안무를 외우는 거죠.”
“어, 그래서?”
“틀릴 시 목현 형이 저한테 만 원을 주면 되고요. 형이 3분 동안 틀리지 않으면 제가 만 원을 드릴게요.”
이 정도면 괜찮은 조건이다. 화목현도 혹하는지 짧게 고민을 끝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 지금부터지?”
“네.”
“나비 돈 좀 만져봐야겠네.”
이제부터 시작이다. 화목현의 안무 특훈.
***
연습실에는 숨소리와 노랫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형! 한 번 더!”
“응!”
화목현이 죽을힘을 다해서 안무를 외우고 있을 때, 연습실 문이 열렸다.
“뭐야? 이 심오한 분위기는?”
정요셉이 연습실에 들어오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요셉 형, 오셨어요?”
“어~ 드라마 촬영 끝나고 바로 왔지~ 피곤해~”
그렇다면 정요셉도 불러야겠다.
“요셉 형, 제 옆에 앉아서 심사 위원이나 같이 하죠.”
“심사 위원? 갑자기~?”
“제가 목현 형의 안무를 보는 심사 위원이거든요.”
“오~ 재밌겠는데.”
정요셉도 안무를 벌써 다 외운 상태라고 했다. 정요셉은 휘파람을 불며 구석에 놔뒀던 의자를 끌고 와 앉아 심사 위원처럼 팔짱을 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심사 위원을 맡은 정요셉이라고 합니다.”
“어, 요셉 씨. 이번에 드라마 촬영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 제가 심사를 위해서 드라마 촬영을 빨리 끝내고 왔거든요.”
빨리 오긴 했네. 지금 시간이 오후 8시니까.
“그렇다면 오늘 어떤 심사를 하는지 알고 계신가요?”
“아뇨, 어떤 심사인가요?”
“네스트의 리더인 화목현 씨가 1시간 동안 도둑 GAME 안무를 외웠거든요.”
“아~ 그래요? 화목현 씨는 안무를 엄청 못 외우는 걸로 알고 있는데.”
“예, 그래서 제가 한 가지 제안했죠. 1시간 동안 외운 안무에 실수가 있을 때마다 저에게 만 원을 내야 한다는 제안을 말이죠.”
“그렇습니까? 그럼 저도 심사를 하니 만 원을 받을 수 있나요?”
계산이 빠르네. 이래서 호구를 잡아야 하는 건데.
“왜? 우리 막내 씨, 만 원이 아까워?”
“에이, 제가요? 그럴 리가 없죠.”
“그러면 어떻게 해줄 건데.”
“만 원을 나누죠.”
“오, 좋습니다.”
정요셉과 합의를 하고 앞에 서 있는 화목현을 응시했다.
“목현 씨, 긴장되나요?”
“아니요.”
“실수를 하면 제가 손을 들어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는 화목현이 숨을 고르자마자 나는 노래를 틀었다. 그리고 화목현이 안무에 열중하는 동안 정요셉한테 살짝 말했다.
“요셉 형, 너무 가벼운 실수는 빼고 심사를 봐주세요.”
“아~ 가벼운 실수는 빼고?”
“네, 가벼운 실수는 넘어가죠.”
“알겠습니다~”
화목현은 열중하면서 춤을 췄다. 그러는 동안 큰 실수는 없었다.
“…오?”
“거의 실수가 없는데?”
…뭐야. 아까는 실수하더니.
“뭐야~ 이거 만 원 못 받겠는데?”
“그러게요.”
충실하게 도둑 GAME 안무를 외운 덕분인 건가.
“…어땠어?”
“형.”
“응?”
화목현은 숨이 찼는지 거칠게 호흡하며 다가왔다.
“안무 실수를 줄이는 방법을 알 것 같아요.”
“오~ 우리 막내 씨, 어떤 방법이죠?”
그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