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159화 (159/235)

159. 화목현의 어머니(2)

대충 쓸고 닦고 하니 숙소에 광이 났다. 무슨 광낸 구두처럼 눈이 조금 따갑기까지 했다. 슬슬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어, 어머니 지금 숙소로 올라오신대.”

화목현이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몇 년 만에 만나는 어머니라서 긴장된 모양이다.

“지금은?”

“문 앞… 문 앞이래…….”

최대한 깔끔하게 보이고 싶었는지 화목현은 방에서 검은색 재킷을 가져와 입고서 현관문에 도달했다.

“왜 내가 떨리지?”

“정진 형! 나도!”

이정진과 주이든은 떨린다면서 서로의 손을 꽉 잡았다. 그런데 정요셉은 딱히 떨리지 않는지 감흥이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 막내는 안 떨려~?”

“저는 뭐…….”

“떨리지도 않는 모양이네.”

“네, 그것보다는…….”

화목현과 어머니의 만남이 잘 성사되길 바랄 뿐이었다. 그때였다. 시스템창이 나타나 화목현의 상태를 알려주었다.

【화목현의 예민함이 급증하여 사리 분별을 못 하게 됩니다.】

【화목현의 상태:(;´・`)>】

※예민함이 올라가면 리더를 그만둡니다.

대놓고 화목현이 사리 분별을 못 하고 있다고 말해주네? 그게 사실인지 화목현의 눈동자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이마에 식은땀도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띵.

그때 복도에서 엘리베이터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화목현이 침을 꿀꺽 삼켰다.

“열게.”

화목현의 신호에 맞춰 숙소 현관문이 열렸다. 모두가 긴장한 가운데, 숙소 안으로 화목현과 똑같이 생긴 여성분이 나타났다.

‘진짜… 닮았다.’

숙소로 들어온 화목현의 어머니는 화목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목현아.”

“어머니.”

“…어, 그래.”

어색한 모자를 보면서 멤버들은 우렁차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우리의 외침에 화목현의 어머니는 살짝 놀라더니 손을 들어 인사해 주었다.

“그래. 얘들아, 안녕. 실제로 보니까 애기들이네.”

“어머님은 누님 같은데요?”

“어머…….”

“들어오세요~!”

능글거리는 정요셉의 말에 어색했던 분위기가 그나마 편안해졌다. 어머니가 소파에 앉고, 우리는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각자 자신이 맡은 일을 해냈다. 일단 나는,

“안녕하세요. 네스트의 막내를 맡은 범나비라고 합니다.”

“…어, TV에서 많이 봤단다. 진짜 잘생겼구나.”

“어머님도 아름다우십니다.”

“고맙구나.”

사소한 대화를 나누면서 경직되어 있는 어머니를 풀어주었다. 그다음은,

“저희가 사과를 깎아 왔습니다.”

이정진이 사과를 대령하기.

“이런 건 안 가져와도 되는데… 미안하게…….”

“저희는 매번 이렇게 먹어요.”

“그래?”

“멤버들을 위해서라면 사과는 물론, 뭐든지 깎아버리죠. 아, 저는 네스트의 둘째 이정진입니다.”

누가 들어도 이정진의 말은 뻔뻔스럽기 그지없었지만. 화목현의 어머니는 안심하는 듯이 가슴에 손을 얹었다.

“…목현이가 좋은 멤버들을 만났구나.”

슬슬 화목현이 대화를 시도하려는 모습이 보이자 우리는 뒤로 빠졌다.

“너희들은 어디 가니?”

“저희는… 그, 뭐냐?”

주이든이 나를 보며 빨리 말하라는 것처럼 눈짓했다.

“다음 정규 앨범 때문에 방에서 대화를 좀 나누려고 합니다.”

“아, 그러니? 혹시 내가 방해를 한 건…….”

나와 주이든은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럼 저희는 들어가 볼게요.”

그리고 우리는 거실과 밀접한 방에 들어갔다. 이 방에서는 거실의 작은 소음이 들렸기 때문이다.

“잘 안 들리는데……?”

주이든은 밖의 대화를 듣고 싶은지 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이거 어떡하지?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

책상 의자에 앉은 정요셉은 빙그르르 몸을 돌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 이든이, 걱정도 팔자다. 모자 사이에 무슨 일이 있겠어.”

“정요셉, 혹시 모르잖아. 갑자기 네스트를 그만두고 어머니를 따라갈지…….”

“드라마 너무 봤다~”

“아니면… 우리 계약이 5년이니까.”

“연장도 안 하고 어머니한테 갈 것이다?”

“응…….”

4년 남은 네스트 생활은 청산할 수도 있다는 거군.

‘맞는 말이다.’

하긴 사람의 마음은 종잡을 수 없으니까. 걱정이 태산처럼 커질 때였다.

【화목현의 예민함이 낮아집니다. (90%)】

예민함이 낮아졌다고?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지.

“근데 정요셉.”

“왜, 우리 이든이? 나한테 관심이라도 생겼어?”

“왜 그렇게 아까부터 무덤덤해?”

주이든의 말에 정요셉의 눈이 토끼처럼 커졌다.

“무덤덤하다니~ 내가? 전혀 아닌데.”

“맞거든!”

“아니야~ 목현 형이 어머니랑 만나서 얼마나 기분이 좋은데. 그냥… 뭐랄까.”

정요셉이 침대에 드러눕고 말을 이어갔다.

“난 부모에게 애정이 없어서 그런가.”

“…….”

“감정 이입이 잘 안 돼. 기쁘고 좋은 상황일 때도 감정이 잘 동하지 않는걸~?”

나는 넌지시 말했다.

“축하해 주고 같이 있어주는 것 자체가 감정 이입이죠.”

“그래! 범나비 말이 맞지!”

주이든이 호응해 준 덕분인지 정요셉이 기분 좋은 미소를 띠었다. 그때 내내 멤버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돌려 헛기침을 여러 번 뱉고는 용기 내서 말했다.

“우리는… 형제나 다름이 없잖아요.”

부모와 관련된 감정은 모를 수도 있지만, 형제와 비슷한 감정은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이 말은 효과가 있었는지 정요셉이 크게 웃었다.

“…요셉 형, 왜 웃어요?”

“아니, 뭐랄까.”

“뭐랄까?”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킨 정요셉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토해냈다.

“형제라고 하니까 왠지 이해가 가서?”

그러자 노트북을 보고 있던 이정진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

“그래서 이해가 가? 목현이랑 어머니의 감정.”

“음… 당연히 머리로는 이해가 가. 우리가 몇 년 동안 떨어져서 살아간다고 상상하니까 마음이 조금 안 좋더라고.”

“그럼 됐지, 뭐. 감정까지 다 이해할 필요가 있나.”

정요셉과 이정진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주이든한테 물었다.

“이든 형, 무슨 소리 들려요?”

“…흐음? 모르겠어. 들리진 않지만…….”

위풍당당한 주이든의 표정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그럼 뭔데요.”

“느낌은 들려.”

“느낌이 들린다고요?”

“마음이 열리는 듯한 느낌?”

…이건 또 뭐야.

“아닐 수도…….”

“아닌 것 같네요.”

“야, 그렇다고 그렇게 단호하게!”

그때였다. 나는 급히 주이든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희미하게 화목현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소리 들렸죠?”

주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야. 궁금하게.

***

몇 년 만에 어머니를 보는 자식의 마음에는 슬픔과 기쁨이 공존할 것이다. 화목현도 그렇게 느낄 줄 알았다.

그런데 화목현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왜 아무런 느낌이 없을까.’

보고 싶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맨날 꿈에 나올 정도로 어머니가 보고 싶긴 했으니까. 부모는 언제나 그립고 보고 싶은 존재가 아닌가. 그런데 어머니의 얼굴을 봤을 때도 마음은 요동치지 않았다.

‘긴장이 덜 풀려서 그런 걸까.’

조용한 분위기에서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화목현의 어머니.

“…목현아, 혹시 내가 집에서 떠나고 힘들었니?”

“안 힘들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렇구나. 엄마가 미안하다…….”

“아니에요. 어머니가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어요. 이건 전적으로 아버지가 잘못한 거죠.”

어머니가 아버지의 폭력에서 버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화목현은 어머니의 선택을 존중했다. 하지만,

“그래도 전 어머니가 간혹 연락할 줄 알았어요.”

“…그건.”

“한 번이라도 절 보고 싶었다면.”

부부 간의 연은 끊어도 자식 간의 연은 끊지 않겠지 싶었다. 그렇게 믿었는데, 어머니의 연락과 소식은 없었다.

“…그땐 나를 생각하기 급급했거든.”

“…….”

“널 생각하기가 어려웠단다.”

어머니의 슬픈 표정에 화목현은 살짝 눈을 내렸다. 저런 표정을 보고 싶어서 말한 건 아니었는데.

“근데 왜 연락하신 거예요?”

“TV에서 매번 보는 아들 얼굴을 실제로도 보고 싶어서. 그리고 할 말도 있고.”

“무슨 말이요?”

“…엄마, 좋은 사람 생겼어.”

…좋은 사람?

그러고는 어머니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여주었다. 예전과 다르게 행복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의 사진을 보면서 화목현은 어떠한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지금껏 한 번도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웃고 계시네.’

그리고 좋은 사람이라는 중년의 남자는, 아버지와 확연히 다르게 다정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이야.”

“좋은 사람처럼 보여요.”

“그렇지? 그럼 목현아, 한번 만나볼래?”

그 말에 화목현은 속마음을 그대로 말해 버렸다.

“싫어요.”

“어?”

“싫어요.”

화목현은 처음으로 내비친 속마음에 스스로 놀라 눈이 살짝 커졌다. 지금껏 화목현은 한 번도 싫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거절하는 방법을 잘 몰랐기 때문에.

“…어, 싫을 수도 있지.”

“오늘은 어머니만 본 걸로 칠게요.”

이걸로 대화는 끝인가. 화목현은 이정진이 깎은 사과를 한 입 물었다.

“그리고 목현아, 네 아버지랑은 이혼할 거야.”

이혼이라는 말에 저절로 화목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와 나의 관계가 너에게 영향이 갈 것 같아서 하루빨리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아…….”

“…….”

“우리가 좋은 부모였다면 네가 신경을 쓰지 않도록 대처를 잘했을 텐데.”

어머니는 화목현의 손을 어루만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어머니의 온기는 따뜻했으나 씁쓸했다.

“어머니,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야. 내가 더 고마워. 네가 바르게 커줬잖아.”

바르게 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긴 했다.

“제 옆에 멤버들이 있어준 덕분에 바르게 클 수 있었어요.”

“…응?”

“팀장님과 멤버들이 있어서 제가 이렇게 큰 것 같아요. 안 그랬으면 다른 길로 갔을 수도 있다고 봐요.”

“…그래, 좋은 사람들이 네 주변이 있었구나.”

생각해 보면 항상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회사에서는 팀장님, 그리고 멤버들. 간혹 흔들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붙잡아주었다.

“어머니를 보면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무슨 말?”

“앞으로는 어머니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해요. 그러니까…….”

벅차다. 글썽거리는 어머니의 눈을 보자 울컥하는 마음이 튀어나왔다.

화목현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저 아랫입술을 깨물며 감정을 죽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어머니에게 말했다.

“행복하세요, 엄마.”

“…….”

“저는 지금 충분히 행복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이 말을 하고 나서야 화목현은 알았다.

‘나, 울고 있네…….’

화목현은 오랜만에 흘리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목현아, 자주 만나자.”

“…알겠어요.”

“자주 만나고, 이야기도 자주 하고.”

“네.”

“엄마가… 엄마가 뭐 좀 샀거든?”

어머니는 가방에서 웬 케이스를 꺼냈다.

“팔찌예요?”

“이거, 다섯 개나 사 왔는데.”

“이걸 왜…….”

“우리 아들한테 더 잘해달라고 멤버들한테 뇌물 넣는 거지.”

팔찌를 다섯 개나 준비한 어머니를 보며 화목현은 고마우면서도 돈이 어디서 나서 이런 걸 사 왔을까 하고 걱정했다.

“저도 돈 벌어요.”

“돈 버는 건 알아. 이건 엄마가 미안해서 주는 팔찌라고 생각해 줘.”

딱 봐도 비싸 보이는데.

“많이 비싼 건 아니죠?”

그때 방에 있던 주이든이 힘차게 문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그러자 뒤이어 정요셉도 외쳤다.

“감사합니다, 어머님!”

어머니가 해맑게 웃으며 팔찌를 나눠주자 멤버들은 무척 기뻐했다. 그 모습에 화목현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정진아, 나비야, 너희들도 와.”

그렇게 정진이와 나비도 팔찌를 받아 갔다.

“이걸 받아도 될까요?”

“나비가 약간 조심스러운 성격이구나.”

“…어, 아니요?”

당황한 나비는 케이스 뚜껑을 열어서 바로 팔찌를 착용했다. 팔찌를 착용하는 데 버벅거리자 어머니가 도와주셨다.

“귀엽구나.”

“…제가요?”

“어, 귀여워.”

나비는 귀엽다는 말을 싫어할 텐데. 화목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마음껏 귀여워해 주세요.”

“그래도 돼?”

“당연하죠~ 목현 형 어머니잖아요. 그러면 제 어머니나 마찬가지죠.”

“…어머나, 말도 예쁘게 하네.”

멤버들은 팔찌를 착용했다며 화목현에게 보여주었다.

“잘 어울리네.”

정요셉은 호들갑을 떨면서 어머니의 옆자리에 앉았다.

“저희가 형 잘 보살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막내가 했던 말처럼 우리는 형제거든요.”

“형제? 막내가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나비가 급히 헛기침을 뱉자 뒤에서 정진이가 물을 건네주었다.

“응, 막내가 우리는 형제라고 선포했거든.”

“선포까지는…….”

“아니야?”

“…몰라요.”

왁자지껄하게 바뀐 거실을 보면서 화목현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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