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투두 네스트 – 병원편(2)
주이든이 금고로 향할 때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응급실에 좀비가 한 명도 없는 것을 보면 화목현이 던진 유리병 소리에 이끌린 모양이다.
“…야, 이 금고는 페이크 같은데?”
페이크라고? 주이든이 고개를 뒤로 돌리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형, 그 금고가 아니에요?”
“어, 열쇠가 아예 안 들어가.”
“아예 안 들어간다고요?”
투두 네스트가 재미도 없이 덩그러니 금고를 놔둘 리는 없는데. 이상하다.
“다른 곳으로 가보죠.”
“어, 어.”
무작정 나갔다가 좀비랑 마주치면 아무 행동도 취할 수가 없다. 그러니 좀비가 없는 틈을 타서 미리 생각해 놔야지.
나는 손전등을 살짝 입에 물고는 바지 주머니에서 병원 내부 지도를 꺼냈다.
병원 내부 지도를 살펴보니 위층으로 올라가 물리치료실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본관 1층은 다 살펴봤으니까.
나는 옆으로 다가온 주이든을 보고는 입에서 손전등을 뺀 뒤 말했다.
“형은 어디로 가면 좋겠어요?”
“본관 1층은 다 본 거야?”
“네, 제가 다 둘러봤어요.”
“그럼 위층으로 올라가자.”
위층으로 올라가면 내과랑 주사실로 가야 한다. 그러면,
“…계단 쪽으로 가야겠죠.”
“어, 계단으로 가야지.”
좀비는 소리에 의해서 움직이니까.
“형.”
“불안하게 형이라고 부르지 말지?”
나는 주이든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제가 어그로를 끌게요.”
“… 어그로를 왜?”
나는 살짝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응급실 밖의 상황을 확인했다. 좀비 무리는 소리가 났던 쪽에서 서성거리며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아까 목현 형이 계단 쪽에 유리병을 던졌거든요.”
“아.”
“그래서 제가 어그로를 끌지 않으면 우리가 위층으로 올라갈 수 없어요.”
그렇다면 한 명이 희생하며 어그로를 끌어야 하는데. 심신 미약한 주이든이 어떻게 그러겠는가. 차라리 내가 먹잇감이 되는 게 옳은 일이다.
나는 소리가 날 만한 물건을 찾기 위해 응급실을 훑었다. 최대한 소리가 큰 물건으로. 그리고 침대 밑에서 망가진 철제 침대 부품을 발견했다. 쇠라서 던지면 소리가 많이 날 것이다.
“이든 형, 제가 뛰라고 하면 계단 쪽으로 뛰는 거예요.”
“…어.”
계단 쪽과 완벽하게 반대쪽으로 철제 침대 부품을 던졌다. 둔탁한 소리에 좀비들이 그쪽으로 몰릴 때.
“이든 형, 뛰어요!”
뛰라는 신호를 보냈다. 주이든이 계단 쪽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난 뒤에 나도 필사적으로 뛰었다. 그런데 그때 수상한 낌새를 느꼈다.
‘…좀비 발소리가 안 나.’
왜 소리가 안 나지? 궁금했으나 지금 이 순간 뒤를 돌아볼 용기는 없었다. 뒤를 보는 순간 몸이 멈출 것 같아서. 그다음에는 예상대로 내 발소리에 좀비들이 반응했다.
“콰아아악.”
그 소리에 인정사정 볼 것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달리고, 또 달리고.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 계단에 도착한 주이든을 보면서 외쳤다.
“형! 문고리 잡아요!”
비상구에 도착했을 즈음 살짝 고개를 돌려 뒤쪽을 확인했더니 좀비가 나만 보며 쫓아오고 있었다. 나는 살짝 열린 비상구로 들어가 문고리를 잡고 닫았다.
쾅!
쾅!
콰앙!
좀비가 문에 부딪혔다.
“하아…….”
그제야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이든을 향해 속마음을 내비쳤다.
“형, 정말 타이밍 최고였어요.”
“…야, 나는 네가…….”
“형이 아니었으면 저 좀비로 변했을걸요.”
정말이었다. 굳이 숫자를 세지 않아도 좀비의 수가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좀비들에게 갇혔으면 꼼짝없이 좀비로 변했을 것이다.
그리고 주이든 홀로 남게 된다면…….
끔찍한 상상에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형이 중요한 역할을 해줬어요.”
“진짜?”
“진짜요. 진심이에요.”
주이든이 비상문 닫는 타이밍을 놓쳤다면 나는 화목현처럼 좀비가 되어 서성거렸을 것이다.
“…뭐, 진심이라니까.”
【주이든이 자신감을 회복합니다. (70%)】
주이든의 자신감이 70%에 도달하자 주이든의 다크서클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크서클이 사라짐과 동시에,
“그럼 범나비, 2층으로 올라가자.”
소극적이었던 주이든이 적극적으로 변하면서 내 손을 잡았다.
“2층에 동그라미가 3개나 있었지.”
“네, 2층의 내과, 물리치료실, 주사실 이 3개의 공간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어요.”
“이제 일어나자. 시간 없을 것 같아.”
주이든이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혼자서 앞장섰다.
“이번에는 내가 앞으로 갈게.”
“이든 형, 괜찮겠어요?”
“어, 어! 당연하지.”
이럴 때 칭찬을 듬뿍 해줘야 한다.
“형, 오늘 처음으로 멋있어요.”
“…뭐라고?”
한 번 더 말해달라는 건가? 닌,S 주이든을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멋있다고요.”
그러자 주이든의 입꼬리가 떨렸다.
【주이든이 자신감을 회복합니다. (72%)】
“…아, 뭐. 내가 좀 멋있지.”
서서히 자신감을 회복하자 당당했던 시절의 주이든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럼 가시죠.”
“어디부터 갈까.”
“계단에 가까운 물리치료실로.”
* * *
2층으로 올라온 우리는 편안하게 물리치료실에 도착했다.
각종 기구가 있는 물리치료실은 피로 난장판이 된 상태였다. 여기서 금고를 찾으려면…….
“…물리치료실은 좀 빡센데?”
“엄청 빡세네요.”
“우리 갈라져서 찾아보자.”
“네.”
2층은 좀비가 아예 없는 구역인지 정적이었다. 좀비가 없어서 좋긴 한데…….
“…쓰읍.”
물리치료실에 좀비가 우르르 몰려오면 문이 하나밖에 없어 죽을 수도 있었다.
‘…후.’
짧게 호흡을 가다듬고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내가 손전등으로 금고가 어디에 있는지 찾으려고 할 때였다. 무덤처럼 쌓여 있는 기구 위에서 좀비 소리가 들렸다.
‘저 안에 혹시?’
고개를 들어 소리의 근원을 찾으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정진 형?”
좀비로 분장한 이정진이 나타났다.
“어, 어.”
그런데 이정진은 계속 어떤 방향을 보면서 눈짓했다. 설마 금고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건가?
“…가르쳐 주는 거예요?”
“어, 어.”
“어디로?”
이정진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서랍이 보였다. 서랍을 열어보니 금고가 있었다.
“…정진 형.”
“어, 어.”
“좀비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어, 어……?”
“형의 희생, 잊지 않을게요.”
금고를 발견하고 나는 뒤편에서 금고를 찾아다니는 주이든에게 다가갔다.
“형, 금고 찾았어요.”
“…너 어떻게 찾았어?”
“정진 형이…….”
“형이?”
나와 주이든은 이정진을 보며 애틋한 눈길을 보냈다.
“금고 안은?”
“형한테 말하고 열려고 했어요.”
“지금 열어보자.”
우리는 다시 서랍으로 다가가 금고를 열었으나 백신은 없었다. 나와 주이든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물리치료실의 문을 쳐다보았다.
“이제 다른 곳으로 가면 되겠네.”
“가죠.”
그러자 물리치료실 앞에서 정요셉이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요셉 형?”
“정요셉은 왜 저래?”
우리를 도와주는 건가.
나와 주이든은 조심스럽게 발소리를 죽이며 정요셉을 따라갔다. 그랬더니 우리가 가려고 했던 주사실이 나왔다.
그리고 이번에도 정요셉이 가리킨 곳에서 금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요셉 형, 고마워요.”
“정요셉, 고맙다.”
정요셉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나 거기에도 백신은 없었다. 이번에도 허탕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내과만 가면 된다.
‘조금 불안해…….’
주사실과 내과는 조금 멀었다. 거의 복도의 끝과 끝.
우리는 발소리를 줄이며 내과로 도착했으나 여기에도,
“…내과에도 좀비가 없는데?”
왜 좀비가 없지?
주이든은 내과 내부를 손전등으로 훑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좀비가 나타나기 일보 직전처럼 느껴졌다.
“제가 책장 주변을 살펴볼게요.”
“그럼 내가 책상.”
조용히 책장을 뒤지고 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콰아악.”
책장 너머에서 좀비가 팔을 뻗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장 때문에 나를 잡을 수는 없었다.
“콰아아악.”
“…혹시 금고가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콰아아악.”
혹시나 좀비에게 물어보면 금고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을까 했는데 알려주기는커녕 손만 뻗어 왔다. 그렇다면 책장을 더 살펴보는 수밖에 없나.
유심히 책장을 살펴보는 찰나였다. 주이든이 뱉은 감탄사에 나는 깜짝 놀랐다.
“와!”
뭔가 해서 주이든을 쳐다보니 책상 서랍에서 금고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여기 금고!”
“서랍을 어떻게…….”
“당겼는데?”
부쉈네. 책상 서랍은 거의 망가진 상태였다.
“힘이 세네요.”
【주이든이 자신감을 회복합니다. (79%)】
뭐? 7%나 오른다고?
“이 서랍, 그렇게 쉽게 당겨지지 않을 텐데.”
“…그, 그래?”
“네, 역시 형은 대단하네요. 정말 멋있어요.”
진심이 담긴 칭찬에 주이든의 입꼬리가 스멀스멀 위로 움직였다.
【주이든이 자신감을 회복합니다. (85%)】
벌써 85%라니.
“지금 금고 열어볼까요?”
이 금고에 백신이 있으면 되는데 말이다. 그렇게 금고에 열쇠를 꽂고 돌려서 안을 확인하는데,
“…뭐야.”
거기에는 백신이 아닌 열쇠가 있었다. 열쇠를 꺼내서 손전등을 비추자 ‘응급실 열쇠’라고 적혀 있었다.
“잠깐만, 형.”
“우리.”
나는 주이든의 눈을 보면서 헛웃음을 쳤다.
“응급실로 다시 가야 해요.”
“그럼! 내가 앞으로 갈게!”
드디어 주이든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자신감을 회복하더니 얼굴 빛깔도 좋아졌다.
“아니요. 제가 앞으로…….”
“내가 형이니까, 앞으로 갈게.”
자신감이 생기니 좀비도 무섭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주변을 훑으며 병원 안을 돌아다니는 이정진과 정요셉을 쳐다보았다.
“좀비가 된 형들을 잊지 않을게요.”
주이든이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 해?”
“좀비로 변한 형들에게 향한 영상 편지?”
“아하!”
정요셉과 이정진한테 카메라에 대고 짧은 영상 편지를 보낸 뒤 1층으로 다시 내려갔다. 아직 1층은 좀비가 득실거렸다.
“조용히 가자.”
조용히 응급실로 향한 우리는 바지 주머니에서 2층에서 얻은 응급실 열쇠를 꺼냈다. 그리고 빠르게 금고에 열쇠를 꽂았다.
딱.
열쇠에 맞지 않았던 금고가 열렸다.
“열렸다…….”
우리는 빠르게 금고에서 백신을 꺼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범나비, 이제 밖으로 나가자.”
“…네.”
밖으로 나가면 백신 찾기 성공이다. 성공의 고지를 앞둔 순간, 본관 1층의 형광등이 죄다 켜졌다.
“…왜 형광등이.”
“이게 무슨 상황이죠?”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하필 그때 응급실에 화재경보 장치가 울렸다. 귀를 때리는 소리에 나랑 주이든은 눈빛을 교환하며 이 상황에 대해서 뇌를 굴렸다.
“이거 어떻게 나가죠.”
좀비들이 응급실로 달려오는 발소리가 마치 말들이 뛰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 순간, 우리 앞에 화목현이 나타나 핸드폰을 들었다.
“폰?”
“폰~?!”
나랑 주이든은 놀라서 핸드폰을 든 화목현을 쳐다보았다.
“…어그로.”
천천히 읊조린 화목현은 응급실로 달려오는 좀비 떼를 보더니 핸드폰을 들어 러브 오버를 틀었다.
‘…와.’
저절로 짧은 감탄이 나왔다. 러브 오버 홍보도 하고, 멋진 모습도 보여주고.
어떻게 보면 화목현이 제일 대단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무슨 좀비 영화의 끝을 보는 것처럼 나와 주이든은 화목현을 향해 아련하게 말했다.
“…우린 갈게!”
그렇게 우리는 병원 밖으로 나와 탈출에 성공했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백신을 꺼내서 PD에게 건넸다.
“주이든, 범나비 요원! 성공입니다!”
PD의 말에 나와 주이든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을 기다리며 주이든을 칭찬했다.
“이든 형 덕분에 탈출할 수 있었어요.”
“내 도움이 크긴 했지. 너 혼자 있었으면 탈출 못 했다?”
“예, 감사합니다.”
서로를 보며 손을 맞잡기까지 했다.
【주이든이 자신감을 회복합니다. (95%)】
자신감도 95%에 다다랐을 때였다.
“크흠!”
주이든은 부끄러운지 볼을 긁적이며 내 눈을 피했다.
“뭐가 감사하다는 거야. 다 네 덕분이지.”
“…예?”
“네 말이 아니었다면…….”
“…아니었다면?”
“왠지 이번 탈출 실패했을 거 같거든.”
“왜요? 제가 있는데.”
“나 혼자였다면 병원이 무서워서 도망갔을 것 같아. 그러다가 좀비한테 물리고 다른 멤버들처럼 좀비 분장을 했겠지?”
자신의 속마음을 밝히자 주이든의 자신감이 대폭 상승하더니,
【주이든이 자신감을 회복합니다. (100%)】
자신감을 완벽하게 회복했다.
“고맙다, 범나비.”
“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