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투두 네스트 – 병원편(1)
나는 주이든과 손을 꽉 잡았다.
“먼저 맏형즈가 병원 안으로 들어갑니다.”
PD의 말에 정요셉이 위풍당당하게 앞으로 가더니 우리를 보며 팔짱을 꼈다.
“이 형들의 위엄을 잘 봐~”
주이든이 쯧, 혀를 쳤다.
“정요셉, 웃기지 마.”
“우리가 너희들 나오는 분량 다 없애도록 하겠어.”
정요셉의 포부는 남달랐다.
“차라리 내 분량도 없애주라. 저 병원에 안 들어가고 싶으니까.”
그건 주이든이 바라던 바였다.
“이든아, 내가 그럴 것 같아?”
투두 네스트에 주이든의 분량을 뽑겠다는 정요셉의 뜻이었다. 주이든의 표정이 구겨진 종이처럼 일그러졌다.
“여기서 정요셉을 때려도 무죄 같은데, 어때?”
“어, 우리 이든이 나 못 때려.”
“왜 못 때려.”
“음, 내가 사랑스러워서?”
하… 벌써 기가 빨리는 느낌이다.
“맏형즈는 병원 현관문 앞으로 와주세요.”
맏형즈가 병원 현관문 앞으로 가자 제작진들이 병원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자 병원에서 괴상한 좀비 소리가 들려왔다.
‘생각보다 좀비가 많나?’
괴상한 좀비 소리에 주이든이 귀를 막으며 나에게 물었다.
“범나비, 이거 설마 좀비 소리야?”
“당연히 좀비 소리겠죠.”
“좀비가 원래 이런 소리를 내?”
“영화에서 보면 이런 소리를 내긴 하던데…….”
“그으래……? 내가 좀비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벌써 주이든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그때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주이든의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59%)】
…이러면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거지?
“범나비… 나 지금도 이렇게 무서운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잘할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그, 그래도.”
맏형즈가 병원에 들어가고, 밖에 남은 나와 주이든은 의자에 앉아서 멤버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러면 병원 안의 사정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생생한 맏형즈의 목소리를 듣는데, 왠지 공포 ASMR을 듣는 기분이었다.
[정요셉 : 아, 아씨… 무서운데?]
[화목현 : 어? 이거 뭐야.]
맏형즈의 목소리를 자세히 듣다가 주이든이 내 소매를 꽉 잡았다.
“…범나비, 나 좀비가 무서워서 도망가면 어떡해?”
“제가 잡으면 되죠.”
“아니, 그러니까… 내가 막 뛰면 넌 못 오잖아?”
“나도 형의 발걸음을 맞춰서 뛰면 돼요.”
주이든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영혼 없이 해?”
“영혼이 없으면 죽어요.”
“…야!”
그때였다. 정요셉의 비명이 이어폰을 뚫고 병원 밖으로 튀어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악!”
…뭔가 일이 일어나는 모양인데? 그러자 맏형즈의 목소리가 들리던 이어폰이 끊겼다.
“…뭐, 뭐야?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긴 한데.”
주이든이 내 팔뚝을 꽉 잡으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범나비, 나는 도망쳐도 너는 도망치면 죽는다.”
“…예.”
왠지 주이든이 먼저 도망갈 것 같은데. 잠깐이나마 이어폰에서 뜀박질 소리가 나면서 병원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창문?”
“……?”
나랑 주이든은 병원 안 상황을 알 수 없었으나 소리 때문에 몸이 움찔했다. 나랑 주이든은 서로 눈을 맞추며 눈동자를 굴렸다.
“이게 맞아?”
“그러게요?”
나는 고개를 돌려 PD에게 질문했다.
“PD님, 우리 죽일 작정은 아니죠?”
내 물음에 PD는 그저 웃었다. 저 웃음의 의미는 뭐야?
“설마 좀비가 저희 물어뜯고 그래요?”
“…글쎄요.”
저 말을 들으니까 머릿속이 더 혼란해졌다.
“제가 좀비에게 물리면 어떻게 돼요?”
“좀비로 변합니다.”
간단하고 명료한 대답에 나는 ‘아’ 하며 감탄을 뱉었다. 설마 병원에 들어간 멤버들이 좀비로 변하고 그러는 일은 없…….
“정식 요원 정요셉이 좀비로 변했습니다.”
…어? 정요셉이 좀비로 변했다고? 그렇다면 병원 안에서 정요셉을 만날 수도 있다는 건가.
“PD님, 혹시 저희가 병원에 들어갈 때 좀비로 변한 요셉 형을 만나나요?”
“네, 병원에서 만납니다.”
이러다가 남은 화목현과 이정진도 좀비로 변하면 어쩌지? 적이 많아질 텐데.
“그러면 PD님, 정요셉은 어떻게 좀비가 된 거예요?”
주이든은 궁금했는지 계속해서 물었다.
“저도 모릅니다.”
알면서 안 알려주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PD를 보면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금고는 몇 개 발견했는지 아세요?”
“지금 화목현과 이정진이 금고 5개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금고는 5개가 남았다는 거네.
“백신은 발견했대요?”
“백신은 아직 발견을 못 했다고 합니다.”
만약 화목현과 이정진이 좀비로 변하지 않고 금고를 발견한다면 우리가 병원에 안 들어가도 되겠는데?
‘만약이지만.’
주이든도 눈치를 챘는지 내 팔뚝을 툭 쳤다.
“형들이 금고 5개만 더 찾아서 백신을 가져온다면 우리는 안 들어가도 되는 거 아니야?”
“그럴 것 같아요.”
주이든이 환호성을 질렀다.
“아싸!”
이대로 가면 최초로 투두 네스트에 나랑 주이든이 안 나올 수도 있겠다고 방심하는 사이.
그때였다.
“아아아아악!”
두 번째로 병원에서 들려오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PD가 마이크를 들었다.
“정식 요원 화목현과 이정진이 좀비가 되었습니다.”
두 명이 동시에 좀비가 되어버렸다.
“정식 요원 주이든과 범나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병원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주세요.”
그러나 주이든은 얼굴이 사색이 된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범나비밖에 없다.”
“…예?”
“나는 너밖에 없다고.”
저 말을 하는 주이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뭐라 말도 못 하겠다. 하지만 이 말은 할 수 있었다.
“나도, 나밖에 없어요.”
“…어?”
“그렇다고요.”
주이든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나는 주이든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든 형, 괜찮아요. 어차피 금고 5개만 찾으면 병원에서 나갈 수 있어요. 그러니까 형은 어떻게든 좀비에게 물리지나 마요. 제가 최대한 형을 보조할 테니까.”
이 말을 하자 주이든이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다.
“…범나비, 네가 이렇게 믿음직스러웠냐?”
병원에 들어가기 전, 조연출이 내 가슴에 카메라를 다는 동안 PD가 병원 내부 지도와 열쇠를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여기 병원 내부 지도에 있는 붉은색 동그라미가 보이시나요?”
“…….”
“그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곳에 금고가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동그라미를 중심으로 돌아다니면 되겠네.
“형들이 갔던 장소도 알 수 있을까요?”
“갔던 장소는 엑스자를 그려놨습니다.”
그렇다면 수월하게 금고에서 백신을 가져와 병원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았데? 일단은 무서워서 떨고 있는 주이든에게 말해주었다.
“이든 형, 무서워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면 별로 무섭지 않거든요?”
“어, 어.”
“혹시나 형이 저랑 멀어져도 쉽게 만날 수도 있고요.”
“알았어!”
제작진들이 준비하는 동안 나는 주이든과 어디로 갈지부터 정했다.
“진료실부터 가자. 여기서 가깝잖아…….”
“…진료실로 가죠.”
그렇게 짧은 회의가 끝나고, 제작진들이 병원문을 열었다.
“쾌애액.”
괴성을 듣자 저절로 침이 꿀꺽 삼켜졌다.
“정식 요원 주이든과 범나비는 병원 안으로 들어갑니다.”
…후, 잘할 수 있겠지.
“형이 카메라를 잡아주세요. 제가 힌트 찾을게요.”
“…어!”
“제 옆에 형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니까.”
“…어?”
“도망가지 말고 꼭 옆에 있어주세요.”
그래야 내가 주이든을 도와줄 수 있으니까.
“병원 문을 개방하겠습니다.”
PD의 말을 듣고 천천히 내부로 들어갔는데, 병원은 삼엄하기 그지없었다. 아까처럼 괴기한 좀비 소리가 나기는커녕 너무나도 조용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았다.
“…범나비, 여기.”
눈썰미 좋은 주이든이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그곳으로 다가가자 ‘병원 규칙서’라고 적혀 있는 종이가 있었다.
《병원 규칙서》
1, 연구원들은 좀비를 죽이면 안 된다.
2, 좀비가 돌아다니면 즉시 수면제를 투입해야 한다.
3, 좀비는 소리에 취약하다.
4, 좀비는 앞을 볼 수 없다.
주의 : 좀비한테 물리면 3초 만에 좀비로 변한다.
최대한 소리를 내면 안 되겠네.
“…이든 형, 목소리나 발소리를 최대한 작게 내죠.”
“응…….”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주변을 돌아다니자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진료실이었다. 진료실은 문이 열려 있었다.
“…형, 저 들어갈게요.”
나는 주이든한테 그렇게 말하고는, 조심스럽게 진료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본 광경에 소리를 지를 뻔했다. 찰그랑찰그랑, 쇠줄 부딪히는 소리가 나면서 좀비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좀비는 볼이 뜯긴 채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나도 좀 무서운데.’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금고를 찾기 위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주이든이 팔꿈치로 날 쳤다.
“…범나비, 저기 금고 있는데?”
주이든의 시선을 따라서 눈을 돌리자 왼쪽에 위치한 사물함 근처에 금고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좀비는 우리의 발소리를 들었는지 가만히 있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계속해서 움직였다.
저렇게 움직이면 금고에 가까이 갈 수가 없는데.
“이든 형이 주변 망 좀 봐주고 계세요. 제가 가서 금고에 열쇠를 꽂아볼게요.”
“…응.”
나는 최대한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걸어가면서 좀비에게 다가갔다. 그나마 좀비의 양팔이 쇠줄로 묶여 있어 이대로 쇠줄이 풀리지 않으면 금고를 열 수 있었다.
“쾌액.”
그때 좀비가 목을 자라처럼 앞으로 당기더니 나를 훑었다.
‘…가까이에서 보니까 분장이 무섭긴 하네.’
그리고 좀비의 옆에 있는 금고에 열쇠를 꽂으려는 순간, 갑자기 좀비의 오른쪽 손목에 있던 쇠줄이 풀리며 좀비가 나에게 손을 뻗었다.
나는 주변에 있는 침대 위로 올라가 좀비의 손을 피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이든을 쳐다보았다.
“굿.”
주이든이 작은 목소리로 칭찬했다. 나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금고에 열쇠를 꽂았으나…….
“없다.”
금고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든 형, 금고에 백신 없어요.”
“없어? 그러면 다른 곳으로 가야겠네.”
“최대한 빨리 찾아야죠.”
“가자.”
우리는 진료실에서 나와 다른 CT실로 향했다. 진료실 옆이기도 했고, 무엇ㅂ돠 좋은 점은 진료실 안에 좀비가 없었다.
“…왜 불이.”
“그러게요…….”
하지만 CT실엔 좀비가 없는 대신 조명이 켜지지 않아 어두웠다.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손전등뿐. 그러나 그곳에는 금고는커녕 아무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형, 여기에는 금고가 없는 것 같은데.”
“그러게.”
다른 곳으로 가야 하나 싶은 찰나였다.
“콰아아악!”
갑자기 불꽃처럼 CT실의 불빛이 켜지면서 좀비가 거미 자세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사람의 몸이 어떻게 저래?
“…미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욕설을 신경도 못 쓴 채 주이든의 손목을 잡으며 CT실 옆에 있는 MRI실로 뛰었다. 문을 잠그자 좀비가 문을 세게 두드렸다.
쾅!
쾅!
콰앙!
이제야 살 것 같은 느낌에 나랑 주이든은 스르륵, 바닥에 앉았다.
“세상… 뒈질 것 같다.”
“…뒈지면 좀비가 되겠죠.”
“어, 당연하지.”
이상한 대화를 나누며 마음을 진정시키고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MRI실이라서 기계만 덜렁 있고 아무것도 없었다.
“…야, 범나비.”
“왜요?”
“…좀비가 몰려오는데?”
주이든이 손전등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자 CT실 쪽에는 좀비가 우글우글했다. 아까 좀비가 문을 세게 두드리는 바람에 큰 소리가 나서 좀비가 몰려오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중 눈에 띄는 한 사람이 보였다.
“…저 좀비, 목현 형 아니야?”
진짜로 화목현이 복도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화목현한테 네스트의 자아가 남아 있다면 도와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CT실에는 좀비가 너무 많았다.
이대로 나가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어떻게 나가냐?”
“나갈 방법을 찾아야죠.”
허무하게 죽으면 재미도 없고 분량도 못 챙길뿐더러 욕만 먹을 텐데. 여기에서 포기하기엔 이르다.
“이든 형, 잠시 손전등으로 여기를 비춰주세요.”
“어, 어. 그래.”
나는 고이 접어둔 병원 내부 지도를 꺼내서 확인했다.
“…저희가 있는 곳이 MRI실이거든요?”
MRI실에는 동그라미가 없었다.
“여기서 빠져나간다면 응급실밖에 없어요. 여기에서 나간다고 한들, 뛰는 소리가 나서 바로 붙잡힐 거예요.”
“그렇다면?”
“잠잠할 때를 노리고 밖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는데.”
잠잠해지면 또 소리가 나는 쪽으로 좀비들이 오겠지. 그런 타이밍을 노릴 수밖에 없다.
“야… 목현 형 이상해.”
“뭐가요?”
“저기 봐.”
주이든이 보라는 방향을 봤더니 좀비로 변한 화목현이 유리병을 들고 있었다. 화목현은 그 유리병을 우리가 보는 앞에서 멀리 던졌다.
타타탕.
유리병이 바닥에 부딪히면서 큰 소리가 나자 좀비가 그쪽으로 몰렸다.
“이거… 우리를 도와주는 거 아니야?”
“그런 것 같은데요?”
“역시 우리 형!”
화목현의 어그로 덕분에 우리 주변에 있던 좀비가 싹 사라졌다. 우리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가자 화목현은 우리를 보면서도 물 생각이 없는지 가만히 서 있었다.
‘아직 네스트의 자아가 남아 있네.’
주이든은 울먹거리며 감사 인사를 빼먹지 않았다.
“목현 형, 고마워…….”
나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응급실로 뛰어갔다. 그런데 응급실은 무척 엉망진창이었다. 좀비와 기계로 얽혀 있는 데다, 특히 바닥에는 웅덩이처럼 피가 모여 있어 함부로 들어가기가 꺼림칙했다.
“…이거, 무섭다.”
“…네.”
무섭지만 일단 들어가야지…….
“저는 금고가 있는지 확인하러 좀 더 안으로 들어갈게요.”
“어, 어…….”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구석진 곳 중앙에 대놓고 금고가 있다.
“…저거 금고 아니냐?”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쩐지 가면 안 될 것 같지?”
“…네.”
‘나 금고요’ 하는 곳엔 언제나 함정이 따르는 법.
“…범나비, 이 형이 갈게.”
“……?”
“형이 어떻게 가요.”
주이든이 벌벌 떨리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만 믿어! 갔다 올게.”
“이든 형, 제가 뒤를 보고 있을게요.”
“어, 어.”
덜덜 떨면서 금고로 향하는 주이든에게 나는 조용히 말했다.
“형, 멋져요.”
그 말에 주이든의 눈빛이 일렁였다. 그러고는,
【주이든이 자신감을 회복합니다.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