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주이든은 주인공이 싫다
싫다는 소리에 내 눈이 커졌다. 오히려 나는 주이든이 주인공이 되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이든 형, 왜 싫어요?”
“…아, 주인공은 별로 안 좋아해.”
주이든이 세상 무너진 사람처럼 축 늘어졌다. 나랑 이정진은 시선을 교환하며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에 빠졌다.
“이든아, 이건 널 위해서 작곡한 건데.”
이정진이 말하자 주이든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한테 미리 말하지……!”
“몰래 말해주려고 했으니까.”
“난 아무튼 싫어!”
주이든은 원래 이렇게나 강하게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뭔가 있는데?’
이정진도 나랑 똑같이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음, 이든아 이번 앨범에서 네가 제일 중요한데?”
정말 그랬다. 나랑 이정진은 일주일, 24시간 내내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주인공을 결정했다.
“이든 형, 진짜로 형이 중요해요.”
“아니, 그게…….”
나랑 이정진의 반응에 주이든은 기가 푹 죽었다.
“…사실.”
주이든이 울상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발목이 안 좋아.”
…어? 발목이 안 좋다고? 우리는 주이든의 발목을 일제히 쳐다보았다.
“이번에 무리하게 춤 연습을 하다가 삐었거든. 이걸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주이든은 발목을 문질렀다.
“이든아, 병원은?”
화목현이 묻자 주이든이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병원 갔다 왔어.”
“…병원에서 뭐래요?”
“…한 2주 동안 병원 다니면서 무리하지 말라고 했어.”
그 정도면 심하게 삔 건 아니네. 한시름 놓았다.
“이든 형, 그 정도면 괜찮아요. 주인공을 해도 괜찮을 텐데.”
“…아니, 나도 아는데. 뭔가…….”
주이든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간절하게 말했다.
“자신감이 없어.”
자신감을 잃었다니. 이건 큰일이다. 주이든에게 자신감을 빼면 시체니까. 이건 심각한 사안이다.
“…다른 사람이 하면 되지 않을까? 나보다 잘할 수 있잖아!”
주이든의 말에 나는 냉큼 고개를 저었다.
“형이 아니면 이번 앨범 타이틀곡인 도둑 GMAE은 못 해요.”
“아니야. 목현 형도 있고, 정진 형도 있잖아?”
“형이 제일 잘 어울려요.”
“내가?”
“예,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주이든만큼 도둑 GMAE에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었다. 이정진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가만히 있었다.
“형이라서 결정한 거예요.”
“…야, 그렇게 말하면 미안하잖아. 내가 잘하는 사람도 아닌데…….”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주이든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맞아요 이든 형이 잘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야!”
“그렇다고 형이 못하는 사람도 아니잖아요.”
“…어?”
힘을 주고 있던 주이든의 눈이 조금씩 풀렸다.
“제 말이 무슨 뜻이냐면 형은 기복이 없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
“기복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모르죠?”
주이든은 기복이 없음에도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고.
왜 발목 하나 삐었다고 자신감을 잃은 건지 잘 모르겠다.
“왜 자신감을 잃은 거예요?”
내가 묻자 주이든이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HOR 엔터에서 나를 가지고 어그로를 끌었거든.”
언제? 이정진과 컨셉 피드백을 주고받느라고 못 본 모양이었다.
“이든 형, 어떤 어그로요?”
“이번에 다이아몬드 멤버가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스’에 출연한대.”
또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간다고?
“거기서 ‘네스트의 이든보다 나은 댄서 멤버’라는 기사로 제목을 적었더라고요. 내가 발목을 삔 시점에서.”
우리는 기사를 확인하기 위해서 핸드폰을 꺼내 ‘주이든’을 검색했다.
[댄스의 마지막 멤버는 다이아몬드?]
[돌연프에서 주이든과 동등하게 춤 A를 맡았던 다이아몬드 멤버]
[주이든보다 다이아몬드 멤버의 춤 실력이 더 낫다?]
“세 번째 기사 들어가 봐.”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주이든의 말을 들으며 나는 세 번째 기사를 클릭했다.
“범나비, 그 기사에서 댄스 트레이너 김 팀장이라는 분 보이지?”
[HOR 엔터 댄스 트레이너 김 팀장이
‘다이아몬드 멤버인 제도전은 주이든보다 더 나은 춤 실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제도전을 주목해 주면 좋을 것 같다.’라고 답변했다.]
허… 이렇게 대놓고 기사를 쓴다고?
“이걸 봤어요?”
주이든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갤 끄덕였다.
“댄스 학원에서 만났던 분이거든. 그분이 나를 HOR 엔터에 연습생으로 들어가게 해줬어.”
“…예?”
“내 춤 실력이 제일 좋다고 했던 분이 이런 식으로 날 까고 있으니 자신감이 뚝 떨어지더라…….”
“…….”
“그 말이 진짜 같아서.”
삽시간에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이제 나는 HOR 엔터에서 나왔으니까.”
“…….”
“그런데 너무 속상하잖아.”
주이든은 짧게 웃음을 터트리며 칙칙한 분위기를 털어내려고 했다.
‘…이걸 HOR 엔터 측에서 대놓고 말하다니?’
나는 기사를 다시 읽었다. 기자는 주이든의 춤 실력에 대해 김 팀장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이든이가 비보이 활동을 해서 몸이 튼튼하지만, 도전이처럼 선이 고운 춤은 못 추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주이든을 까다니? 제정신인가. 계속 주이든을 물고 늘어지네. 설마 주이든을 놓친 게 아까워서 이러나.
그렇다고 해도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놓친 물고기가 아까우면 물고기 관리를 잘하든가. 이런 식으로 계속 주이든과 연관 지어 어그로를 끌 것 같아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물며 주이든은 그 어그로에 상처를 깊게 받은 모양이었다.
‘저렇게 우울해하는 사람이 아닌데…….’
주이든은 몸을 옆으로 돌려 다리를 새우처럼 만들었다.
“그냥… 며칠 뒤에는 나아질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
“이대로 놔두면 알아서 잘되겠지.”
저 기사를 보고 주이든의 자신감이 마이너스가 된 모양이다.
‘…안 그래도 발목 부상 때문에 움츠려 있는 상태인데.’
내가 이마에 손을 얹으며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찰나, 시스템창이 떴다.
【주이든의 자신감이 떨어져 민폐력이 급증합니다.】
【주이든의 상태:。・+゚゚(う ᐞ´。)゚゚+・。】
※자신감이 떨어지면 그룹 탈퇴로 이어집니다.
이걸 어떻게 하지? 이정진과 진지한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아.”
주이든이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테이블에 올라간 물컵을 치는 바람에 바지가 젖었다. 나는 차분하게 휴지를 꺼내서 주이든한테 건넸다.
“범나비… 고맙다.”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서 그런가 주이든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그렇다고 주이든의 말처럼 다른 멤버를 주인공으로 바꿀 수는 없었다.
이번 첫 정규 도둑 GAME 앨범의 주인공은 주이든이 어울리니까.
「문제 23, 주이든에게 칭찬하기! (0%)
페널티:네스트 주이든의 탈퇴
정답 풀이:미래의 힌트 1조각」
…칭찬을 하라고? 나는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보는 주이든을 향해 말했다.
“이든 형.”
“…왜.”
“형은, 정말 최고예요.”
“어, 어?”
갑작스러운 칭찬에 주이든이 당황했다.
【주이든이 자신감을 회복합니다. (1%)】
‘아하, 이런 식으로?’
이윽고 주이든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범나비, 왜 갑자기 칭찬이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 주이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게 눈에 보였다. 그렇다고 칭찬을 난발하면 효과는 미미하겠지.
내 칭찬에 어색한지 주이든은 화장실에 간다며 자리에서 빠졌다.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냉큼 소파에 앉은 화목현과 이정진한테 말했다.
“형들, 이든 형한테 계속 칭찬을 해보는 건 어때요?”
화목현이 먼저 반응했다.
“칭찬?”
“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데… 우리라도 이든 형한테 칭찬을 하면 괜찮지 않을까…….”
“좋네. 괜찮다.”
“…어, 진짜요?”
옆에서 이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동의.”
그러면서 뒤에 가만히 앉아 았던 화목현이 핸드폰을 들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연호 형한테 연락이 왔는데, 이번에 이든이한테 댄스 패널로 와달라고 하더라고.”
“…패널이요?”
“패널로 앉아서 무대를 보는 거지.”
“설마 그날이.”
화목현이 잠깐 뜸을 들였다.
“다이아몬드 멤버의 무대가 있는 날이야.”
“…아.”
제작진들도 참 독하다.
‘다이아몬드랑 주이든이 어떤 관계인지 뻔히 알면서.’
대놓고 대결 구도를 만들겠다는 거잖아.
“그 댄스 트레이너 김 팀장이라는 분도 나온대요?”
화목현이 톡을 보여주며 말했다.
“나온대.”
“피셜이에요?”
“어, 지난주에 트렌디 도라임이 나왔거든. 거기서 김 팀장을 소개하더라고.”
이건 확실히 나온다는 거지.
“이든 형이 패널로 가는 날은 언제인데요?”
“2주 뒤?”
2주 뒤라면 아직 시간이 있다.
“그러면 이든 형도 댄스 패널로 가는 거 알아요?”
그러자 화목현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직 말은 안 했어.”
“…안 가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겠지.”
근데 어떻게 저 주이든을 설득하지?
* * *
최대한 말을 돌려서 댄서 패널에 대해 말했더니 주이든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싫다는 신호다.’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주이든은 자주 입술을 씹었다.
“…안 간다고 말해도 돼?”
그러고는 자존감이 떨어진 목소리로 저렇게 말했다. 화목현이 주이든을 앉혀서 설득을 해봤으나…….
“이든아, 싫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안 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
“…그렇겠지?”
“…어.”
“아니면 다른 멤버가 가면 되지 않을까?”
다른 멤버가 가도 되긴 할 텐데. 주이든의 기죽은 목소리에 마음이 불편했다.
“…이든아, 왜 가고 싶지 않은 거야?”
“김 팀장님을 만나면… 내 모든 게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 싫어.”
부정당하는 느낌이 싫긴 하겠지. 나였어도 싫었을 것이다. 드라마 촬영 때문에 뒤늦게 상황을 알게 된 정요셉이 나섰다.
“에이~ 우리 이든이, 그 김 팀장이라는 분을 안 만날 수도 있잖아?”
“…왠지 가면 댄스 제작진분들이 나랑 제도전을 대결 구도에 올려둘 거 같거든? 그래서 가기 싫어.”
“아… 그렇긴 하네.”
정요셉도 설득 실패.
“이든아, 그래도 한 번쯤 맞서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미안, 정진 형. 그 말, 전혀 설득 안 돼.”
“그렇구나…….”
결국 이정진도 실패했다.
‘나만 남았네.’
시스템이 칭찬을 하라고 했었지.
“이든 형.”
“…너도 가라고 할 거면.”
“저는 이든 형의 춤선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어? 갑자기?”
내 칭찬에 주이든은 당황했다. 나는 그 틈을 파고들어 계속 칭찬을 했다.
“그 춤선은 김 팀장이 만들어준 게 아니라, 오로지 이든 형이 만든 성과라고 생각하고요. 저번에 저한테 연습생 시절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잖아요?”
“…어, 어.”
“원래 엄청난 박치였다고.”
박치였다는 말을 듣고 그 당시 내가 생각하고 있던 주이든의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
“전 그 말을 듣고 이든 형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네, 저는 음치였다면 노래를 아예 안 했을 거예요. 노래를 잘하고 싶다는 희망 따윈 사치나 다름없으니까요.”
“…그게 왜 사치야.”
“그런 마인드가 있어서 형이 대단하다는 거예요. 이든 형은 어느 상황에서든 희망을 지니고 있잖아요.”
서서히 주이든의 굳어 있던 표정이 풀어졌다.
“김 팀장의 말을 그대로 인정하지 마요.”
“…….”
“그 한 사람의 말에 휘둘리면 형의 과거를 부정하는 셈이 되니까.”
“…….”
“…그렇죠?”
계속 움직이던 주이든의 눈동자가 멈추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게 말하니까 싫다고 말을 못 하겠잖아……!”
“싫다는 말을 못 하게 하려고 그랬던 건데.”
“…알았어. 갈게! 가면 되잖아!”
그러면서 주이든은 자신의 침대에서 곰인형을 끌어안았다.
“…근데 둘이 언제 박치였던 사실까지 말하고? 완전 친해졌네?”
화목현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원래 나랑 범나비 친했어!”
주이든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맞지?”
“예, 친하죠.”
【주이든이 자신감을 회복합니다. (30%)】
그러자 30%라는 큰 폭으로 퍼센트가 올라갔다.
“봐. 나랑 범나비는 친하다고!”
당당한 주이든의 태도에 화목현과 이정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정요셉은 내 옆에 떨어진 곰인형을 줍더니 꿀밤을 놓았다.
“이 곰인형, 우리 이든이 닮았네.”
그러면서 정요셉은 주이든을 보며 곰인형의 이마에 계속 꿀밤을 놓았다.
“그거 하지 마!”
“아~ 어쩌지? 손가락이 막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네~”
아직 주이든의 문제는 해결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댄스에 나간다고 했으니까,
‘괜찮은 거겠지.’
그건 그렇고…….
‘진짜로 김 팀장을 만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 * *
실제로 주이든과 김 팀장이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무시부터 시작해서 말대답까지.
시뮬레이션도 하면서 나는 주이든을 지킬 방도를 계속 생각해 냈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도착한 곳은 댄스의 촬영 장소.
“…범나비, 화장실 가고 싶으면 나한테 말해라.”
“같이 가게요?”
“어.”
패널에게는 따로 대기실이 없었기에 나와 주이든은 ‘네스트’라고 적힌 의자에 앉았다. 주이든이 혼자서는 나가기 싫다고 하는 바람에 제일 한가한 내가 같이 왔다. 그런데,
“어, 이든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다?”
그런데 이렇게 빠르게 김 팀장과 만날 줄은.
“이든이가 온다는 말에 나도 왔지.”
“…아, 네.”
떨떠름한 주이든의 태도에 김 팀장은 씩 웃었다.
“이든아, 그거 봤어?”
“…뭘요.”
“기사 말이야.”
뻔뻔하게 먼저 기사에 대해 말을 꺼내네. ‘기사’라는 단어에 주이든은 단번에 표정이 굳었다. 나는 김 팀장이 주이든한테 무슨 말을 할까 싶어 대화에 끼어들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네스트의 범나비라고 합니다.”
“…어, 네스트의 범나비?”
김 팀장은 크게 눈을 뜬 채로 나를 쳐다보았다.
“오? TV 화면에서 보는 것보다 잘생겼다.”
“칭찬 감사합니다.”
“실제로 보면 미남이네. AA 엔터는 복도 많아. 이런 멤버들을 구하고.”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김 팀장이 빠졌으면 좋겠는데…….
“이든아, 그나저나 기사 봤어?”
“어떤 기사요?”
“못 봤어?”
주이든은 최대한 김 팀장의 질문을 피했다. 그렇지만 김 팀장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아는 이든이라면 기사 봤을 것 같은데.”
주이든이 눈썹을 꿈틀대자 김 팀장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 기사, 내가 인터뷰했는데.”
…끈질기네. 그러면서 김 팀장은 노골적으로 주이든을 쳐다보며 웃었다.
“아무래도 내가 이든이한테 실망하긴 했으니까.”
“…….”
“그런 기사를 내보낸 거야. 너도 알지, 이든아?”
“…….”
“내가 실망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