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공식봉
이정진이 스케치북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막내가 공식봉 중간에 네모난 홈을 만든다는 거지?”
“네, 그러면 공식봉을 살 때 기분이 더 좋을 것 같아서요.”
“…그렇겠다.”
“공식봉을 꾸미는 재미도 있고요.”
“어떤 식으로?”
나는 노란색 색연필을 꺼내 공식봉을 그려서 네모난 틈을 표시했다. 그리고 반짝이는 효과를 넣어 멤버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렇게 내 최애를 뽐낼 수도 있다는 거죠.”
“하지만 단가가 높아지지 않을까.”
“그래서 네온들을 위해 회사에 공식봉에 구멍이 없는 버전과 있는 버전을 둘 다 내면 안 되냐고 물어보려고요.”
팬들이 공식봉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차별화가 된다면 우리 공식봉의 메리트도 생기니까.
“그런데 요셉이가 드라마 촬영 가기 전에 그린 것도 볼까? 안 보면 섭섭할 것 같은데.”
정요셉의 스케치북을 확인한 주이든은 미간을 찌푸렸다. 마치 신기한 생물을 만난 사람처럼.
“그런데 이게 뭐야?”
얼마나 심각하길래 주이든의 표정이 저렇게 안 좋을까 싶어서 스케치북을 들여다보았다.
‘이게 맞아?’
스케치북에 그려진 공식봉의 형태는 그야말로 네모난 벽돌이었다. 벽돌? 주이든이 친절하게 벽돌 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정요셉이 친절하게 공식봉에 대한 설명도 적어놨네.”
정요셉은 벽돌로 공식봉을 만들면 눈에 띄고 재밌지 않냐는 의견이었다. 누가 봐도 이게 무슨 공식봉이라고 하겠지만, 정요셉은 진지하게 그렸을 확률이 높다.
화목현이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
“요셉이 의견은 무시할까?”
그렇게 우리는 정요셉의 공식봉을 무시했다.
“차라리 네온들한테 물어보자.”
이정진의 제안에 멤버들이 동의했다.
“그렇다면 라이브 방송으로 하죠.”
일사천리로 멤버들이 움직였다. 화목현의 핸드폰으로 라이브 방송을 켜자마자 네온들이 들어왔다.
-이 시간에 웬일?
-낮이야
-나 놀라서 일도 못 하고 왔어
일을 못 하고 왔다고? 냉큼 이 사실을 멤버들에게 알렸다.
“형들, 네온들이 우리 때문에 일을 못 하고 있다는데요?”
내 말에 주이든이 가소롭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저러면서 네온들 일 다 할걸? 우리 네온들이 얼마나 철두철미한데.”
-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맞지 맞지ㅋㅋㅋㅋㅋㅋㅋ
-무슨 일로 켰어?
팬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만 할 말을 까먹었다.
“네온들, 우리 공식봉 얘기하고 있었어요.”
-공식봉?
-헐
-너무 좋아!!!
-대박!!!!
-우리 공식봉 생기는 거야?
공식봉에 대해서 말을 하자 네온들이 난리가 났다. 하긴 공식봉이 너무 늦어지긴 했다. 화목현이 자연스럽게 끼어들어서 말했다.
“네온들?”
팬들도 웃음기가 사라지고 각을 잡았다.
-자 화목현 타임이다
-네 화목현 선생님
화목현도 이제는 팬들의 반응이 익숙한지 공식봉에 대해서 천천히 설명했다.
“우리 멤버들이 네스트 공식봉 디자인을 생각해 놨거든요?”
-네네
-그래서 선생님, 공식봉이 뭔데요?
네온의 질문에 화목현은 진땀을 빼며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그래서 우리 멤버들이 열심히 그린 공식봉을 네온들에게 보여줄 겁니다.”
멤버들은 자신의 스케치북을 들고 네온들한테 그림을 보여주었다.
-헐 클로버 좋아
-이든이 저게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술봉을 들기엔 내 나이가…
-정진이 봉도 좋다
-목현 선생님… 저 도끼는 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내가 그린 공식봉이 인기 있었다.
-클로버 공식봉 귀엽다
-근데 클로버 중간에 네모는 뭐야?
눈이 높은 네온들은 내 공식봉의 진가를 알아줄 거라고 믿었다. 클로버봉에 좋은 반응이 있을 때를 노려서 나는 스케치북을 들고 말했다.
“여기에 포카를 넣을 수 있도록 할 거예요.”
공식봉에 포카를 넣는다는 말에 네온들이 놀랐는지 물음표가 계속 올라왔다.
-?
-포카를?
-거기에 왜 넣어?
나는 다시 멤버들한테 했던 말을 꺼냈다.
“이 중앙에 홈을 파서 작은 포카를 넣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공식봉에 작은 포카를 넣는다고?
-좋다!
-아이디어 너무 좋은데?
거기다가 네온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우리 형들 얼굴이 공식봉에 박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건 좀 힘드니까… 네온들은 꾸미는 걸 잘하니까 공식봉을 잘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나비가 생각한 봉 괜찮다
-ㅋㅋㅋㅋㅋ아이디어 좋네
-홈 없는 것도 되나?
-포카 안 넣는 버전도 나오면 좋을 듯
채팅창을 보자마자 나는 말했다.
“네모난 홈이 없는 버전도 내달라고 할 거예요.”
클로버봉의 인기가 높아지자 주이든이 입술을 삐죽였다.
“내 봉도 예쁜데.”
-이든이 봉도 예쁘긴 하지~
-맞아~
일단은 주이든의 봉도 예쁘다고 추켜올려 주었다.
-투표하자!
-투표해서 제일 높은 걸로 하자~
“그렇다면 공식 SNS 계정에 투표를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몇 분도 안 돼서 SNS에 투표가 열렸다.
화목현은 하나를 제안했다.
“그럼 우리가 그린 공식봉을 어필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좋아!”
우리가 좋다고 말하자 곧바로 화목현이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우리 네온 여러분, 저는 네스트의 리더 화목현이라고 합니다.”
공손하게 양손을 배에 올리며 화목현이 허리를 숙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사를 한 뒤 화목현은 자신의 스케치북을 들며 말했다.
“이 공식봉을 꼭 채택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도끼! 어떤 아이돌이 도끼로 공식봉 만들 생각을 하겠습니까? 실제 도끼가 아닌, 앞을 빛낼 도끼! 네스트의 공식봉!”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끼! 가자! 도끼! 가자!
-나도 도끼 마음에 들어
“이 도끼 공식봉은 그야말로 혁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도끼 공식봉을 꼭 투표해 주세요.”
이럴 때마다 화목현은 우리 네스트의 리더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맑은 눈의 광인 그 자체.
“안녕하세요. 저는 네스트의 둘째 이정진입니다.”
이번에는 이정진이 발표할 차례였다.
“저는 네온을 생각하면서 계속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작곡할 때처럼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제가 그린 것은 바로 사탕입니다.”
-사탕?
-왜 사탕이 떠올랐을까요?
-우리가 사탕이라니 달콤했나 봐
이정진이 아련한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맞습니다. 네온은 달콤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거기다가 공식봉은 둥근 게 예쁘기 때문이죠! 우리 사탕봉, 잘 부탁드립니다.”
멘트를 준비라도 건가… 왜 이렇게 술술 나와. 이정진이 배에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우리 정진이 발표 잘한다
-정진이 ㄱㅇㅇ
그리고 요술봉의 창시자 주이든이 어깨에 담요를 두르며 웅장하게 일어났다.
“이것이 요술봉이다.”
스케치북을 보여주며 주이든이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봉 디자이너 주이든입니다.”
-봉 디자이너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이든아
-정말 이든이는 못 말려
-이든이는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랑 너무 달라
주이든은 가끔씩 이럴 때마다 미지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이 요술봉이 왜 우리 네스트의 공식봉이 되어야 하는가! 나, 주이든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요술봉? 어릴 적 꼭 한 번 써보고 싶은 봉 아니었습니까?”
-그치그치
-나도 요술봉이 필요해
“여기서! ‘뽀로롱’ 소리까지 나오는 요술봉이 네스트의 공식봉이라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쉴 새 없이 말하는 주이든을 보면서 나는 박수가 절로 나왔다.
-이든아 천천히
-숨 쉬자ㅋㅋㅋㅋㅋㅋㅋㅋ
-이든이 진짜 못 말려
마지막 발표가 끝나고 주이든은 담요를 벗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 이 요술봉! 공식봉계의 혁명인 이 요술봉에 꼭 투표 부탁드립니다.”
-요술봉 좋은 것 같아 나 홀렸다
-이거 어디서 사나요 요술봉 사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주이든이 미소를 유지하며 의자에 앉았다.
이제 내 차례.
나는 핸드폰 화면을 거울 삼아 머리 상태를 확인하고는 스케치북을 들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검은색 라텍스 장갑을 꼈다. 주이든이 나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라텍스 장갑이 가방에 있어?”
“오늘 마트에 가서 사놨었거든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저는 네스트의 막내 범나비라고 합니다. 저는 네잎클로버가 우리 공식봉이 되길 바랍니다. 이유는 ‘네스트’, ‘네온’, ‘네잎클로버’ 앞 글자가 모두 ‘네’로 시작하기 때문이죠.”
-오~
-일리 있다~
-좋다 좋아
채팅의 호응도 좋다.
“그리고 저는 거기에 네모난 홈을 만들 예정입니다. 그곳에 작은 포토 카드를 넣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오~
-나도 이거 때문에 네잎클로버가 제일 좋아
그리고 아직 제일 중요한 말이 남아 있다.
“저는 네모난 홈이 없는 버전과 있는 버전을 동시에 회사에 제안하겠습니다.”
그리고 결의에 찬 표정을 지으며 오른손 주먹을 꽉 쥐었다.
“우리 네온들, 제 네잎클로버 공식봉에 투표해 주세요!”
-우리 애들이 공식봉에 진심이네ㅋㅋㅋㅋㅋ
-그래요 투표할게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는데, 그 순간 정요셉이 그린 벽돌 공식봉에 눈길이 갔다. 이것도 보여주긴 해야겠지.
“제가 소개할까요?”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요셉이 적었던 문구를 그대로 말했다.
“사람을 칠 수 있는 봉! 요셉 형의 공식봉을 소개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ㄱㅇㄱ
-사람 친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라고?ㅋㅋㅋㅋㅋㅋㅋ
“요셉 형이 ‘공식봉은 잡고 흔드는 게 매력. 벽돌을 흔들면 재밌지 않을까요?’라고 적어주셨습니다.”
정요셉이 그린 공식봉을 보여주자마자 채팅창에서는 물음표가 떠다녔다.
-벽돌 아니야?
-정말 요셉이답다
-아니 저게 벽돌 공식봉?
-이상하게 투표지에 기타가 있더라
-요셉이가 최애지만 이건 아니다 미안해 요셉아…
“근데 이거 때릴 용도 아니야?”
이정진의 팩폭에 팬들이 동의했다.
-ㅇㅈ
-사람 때리는 용도
-팬들 감옥 가겠다
-우리를 범죄자로 만들고 싶니?
그렇게 팬들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다가 슬슬 라이브 방송을 끝낼 시간이 다가왔다.
“투표로 공식봉이 결정되면 시안을 보여 드릴게요! 이제 안녕!”
인사를 하며 라이브 방송을 껐다. 주이든은 숙소 바닥에 쓰러지듯 눕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범나비, 우리 정규 앨범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곧 네스트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이 나온다.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은 곡 작업과 정규 앨범 컨셉, 그리고.
“이번 정규 앨범 주인공이 정해졌어요.”
네스트에는 앨범마다 주인공이 있었다. 플라워는 나, 런엑스런은 정요셉. 그리고 이번 정규 앨범의 주인공도 정해졌다.
“정진 형, 말해도 될까요?”
“어, 말해도 돼.”
주이든은 궁금하다는 듯이 눈빛을 반짝였다.
“설마 목현 형? 아니면 정진 형?”
들뜬 주이든을 보면서 나는 입을 열었다.
“이든 형인데요.”
“…어?”
“이번 정규 앨범의 주인공은 이든 형이에요. 이건 정진 형이랑 같이 생각해 본 건데…….”
그때였다. 주이든이 나를 보며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