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정요셉이라는 배우
이정훈은 당황한 티를 내면서 입만 벙긋거렸다.
“…뭐, 그렇죠.”
자신한테 하는 일침이라고 느꼈는지 이정훈의 얼굴이 빨갛게 익었다. 토마토나 다름이 없네.
우리가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촬영은 끝을 달리고 있었다.
“컷!”
벌써 끝났나. 연기가 끝나고 황민 감독에게 달려간 정요셉은 자신의 연기에 대해 물었다.
“제 연기 괜찮았나요?”
“어! 미팅했을 때보다 훨씬 나은데?”
“휴… 다행이다~”
나는 이정훈을 보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어, 네.”
수건과 생수를 들고 정요셉에게 가자 정요셉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막내야, 나 연기 어땠어?”
“…어.”
“뭐야. 못 봤어?”
“어떤 배우분이 계속 말을 걸어서.”
‘어떤 배우분’이라는 단어에 정요셉이 내가 있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이정훈이 있었다.
“아, 저 배우분?”
“네.”
“가까이 안 가는 게 좋을 거야.”
정요셉은 눈은 웃으면서 입으로는 나에게 계속해서 속삭였다.
“내가 이 배역에서 나가길 바라는지 계속 이상한 질문을 하더라.”
“어떤 질문이요?”
“…카메라 울렁증이 있으면서 왜 연기를 하냐고.”
아하.
“감독님이 그러는데, 내 배역이 원래 저 배우에게 갔었대.”
“그래요?”
그래서 나한테 그랬던 건가.
“근데 갑자기 말을 돌려서 이 배역을 안 하겠다고 말했다던데?”
“…그런데 왜?”
“초반엔 내가 맡은 태위선이라는 배역이 거의 엑스트라였거든.”
배가 아팠던 거군.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배역이고 분량이 적어서 거절했는데…….
“그런데 나중에 황민 감독님이 작가님한테 말했대. 태위선의 분량을 늘려달라고.”
“…하루아침에 태위선이라는 배역이 바뀐 거네요.”
역시 될놈될이다. 정요셉이 이 역할을 하려고 하니까 역할 자체가 바뀐 거 아닌가. 태위선의 이미지는 정요셉과 비슷하지만 성격은 정반대. 능글스러운 정요셉과 달리 태위선은 냉정하고 말수가 적은 편이다.
“태위선 역할은 어때요.”
“음… 캐릭터 자체는 괜찮은데.”
“좀 힘든 부분이 있나 봐요.”
“어… 조금.”
하지만 정요셉은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요셉 형은 잘하던데요?”
“…힘든 티를 안 내려고 연습실에서 노력했잖아.”
그때 황민 감독이 고개를 뒤로 돌리면서 정요셉에게 물었다.
“요셉 씨, 영상 확인해 볼래?”
“네!”
나도 눈을 흘기면서 영상을 보았다. 생존 드라마라서 그런가… 생생한 현장감이 영상에서 유독 도드라지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정요셉의 연기였다.
‘…잘한다.’
몰려드는 인파에 정요셉이 짧게 미간을 찌푸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자칫 딱딱하고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 장면을 보던 황민 감독이 정요셉의 팔뚝을 주먹으로 때렸다.
“요셉이, 잘하잖아!”
“칭찬 감사합니다.”
“아역 때도 연기를 잘한다고 느끼긴 했는데…….”
황민 감독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고 해서 조금 걱정하긴 했거든. 근데 확실히 안정적으로 잘하네. 나중에 이 드라마가 네 밑거름이 될 수도 있겠어.”
“아닙니다, 감독님.”
정요셉이 겸손을 떨 때 나는 황민 감독에게 질문했다.
“요셉 형이 태위선 역할과 잘 어울리나요?”
“잘 어울리죠. 엄청!”
“감독님이 잘한다는 건 정말 잘하는 거잖아요.”
“그렇죠~?”
태위선 역할을 위해서 어떻게 정요셉이 연기를 연습했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원래 내 새끼가 잘하면 여기저기 떠들고 싶은 법이니까.
“…그럼 요셉 형이 어떻게 연기 연습하는지 보여 드릴까요?”
내 다음 행동을 막으려는 것처럼 정요셉이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나비야~?”
“왜요, 요셉 형?”
내가 뻔뻔스럽게 굴자 아니라는 듯 정요셉이 고개를 저었다.
마침 허락도 떨어졌겠다, 핸드폰을 꺼내서 지금까지 찍은 정요셉의 연기 영상을 보여 드렸다.
“감독님, 어때요?”
“…이렇게 매일 연습하고 그랬어?”
황민 감독은 놀라서 정요셉한데 되물었다.
“우리 막내가 하자고 해서요. 카메라 울렁증 때문에 드라마에 폐가 되면 안 되니까.”
“막내라면… 나비 씨가 제안을 했다고?”
“우리 막내 아니었다면 저는…….”
공을 나에게 돌리려는 정요셉의 말을 가로챘다.
“제가 낸 의견이기는 하지만 요셉 형의 의지가 없었다면 못 했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못 했을 일이다?”
“네.”
황민 감독이 미소를 지었다.
“멤버들 사이가 훈훈하네. 보기 좋아.”
보기 좋다는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런 환경이라면… 정요셉의 연기 트라우마도 조금은 괜찮아지지 않을까.
그러다가 영상에서 정요셉이 바지 주머니를 자꾸 만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근데 왜 자꾸 바지 주머니를 만지는 거야? 대본엔 그런 게 없던데.”
“아, 죄송합니다.”
“죄송할 필요는 없어. 뭐,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아픈 건 아니고… 이거 때문에요.”
정요셉이 바지 주머니에서 내가 준 네잎클로버를 꺼내 보여주었다.
“네잎클로버네?”
“우리 막내가 네잎클로버를 그려서 부적처럼 만들었대요.”
“…이런 것도 만드는구나?”
황민 감독의 뜨거운 눈빛에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너희들, 귀엽게 노는구나?”
“…아니에요.”
“귀여운데?”
“전혀 아니에요.”
정요셉의 앞날에 행운이 뒤따르길 바라는 마음에 만든 부적이다. 어차피 다른 멤버들한테도 줄 예정이고.
“오늘 이서혁 씨한테 커피차가 온다고 했는데…….”
응? 이서혁이 커피차를 보냈다고?
“이번에 요셉 씨가 나온다고 하니까 커피차를 보내야겠다면서… 지금쯤 왔으려나?”
정요셉도 몰랐던 눈치인지 눈만 껌뻑였다. 황민 감독은 스태프에게 커피차가 왔는지 물었다.
“조금 전에 왔습니다.”
“지금 커피차 와 있다는데?”
이서혁이 보냈다는 커피차를 구경하러 나랑 정요셉은 커피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체육관 밖에서 이서혁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현수막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여기서도 자기애가 보인다니까…….’
거기다가 다른 현수막에는 이서혁이 윙크하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 밑에는 문구도 있었다.
<우리 요셉이 잘 부탁드립니다.
마음이 여린 아이니 세게 다뤄주세요.>
응? 그 밑에는 작은 글씨로 ‘나비야, 연락 좀 해라’라고도 적혀 있었다. 진짜 못 살겠다.
“연락 자주 해~”
“…해요. 가끔.”
“더 연락하라는 거 아니야?”
“그건…….”
귀찮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은 연락을 한다. ‘잘 지내세요?’라고. 여기에서 얼마나 더 연락을 자주 해야 하는 거야.
“자자, 인증샷을 찍어볼까~?”
“예…….”
그래도 사비로 커피차도 보내줬으니 인증샷을 찍어야지.
“형, 앞에 서봐요.”
“우리 막내는?”
“저도 찍을 거예요.”
정요셉은 볼하트를 만들면서 눈을 감았다. 내가 그 모습을 찍자 정요셉이 나에게 손짓했다.
“우리 막내도 사진 찍자.”
“…저는 출연을 안 하는데요?”
“그래도~ 커피차에는 출연했잖아?”
“아.”
…저놈의 연락이 뭐라고. 죄송한 마음을 담아 스태프에게 핸드폰을 건네고 커피차 앞에 섰다.
“사진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스태프의 신호에 맞춰 정요셉의 옆에서 브이를 하며 사진을 찍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스태프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사진을 확인했다. …사진 잘 나왔네. 정요셉은 곧바로 나한테 사진을 받고 공식 네스트 SNS에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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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 #언네사]
사랑하는 우리 넹~ (ㅅ´ ˘ `)
나는야 넹들의 요정 요셉~!
오늘 ‘THE END’ 촬영장에
우리 서혁 형이 커피차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인증샷도 찍고
우리 나비가 예쁜 부적도 줘서 자랑할 겸 올립니다.
자랑질 맞습니다. (゚∇^*)
(정요셉_볼하트_JPG)
(정요셉_범나비_하트_jpg)
(범나비_네잎클로버_부적_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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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올리자 팬들이 부럽다는 듯이 댓글을 올렸다.
└ @djWjrn : 요셉이 열받게 잘 쓴다?
└ @rkskekfkak : 저기요; 똑똑 저도 갖고 싶다고요
└ @qnfmqek : 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열받아ㅋㅋㅋㅋㅋ
└ @zldqkwwl : 자랑질 맞습니다. (゚∇^*) <- ㅋㅋㅋㅋㅋㅋㅋ
여기저기에서 네잎클로버 부적을 갖고 싶다는 팬들이 보였다.
‘…나중에 우연히 만나면 줄까?’
그나저나 이걸 왜 자랑한 거람.
“왜 이런 걸 자랑해요?”
“나한테는 무척 자랑거리인데~?”
정요셉이 막내한테 부적을 받은 건 자랑거리라면서 활짝 웃었다. 그러고는 바지 주머니에서 네잎클로버 부적을 꺼내더니 자기 뺨에 가져다 댔다.
“아까 황민 감독님에게 이제 카메라를 봐도 괜찮다고 그랬잖아.”
“……?”
“사실 긴장했는데 가까스로 참은 거야.”
“…긴장하는 모습이 전혀 안 보이던데요?”
“연습이 도움이 됐는지 이번에는 울렁거리지 않았어.”
정요셉은 씩 웃었다.
“거기다가 네잎클로버 부적이 있어서 그런가~ 전혀 무섭지 않았어. 이것만 있으면 카메라를 봐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들 이래서 신을 믿는 건가.”
“그러다가 사이비에 빠져요.”
“차라리 그럴까?”
“예?”
“농담이야.”
진짜 농담도.
“막내야, 정말 고맙다.”
“나중에 선물이라도 사주든가요.”
좋은 방법이라며 외치는 정요셉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동시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정답, 정요셉의 트라우마를 이겨냈습니다.
풀이:정요셉이 아직 트라우마를 극복하진 못했으나,
당신이 준 네잎클로버 부적에 의지하면서 카메라 울렁증을 이겨냈습니다.
정요셉이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하면 극한의 우울증에 걸려
마약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잠깐만, 마약?
* * *
일일 매니저 체험을 끝내고 연습실로 들어가자 남은 멤버들은 네스트의 공식봉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우리 공식봉!”
특히 주이든이 흥분했다.
‘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주이든은 벌써 어떤 공식봉을 만들지 스케치북에 그리고 있었다. 나 또한 공식봉을 그리려고 초록색 색연필을 들었다.
‘나는 네잎클로버 공식봉이 좋을 것 같은데.’
…네스트, 네온, 네잎클로버. 거기다가 네스트의 공식 색깔은 초록색과 보라색을 사용한다. 그러면 어울리지 않을까.
“나, 요술봉을 하고 싶어.”
“…예?”
요술봉? 요술봉이라면 만화에서 나올 법한 뽀로롱 소리가 나는 걸 말하는 건가.
“뽀로롱 소리가 나면 좋지 않을까?”
“그러면 단가가 올라서 안 돼.”
이정진이 현실적인 조언을 던졌다.
“…단가!”
“그러면 비싸서 못 사는 팬들이 생길 수도 있어.”
하긴 요즘 봉의 단가는 3만 원에서 4만 원 사이이다. 팬들의 지갑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단가가 착하고 예쁜 봉을 만들어줘야 했다.
“정진 형은 어떤 게 좋을 것 같은데?”
“사탕처럼 생긴 건 어떨까?”
사탕? 이정진은 패드에 봉 그림을 그렸다. 패드엔 큰 사탕처럼 생긴 봉이 그려져 있었다.
“사탕 중간에 네온사인으로 네스트를 표시하면…….”
“단가 높아져.”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아무튼 단가 높아져!”
주이든이 시비를 걸자 이정진은 익숙하다는 듯이 한 귀로 흘렸다.
“그럼 목현 형은 어떤 봉이 좋을 것 같아요?”
“나? 봉은 큰 게 좋지 않을까.”
큰 거?
“도끼 같은 느낌으로 만들면…….”
“앞에 있는 사람 때릴 일 있어요?”
“재밌지 않을까…….”
“네온들은 사람을 패지 않아요.”
“…그런가?”
사람 팰 용도로 공식봉을 만드려는 화목현이나… 나만 예쁘게 만들고 싶은 건가.
“범나비, 너는!”
“저요?”
나는 스케치북에 그린 네잎클로버를 보여주었다.
“네잎클로버?”
“우리 팬들이 굿즈 같은 데 네잎클로버를 자주 사용하더라고요.”
“…오, 그래?”
“그래서 네잎클로버로 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초록색 색연필과 보라색 색연필로 내가 그린 네잎클로버에 색칠을 했다.
“자유자재로 공식 색깔이 움직이면 더 좋을 것 같고요.”
“오…….”
“예쁜 공식봉도 좋지만, 무게가 적당한 데다 그립감이 좋고 패키지도 있으면 팬들이 자랑하기도 좋지 않을까요?”
무게를 생각하지 않고 만들면 흔들 때 힘들 것이다.
“그리고 봉 밑에 구멍도 있으면 좋겠어요.”
“구멍은 왜?”
“공식봉을 꾸밀 수 있는 용도로.”
거기에다가 공식봉을 꾸밀 수 있다면?
“공식봉을 꾸민다고?”
주이든이 눈을 깜빡이며 나에게 질문했다.
“공식봉에 네모난 틈이 있으면 네온들의 최애 포카를 넣을 수 있잖아요.”
“네모난 틈에 포카를 넣어서 공식봉을 꾸민다는 거지?”
정확하게 이해한 주이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공식봉 활용도도 높아지고 좋을 것 같아서요.”
공식봉 중간에 작은 포토 카드를 넣은 버전과 안 넣은 버전을 만들면 어떨까?
“형들은 어떻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