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연기 천재라는, 그 단어
‘천재라는 단어가 싫어.’
정요셉은 연기 천재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연기 천재 아역배우’라는 명칭을 달고 연예계 생활을 시작하자 어린아이인데 연기를 잘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정식으로 어린이 드라마 주인공으로 발탁이 되었다.
하지만 ‘천재’라는 단어가 정요셉에게 독이 된 걸까…….
어린 정요셉은 연기가 좋으면서도 싫었다.
입이 댓 발로 나온 어린 정요셉은 애꿎은 돌멩이를 발로 찼다.
“엄마, 난 연기가 싫어.”
또 연기가 싫다는 말이 나오자 정요셉의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어린아이라서 하는 투정처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요셉아, 내가 그랬지. 엄마 아빠는 옛날에 배우가 되고 싶었다고.”
“…….”
“네가 우리의 꿈이자 희망이야.”
어린 정요셉은 저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내가 엄마 아빠의 꿈이자 희망이야?’
하지만 저 말에 정요셉은 투정을 부릴 수 없었다.
“응? 엄마가 집에 가면 맛있는 거 해줄게.”
“…알았어.”
“아빠도 요셉이 연기하고 오면 놀러 가겠대.”
빨리 촬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계속 부모님이 강요하기 시작하자 정요셉은 삐뚤어진 마음이 차곡차곡 쌓였다.
“요셉아!”
“……!”
“연기를 그렇게 하면 어떡해!”
“죄, 죄송해요.”
“그러면 안 돼. 더 잘한다는 생각으로 카메라를 봐야지, 응?”
그렇게 쌓인 마음은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 어떤 식으로 표정을 지었는지 어린 정요셉의 연기 감각을 잊어버리게 했다.
도저히 카메라를 보지 못하자 정요셉의 어머니가 나섰다.
“요셉아, 왜 그래. 연기 잘만 했잖아? 응? 요셉아.”
“…엄, 엄마. 나 카메라가 무서워.”
“카메라가 뭐가 무서워. 어제도 카메라 보면서 연기 잘했잖아.”
“…그게 있잖아, 엄마. 무서워! 나 집에 가고 싶어!”
“집은 나중에 가면 돼. 왜 이렇게 집에 가고 싶어서 안달이니? 응?”
집이 편하다. 카메라가 없다.
어린 정요셉은 이제 카메라가 무서웠다. 감독님의 한숨과 스태프들의 매서운 눈빛은 트라우마로 잠식되었다.
모니터 화면에 나오는 배우의 연기가 멋있어서 연기를 시작했던 어린 정요셉은 그렇게 드라마 촬영장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카메라가 괴물처럼 보였고, 스태프들은 자신을 싫어하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저… 감독님, 저… 연기가 싫어요.”
“요셉아, 너만 믿고 이 드라마에 투자한 돈이 얼마라고 생각해? 그걸 생각해서라도 계속해야지. 응?”
투자한 돈이 얼마인지 어린 정요셉은 몰랐다. 그저 카메라를 보면 구역질이 났다. 섬세한 감정선을 잡지 못하는 것은 물론, 촬영 진행 자체가 지연되는 상황에 도달하자 감독은 정요셉을 몰아붙였다.
“요셉아!”
“네…….”
“눈을 아래를 두고 노려본다는 식으로!”
“네에……!”
그러나 그 상황은 오히려 어린 정요셉에게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요셉아, 너 안 되겠다.”
감독은 정요셉의 어머니가 없을 때 카메라를 보면 도망가는 정요셉을 붙잡아 의자에 가두고는 했다.
촬영 자체가 불가피한 상황에 도래하자 정요셉은 부모님한테 솔직하게 말했다.
“…엄, 엄마.”
“요셉아, 왜?”
“감독님이 내 어깨를 잡고…….”
“…어쩔 수가 없었겠지. 응?”
“…엄마.”
그러나 믿었던 엄마도.
“아빠… 나 연기하기 싫어요. 네?”
“요셉이는 잘할 수 있을 거야.”
“아, 아빠!”
“너는 나보다 더 유명한 배우가 될 거야. 알잖아!”
믿었던 아빠도 없었다.
어린 정요셉은 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드라마 촬영에 임했다. 이제는 카메라를 보면 호흡도 가빠지고 촬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자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인기 작품인 탐정 요셉이를 끝냈다.
그렇게 정요셉은 자신의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드라마 촬영은 하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욕심이었나.’
정요셉은 자신의 욕심 때문에 또 다른 트라우마를 남길까 두려웠다. 이러다가 멤버들한테 민폐를 끼칠까 두렵기도 했고.
하지만 트라우마를 이겨내려고 노력해도 드라마 촬영장과 카메라만 보면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었다.
“하아…….”
괜찮아.
괜찮아.
정말 괜찮다.
“요셉 형, 괜찮아요?”
“…어, 우리 막내.”
그나마 곁에 나비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나비의 옷이 눈에 띄었다.
“우리 막내, 그 모습은 또 뭐야?”
“연호 형의 모습을 따라 했어요.”
체크 남방에 청바지를 입은 나비는 거기에 안경을 썼다. 그야말로 완벽한 김연호의 모습이었다. 드라마 촬영장만 보면 목이 타들어갈 것 같았는데… 정요셉은 이상하게 안정을 되찾았다.
“안경은 정진 형이 빌려줬고요.”
“그래~? 나도 나중에 빌려달라고 해야겠다.”
“형, 이제 드라마 촬영장에 들어가죠.”
나비가 정요셉의 등을 밀면서 드라마 촬영장인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정요셉입니다.”
정요셉의 등장에 스태프들이 인사해 주었다.
“감독님.”
“어! 요셉 씨!”
THE END를 맡은 황민 감독이었다. 대본은 여동생인 황지 작가가 맡았다. 황민 감독은 독립영화계 감독으로 유명했다.
“그 옆은……?”
옆에서 나비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네스트에서 막내를 맡고 있는 범나비라고 합니다.”
황지 작가는 나비를 유심히 관찰했다.
“마스크가 괜찮다.”
“작가님~ 저만 있으면 되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마스크가 괜찮아서 탐나네.”
나비는 능글스럽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우리 요셉 형 잘 부탁드립니다.”
“설마 요셉이 잘 부탁한다는 말 하고 싶어서 온 건가?”
“네, 그렇습니다.”
황지 작가는 정요셉이 가진 카메라 울렁증에 대해 알고 있었다. 정요셉에게 THE END를 같이 하자고 연락을 했을 때 정요셉이 카메라 울렁증이 있어 못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황지 작가는 물러서지 않고 꼭 이 드라마를 같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권유했다.
덕분에 정요셉은 포기하지 않고 THE END 촬영에 과감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혹시 촬영하다가 카메라 때문에 힘들면 꼭 말하고.”
“…네, 편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요셉은 드라마 촬영장을 보자마자 속이 울렁거렸다. 그걸 알아차렸는지 나비가 텀블러에 넣은 시원한 물과 선풍기를 건넸다.
“형, 이거 마시면서 해요.”
“…고맙다.”
“뭘요.”
은근히 눈치가 빠르다니까. 정요셉은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면서 냉수를 꿀꺽 삼켰다.
‘속이 시원하다…….’
냉수로 정신을 차린 정요셉에게 황민 감독이 말했다.
“오늘은 체육관 씬을 촬영할 거야.”
“…그, 목소리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냉정한 목소리로 하면 돼. 촬영 준비가 되는 대로 요셉 씨를 부를게.”
정요셉은 나비를 힐끗 보았다.
“우리 막내한테 형이 안 좋은 모습을 보여서 미안하네.”
“괜찮아요. 어차피 못 볼 건 이미 많이 봐서.”
저게 나비의 위로 방식이었다. 그걸 아는 정요셉은 살포시 웃으면서 대본을 펼쳐 외웠던 부분을 다시 확인했다.
곧 촬영에 들어간다는 말을 들은 정요셉은 심장이 조여들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 무섭지 않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체육관으로 들어가려는데,
“요셉 형.”
“…어?”
“이거요.”
네잎클로버가 그려진 작은 부적.
“이거 제가 만들었어요.”
“언제 이걸 만들었대~?”
“음… 네잎클로버가 우리 팬들 사이에서 부적처럼 쓰이고 있다길래 밖에 나갈 때마다 네잎클로버를 찾았는데 결국 못 찾았어요. 그래서 혹시 효력이 있을까 싶어서 제가 그려봤어요.”
“…….”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어느 정도 효력이 있을 것 같은데.”
나비가 정요셉의 눈치를 보면서 바지 주머니에 부적을 넣어주었다.
“…고맙다, 막내야.”
“잘하고 와요.”
그러면서 나비는 뒤로 빠졌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 넣은 부적을 떠올리며 촬영에 임했다.
“감독님, 잘 부탁드립니다!”
***
나는 정요셉이 잘할 거라고 확신했다. 3주 내내 연습실에서 카메라 훈련을 했다. 못할 리가 없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할 수 있어!’
‘막내야, 더 하자.’
‘한 번 더 해보면….’
정요셉은 강렬한 의지를 표출했다. 어색한 모습이 보이면 카메라로 찍어서 연습을 했고, 멤버들이 나가떨어지면 정요셉은 혼자서라도 연습실에 남았다.
“요셉아, 한번 찍어보자!”
“네!”
작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 정요셉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네스트’라고 말했다. 그래서 뒤를 돌았는데,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아이돌 노트랑 몸이 바뀌었을 때 만났던 이정훈이었다.
“안녕하세요. 범나비입니다.”
“아~ 정요셉 씨 때문에 왔어요?”
“네, 일일 매니저로 왔습니다.”
그때도 매니저였는데, 지금도 매니저로 있네. 이정훈은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멤버들 사이가 끈끈한가 보네요.”
“아, 네.”
싱거운 대화가 이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이정훈은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도 아이돌로 데뷔할 걸 그랬나.”
“…예?”
뭐지? 이 가벼운 말투는.
“저도 팬들한테 아이돌이었다면 센터였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거든요.”
“…아하.”
이정훈은 나쁜 의도를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센터는 아닌 것 같은데… 우리 센터를 보면 깜짝 놀라겠네.
“이참에 네스트로 들어갈까요?”
“글쎄요.”
“그러면 한 명은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하하!”
…실없는 농담을 계속 하네. 나는 정요셉한테 신경을 써야 하는데 말이다. 이정훈은 옆에서 계속 조잘조잘 새처럼 말했다.
“시끄럽다~”
“아! 죄송합니다!”
조잘거리는 이정훈의 목소리가 촬영 현장에 울리자 황민 감독이 일침을 놓았다. 그래도 이정훈은 낮은 목소리로 조잘거렸다.
“아, 저는 여기에 조연으로 들어왔거든요.”
조연이라고?
“그런데 정요셉 선배는 주연급으로 들어갔더라고요.”
“…연기를 잘하니까 들어갔겠죠.”
“아니잖아요?”
…이 새끼 왜 이래. 나를 슬슬 긁는다. 나는 이정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소문으로는 카메라 울렁증에 연기 트라우마가 심하다고 그러던데.”
“누가 그랬나요.”
“소문에 ‘누가’가 있나요.”
뭔가 수상쩍다.
“저도 카메라 울렁증이 있는 정요셉이 어떻게 연기를 할지 구경하고 싶었거든요.”
“……?”
“그거 아세요?”
이정훈은 나를 보면서 웃었다.
“배우는 촬영을 하다가도 바뀐대요.”
…어쩌라고? 이정훈은 정요셉 역할이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듯했다. 이걸 돌려 말하네?
‘…그렇다고 그 역할이 이정훈한테 가진 않을 텐데.’
나는 허무맹랑한 이정훈의 말에 웃음이 났다.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얘는 열등감이 심한 것 같네.
“그래도 감독님과 작가님이 우리 형을 뽑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네?”
“그만큼 연기를 잘하거든요, 우리 형은.”
“같은 멤버라고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아니요.”
이럴 땐 눈치 없는 척을 해야 한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연기를 못하면서 자기한테 배역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은 조금 웃긴 것 같아요.”
“…….”
“안 그래요?”
안 그런가? 노력도 안 하면서 배역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인생은 웃기다.
“가만히 기다려서 배역을 따내는 것보다는 노력해서 배역을 따는 게 더 좋지 않나요.”
“…….”
“아이돌도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못 해요. 노력하고 쟁취해야지.”
너도 돌려서 말했으니까, 나도 돌려서 말한다.
“안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