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144화 (144/235)

144. 계곡 라이브 방송(1)

…저 말을 뱉는 순간 현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끝까지 고고한 표정을 유지한 채 카메라를 응시했다.

“여기서 끊겠습니다!”

Q1 작가가 끝내겠다는 말을 하자마자 나는 그대로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식은땀을 닦는 나를 보며 화목현과 정요셉이 먼저 다가와서 내 어깨를 끌어안으며 위로해 주었다.

“…나비야, 잘했어. 흑역사 정도는 만들어도 괜찮아.”

“우리 막내, 잘하긴 잘하더라.”

그 위로에 작은 웃음이 나오긴 했지만 흑역사라는 사실을 알긴 아는 모양이다. 그래, 나 혼자 독박을 쓰면 괜찮겠지.

“형들, 저 잘하긴 했죠?”

“어, 막내야. 잘했어.”

이정진의 대답을 듣자마자 고개를 들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웃음 참는 소리에 살짝 시선을 옮겨 누군지 확인했다.

‘…정요셉과 주이든이군.’

그래, 차라리 웃어라. 그게 나았다. 하지만 이 흑역사 싸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Q1 작가는 삐뚤어진 안경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면서 말해주었다.

“이제부터 네스트와 다이아몬드가 기 싸움을 펼치는 모습을 촬영하고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제발 빨리 지나가길 바란다.

“시작할까요?”

* * *

열심히 촬영을 하고 우리는 탈탈 털린 기분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기가 빨린 상태로 소파에 앉자 주이든이 내 옆에 앉으면서 중얼거렸다.

“그 새끼들은 무슨 생각인 거야?”

“그냥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

“친하게? 나랑? 괴롭힌 시간이 5년인데?”

“독이라도 먹은 건 아닐까요.”

“독을 먹었으면 확……!”

화목현이 밖으로 나와서 주이든의 말허리를 끊었다.

“이든아, 확 뭐라고?”

“어라,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죽으라고 말하려던 건 아니지? 이든아, 입조심하라고 몇 번을 말해.”

“에이, 형! 내가 그럴 사람이야?”

그럴 사람이지. 주이든이 능청을 피우면서 내 옆에서 작게 속삭였다.

“확 뒈졌으면 좋았을 텐데.”

“형, 그런 말을 하면 업보 쌓여요.”

“그 새끼들보다는 업보가 없을걸.”

또 주이든이 욕을 내뱉자 화목현이 경고했다.

“또 욕한다.”

“아니야. 새끼는 욕도 아니지. 우리 새끼, 여기 있잖아?”

우리 새끼? 우리 새끼의 정체는 바로 나인 모양이다. 주이든이 나를 끌어안으며 우리 새끼라며 노래를 불렀으니까.

“우리 새끼~ 우리 새끼~ 우리 새끼!”

그런데 계속 듣고 있으니까.

“…기분이 언짢은데요?”

“원래 우리 새끼~ 우리 새끼~ 이러는 거야. 정요셉도 그렇게 부를걸?”

정요셉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요. 주이든의 노래는 화목현의 말로 끝이 났다.

“얘들아, 오늘 투두 네스트 PD님이 라이브 방송을 켜서 투두 네스트 첫방을 봐달라고 했거든?”

“오늘이에요?”

“어, 벌써 오늘이더라.”

시간도 참 빠르다. 화목현의 말에 이정진과 정요셉도 옷을 잠옷으로 바꿔 입고 나왔다.

“팬분이 주신 건데 이거 입고 라이브 방송을 하면 어때? 이거 우리를 위해서 만든 잠옷이라고 하셨거든.”

잠옷에는 동물이 그려져 있었다. 이정진은 곰, 정요셉은 퓨마. 정요셉은 모델처럼 걸어와 잠옷을 뽐냈다.

“잠옷 어때? 괜찮잖아~”

“그러면 잠옷 입고 라이브 방송을 할까?”

화목현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정진이 종이 가방에서 잠옷을 건네주었다.

“막내는 호랑이.”

“…호랑이.”

‘흑호네.’

검은색 호랑이.

검은색 정장을 입었을 때 한 홈마가 찍었던 사진이 유명해지면서 나는 ‘흑호’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래서인지 비공식 굿즈 인형의 왼쪽 눈 밑에는 항상 나비가 포인트로 있었다. 내 눈 밑에 있는 점을 표현했다고.

나도 잠옷으로 갈아입고 이정진한테 물었다.

“정진 형, 저 잠옷 어울려요?”

“응, 굉장히 잘 어울려. 막내의 피부가 워낙 하얘서 그런가. 막내야, 나는?”

“형도 잘 어울려요.”

“고맙다. 잠깐만.”

거기다가 이정진은 다른 가방에서 팬분들이 준 호랑이 머리띠를 내 머리에 씌워주었다.

“이것도 하자.”

라이브 방송을 위한 철저한 준비를 끝내고 밖으로 나가자 주이든이 노란색 잠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주이든의 양 볼에는 빨간색 동그라미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었다.

“이든 형?”

“뭐, 왜, 뭐?”

“그 스티커 뭐예요?”

“이거? 정요셉이 나오더니 붙여줬어. 뭐? 왜?”

“아니에요. 잘 어울려서 물어본 거예요.”

주이든이 의심스러운 눈길로 나한테 물었다.

“나랑 이 스티커 어울려?”

“음… 참새 같아서 어울려요.”

“뭐? 그 말, 욕은 아니지?”

“욕이었으면 아예 말도 안 했어요.”

“하긴.”

정말 참새를 닮아서 말한 건데. 그런데 정요셉이 사색이 된 채 방에서 나왔다.

“우리 리더 잠옷은… 화려하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이정진은 바로 방으로 들어가 화목현의 모습을 확인했다가,

“와…….”

짧게 탄식하면서 내 옆에 앉았다. 얼마나 화려하길래 저러는 걸까. 그러자 정요셉은 홈쇼핑 쇼호스트처럼 우리에게 화목현을 소개해 주었다.

“우리 화려한 공작새! 네스트의 리더! 네스트의 리드보컬! 화목현이 등장합니다.”

순간 본 잠옷의 색깔이 너무 화려해서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화목현의 잠옷은 그야말로 화려함의 정점.

“잠옷이 무지개……?”

내가 잘못 본 건가. 무지갯빛 잠옷을 입었으나 의외로 그 잠옷은 화목현의 이목구비를 더더욱 또렷하게 만들었다.

‘사람이 저럴 수가 있나?’

잠옷에서 끝이 아니었다. 화목현은 공작새에 맞춰 무지갯빛 날개를 등에 메고 거실로 나왔다. 그러자 이정진은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나에게 슬쩍 말했다.

“막내야, 나 너무 약하지 않아?”

“흠… 약하긴 하네요.”

“그럼 어떻게 할까.”

이정진은 나처럼 머리띠만 한 상태라서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긴 했다.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주이든은 서랍에서 검은색 싸인펜을 가져왔다.

“정진 형! 볼에 검은색 칠하자.”

“얼굴에?”

“해보자!”

“뭘 그리려고 그래?”

“다 계획이 있어.”

그러더니 주이든은 싸인펜으로 이정진의 입가에 곰 입모양을 그렸다. 거기에다가 코에 검은색 동그라미를 그리고는 완벽하다며 스스로 박수를 쳤다.

“와! 어울려!”

“…이게 곰?”

이정진은 손거울로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막내야, 내 얼굴 어때 보여?”

“곰처럼 보여요.”

“그래? 뭔가 사기를 당한 기분인데.”

그때 화목현이 라이브 방송 준비가 끝났다고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라이브 방송 틀었다!”

TV로 너튜브를 틀어놓자 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서 오세요.”

화목현의 인사에 팬들도 인사했다.

-잠옷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다 평범한데 목현이 잠옷은 신기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화목현이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투두 네스트가 부활합니다!”

그 말에 채팅창 속도가 빨라졌다.

-와아아아아!

-행복해!

-밥 친구 왔다

-그래서 라이브 방송 켠 거야?

화목현이 차분하게 말했다.

“오늘은 저희가 기획한 투두 네스트 같이 보자! 라이브 방송입니다. 지금부터 네온들은 너튜브에 들어가서 투두 네스트를 틀어주세요. 같이 보는 겁니다? 알겠죠?”

화목현이 주먹을 쥐고 공손한 말투로 대화를 시도하자 네온들은 반항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너튜브는 볼 건데요~ 선생님 첫사랑 알려주세요~

-네네 목현 선생님

-선생님 첫사랑 이야기해 주세요~

-선생님 이번 수업은 뭐예요?

-와~ 이번에 들어온 선생님 잘생겼다~

이게 아닌 것 같다는 표정을 짓던 화목현이 눈동자를 굴렸다. 난처하다는 신호에 나는 검지를 흔들며 말했다.

“같이 안 보면 첫사랑 이야기 안 해줄 거예요.”

-헐 나비 선생님 너무해

-교생 선생님이잖아 봐주자

-선생님 첫사랑 없어서 저러나 봐 ㅋ

-에이~ 선생님 첫사랑 없는데 그러는 거죠?

괘씸하네?

“저 첫사랑 있는데요?”

내 내답에 채팅창이 물음표로 도배가 되었다.

-?

-? 에이 선생님

-뭐예요 ㅡㅡ 저는 첫사랑이 나비 선생님인데요

나도 있긴 했다.

“첫사랑 있어요. 네온이라고. 그러니까 첫사랑 이야기는 나중에 해볼까요?”

채팅이 불같이 올라오다가 그 순간 멈췄다.

-그래요

-넹들아 말 듣자

-나랑 이름이 똑같아서 봐드립니다 ㅋㅎ

-봐주자 선생님 난처하겠다~

그리고 화목현이 박수를 쳤다.

“저희는 벌써 투두 네스트를 틀었습니다.”

-선생님 진도가 너무 빨라요;;

-저는 아직 하나도 모르는데

-선생님 빨리 들어갈게요~

“이제부터 같이 투두 네스트 계곡편을 시청하면 되겠습니다~ 자, 여러분! 집중!”

정요셉이 집중하라는 듯이 눈을 찡긋하면서 TV를 응시했다.

일단 팀장님이 투두 네스트 제작진들을 만나는 장면이 먼저 나왔다. 팀장님은 자기 명함을 내밀면서 의자에 앉았다.

[팀장님 : 안녕하세요. AA 엔터 아이돌 사업 본부 팀장입니다.]

[갑자기 나타난 AA 엔터 팀장님!]

그리고 스릴러 BGM이 나오고.

[팀장님 : 투두 네스트 팀과 제가 재밌는 서프라이즈를 준비해 보죠.]

[PD : 왜 갑자기 이런 제안을 하시는 거죠?]

[팀장님 : 우리 애들한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서요. 그동안 제가 바빠서 옆에서 케어 못 해주는 날이 많았거든요.]

그러자 이정진이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PD : 그렇다면 어떤 테마로 갈까요?]

[팀장님 : 우리 애들이 좋아하는 테마가…….]

우리가 좋아하는 테마가 있었나.

-와 팀장님 찐사랑

-기분이 이상하다

-저 팀장님 자주 봤는데

팀장님은 고심하면서 입을 열었다.

[팀장님 : 이번 테마는 공포로 가죠.]

솔직히 투두 네스트 계곡편 컨셉은 투두 네스트 PD의 아이디어인 줄 알았다. 팀장님이 자기가 골랐다고 말한 적이 없었으니까.

“…약간 배신감 든다?”

“언제부터 우리가 좋아하는 테마가 공포였어?”

정요셉과 주이든이 배신감이 깃든 표정으로 혀를 찼다.

-ㅋㅋㅋㅋㅋㅋ

-애들 표정 봐ㅋㅋㅋㅋㅋㅋ

-ㄱㅇㄱㅋㅋㅋㅋㅋㅋ

울컥해서 눈물을 흘릴 뻔했던 이정진은 팔짱을 꼈다.

“아, 눈물 쏙 들어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신나게 차에 올라탔다. 거기에서 내가 조수석에 앉아 멤버들을 찍는 장면이 나왔다.

-헐 진짜로 나비가 러브 오버 뮤비 찍었어?

-진짜로 찍었네

-그냥 찍는 컨셉인 줄 알았는데

찍는 컨셉은 또 뭐야.

“러브 오버 뮤직비디오 진짜로 제가 찍은 겁니다.”

그러자 채팅창이 놀라움으로 번졌다.

-와?

-대박

-나비가 찍었구나

-팬들도 설마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

-스태프들이 도와준 줄 알았어!

“그랬어요? 블로그에도 비하인드 사진 올릴 거니까 기다려 주세요.”

틈틈이 러브 오버 홍보도 하면서 투두 네스트를 보았다. 계곡으로 떠난 우리는 정말로 힐링 여행을 하는 줄 알고 튜브를 불고 물총으로 열심히 놀았다.

투두 네스트 제작진은 이런 우리를 다 지켜보고 있었지만.

[PD : 풉.]

물총 사기를 당한 나를 보며 PD님이 웃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비ㅋㅋㅋㅋㅋㅋ

-사기당했네ㅋㅋㅋㅋㅋㅋㅋㅋ

-PD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기당한 물총을 보니까 또 화가 나네.

-ㅋㅋㅋㅋㅋ이야 목현이

-목현 선생님 재밌게 노시네

이번에는 방 구석진 곳에서 이정진과 작당모의를 한 화목현이 가방에서 몰래 물풍선을 가져오는 장면이 나왔다.

나는 정요셉, 주이든과의 물총 싸움에 빠져 있느라 못 본 장면이었다.

[화목현 : 정진아, 이걸로 애들 패자.]

[이정진 : 패자고?]

[화목현 : 아, 공격하자.]

[이정진 : …그동안 많이 쌓였어?]

-목현 선생님 본심 나왔네요

-ㅎㄷㄷ 무서운 선생님이시네

물풍선을 품에 한가득 안은 화목현의 표정은 싱그럽기 그지없었다. 화목현이 원래 저런 표정을 지었던가? 멤버들은 고개를 돌려 화목현을 쳐다보았다.

“목현 형, 저때 기분이 무척 좋았나 봐……?”

“…그러게.”

“우리 공격할 때 기분이 제일 좋았구나. 그렇구나…….”

정요셉의 말을 들은 화목현이 번명했다.

“내가 좋아했을 리가 없잖아.”

“화면 속 목현 형은 무척 해맑아 보이는데?”

그 말대로 물풍선을 던지는 화목현의 표정은 무척 해맑았다.

-ㅋㅋㅋㅋㅋㅋㅋ

-목현아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아이고 저런ㅋㅋㅋㅋ

컵라면을 먹은 후에는 가위바위보에 져서 튜브에 펌프질을 하는 내 모습이 나왔다. 그것도 구석에 작은 화면으로.

[PD : 그런데 나비가 우리 자주 보는 것 같지 않아?]

[방송 작가 : 그럴 리가요.]

[범나비 : 근데 옆집에서는 왜 사람이 안 나오지? 방송국 사람들이라서 그런가…….”]

주이든은 신기하다는 듯이 나한테 물었다.

“계속 의심하고 있었네?”

“분명 안에 사람이 있는데 계속 안 나와서 수상하다고 생각했죠. 아무리 방송국 사람들이라고 해도.”

-나비 말 ㅇㅈ

-근데 제작진들이 수상하게 행동하긴 했네

역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네온뿐이다. 한편 옆 펜션에서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PD : 이거 어떡하면 좋지?]

[작가 : 왜요?]

[PD : 나비가 이럴 땐 눈치가 빠르다니까…….]

[초조한 제작진]

내가 눈치가 빠른 게 아니다. 이건 해명할 필요성이 있었다.

“아니, 계속 제작진분들이 안에서만 왔다 갔다 하는데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의심 안 하는 게 이상한 거라니까요?”

나는 카메라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옳소!

-ㅋㅋㅋㅋㅋㅋ이건 제작진 쉴드를 못 치겠다 나비 말이 맞으니까

-ㅋㅋㅋㅋ그치 어쩔 수 없지

옆에서 정요셉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막내, 눈치가 빠르긴 해.”

나는 이정진과 주이든의 팔뚝을 잡고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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