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다이아몬드와의 만남
“왜 그래? 우린 정말 궁금해서 온 건데.”
멤버들도 제도전의 행동에 왜 저러는 건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어쩐지 다이아몬드 멤버들의 태도가 돌연프 때랑 약간 다르긴 했다.
돌연프 때는 우리를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우리한테 말을 한 번이라도 더 걸어보고 싶어 하는 느낌이 강했다.
‘왜 저래?’
차라리 깔볼 때가 나았다. 그땐 무시라도 할 수 있었지. 지금은 무슨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우리를 계속 쳐다보는 눈빛이 아주 싫었다.
“너희들, 우리 데뷔곡으로 한다며?”
그건 다 아는 사실 아닌가? 제도전의 입꼬리에는 미소가 달려 있었다.
“우리도 너희 데뷔곡으로 골랐는데.”
“…….”
“너희들 노래 들어보니까 데뷔곡이 제일 낫더라고?”
이건 시비 거는 말투 아닌가. 대꾸하는 것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 그냥 지나치고 싶었는데 주이든이 시건방진 표정을 지으면서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네 감상 들으려고 여기 온 거 아니거든?”
“이든아, 왜 그래? 그냥 내 감상이 그렇다고~ 내 감상도 말 못 해?”
“아니, 그러니까 속으로 해도 되는 말을 왜 내뱉고 지랄이냐고.”
“우리 이제 아이돌이야. 욕은 하지 말자?”
와… 지랄도 풍년이다. 나는 귀를 만지면서 정요셉한테 물었다.
“요셉 형, 제 귀가 이상한 것 같은데.”
“아니야. 정상이야.”
“…그런데 자꾸 이상한 말이 들려서.”
귀에 들어간 이물질을 꺼내고 싶었다. 그러자 앞으로 걸어가던 화목현이 주이든의 뒷목을 잡아 자기 뒤로 당겼다.
“너희들도 이제 그만하지. 괜한 시비 걸지 말고.”
그러자 제도전이 앞으로 나와서 팔짱을 꼈다.
“이제 우리가 견제하고 싸울 일이 뭐가 있어.”
“옛날 일을 잊었나?”
“그땐 어쩔 수가 없었잖아?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으니까.”
저건 가해자의 논리다.
“너희들은 사람을 때리고 괴롭혔는데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해?”
“지금부터라도 친하게 지내면 되잖아. 그렇게 화낼 필요가 있어?”
너무 호의적으로 나와서 어금니를 털어버리고 싶었다. 주이든은 냉정함을 되찾았는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흩트리더니 구석진 곳으로 가버렸다.
“당연히 화낼 필요는 없지.”
“오, 이제야 말이 조금 통하네. 너도 그렇지?”
“그런데 궁금하긴 하네.”
“무슨 궁금?”
“갑자기 태도가 바뀐 이유.”
HOR 엔터에서 시킨 건가? 아니면 우리와의 관계를 개선시키고 싶은 건가? 둘 중 뭐라고 해도 별론데.
“우리 태도는 원래 이랬잖아?”
뒤에서 주이든이 또다시 욕을 지껄였다. 그 욕을 들으며 나는 화목현 대신 대답했다.
“무슨 태도가 원래 그랬어요? 항상 낮잡아 봤던 것 같은데.”
“우리가 언제!”
“우리만 보면 인사는커녕 무시하면서 비웃고.”
“…….”
“우리만 보면 좆소라면서 무시했잖아요?”
이것뿐이랴.
“이든 형을 연습생 시절 내내 괴롭혔으면서 이제 와 친한 척하는 건 좀 우습지 않나요?”
내 옆구리를 때린 당사자도 여기에 있는데 말이다.
“아직 옆구리도 아픈데.”
“…그건!”
“후배들이 자기반성을 모르는 것 같네요.”
“…야! 후배는 무슨 후배!”
“후배가 그렇게 행동해도 되는 건가요? 저는 선배한테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애초에 다이아몬드는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계속 손거스러미처럼 내 신경을 긁었다. 내 말에 정요셉이 호응했다.
“그러게~ 우리 막내 말처럼 우리가 한 달 선배 아닌가?”
“한 달 선배? 돌연프는 같이 나왔잖아!”
“에이, 그건 아니지~ 그럼 크래프트랑 키오도 동기야?”
“…그건 아니지만.”
“그럼 후배 맞잖아. 어디서 후배가 아니라고? 도전아, 이런 게 후배야.”
정요셉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을 받아쳤다.
“그러니까 우리가 웃어줄 때 잘하자?”
“뭘 잘해.”
“혹시 알아? 우리가 폭로할 수도 있잖아. 또 폭로당해서 나락 가고 싶어?”
“…야.”
“아니면 우리가 항상 웃고 있어서 우스운 건가~?”
이쯤에서 다이아몬드도 화낼 줄 알았지만.
“…우리가 친해져도 나쁠 건 없잖아.”
“왜요?”
나의 순수한 질문에 제도전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친해지면 우리 이미지도 좋아지는 거 아니야?”
“이미지가 좋아진다고요?”
“당연하지.”
“그런 게 필요한 거면 HOR 엔터더러 우리 엔터에 연락하라고 하세요. 돈이라도 주시든가요. 그런 게 아니라면 이미 틀어진 관계를 억지로 이어 붙이려고 하지 마세요.”
옆에서 정요셉이 ‘맞아! 맞아!’라고 외쳤다. 그러자 주이든은 기다렸다는 듯이 뒤에서 소리쳤다.
“꺼져.”
꺼지라는 대답에도 다이아몬드 멤버들은 선뜻 나서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욕설이 난무했을 텐데.
“…얘들아, 우리 짐 가져오자.”
제도전이 재빠르게 짐을 가져오자며 연습실을 빠져나가자 주이든이 대놓고 가운뎃손가락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아량이라도 베풀어줄 줄 알았나. 저 새끼들 왜 저래?”
정요셉이 스트레칭을 하면서 주이든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머리가 돌아버린 거 아니야? 어쩌면 미쳤을 수도 있지.”
“미칠 거면 곱게 미치지.”
주이든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진절머리를 쳤다.
“차라리 예전처럼 싸우는 게 나을 것 같아. 저러니까 짜증이 나려고 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쁜 새끼는 계속 나쁜 새끼로 남는 게 낫지. 저렇게 착한 척하는 건 역겨워서 토가 쏠릴 것 같았다.
“아마 HOR 엔터가 여론을 뒤집으려고 하는 거겠지. 우리랑 다이아몬의 관계 여론이 안 좋잖아.”
화목현이 팩트를 날렸다.
“근데 목현 형, 고작 그런 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 시상식 시즌이 되니까 돌연프 때 기사가 자꾸 뜨는 모양이더라고.”
화목현의 말대로 며칠 전 이번 Q1 남자 신인상 후보의 무대 예고편이 나왔다.
그리고 그 예고편에는 노래를 바꾸는 무대가 있다는 내용이 나왔다. 그래서 네스트와 다이아몬드가 어떻게 무대를 꾸밀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커뮤니티에도 네스트와 다이아몬드가 데뷔곡을 바꿔서 무대를 꾸미면 어떤 그룹이 더 잘할 것 같냐고 투표까지 열린 걸로 아는데.
“우리, 잘할 수 있겠지?”
주이든이 떨면서 말하자 이정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우리가 더 잘해.”
확신에 찬 대답에 주이든의 굳었던 표정이 풀렸다. 화목현도 조용한 말투로 멤버들을 진정시켰다.
“정진이 말처럼 우리가 잘하면 돼. 저런 말에 흔들려서 무대를 망칠 수는 없잖아.”
“…….”
“이제 집중하자, 얘들아!”
그때 주이든이 자신의 뺨을 때리며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저 녀석들보다 1년이나 더 오래 연습생 시절을 겪었다고.”
“우리 이든이가 잘하긴 하지.”
“맞지? 정요셉!”
“그치! 우리 이든이!”
사실상 우리가 잘하면 끝인 대결.
“봄의 열기, 즐겁게 하죠.”
우리가 무대를 즐기면 보는 사람들도 즐거워할 테니.
* * *
스태프가 올 때까지 다이아몬드는 연습실에 도착하지 않았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Q1 스태프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우리가 먼저 인사를 하자 얼굴에 피곤함이 끼어 있는 Q1 작가가 다가와 인사했다.
“죄송합니다. 너무 늦었죠?”
“아닙니다. 제때 오셨어요.”
“그런데 다이아몬드는……?”
“조금 있으면 올 거예요.”
곧 모든 Q1 스태프가 등장하고 카메라가 연습실 곳곳에 설치되었다. Q1 작가가 다시 우리한테 오더니 말했다.
“다이아몬드 멤버들은 0?”
“아, 잠깐 나간다고 하더니 아직 안 왔어요.”
“그러면 먼저 무대 설명할게요. 네스트와 다이아몬드의 대결 구도로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대결 구도를?
뒤이어 연습실에 도착한 다이아몬드는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며 우리 맞은편에 섰다.
“다이아몬드 멤버분들이 늦게 오셔서 다시 설명해 드리자면, 네스트와 다이아몬드가 대결 구도로 잡아서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신인의 패기를 보여주면서요.”
그렇게 하면 그룹 간의 관계를 아는 사람들은 재밌게 시청할 것 같긴 했다.
‘누가 이길지 궁금하잖아.’
원래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는 법이다.
“일단 연습실 중앙에 네스트랑 다이아몬드가 서볼까요?”
Q1 작가의 요구에 우리는 각자 자리에 섰다.
“네스트는 팔짱을 껴주고 다이아몬드는 턱을 들어주세요.”
우리가 팔짱을 끼자 카메라가 우리를 찍었다. 다이아몬드는 턱을 들어서 우리를 쳐다보는 포즈였다.
“그리고 네스트와 다이아몬드 멤버가 한 명씩 앞으로 나와서 상대방한테 한마디씩 던져볼까요? 음…….”
Q1 작가는 우리를 보더니 손가락으로 멤버들을 골랐다.
“네스트의 막내 범나비 씨랑…….”
“…….”
“다이아몬의 막내 이초록 씨?”
하나도 안 어울리는 이름이군.
“각자 포부를 말하면 되는데, 카메라를 보면서 어그로를 살짝 끌어주면 좋겠습니다.”
“어떤 식으로요?”
내 물음에 Q1 작가가 말했다.
“…너 나보다 노래 못 부르잖아?”
…그런 식으로 하라고요? 내 시선을 느꼈는지 Q1 작가가 고개를 저었다.
“꼭 이런 식으로 하라는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범나비 씨는 카메라를 보면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내려다보는 포즈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네.”
“자, 이제 이렇게 말해주시면 됩니다.”
편집을 이상하게 하면 큰일이니 차라리 뚝딱이처럼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카메라를 보면서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어떤 말을 하면 되는데요?”
Q1 작가가 서류를 보면서 말했다.
“어때? 우리의 무대를 봐! 나는 너희들을 무찌를 날만을 기다리고 기다렸지!”
…예? 정말 저 대사를 그대로 읊으라고? 저런 말을 했다가는 10년 내내 흑역사 꼬리표를 달 수도 있었다. Q1 작가는 이어 말했다.
“이 대사를 범나비 씨가 카메라를 보면서 해주시면 됩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카메라를 보면서 현실을 깨달았다. 왜 하필 나죠?
“작가님, 저는 자신이 없는데요.”
“아니에요. 범나비 씨는 이런 거 잘할 관상이세요.”
“제 관상이요?”
내 얼굴이 흑역사를 생성할 관상인가.
“아니면 초록 씨부터 해볼까요?”
이번에는 Q1 작가가 이초록을 보면서 대사를 던졌다.
“…‘이날을 고대했다! 우리의 실력을 보여줄 날을! 하하하!’ 이렇게 호탕하게 웃어주시고, 다음 대사는 초록 씨 마음대로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초록은 나쁘지 않은지 방긋 미소를 지었다.
“지금 하겠습니다!”
이초록은 뒷짐을 지고서 나한테 말을 뱉었다.
“이날을 고대했다! 우리의 실력을 보여줄 날을!”
그러더니 이초록은 앞구르기를 하고 일어나서 완벽한 포즈를 취했다. 이건 Q1 작가가 말한 행동이 아닌데.
‘이 새끼가?’
어마어마한 실력을 숨기고 있던 이초록은 나를 보며 비웃었다.
“하하하!”
…젠장. 이 흑역사 싸움에 내가 끼게 되다니.
“너는 여기서 끝났어.”
그런데 대사는 생각보다 약하네. 이제 내 차례가 다가왔다.
‘어떡하냐…….’
연기를 배운 적은 있지만 이런 오글거리는 연기는 배운 적이 없다.
이초록보다 못한 연기가 나오면 어떻게 하나. 그래도 이초록은 이겨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조언을 얻기 위해 정요셉에게 다가가 물었다.
“요셉 형, 저 연기 어떡하죠?”
“…음, 이건 오글거리는 게 재미야.”
“예?”
정요셉은 나에게 핵심을 꼬집어주었다.
“이런 오글거리는 연기는 신인 때 해야 재밌지.”
“…네?”
그런가? 하긴 신인 때는 다들 흑역사를 하나씩 생성하는 법이니까. 나는 뭐가 됐든 이초록보다 더한 대사를 말해야 한다. 그러니까, 더 오글거리고 묵직한 한 방이 있는.
“범나비 씨?”
“네! 지금 하겠습니다.”
뒤에서 멤버들이 응원해 주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는 너희들을 무찌를 날만을 기다리고 기다렸지. 어때? 우리의 무대를 보면…….”
나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 고고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Q1 작가가 하라고 시킨 행동이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한 방을 터트릴 준비를 하며 입을 열었다.
“너는 꿇을 수밖에 없지, 애송이.”
X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