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아이돌 노트 점검의 끝은
듀엣 무대의 반응은 좋았다.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가서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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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나비 알고리즘 많이 뜬다?
Bee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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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그런 거 같더라
└ ㅎㄷㄷ
└ 나비가 노래를 잘해서 그런가 돌연프 나비 개인 직캠도 많이 뜨더라
└ …알고리즘 감사합니다.
-이건 내 궁예거든? 렉카들이 나비 노래 못한다고 계속 그랬잖아 근데 이번 음악 방송에서 라이브 잘해서 관심 가지는 것 같아
└ 근데 플라워나 런엑스런에서도 라이브 했잖아?
└ 그건 나비가 노래를 3분 정도 부른 적이 없어서…
└ 아 맞다 거의 고음만 했지?
-…오 나비 노래 잘한다고 소문나서 기분 좋다.
└ ㄴㄷ
└ 우리 나비 노래 잘해요ㅠ
-렉카들 ㅅㅂ I.P랑 노래 부른다고 엮더니 지금은 후배가 싸가지 없이 군다는 댓글 존나 많아
└ ㄹㅇ 고소했으면 좋겠음
└ 그거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개웃ㅋ 그런데 사실 안 웃김ㅎ
└ ㅋㅋㅋㅋI.P는 진짜 남동생처럼 대하던데 이래서 렉카들 유해하다 유해해
-나비가 노래 잘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길
└ 근데 나비는 그럴 생각 없어 보이더라
└ 그래서 마음이 조금 아픔ㅎ
-진짜 나비는 까와 빠가 동시에 있어 그만큼 화제성도 높음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 ㄹㅇ 까들도 나비 역조공이나 팬 서비스 보고 입덕했잖아
└ 진짜?
└ ㅇㅇ 즈그들 최애랑 같나 ㅋㅋㅋ 우리 나비 얼마나 착한데 심지어 마늘까지 주는 아이라고
└ 그놈의 마늘 진짜ㅋㅋㅋㅋㅋㅋ
내 개인 직캠이 알고리즘에 뜨기 시작했다. 돌연프 때부터 노래 못하는데 잘한다고 팬들이 쉴드 친다는 렉카 영상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노래 부르는 영상을 나노 단위로 평가하는 영상만 넘쳐났는데.
‘…개인 직캠이 알고리즘에 뜨면서 노래 잘한다는 평가를 받다니.’
역시 인생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는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뮤직비디오를 편집하던 노트북을 닫고 기지개를 켰다.
“끝났어?”
“어느 정도는 끝난 것 같아요.”
그때룸메이트인 이정진과 눈이 마주쳤다.
“그럼 막내야.”
“네?”
“노트북을 좀 멀리서 봐. 너무 가까이서 보면 눈 나빠져.”
그랬나. 괜히 미간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뭘 그렇게 보길래 인상까지 찌푸렸어.”
“아… 듀엣 무대 반응 때문에.”
이정진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의문이라는 말투로 말했다.
“그거 반응 좋던데?”
“반응이 좋아서 감사하죠…….”
너무 좋아서 탈이었다.
“왜, 부담스러워?”
“…그건 아닌데 갑자기 노래를 잘한다는 반응이 계속 떠서 뭔가.”
“싫어?”
“싫은 건 아니고 마음이 이상해요.”
나를 싫어하던 사람들도 반응이 달라졌다. 특히 너튜브에서 줄곧 나를 까던 사람이 있었다. 닉네임은 ‘노래를 잘하는 범나비’.
그 사람은 내가 나오는 영상마다 노래를 못한다며 어그로를 끌었다. 그랬던 사람이 이번에 내가 듀엣으로 노래 실력을 보여주자 노래를 잘한다는 댓글을 달았다.
‘…원래 욕을 많이 먹어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건가.
“막내만 유독 안 좋은 말을 많이 들었잖아.”
“네, 그래서 이 반응이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이정진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 반응이 맞을 거야.”
“…네?”
“막내가 돌연프 때 노력 많이 했잖아. 매일 쉴 틈 없이 연습실에 가서 노래 연습도 하고.”
“아.”
“성실함이 이렇게 빛을 보는 거지. 그리고.”
이정진이 나에게 자신이 먹던 사탕을 던졌다.
“그 마음이 맞을 거야.”
“…….”
“원래 사람의 마음은 솔직하거든.”
나를 어르고 달래는 이정진의 말에 현혹되었다.
“그건 그렇고 곧 추석인데 안 내려가?”
눈 깜짝하는 사이에 벌써 추석이 다가왔다. 나는 추석에 어디 갈 생각이 없었다.
“저는 본가에 안 내려가요.”
“막내랑 나만 숙소에 남겠네.”
“그러게요.”
화목현은 지방 예능 촬영이 있어서 내려가고 주이든과 정요셉도 짐을 챙겼다. 그래서 숙소에 남은 사람은 나랑 이정진뿐.
“그럼 어머님 보러 안 가?”
“엄마가 추석 때는 오지 말래요. 추석 때 바쁘다고.”
“편의점?”
“네…….”
엄마는 추석 때 편의점이 제일 바쁘다면서 오지 말라고 내게 사정했다. 아들이 보고 싶다는데 거절하는 엄마라니. 그것도 돈으로 보내라는 말만 하고 나를 내쳤다.
(엄마) 아들 이번에는 그냥 오지 말고 돈으로 보내
(엄마) 일이 중요하잖아
‘왜 내가 상처를 받는 건지.’
“나비야, 오늘 Bee 1위 후보라는데?”
“…어? 그래요?”
이정진의 말에 거실로 나와서 TV를 틀자 때마침 음악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음악 방송 1위 후보에 Bee가 있었다.
“뭐야. 1위 후보잖아!”
짐을 챙기던 주이든이 TV 화면을 보면서 내 어깨를 쳤다. 러브 오버 뮤직비디오를 편집하느라 바빠서 Bee가 1위 후보라는 사실도 몰랐다.
“뭐야. 범나비! 왜 시무룩한 건데?”
“제 앨범도 아니잖아요.”
I.P의 앨범이니까. 저 곡이 온전히 내 곡이라는 생각은 안 든다.
“왜? 솔로 앨범을 내고 싶어?”
내가 솔로 앨범을? 주이든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나를 떠봤다.
“그치? 솔로 앨범이 탐나는 거지!”
“이든 형, 저는 딱히 솔로 앨범을 탐내지 않아요.”
…영혼을 바꾸면서 느꼈다. 나는 솔로로 활동해도 외롭고 고독하다고. 나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솔로 앨범이 좋긴 하겠지만. 역시 멤버들이 없으면 내 매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범나비, 솔로 앨범에 전혀 욕심이 없나 보네.”
“이든 형도 없잖아요.”
“나는 멤버들이 없으면 안 돼! 그러니까 너!”
주이든이 고개를 들더니 나를 노려보았다.
“…어디 갈 생각 하지 마라?”
“뭘요?”
“다른 곳에서 솔로 앨범 제의가 들어와도 네스트 멤버라서 안 된다고 말해.”
“…그런 데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에이, 있다니까?”
나는 주이든의 뿌듯한 표정에 미소를 지었다.
“저 노래 잘해요?”
“…아니!”
“그럼 됐네요. 노래 못하면 솔로 앨범 제의도 오지 않잖아요.”
“…사실 나는 나랑 친한 사람한테 잘한다고 칭찬하는 사람이 아니야.”
그렇다면 내가 친한 사람이라서 칭찬을 못 한다? 정말 주이든답다.
“…어, 그렇구나.”
“범나비, 말투 왜 그래?”
내 말투가 뭐? 나는 눈을 껌뻑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주이든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나에게 물었다.
“한껏 비아냥거리는 말투. 나를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말투.”
“전혀 아닌데요?”
“맞는데?”
“음.”
나도 똑같이 눈을 가늘게 떠서 주이든을 쳐다보았다.
“날 인정하는 말투였는데.”
“무슨 말투?”
“이든 형 말투가 절 인정하는 말투였어요.”
“내가 언제……!”
“역시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내 목소리가 좋다는 말을 저렇게 한다니까. 주이든을 놀리려고 할 때였다.
[MC : 축하드립니다! I.P의 Bee!]
…어? 1위 했다.
“뭐야… 범나비 1위 했어!”
주이든의 외침이 숙소에 크게 울렸다. 그러자 방에 있던 정요셉과 이정진이 뛰쳐나왔다.
“1위 했어?”
[MC : 1위 소감 부탁드립니다.]
[I.P : 오랜만에 정규 앨범으로 돌아왔는데 이렇게 소중한 1위를 저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1위는 네스트의 나비가 있어 받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나비야, 고맙다!]
나는 그저 노래를 열심히 불렀을 뿐이다.
“이야, 우리 막내 멋있네~ 축하드린다고 I.P 선배님께 안부 인사 넣고~”
정요셉이 축하한다며 나를 끌어안으며 사회생활 팁을 알려주었다. 나는 음악 방송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I.P에게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범나비) I.P 선배님, 1위 축하드립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문자를 보낸 뒤 고개를 들자 정요셉은 입꼬리가 광대에 닿을 정도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도 1위가 어디야. 우리 막내, 지금보다 인기 많아지는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있는데?”
“없어요.”
그냥 얼떨떨하다. 듀엣곡으로 1위를 할 줄은 몰랐기에. 더군다나 나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가.
“와씨, 내가 어제 라방에서 팬들한테 그랬는데! 우리 막내가 1위 할 수도 있다고.”
“…그랬어요?”
“당연하지. 자랑을 얼마나 했는데.”
어제 라방 때문에 엔터 회의실로 간다고 하더니…….
“막내야,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이러다가 막내, 음악 예능 같은 것도 들어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옆에서 듣던 정요셉도 살짝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 막내, 예능 섭외 많이 들어올 것 같은데~?”
“저는 뭐…….”
예능이 들어온다면 하긴 할 텐데. 딱히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왜? 하기 싫어?”
“…일단은 형들이 없으니까.”
“…어?”
내 말에 정요셉이 당황했다.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는데.”
“…….”
“너무 날 사랑하지 마.”
…뭐래. 이정진은 내 옆에 앉으면서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목현이 새벽에 온다고 했지?”
“어, 목현 형은 새벽에 온대.”
시골에서 힐링을 즐기는 예능을 촬영 중인 화목현은 아마 내일 올 것이다. 촬영 기간이 1박 2일이라고 했으니까.
그러다가 정요셉이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더니 눈이 커졌다.
“와! 우리 막내, 난리 났다!”
“예?”
“기사가 많이 올라오는데?”
이거 하나로 난리가 난다고……? 설마.
“여기 봐봐.”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허.”
정요셉이 보여준 화면에는 나에 대한 기사로 가득했다.
[I.P X 네스트 나비, ‘Bee’ 대중의 원픽]
[I.P의 듀엣 상대인 범나비 주목]
[I.P, ‘네스트 범나비의 목소리는 보물. 목소리에 장르적인 구분 없어.’]
…이렇게 나를 좋게 봐주다니. 그동안 항상 이상한 기사밖에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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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나비 좋아해 주셔서 기쁘다…
나만 알고 싶은 나비였는데
모두가 아는 나비가 되어버림
하지만 안 좋은 소리 싹 들어가서 그 점은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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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같은 마음이네
└ 그래도 다들 나비만 좋아하면 안 되는데ㅠㅠㅠㅠ
-나비는 네스트입니다
└ 네스트의 막내 범나비
└ ㅇㅈ ㅠㅠ
-걱정 ㄴㄴ 나비가 솔로 하고 싶은 마음 없다고 화보 인터뷰에서 말함
└ 진짜?
└ ㅇㅇ
└ 와… 그래도 나중에 경력 쌓이면 보고 싶기도 하다
-나비야… OST라도 내주렴…
└ 사극 OST 잘 부를 것 같은데 ㄹㄹ
└ 현대극도 어울린다ㅠ 치정극으로 해줄래?
이렇게 된 이상 팬들을 위해 나중에 드라마 OST 제안이 들어온다면 바로 응해야겠네.
“이제 가봐야겠다!”
그때 주이든이 벌떡 일어나 짐을 챙겼다.
“부모님이 밑에 도착했다고 하셨거든. 정요셉, 짐은 다 챙겼어?”
“어, 다 챙겼지~”
정요셉은 팬들이 준 선물을 캐리어에 넣었고, 주이든은 작은 가방에 지갑만 넣었다.
‘둘이 닮은 듯 은근히 다르단 말이야.’
곧바로 밖으로 나갈 줄 알았던 주이든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 생기면 꼭 연락하고.”
“네.”
“정진 형도!”
주이든의 신신당부에 나랑 이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복도로 나간 정요셉은 신나게 손을 휘저었다.
“집에서 맛있는 거 가져올게.”
그렇게 정요셉과 주이든이 사라지고, 방으로 가려는 찰나였다.
【곧 아이돌 노트의 점검이 끝납니다.】
【아이돌 노트의 점검이 끝나기 전까지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지 말라고?
아무도 없는 한적한 거실에서 나는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았다.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나는 가운데, 속에서 올라오는 이물감에 미간을 찌푸렸다.
‘…피?’
【※주의:피가 입에서 쏟아짐】
…예?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며 피를 막았다. 그대로 화장실에 가려는데, 밖으로 나오는 이정진과 눈이 마주쳤다.
“막내야, 왜 그래?”
억지로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어.”
눈앞이 흐릿해지면서 빈혈이 동반됐다.
“막내야!”
이러면 안 되는데 반쯤 눈이 감겼을 때는 이미 이정진의 품에 안겨 있었다. 걱정 어린 이정진의 눈빛을 보면서 괜찮다는 말이 나와야 하는데.
“119는 안 돼요…….”
【이정진의 ‘트라우마’가 바뀝니다.】
【왕따, 친구 관계 → 범나비의 피】
시스템의 농간에 당하고 말았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