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Bee
Bee 차트 순위가 밤 11시에 10위로 껑충 뛰어오르더니 아침에 확인하니 2위로 안착했다.
‘…I.P의 효과인가.’
몇 년 만에 나오는 정규 앨범이라 I.P를 기다렸던 팬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선공개곡 Bee 존나 좋네…
└ 네스트 범나비가 누구임?
└ 그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있잖아 거기에서 1위 한 그룹이던데
└ 오… 나이를 먹었나 누군지 모르겠지만 목소리 좋다
-케팝 기강 I.P가 세게 잡는다
└ 아무리 남돌 박차고 올라와 봤자 대중픽은 못 따라잡죠?ㅎㅎ
└ ㄹㅇ I.P 나오니까 후려치기 개오져서 빡쳤는데
-아무리 팬덤이 커도 ㅋㅋ 대중픽은 못 따라잡음
└ ㅇㅈ 대중픽은 못 따라잡음
└ ㅠㅠ 팬덤 취좆 ㄴㄴ
└ 취좆이 아니라 팩트
└ ㅋㅋㅋㅋㅋ 팩트 ㅇㅈㄹ
-I.P가 다른 남자 가수들 다 버리고 범나비 선택한 이유를 알겠다ㅋㅋ
└ 왜? 시비 아님 진짜로 궁금
└ Bee가 풋풋한 감성이잖아 그런데 범나비 목소리가 이 노래 감성에 딱 맞아서? 돌연프 때부터 I.P가 계속 범나비 목소리 좋다고 그랬거든
└ 그때부터 찍어놨다는 뜻?
└ ㅇㅇ
많은 분들이 이렇게 좋은 평가를 해주셨다. 반면에…….
-;;선배님 잡아먹을 듯이 구네
└ ㅋㅋㅋ아주 살짝 공감
└ 왜 굳이 이런 댓글을 씀? 이런 댓글이 오히려 I.P 까 내리려고 작정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ㅋㅋ
└ 오 나만 느낀 거 아니네; 나도 범나비 음색 좋은 건 인정함 그런데 레코딩 태도 왜 저럼?
└ 몰랐음? 범나비 인성 안 좋기로 유명하잖아 선배님보다 잘하겠다고 저 지랄 하는 거겠지 누가 모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우 내 속이 시원하다ㅠ 무슨 음색음색ㅋㅋ 꼴불견이었는데
-음… 근데 범나비가 노래를 잘 부르는 거라고?
└ ?
└ ㅋㅋㅋ이런 댓글도 있네
└ ? 노래는 잘함!
└ ㅋㅋㅋㅋㅋㅋㅋ범나비보다 노래 잘하는 신인 아이돌 있음?
└ 많아
└ 누구? 말해봐ㅋㅋ
-팬들 역시 손가락 놀리는 건 잘한다~ 범나비가 노래를 잘 부른다고?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댓글도 또 올라오네
└ 범나비 노래 잘하는 편인데 ㅋㅋ
└ 나는 잘 모르겠음~
-살짝 둘이 망붕이야ㅋㅋㅋㅋ 팬들한테 미안하지만ㅠ
└ 이런 애들은 대체로 팬이 아니던데
└ 무슨 망붕;
이상한 억까도 있었다.
‘선배님과 사귄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망붕이라 나는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아 세상에서 망붕이 제일 싫어 ㅋ
└ 진짜 싫어;
└ 진심 피곤하다 피곤해 나비가 무슨 범죄자라도 되는 것 같아 ㅎ
-나비가 욕먹어야 하는 게 너무 싫어
팬들이 힘들어하는 댓글을 보자마자 나는 노트북을 꺼내서 네잎클로버 USB를 꽂았다. 그리고 계곡에서 찍고 보정했던 사진들을 블로그에 올렸다. 제목은 ‘LOVE OVER 컨셉 포토’라고 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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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 #언네사]
안녕하세요. 네온들.
‘LOVE OVER’
컨셉 포토를 올려봅니다.
(www.nest.blo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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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올리네. 계곡에서 휴가로 온 뒤로 계속 컨셉 포토에 매달렸다. 예쁘게 나온 사진을 팬들에게 일찍 보여주고 싶어서. 뮤직비디오 편집은 며칠이 걸릴지 모르겠네.
나는 손가락으로 눈가를 문지르며 기지개를 켰다.
‘반응이 좋을까…….’
다행히 커뮤니티에는 어느새 Bee에 대한 반응은 사라지고 러브 오버 컨셉 포토에 대한 말이 나오고 있었다. 점차 컨셉 포토에 대해서만 말이 나오자 어그로는 싹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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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저 글 누가 올린 거지?
목현이? 나비? 정진이?
이든이랑 요셉이 말투는 아닌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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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누가 올림
-누구야!
-헐 나비 같은데?
-잠깐만 컨셉 포토를? 그것도 블로그에?
└ 헐? 그러게
-…전에 나비가 말했던 게 이거였어?
└ 그러니까ㅠㅠㅠㅠㅠ
└ 이거 엔터에서 하는 거 아닌 것 같네…
-컨포 청량 그 자체다
└ ㄴㅁㅇ
└ 애들 싱그러운 거 실화냐고ㅠ
└ 계곡에서 신나게 놀았나ㅠㅠㅠㅠㅠ
-사진 누가 찍었을까…
└ 모르겠어
네온에게 이런 소식을 전달하고 노트북을 껐다. 그러자 집으로 들어온 김연호가 나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나비야, 스케줄 가야지.”
“네, 형.”
오늘은 I.P와 합동 무대가 있는 날이었다.
* * *
“안녕하세요, 선배님.”
“어! 나비야, 왔어? 밥은?”
“밥은 먹었어요.”
“그래? 나중에 배고프면 이거 먹어.”
I.P가 건네준 도시락은 팬들이 보내준 것 같았다.
“우리 팬들이 너랑 나 싸우는 줄 알더라.”
“우리가요?”
“노래로 배틀하는 것 같대.”
“아…….”
아, 그 싸움. 난 또 싸웠다는 루머가 퍼진 줄 알았다.
“저도 보긴 했어요.”
“이야, 노래로 대결하는 것 같다는 말은 칭찬이거든? 마음에 듣고 새겨.”
“네.”
댓글을 보니까 <보이스 전쟁>이라도 찍냐는 반응이 있었다. 보이스 전쟁은 노래 한 곡을 정해서 선배와 후배가 대결하는 너튜브 콘텐츠였다.
“노래가 차트 1위인 거 알아?”
“…아, 네.”
“그런데 왜 이렇게 미적지근해?”
…좋아해야 하나?
“1위라서 좋긴 하지만…….”
“왜? 네 노래가 아니라서?”
“그건 아니에요.”
“그래? 나라면 내 노래가 아니라서 감흥이 없을 것 같은데.”
저 선배는 솔직해도 너무나도 솔직했다.
“너는 안 그래?”
“저는 제 이름만으로 흥하고 싶진 않아서요. 네스트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거든요.”
“…오, 역시 아이돌이야.”
I.P는 공감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것도 고민이 되겠다. 내가 아이돌 활동을 할 때는 내 이름보다 그룹 이름이 떠서 엄청 싫었는데…….”
“그랬나요?”
“응, 내 이름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어. 솔로 앨범도 내 이름을 알리고 싶어서 시작한 거야. …뭐, 그룹이 망해서 솔로 앨범을 낸 것도 있지만.”
저 말은 듣지 못한 척 물을 마셨다. 그러자 I.P가 나를 보더니 질문했다.
“그래도 네스트는 많이 뜨지 않았어?”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런엑스런으로 확 떴잖아. 음방 1위도 했고. 라디오만 틀면 런엑스런이 나올 정도던데?”
“감사하죠. 하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허어?”
아이돌은 안주하면 안 된다.
“저는 네스트로 오랫동안 활동하고 싶거든요.”
이게 내 목표이자 지향점이지.
“이대로 가면 이번 해에 신인상 받을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랬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후보가 쟁쟁해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쟁쟁하다고 해도 다이아몬드밖에 없지 않나.”
크래프트나 키오는 작년에 나왔기에 신인상 후보가 아니다. 남은 건 우리랑 비슷하게 데뷔한 다이아몬드밖에 없었다.
“…그렇죠.”
“다이아몬드가 무섭긴 해.”
다이아몬드가 있어서 조금 무섭긴 했다. 그 녀석들이 받으면 어떡하나 싶고.
“그런데 다이아몬드 엔터가 유별나서… 돌연프 때도.”
“돌연프요?”
“…돌연프 때부터 HOR 엔터가 다이아몬드 분량 챙겨달라고 PD한테 말했을 거야. 내가 옆에서 들었거든.”
“아…….”
“나중에 사건이 터지고 잠잠해졌지만.”
워낙 HOR 엔터의 입김이 세서 혀를 내둘렀다. 그때였다.
똑똑.
대기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우리의 대화가 끊겼다. 누구냐는 I.P의 말에 대기실 문이 살짝 열리더니 이남주가 등장했다.
“I.P 선배님, 저희 크래프트입니다.”
크래프트가 왔다고? I.P는 흔쾌히 들어오라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크래프트입니다.”
나는 I.P 옆에서 기계적인 박수를 치면서 고개를 숙였다. 홍학은 나를 보며 눈짓했다.
‘인사를 저렇게 하는 건가?’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I.P가 있으니 말을 아꼈다. 그러더니 홍학은 이남주에게서 크래프트 앨범을 가져와 나랑 I.P에게 차례대로 주었다.
“이건 I.P 선배님 거, 이건 범나비 거.”
“…앨범 감사합니다.”
I.P는 크래프트의 앨범을 받으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았다.
“학아, 나비랑 친해?”
“네.”
“아까 보니까 인사하던데.”
“아.”
…나랑 친하지도 않은데 혼자서 친하다고 느끼는 건 아니겠지.
“사소한 오해가 있긴 했는데 친해졌어요.”
크래프트 멤버들도 처음 듣는 소리인지 당황한 눈으로 홍학을 쳐다보았다. 내 예상이 얼추 맞는 모양이다.
“사소한 오해?”
“네, 그 문제가 잘 풀려서 지금은 친해졌습니다.”
계속 나를 주시하던 이윤도가 천천히 나에게 다가와 내 손을 꽉 잡았다.
“노래 잘 들었습니다!”
“아, 저도 크래프트 신곡 잘 들었어요.”
“…헉!”
이번 크래프트 신곡은 거친 남성미를 보여주는 곡이라서 크래프트와 잘 어울렸다. 멜로디도 좋았고.
“저는 PT 받으면서 런엑스런 잘 듣고 있습니다!”
“저도 차로 이동할 때마다 잘 듣고 있어요.”
“나중에 꼭 연말 무대 시상식에서 만나요……!”
이남주가 이윤도의 귀를 잡고 옆으로 잡아당겼다.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그렇죠, 학 형?”
“어, 그렇지… 가보겠습니다.”
한바탕 시끄러웠던 크래프트가 사라지고 대기실에는 적막이 흘렀다. I.P는 마지막 얼굴 체크를 하더니 크래프트한테 받은 앨범을 가방 속에 넣었다. 때맞춰 스태프가 리허설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제 올라가자. 리허설하러 가야지.”
나도 크래프트의 앨범을 가방에 넣어두고는 얼굴 체크하러 거울 앞에 섰다. 어쨌든 처음 만나는 분들이 있으니 얼굴을 확인해야지. 그러자 뒤에서 I.P가 이상하다는 듯이 나에게 물었다.
“얼굴은 왜 확인해?”
“잘 보이고 싶어서요.”
“누구한테?”
“선배님 팬분들?”
그러자 I.P가 기겁하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 팬들은 왜?”
“그냥…….”
“안 된다. 우리 팬들은 내 거야.”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모르죠.”
* * *
김일자는 오랜만에 공방에 출동했다. I.P의 오래된 팬이자 I.P의 팬덤인 타임이었으니까. 그런데 김일자는 오늘따라 초조했다.
‘…둘이 사귀는 건 아니겠지.’
계속 I.P와 범나비를 엮는 글들이 올라와 타임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자 솔로 가수가 신인 남자 아이돌과 엮이면 큰일이다. 좋지 않은 소문이 날 수도 있어서.
한편으로는 ‘I.P가 설마 이제 막 뜨기 시작한 남자 아이돌과 사귀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I.P는 철두철미했다. 팬들에게 잘하고 커리어에 금이 간 적이 없었다. 그래서 김일자는 간을 보기로 했다. 둘이 사귀는 사이인지, 아니면 둘이 썸을 타기 전인지.
“우리 타임, 안녕!”
먼저 I.P가 등장했다. 타임의 함성에 I.P는 어깨가 올라갔다.
“이제 소개할게. 나랑 듀엣인, 네스트의 범나비.”
마이크를 든 채로 범나비는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네스트의 범나비라고 합니다. 타임분들 처음 뵙네요.”
“오오~”
실제로 보는 범나비는 화면에서 보는 범나비와 똑같았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호랑이처럼 날카로운 인상이라는 것이었다.
“잘생겼다~”
뒤에서 들려오는 칭찬에 범나비가 감사하다며 인사했다. 진짜로 잘생겼네. 실제로 보니까 진짜 더럽게 잘생겼다.
“쟤 잘생겼죠?”
“네!”
“대충 봐도 잘생겼으니까 그냥 대기실에서 나오면 되잖아요? 어쨌든 헤어랑 메이크업도 했으니까! 그런데 글쎄… 우리 팬들 본다고 거울을 보면서 얼굴 정리하고 왔다니깐요.”
I.P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혀를 세게 찼다. 타임이 호응하자 범나비는 예의 있는 말투로 말했다.
“타임분들을 처음 뵙는 자리니까요.”
“아니, 쟤 우리 팬들 가져가려는 심보라니까. 절대 가면 안 돼. 알았어요?”
범나비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I.P 선배님한테는 잘 보일 필요가 없지만 타임분들한테는 혹시 모르잖아요? 저희 네스트 덕질하실 수도 있으니까.”
“봐요! 쟤 무섭다니까!”
I.P가 가증스럽다는 듯이 미간을 좁히자 범나비가 입술을 쭉 내밀었다.
“잘 보이려고 열심히 꾸몄는데 별로인가요?”
“진짜로 쟤는 이상하다니까? 나한테 잘 보일 필요가 전혀 없다는 듯이 군다니까?”
“선배님, 제가 언제.”
“거의 남동생이야, 남동생. 진짜 제발 부탁하는데, 쟤랑 나랑 엮지 말아줘.”
“저도 부탁합니다.”
“너는 왜 부탁해?”
“저도 딱히…….”
이렇게 보니 정말 누나 동생 하는 사이 같았다. 누가 저 둘을 엮는 거야. 김일자는 거기서 상상을 끊었다.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되지 못한다. 그러자 어떤 타임 한 명이 외쳤다.
“왜 나비를 고른 거야?”
“내가 인터뷰에서 말 안 했나? 쟤가 돌연프에서 노래를 너무 잘하는 거야. 기교도 없는데 끌리는 목소리였거든. 그래서 바로 컨택했지. 같이 하자고. 순수하게 나비의 목소리가 좋아서 선택한 거니까, 오해하지 마~”
김일자도 이제 이해가 갔다. 범나비의 목소리는 귀가 녹을 것처럼 음색이 좋았으니까. 곧 리허설이 시작되고, 충격을 받았다.
범나비가 부르는 Bee를 듣자마자 I.P가 범나비를 고른 이유를 알 것 같았으니까.
‘…노래 더럽게 잘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