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무당집
웃기긴 웃긴 상황이다. 전혀 무섭지 않다고 했던 내가 인형을 보고 놀라서 절을 해버렸으니까.
나는 다시 일어나서 무덤가를 둘러보았다. 귀신인 줄 알았던 게 인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자연스럽게 뇌를 강타하는 현실 자각 타임에 아랫입술을 씹었다.
“…하.”
나는 진흙으로 도배된 손바닥을 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귀신 인형을 보고 놀라다니. 화끈거리는 얼굴을 보니 피부가 뻘겋게 익은 모양이다.
“나비야, 괜찮아?”
화목현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나한테 다가와 내 상태를 물었다.
“저는 괜찮아요. 몸에 흙이 조금 묻은 정도.”
손바닥에 묻은 진흙을 털어내면서 돼지 코에 들어가 있는 종이를 빼냈다.
“…나비야,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딱히 없어요.”
쪽팔려서 그렇지.
“범나비! 진짜 괜찮은 거지……?”
“정말 괜찮아요.”
주이든은 내 걱정에 한걸음에 달려왔으나 몸이 덜덜 떨렸다. 이런 상태에서 무당집에 갈 수 있겠나.
“어~ 인형이었네……?”
“인형이던데.”
“내가 저거 써도 되겠지?”
어느새 위로 올라간 정요셉이 귀신 인형을 가져왔다. 그걸로 뭐 하려고.
“요셉 형, 그걸 왜 가져와요.”
“우리 방패로 쓰자.”
귀신 인형을 방패로 쓰다니?
“좋은 생각인데요.”
지나가던 귀신도 놀라서 도망가겠네.
“이제 종이 확인할게요.”
내가 몸을 대충 추스른 뒤에야 종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무에 붙인 부적을 따라와.
-괴도 TD》
“나무에 붙인 부적?”
나무에 있는 부적을 찾기 위해 멤버들이 무덤가 주변을 살폈다.
“어두워서 부적을 찾을 수 있겠어?”
“그러게요. 제가 손전등으로 주변을 비출게요.”
바닥에 떨궜던 손전등을 들고 주변을 비췄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위로 올라가는 산책로에 난간이 없어 자칫 잘못하다가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수도 있었다.
“범, 범나비! 저 위로 비춰봐.”
주이든의 말에 위를 비추자 주이든이 소리를 질렀다.
“저기 있네!”
눈도 밝은 주이든이 부적을 찾았다. 우리는 그쪽으로 가서 부적을 확인했다.
“저, 저게 뭐야?”
“부적이 울고 있는데요.”
부적에는 울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그럼 이 부적을 보고 따라가면 되겠네요. 형들, 따라와요.”
부적을 따라서 걸어가는 내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선선한 날씨 때문인지 점점 조여오는 한기에 몸을 움찔했다. 내가 움찔하자 뒤에서 주이든이 왜? 왜? 하며 계속 말을 걸었다.
“약간 몸에 소름이 돋아서 잠시 멈췄어요.”
“뭐? 너도 그래?! 나도, 나도 그래…….”
어떻게 이런 곳을 알아 온 건지. 나까지 무섭네.
“…저기 아니야?”
그리고 누구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모두가 무당집을 발견했다. 무당집 천장에는 부적과 연꽃이 붙어 있었다. 이게 끝이면 다행이다.
무당집 안은 붉은빛으로 도배가 되어 있어서 더더욱 섬뜩했다. 이건 나도 들어가기 무서운데?
“막내야, 저기 안으로 들어가야겠지?”
“네… 정진 형이 저랑 같이 들어갈래요?”
그러자 정요셉이 손을 들었다.
“나도 들어갈래.”
화목현의 껌딱지처럼 붙어 있던 정요셉이 용기 내어 말했다.
“요셉 형, 괜찮겠어요?”
“…분량은 챙겨야지.”
“와…….”
무서워서 다리가 떨리는 와중에도 분량은 챙기겠다고 외치는 정요셉을 보며 감탄이 나왔다. 이미 주이든은 화목현의 뒤에 붙어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나도! 갈 거야!”
…주이든도?
“원래 공포물 같은 걸 보면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죽더라고!”
“그러다가 이든 형 혼절하면 어떡해요.”
“…내, 내가? 전혀 아니지! 나는…….”
이미 목소리부터 떨리고 있는데요. 주이든의 손을 잡은 화목현이 대신 말했다.
“우리가 있으니까 이든이가 쉽게 쓰러지는 일은 없을 거야.”
“…맞아!”
그러면 한 명도 빠짐없이 무당집 안으로 들어가는 건가.
“그래요. 가죠.”
안으로 들어갔다가 멤버들을 놓치면 안 될 텐데. 그때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우리 서로 손 잡고 가요.”
“…손?”
그렇게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로 이정진은 용감하게 무당집 현관문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씩 밀었다.
끼익.
기름칠을 안 한 소리가 귓가에 정통으로 박혔다.
“내가 앞으로 갈게.”
“정진 형, 괜찮겠어요?”
“어, 할 수 있어.”
이정진이 무당집 안으로 한 발짝 들어가자 정요셉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요셉 형, 힘들면 바닥만 보고 있어도 돼요.”
“어… 어.”
정요셉의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다. 확실히 무섭긴. 무서웠다. 무당집은 생각보다 작았다. 그리고 주변 곳곳에는 무당이 입을 법한 알록달록한 한복과 한쪽 눈이 녹아내린 장군 동상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거 괜찮냐?”
정요셉의 질문에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마당 쪽에 있는 오래된 우물이 보였다. 나는 그 옆에 우거진 잡초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 깊숙하게 들어왔는데?’
물건 말고 귀신이나 사람은 없다.
“나비야!”
그때 이정진의 외침에 뒤를 돌자 검은색 천이 우리를 덮쳤다.
“아아아악!”
어디서 공격을 한 거야? 마당에는 사람이 없었잖아.
“얘들아! 진정!”
화목현의 외침에 발버둥 치던 멤버들의 행동이 잠잠해졌다. 나는 뭔가가 딸칵 하고 켜지는 소리에 맞춰서 이정진과 정요셉의 손을 놓았다.
“막내야?”
“…정진 형, 잠시만요. 뭔가 켜지는 소리 안 들렸어요?”
“나는 못 들었는데.”
분명… 뭔가 켜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형들, 뭔가 이상한데요.”
갑자기 검은색 천을 우리한테 씌울 이유가 없잖아. 무언가를 숨기려고 하지 않는 이상. 곧 내가 검은색 천을 벗기자 눈앞에 현수막이 보였다.
“…환영합니다?”
《(축) 투두 네스트의 힐링 캠프 (하)》
…예?!
* * *
그러니까…….
“축하합니다! 투두 네스트의 힐링 캠프에 오신 네스트분들, 환영해요.”
“…와아.”
오랜만에 보는 PD의 말에 나는 영혼 없이 박수를 갈겼다.
“와… 이렇게 당할 줄은 진짜 꿈에도 몰랐다.”
정요셉의 감탄에 나도 뒤이어 말했다.
“저도요… 이렇게 당할 줄은 몰랐어요.”
우리는 휴가인 줄 알았으나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이었던 것이다.
“왜 하필 담력 훈련이에요?!”
주이든이 양손을 쥐며 물었다. PD는 보기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한 번도 안 했더라고요.”
“…그렇긴 하지만!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세요?”
“그래서 담력 훈련을 한 겁니다.”
…맥이 풀리는 동시에 궁금한 점이 떠올랐다.
“저 PD님, 혹시 마트 사장님도 연기자예요?”
“저희가 섭외하긴 했지만 연기자는 아니었습니다.”
“예?”
연기자가 아니었다고? 저 멀리서 마트 사장님이 손가락으로 브이를 하고 흔들었다.
“…진짜 마트 사장님인 줄 알았는데.”
감쪽같이 속은 정요셉과 주이든은 멍한 표정으로 마트 사장님을 쳐다보았다. 그건 그렇고,
“그럼 무당 이야기도 거짓말이에요?”
“당연히 저희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그럼 무덤은?”
“그 무덤도 저희가 직접 만들었고요.”
“언제부터?”
“한 달 전부터 준비했습니다.”
미친… 한 달 전부터 준비했다고? PD님이 또 만나자고 했을 때부터 긴장을 놓지 않아야 했는데.
“그러면 연호 형은 어디로 간 거예요?”
화목현의 질문에 PD가 말했다.
“김연호 씨는 휴가를 갔습니다.”
“네!?”
휴가를 갔다고? 우리한테 말도 없이?
“저희가 휴가를 가라고 부탁했거든요.”
…오늘 덕풍 계곡으로 오는 내내 김연호의 입꼬리에 웃음이 달렸더라니. 어쩐지 펜션에 짐을 옮기는데 김연호의 짐만 없더라…….
“그러면 우리 팀장님도 저희가 예능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네, 팀장님이 먼저 부탁했습니다.”
우리는 동시에 ‘와…….’ 하고 감탄했다. 철저하게 준비했네. 이로써 팀장님과 김연호가 한통속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어디에 올라가는데요?”
“네스트의 너튜브 계정에 올라갑니다.”
우리 계정? 자체 콘텐츠?
“그러면 이제부터 저희는 무엇을 하면 되나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화목현이 입을 열었다.
“힐링을 하시면 됩니다.”
…힐링이요?
“담력 훈련으로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언제 준비한 건지 고기가 세팅된 테이블이 나타나더니 제작진분들이 고기를 구웠다. 거기다가 호화로운 반찬까지.
“네스트분들은 의자에 앉아주세요.”
멤버들은 PD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테이블에 착석했다. 정요셉은 세팅된 반찬을 보면서 감탄했다.
“이런 담력 훈련이면 매번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우리 막내, 많이 먹어.”
“맛있게 먹을게요.”
이렇게까지 차려주다니.
“그럼 저희가 제작진분들한테 쌈을 싸드리는 건 어떨까요?”
내 말에 멤버들이 좋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고개를 돌려서 PD의 표정을 확인했다.
“PD님, 쌈을 싸드려도 될까요?”
“…예?”
“된다고요? 그러면 PD님이 허락했으니까 쌈을 싸드려야겠죠?”
나는 상추로 쌈을 싸서 PD님께 드렸다. 물론 쌈에 마늘을 많이 넣었다.
“고기보다 마늘이 몸에 더 좋대요.”
“…고기가 하나도 없는데?”
“마늘 맛있게 드시라고요.”
내가 무릎을 꿇으며 쌈을 건네자 PD도 덩달아 무릎을 꿇었다.
“제가 먹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제 성의를 받아주세요.”
“아니…….”
“아~”
아, 소리에 맞춰서 PD가 입을 벌렸다. 곧 매콤한 마늘의 맛이 혀를 때릴 것이다.
“물… 물!”
물을 찾는 PD의 모습을 보면서 멤버들이 씩 웃었다.
“우리 막내, 누가 키운 건지 참 잘 키웠어~”
“우리가 키웠지!”
나는 뒤로 돌아서 멤버들을 향해 브이를 했다.
“저 쌈에 와사비도 넣었어요.”
“막내야, 잘했어.”
다른 제작진분들에게도 고기를 나눠주면서 우리는 힐링을 만끽했다.
“계속 이렇게 놀아도 돼요?”
“힐링 캠프라서 괜찮습니다.”
“아니, 이러면 재미가 없지 않나 싶은데…….”
분량 걱정을 하며 야금야금 소고기를 먹고 있자 PD가 우리한테 말을 건넸다.
“그렇다면 분량 걱정하는 범나비 씨, 멤버들 첫인상 이야기 좀 해볼까요?”
첫인상?
“저부터요?”
“네~”
첫인상은… 다 무섭지 않았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멤버들의 첫인상!”
“아… 말하면 돼요?”
처음에는 다들 나를 싫어한다고 느꼈으니까.
“목현 형은 정말로 고급스러웠다고 해야 하나.”
“…내가?”
“네, AA 엔터에 들어가고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목현 형인데 보자마자 그렇게 느꼈어요. 저 형은 연예인이 아니라도 해도 어디서든 눈에 띄는 사람이다.”
“나비, 잘생겼다는 말을 돌려서 하네?”
정말이었다. 화목현은 공작새처럼 화려한 옷을 입어도 얼굴이 더 눈에 띄었다.
“오? 나는~”
“요셉 형은…….”
“왜 말을 끊어?”
“…요셉 형은 친근했어요. 목현 형 다음으로 저한테 다가와 준 형이기도 했고.”
“그랬어?”
그래서…….
“요셉 형은 분위기 메이커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매사 긍정적이라서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할 때도 많고요.”
“우리 막내가 좋은 말을 해주네?”
이정진도 궁금했는지 나를 쳐다보았다.
“…음, 정진 형은 정말 말이 없다? 정진 형이 낯을 가려서 대화를 잘 안 했거든요.”
“맞아. 그랬지…….”
“그런데… 지금 제가 질문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정진 형이에요. 그만큼 제가 의지하는 형이에요.”
정말이었다.
“막내야, 고맙다.”
“뭘요.”
이제 마지막인 주이든의 차례.
“…이든 형은.”
“왜 뜸을 들여.”
“변수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