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133화 (133/235)

133. 우리는 놀러 갑니다

내가 로드매니저에게 혼나는 영상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회사는 시끄러워졌다. 그때는 몰랐는데, 영상에서 보니까 로드매니저가 나에게 손을 들어 때리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이거 때문에 팀장님은 나한테 이런 일이 다시 없도록 신경을 쓰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로드매니저는 정식으로 우리에게 사과했다.

“나비야, 그런 일을 당했으면 우리한테 말했어야지.”

“목현 형, 저도 손이 위로 올라갔을 줄은 몰랐어요.”

“그건 몰랐다고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말해야지.”

화목현은 화난 말투로 내 얼굴 여기저기를 확인했다.

“그러면 나비야, 어디 맞은 곳은 없지?”

“당연히 없어요.”

“진짜로 없어?”

“진짜 없어요.”

그 말에 화목현은 안심의 한숨을 뱉었다. 멤버들도 다행이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제일 화가 많이 났던 주이든이 주먹을 쥐며 말을 꺼냈다.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그것도 웃겼어.”

뭘? 나는 소파에 앉으면서 주이든의 말을 귀에 담았다.

“맨날 우리한테 편의점 김밥을 사줬잖아! 자기는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 맞지, 연호 형?”

김연호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어, 그랬더라. 로드매니저가 쓴 카드 내역을 보면 항상 유명한 식당이 찍혀 있길래, 나는 너희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다고 생각했어. 내가 당부했거든. 무슨 상황에서도 너희들 밥은 맛있는 거 먹여달라고.”

“그런데 김밥을 사준 거야?!”

그런데 자기 혼자서만 맛있는 걸 먹었다니.

“회식도 하지 않았어?”

회식? 우리가 회식한 적이 있었던가. 내가 김연호한테 다시 되물었다.

“우리가 회식을 했다고요?”

“회식도 했다고 하던데.”

계속 참고 있던 주이든이 분노했다.

“우리가 언제 회식을 했다고!”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로드매니저는 법인카드로 우리가 물건을 샀다고 거짓말을 쳤다. 알고 보니 친구들한테 선물을 사줬다는 증거가 쏙쏙 나왔다.

“…나중에 보니까 자기 집에 필요한 물건도 샀더라고.”

“그 매니저 진짜 최악~”

정요셉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말을 했다.

“아~ 맨날 나한테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했다니까. 짜증 나서 싫다고 말해도 눈치 없이 자기 친구들이 있는 곳에 와달라며 개인 톡까지…….”

“요셉아, 갔었어?”

“제가 갈 것 같아요?”

아무래도 피해자는 정요셉이었던 모양이다.

“이거, 팀장님이 너희들 주래.”

김연호가 우리한테 팀장님의 개인 카드를 건네주었다. 이거, 귀한 거네.

“그럼 이제 계곡으로 떠나볼까?”

* * *

AA 엔터 주차장에 도착해 우리는 차에 올라탔다. 나는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이 모습도 찍어야지.

“형들, 저 카메라 켰어요.”

그러자 언제 화가 났냐는 듯이 멤버들은 활짝 웃었다.

“자, 이제 계곡으로 놀러 간다!”

“연호 형, 어느 계곡으로 가요?”

“덕풍 계곡으로.”

“덕풍 계곡으로!”

주이든이 신나서 정요셉과 어깨동무를 하며 방방 뛰었다. 우리가 가는 덕풍 계곡은 강원도 삼척시에 있는데, 확실히 뮤직비디오를 찍기 좋았다. 더군다나 여름 휴가철이 끝난 시점이라서 계곡에 오는 사람들도 별로 없을 것이다.

“떠나요~ 우리는~ 계곡으로~”

정요셉과 주이든은 화음을 넣으며 노래를 시작했다.

“아! 떨려!”

주이든이 떨린다면서 상자에서 물총을 보여주었다. 물총을 준비하는 건 주이든 담당이었다. 주이든은 멤버들의 이미지에 맞게 샀다고 했는데,

“이건 목현 형 거.”

화목현은 화살 물총을.

“이건 정진 형 거.”

이정진은 샷건을.

“너랑 나는 이거.”

자기 것과 정요셉 것은 워터건을 준비했다. 그런데 왜 내 건?

“왜 이렇게 작아요?”

작은 공룡 물총이었다.

“너는 막내잖아.”

“이럴 때만 막내죠?”

“한번 당해봐야지.”

하지만 주이든이 이럴 줄 알고 나는 배낭에 미리 산 물총을 넣어놨다. 그것도 제일 큰 걸로. 이건 멤버들도 모르는 정보다.

차에 오르면서 나는 맨 앞좌석에 앉았다. 멤버들을 다 찍기에 최적화된 자리였으니까.

내가 카메라 세팅을 하자 이정진이 손가락으로 카메라를 가리켰다.

“그런데 나비야, 지금 찍고 있는 거야?”

“네, 찍고 있죠.”

“그래?”

이정진은 카메라를 보면서 인사했다.

“안녕.”

이제 출발한다는 김연호의 말에 나는 창문을 내렸다. 그리고 노래를 크게 틀었다.

“진짜! 진짜로 놀러 가는 거 같아!”

주이든은 신난 참새처럼 창문 밖을 구경하면서 공기를 마셨다.

“와, 산이라서 그런지 공기부터가 달라.”

“이든아, 여기는 산이 아니라 도로야.”

주이든은 귀에 들리지도 않는지 계속 공기가 맑다며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멤버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시간을 확인했다.

곧 다가오는 네스트 1주년.

온갖 사건 사고가 있어서 1주년이 아니라 2주년처럼 느껴졌다. 슬슬 멤버들이 잠들자 나는 카메라를 끄고 앞을 주시했다.

그런데,

‘왜 아이돌 노트가 나타나지 않지?’

아이돌 노트는 시스템을 점검한다면서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나야 편해서 좋았지만.

‘…조만간 어떤 시스템으로 날 골탕 먹일지 누가 알겠어.’

휴게소가 가까워진다는 네비게이션의 말에 김연호가 외쳤다.

“얘들아, 휴게소에서 간식 살까?”

“꼬치!”

주이든이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휴게소 음식을 줄줄이 읊었다.

“꼬마 츄러스, 핫바, 핫도그, 알감자, 오징어구이, 식혜!”

“…이든아, 숨 쉬어.”

“당연히 소떡소떡도 먹어야지!”

“그럼 휴게소에 들어간다!”

김연호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휴게소로 진입했다.

“역시 여행할 땐 휴게소 간식을 먹어야지. 안 그러면 국내 여행을 다녔다는 기분이 안 들어. 안 그래, 정진 형?”

“어? 어.”

“내 말이 맞지?”

“그래, 이든이 말이 맞지. 근데 나는 좀 졸려.”

이정진은 어제 러브 오버 녹음 작업을 끝내서 그런지 자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주이든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정진 형, 놀러 가는데 이럴 때 자면 어떡해!”

“…졸려.”

“뭐! 어쩔 수 없지! 얼른 자!”

다 깨워놓고 자라니. 이정진도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터트렸다. 차를 주차하자 주이든은 신난 듯 문을 열었다.

“정진 형, 필요한 거 있어?”

“나? 소떡…….”

“소스는?”

“그냥 케찹만.”

주이든은 언제 준비했는지 여행 느낌이 물씬 풍기는 밀짚모자를 쓰고 차에서 내렸다. 해바라기가 그려진 푸른색 반바지 위에 입은 하얀색 셔츠가 바람에 펄럭거렸다.

“태양이 너무 강렬해. 그래서 내가 선글라스를 준비했지.”

“우리 이든이, 대단한데~?”

“내가 좀 여행에 진심이라.”

선글라스를 쓴 주이든이 하늘을 보며 씩 웃었다.

“이제 가자! 휴게소 털러!”

주이든은 정요셉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휴게소로 달려갔다.

“목현 형, 정진 형! 우리도 가죠.”

역시 평일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우리가 차에서 내려서 휴게소 간식을 사자 옆에 있던 아주머니들이 우리를 보며 말했다.

“잘생긴 총각들이네.”

“칭찬 감사합니다.”

“뭐, 연예인이야?”

“네, 저희는 네스트라고 합니다.”

“남자 아이돌?”

아주머니들한테 네스트를 홍보하는 동안 주이든은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다른 간식을 이것저것 샀다.

“정요셉! 너는?”

“나는 식혜 하나로 충분하지~”

“식혜?! 알았어!”

산 게 너무 많아 자기의 손도 부족해서 화목현의 손까지 빌린 주이든은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든 형, 저걸 다 먹을 수 있어요?”

“나는 잘 먹어~”

…주이든의 먹성은 유달리 좋긴 했지만. 저걸 다 먹을 수 있긴 한 건가.

“소고기도 많이 샀잖아요. 저녁도 먹어야죠.”

“걱정하지 마! 저녁 배는 따로 있어.”

대단하다. 오늘만 사는 것처럼 주이든은 품에 음식을 들고 차로 걸어갔다. 나는 정요셉을 데리고 차에서 마실 음료수를 샀다.

“우리 막내는 어떤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어서 카메라를 가져왔대?”

“…음, 나중에 추억으로 남을 만한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어서요.”

“응? 추억?”

“곧 네스트의 1년이 다가오잖아요.”

“아? 그래서 그랬구나.”

그제야 정요셉이 내 깊은 뜻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시간이 빠르다.”

정요셉이 휘파람을 불면서 말을 이었다.

“나비랑 만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는 뜻이구나.”

“벌써 형들과 만난 시간이 그렇게 됐죠.”

그러자 정요셉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면서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비야, 저 하늘을 봐.”

“…예?”

“하늘을 보고 가만히 있어봐.”

왜 하늘을 보라는 건지. 하늘에 구름이 많아서 하얀색 하늘이었다. 어느새 정요셉의 팔이 어깨에서 사라지고, 내가 가만히 있을 때였다.

“범나비, 혼자서 뭐 해!”

“…어?”

“빨리 와!”

이미 정요셉은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당했다…….’

서둘러서 뛰어가 차에 도착하자 정요셉이 고개를 돌려서 웃고 있었다.

“요셉이 왜 저래?”

이정진의 질문에 내가 말해주었다.

“…어떤 동생을 혼자 놔두고 가서 재미있나 봐요.”

“그 어떤 동생이…….”

“저예요.”

주이든은 나를 보면서 푸학! 소리를 내었다.

“정요셉한테 당했네.”

“…네.”

“그거 나도 당했어. 하늘을 보라고 했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이든이 정요셉의 수법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집요하게 정요셉의 눈을 보면서 주먹을 쥐었다.

“그러다가 형 때리겠다?”

“때릴 수만 있다면.”

때릴 것이다.

“죽이지는 말아줘.”

“당연하죠.”

내가 정요셉과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모두가 차에 올라타자 김연호가 시동을 걸었다.

“자, 다 탔지?”

“네!”

“화목현, 이정진, 정요셉, 주이든, 범나비. 끝.”

김연호가 멤버들을 확인하고 정면을 주시했다.

“이제 계곡으로 갑니다.”

“예!”

계곡으로 떠난다. 청아한 하늘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 * *

드디어 덕풍 계곡 펜션에 도착했다. 일단 짐을 옮기고 난 뒤에 계곡에 가기로 했는데, 주이든은 몸이 근질거리는 모양이었다.

“빨리 물총으로 나비 쏘고 싶어.”

왜 날? 화목현은 어금니를 물며 말했다.

“이든아, 우리를 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겠지만 짐은 옮기자?”

“…넵.”

펜션에 짐을 옮기자마자 주이든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여기도 좋아! 저기도 좋아!”

펜션을 두 개나 빌려서 침대가 많았다. 그런데 옆 펜션에 있는 사람들은 뭔가 분주해 보였다. 지난번에 팀장님이 말했던 방송국 사람들인가? 그런데 방송을 한다기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연호 형, 옆 펜션에 사람이 있네요?”

“…그러네. 팀장님이 말했던 방송국 사람들인가?”

“그런가 봐요.”

김연호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아니죠?”

“뭐가?”

“아니에요.”

이상하단 말이지… 수상한 낌새가 느껴져 김연호를 쳐다보았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

“날 의심하는 거야?”

“…그럴 리가요.”

살아남아라의 여파가 크긴 큰 모양이다. 김연호를 의심하는 병까지 생기다니. 그때였다.

“범나비!”

워터건을 들고 나타난 주이든이 나를 향해 물총을 쐈다. 그것도 가슴에. 주륵, 흐르는 차가운 물에 소름이 돋았다.

“…이든 형?”

“짐도 옮겼겠다… 이제 싸움이다!”

싸움이라면 나도 물총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무방비 상태에서 주이든이 계속 물총을 쏘기 시작했다.

“이든 형!”

이대로는 주이든한테 계속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카메라 삼각대를 바닥에 설치하고 보조 가방에서 배낭 물총을 꺼냈다. 그리고 펜션 안으로 들어가 물총에 물을 부었다.

“나비야, 그게…….”

“물총이요.”

이미 물에 젖은 나를 보면서 화목현이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주이든… 어디에 있지?’

나는 바닥에 놔두었던 카메라를 들고 일어났다. 그때 얼굴에 물을 맞았다.

“푸학……!”

주이든의 웃음소리에 나는 물로 젖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시선을 올렸다. 그리고 계곡 앞에서 참새처럼 돌아다니는 주이든을 보면서 씩 웃었다.

“뭐야… 범나비.”

“제가 작은 물총만 가져왔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물총을 들고 주이든을 향해 조준했다.

“…야, 범나비.”

웅장한 등껍질 에디션 물총 프로미엄. 이걸 가지고 물총 싸움에서 진 적이 없다는 인터넷 리뷰를 전적으로 믿고 샀다.

그래서 샀는데.

“뭐야.”

“범나비?”

…아, 물총 구멍에서 물이 안 나온다.

“저 사기당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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