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사건의 시작
당연히 네온은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아… 나비야, 미안해.”
“저는 괜찮아요.”
좋아하는 가수가 한자리에 있는데 반갑지 않은 팬이 어디 있겠는가. 당연히 달려와 인사할 수 있었다. 인사한다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나는 매니저의 팔을 밑으로 내리면서 미소를 지으며 네온에게 접근했다.
“무슨 일로 카페에 왔어요?”
“…어! 이 근처에서 일하거든요.”
일하고 있다고? 팬 싸인회에 왔을 때는 백수였다고 하지 않았나?
“그때 플라워 팬 싸인회 왔던 팬 맞죠?”
“…어떻게 알았어요?”
“기억해 달라고 했잖아요. 기억하고 있었죠.”
“헐!”
“그땐 백수라고 했잖아요.”
역시 플라워 첫 팬 싸인회에 왔던 네온이었다. 내가 알고 있다니까 네온은 활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비가 응원해 줘서 취직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내가 원하는 진로도 결정했거든요!”
“진짜요? 무슨 일을 하는데요?”
“광고 회사에 들어가게 됐어요!”
“취업 축하해요.”
“나중에 신제품을 만들면 네스트한테 광고 맡기는 거 추진해 보려고요.”
로드매니저 때문에 기분이 나락으로 갔었는데 네온의 말에 기운이 났다.
“안 그래도 돼요.”
“진짜로 하고 싶은데!”
광고 회사 직원이 우리 네온이라니. 이렇게 든든할 줄이야. 나는 뒤를 힐끗 쳐다보았다. 네온 뒤에는 같은 회사 동료 직원들인지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우리 팬,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웃으면서 인사한 뒤에 네온에게 물었다.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어? 아니! 됐어!”
로드매니저 때문에 미안하기도 하고. 나 덕분에 직장에 들어가게 됐다는 말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럼 백수 누나 이름으로 카페 20만 원 끊고 갈게요.”
“…나비야! 안 그래도 돼!”
“취업 축하 선물이에요.”
최대한 빠르게 카페 사장님한테 카드를 내밀었다.
“나비야, 나도 돈 벌어!”
“저도 돈 벌어요.”
카드 결제를 끝내 ㄴ뒤 내가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로드매니저랑 카페에서 나왔다. AA 엔터로 가는데 로드매니저는 인상을 쓰면서 물었다.
“왜 팬한테 사주는 거예요?”
“…뭘요?”
“아니, 돈이 있으면 명품이나 차를 사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 욕심은 없어서요.”
명품이나 차에는 욕심이 없었다.
“참 재미없게 사시네~”
“그런가요? 나는 매니저님이 재미없게 사시는 것 같은데.”
“팬을 보면 대충 인사하고 지나가면 되지. 굳이 돈을 쓰고.”
나는 걸음을 멈췄다.
“흠… 제 돈인데요.”
“……?”
“저는 회사에서 주는 돈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잖아요. 팬한테 사랑받는 직업이고요.”
“…….”
“매니저님은 아이돌 하지 마세요.”
이 말을 남기며 앞으로 가는데 갑자기 로드매니저가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야, 너 이 새끼…….”
이 새끼?
“…이거 놓죠. 밖입니다. 보는 눈도 많고요.”
“내가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
로드매니저의 얼굴이 부글부글 끓는 용암처럼 붉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 네 짓이지?”
“제가요?”
“내가 너희 팬들 보면서 낄낄 웃는 사진 말이야.”
“제가요?”
애초에 그 사진은 외국 팬들이 올린 사진이다. 내가 올렸을 리가.
“네가 올렸지?”
“절대요.”
“네가 나한테 알려줬잖아. 합리적인 의심 아니냐?”
“합리적인 의심이 아니라… 억지 논리죠.”
그 많은 사진을 내가 직접 찾아서 올린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런데 그 말이 안 되는 소리를 로드매니저는 믿고 싶은 모양이었다.
“매니저님, 찔리는 거 있어요?”
“뭐, 뭐?”
나는 녹고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부질없고 쓸데없는 대화를 해야 하다니.
“화장실에서 통화 내용 들었습니다.”
“…….”
“친구분한테 우리 팬들 얼굴 평가하면서 조롱하는 대화.”
찔리니까 내 탓으로 몰고 가는 거지. 자기가 했던 행동이 아니라면 당당할 텐데.
“아, 그걸 듣고 이러는 거다? 그렇다고 날 쪽을 줄 필요는 없잖아. 나는 로드매니저로서 할 일을 했다고.”
“제가 뭐라고 했어요?”
“…뭐?”
“매니저님은 해고를 당하지도 않고 지금도 내 옆에 있잖아요.”
그렇게 로드매니저의 손길에서 벗어나 AA 엔터에 들어가려고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는데,
“너, 나 떨어트리려고 그랬냐?”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해고 말이야! 해고!”
그러자 로드매니저가 허겁지겁 말을 이어갔다.
“너 나 싫어하잖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가 싫다는 티를 팍팍 내더라. 그래서 팀장님이 네 비위 맞추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나도록 했다고.”
여기까진 괜찮았다. 어차피 더한 말들을 많이 들어왔으니까. 그런데,
“역시 아버지 없이 자란 새끼는 이렇다니까.”
“…….”
“그걸 들었으면 앞에 대고 말하든가. 뒤에서 음침하게 기다렸다가 터트리고.”
“…….”
“이래서 남자 새끼들은 안 된다니까. 여돌 할 땐 꿀 좀 빨았는데.”
흠… 똥이 무서워서 안 치우나. 상대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더러우니까 무시한 건데.
‘아주 가끔 이런 매니저가 있지.’
자기 주제도 모르고 나대면서 설치는 존재가. 물론 좋은 매니저도 존재한다. 김연호 같은.
“그러니까 너는 그냥 조용히 있어.”
“조용히?”
“그래, 팀장님한테 말도 하지 말고. 떠들지도 말고.”
입단속까지 하려는 모양이네.
“그래서 저한테 바라는 게 뭔가요.”
“가만히 있으라고. 꿀이라도 빨게.”
“아… 꿀.”
그런데 어쩌지.
로드매니저가 엔터 밖에서 말하는 내내 나는 눈동자를 굴려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근처에서 팬들을 발견했다. 팬들은 나를 보면서 반갑게 손을 흔들다가 로드매니저의 목소리에 놀라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흠… 어쩌면 좋을까.’
지금이 기회긴 기회였다. 로드매니저를 나락으로 보낼 수 있는. 나는 죄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고개를 살짝 들고.
“꿀이라도 빨고 싶으면 입은 다무시죠.”
“뭐?”
“그따위로 말하는데 입이 아프지도 않아요?”
“야, 이 새끼가…….”
“그러게…….”
나는 고개를 들면서 슬픈 표정을 지었다.
“잘 좀 하지… 그랬어요.”
“…….”
“내가 싫은 티를 내면 알아서 잘하면 되잖아요?”
그러고는 로드매니저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며 AA 엔터로 들어갔다. 로드매니저는 잠잠하게 나를 따라왔다.
“오! 나비야!”
“안녕하세요, 선배님.”
“여기서 보니까 색다르네.”
“그러게요. 색다르네요.”
I.P가 작업실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로드매니저는 내 시선을 맞추기는커녕 꼴도 보기 싫다는 듯 말했다.
“저는 잠시 볼일이 있어서.”
“네, 가보세요.”
나는 들고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I.P에게 건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점심 안 드셨을 것 같아서 샌드위치도 사 왔어요.”
I.P는 ‘역시’라는 말을 하면서 엄지를 척 들었다. 나는 작업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분들에게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나눠줬다.
“나, 그거 봤다?”
“뭘…….”
“너, 밖에서 매니저한테 혼나던데?”
안에서 밖을 볼 수가 있었던가. 나를 보는 I.P의 눈빛에 사뭇 안타까움이 서렸다.
“아니에요. 혼난 거.”
“아니라고? 그렇게 안 보이던데. 욕설도 들리고.”
“욕설도 들렸어요?”
“아니야?”
“비슷하긴 했어요.”
“매니저가 그래도 돼?”
나는 최대한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잘못해서 혼난 거예요.”
“나비야, 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I.P의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주변에 있던 직원들은 우리 말이 들리는지 눈치를 살살 보았다.
“그냥 사소하게…….”
“그렇다고 아이돌을 밖에서 혼내? 안에서 혼내야지. 저분은 눈치가 없어?”
내가 아니라는 듯이 손을 휘젓다가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카페에서 팬을 만났거든요. 매니저님은 팔로 팬이 다가오는 걸 막았는데…….”
“막았는데?”
“제가 계속 팬이랑 대화를 했거든요.”
“설마 그거 때문에 혼난 거야?”
“그것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고…….”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I.P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실소를 터트렸다. 주변에 있던 직원들이 자리를 비웠다는 걸 알고서 I.P는 한 소리를 내뱉었다.
“팬이 무슨 칼을 들이댔어, 뭘 했어. 고작 그거 때문에 혼난 거야?”
“…그게.”
“이건 팬들도 화나겠다, 진짜.”
나는 테이블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올려두면서 I.P한테 물었다.
“저, 선배님.”
“응?”
“물어볼 게 있는데요.”
“뭔데?”
“이런 일로 매니저님을 해고시킬 수 있을까요?”
“뭐… 일이 커진다면?”
일이 커진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거겠지.
“…일이 안 커졌으면 좋겠네요.”
“왜?”
“팬들이 알면 마음 아프잖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매니저에게 욕설을 들으면서 혼났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그래도 팬들이 알면 일이 커져.”
“그런가요.”
“왜? 지금 팬들도 이 일을 알아?”
“그게… 우리를 본 네온들이 있어서 알 것 같아요. 엔터 앞에 카페도 있고.”
“이야… 그러네. 그 매니저, 간도 크다.”
간이 크니까 내 어깨를 붙잡으면서 그렇게 말했겠지.
“…선배님, 그럼 이제 일 시작할까요?”
“그래, 시작하자!”
* * *
언제나 사건의 시작은 빠르게 퍼지기 마련이다. 엔터 밖에서 나비와 로드매니저를 찍은 영상이 여기저기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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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하 시발 ㅋㅋ
이거 봄?
(엔터_앞에서_매니저와나비_너튜브)
미친 새끼라고 우리 나비한테 욕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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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건 좀;
-매니저 미쳤나
-아이돌한테 욕하는 매니저는 종종 봤는데 아무리 그래도 엔터 앞에서?
-저 영상 엔터에서 계속 내리고 있음
└ 진심?
└ ㅇㅇ
-나비야ㅠㅠㅠ 우리 나비가 뭘 했는데?
└ 나비가 어떤 팬이랑 카페에서 만났는데 매니저가 제지했거든? 그런데 나비가 팬이랑 계속 이야기해서 그랬다고 함 이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 그게 잘못임?
└ 저 팬이 후기 올렸는데 나비가 선물이라고 카페에 20만 원 긁고 갔다고 함. 이거 때문일 수도?
└ 헐ㅠㅠㅠㅠ
-저렇게 풀 죽은 나비 처음 봐…
└ 나도…
-팬덤 내에서도 말 많았는데; 이런데도 엔터는 이 매니저 계속 쓸 거임?
└ 팩스 총공 할래?
└ 팩스 총공은 하지 말자ㅠㅠ 회사 직원분들은 무슨 죄임
└ 하긴… 그렇긴 해
-ㅋㅋ 근데 저 매니저 아육대에서 나비 뒷덜미 잡은 건 왜 말 안 해?
└ 어?
└ ???
└ 그런 일이 있었음?
└ 다른 팬덤 영상에 나오긴 했는데 뒷덜미 꽉 잡더라
-(www.xmdnlxj.adwq1) 여기 들어가 봐
└ 헐
└ 하…
└ 나비ㅠㅠ
-아니 누가 범나비 성격 더럽다고 소문냈냐? 나라면 로드매니저 면상에 욕하고 기사 1면 뜬다
└ ㅇㅈ
└ 멤버들이 귀엽고 순둥하다고 했던 것만 떠오름
└ 순둥?ㅠㅠ 존나 맞는 말이지
└ #우리_나비_지켜
-어떤 아이돌이 자기 팬이 취직했다고 카페에 20만 원치 지르냐
└ ㅠㅠㅠㅠ
└ 그 팬 플라워 첫 팬 싸인회에 갔었는데 나비가 기억한다고 했대 심지어 이름도 알더라…
└ 우리 나비 진국이라고 마치 돼지국밥처럼
-나비 루머 퍼트리는 사람들 PDF 따놓길 잘했다ㅋㅋ
└ ㅇㅈ 나 돌연프 때부터 시작했음
└ 빨리 AA 엔터에서 고소한다는 말 나왔으면…
-어? 뭐야? 네스트 계정에 사과문 올라왔는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와 저걸 네스트 계정에 올림?
└ ㅋㅋㅋㅋㅋㅋ저걸 네스트 계정에? 이거 아니야ㅠㅠㅠㅠㅠㅠ
-로드매니저 해고했다네ㅋㅋ
└ 헐?
└ ㄹㅈ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