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131화 (131/235)

131. 로드매니저의 만행

로드매니저는 기분 상했다는 말투로 도리어 우리를 노려보았다.

“혹시 그 커뮤 글 때문에요?”

내 질문에 로드매니저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뭐 안 보면 그만인데.”

그럼 뭔데? 로드매니저가 갓길에 차를 세우면서 말했다.

“제가 멤버들 데려다줘야 하니까 차에 갔거든요? 근데 팬들이 항의하더라고요. 막 욕을 뱉으면서. 왜 초면에 욕을 하냐고 물으니까 왜 팬들 사진 찍어서 비웃었다고 그러던데요?”

팬들이 직접 항의를 했구나. 그러자 로드매니저가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입술을 비틀었다.

“아니라고 했는데 팬들이 도통 제 말은 안 듣잖아요. 억울해서 담배를 피울 수밖에.”

‘어쩌라는 거지’라는 마음이 더 컸다. 이건 당연히 팬들이 항의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혹여나 팬들한테 욕을 먹었어도 우리를 위해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 거잖아. 멤버들도 나랑 똑같은 생각인지 굳은 얼굴을 풀려고 애를 썼다.

그때 정요셉이 나서서 손을 휘저었다.

“에이, 형. 우리 팬들이 그럴 리가 있나요~”

“직접 못 봤잖아요. 진짜로 욕을 했다니까요?”

그럼 왜 욕을 먹을 짓을 했을까. 애초에 그런 행동을 안 했으면 욕을 먹지도 않았을 텐데.

“왜 욕을 먹었다고 생각하세요?”

화목현이 묻자 로드매니저가 나를 보았다.

“범나비 씨가 커뮤니티 글을 보여줬거든요?”

“커뮤니티 글이요?”

“제가 팬들 사진을 찍고 비웃었다는 듯한 글이었는데. 제가 그럴 리가 있어요?”

나는 가만히 앉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팬들이 올린 사진을 보면 매니저님 핸드폰 화면이 나와 있는 거 아세요?”

“핸드폰 화면이요?”

“네, 거기에 매니저님이 팬들을 찍고 있는 모습이 찍혔어요.”

그러자 로드매니저가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안 그랬어요! 설마 저 말고 팬들을 믿는 거 아니죠?”

당연히 팬들을 믿지.

“아니요. 저는 사진을 믿는 편인데.”

“허.”

“증거가 있는데 매니저님 편을 드는 건 이치에 안 맞아서요.”

그러자 화목현이 내 팔을 붙잡고 고개를 내저었다. 로드매니저가 도로에서 어떤 행동을 취할지 모르니 가만히 있으라는 듯이 말이다. 가까스로 정신을 잡고 매니저 편을 드는 것 같은 말을 던졌다.

“그래도 뭐… 믿어볼게요.”

믿어본다는 말에 로드매니저의 미간이 풀렸다.

“그렇죠? 사실 팬들 귀찮잖아요. 따라오는 사생도 많고.”

“…….”

“제가 전에 맡았던 여자 아이돌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남자 아이돌은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또 아니었네요, 하하.”

일하기 싫다는 걸 빙빙 돌려서 말한다.

“그래도 운전대 잡고 있는 사람한테 이런저런 말 시키지는 맙시다. 사고 칠 수도 있잖아요?”

…이 새끼, 대놓고 협박하네?

‘팀장님한테 연락 좀 해야겠는데.’

* * *

AA 엔터 회의실.

“얘들아, 혹시 그 일로 보자고 한 거야?”

“그 일도 있고, 최근에 로드매니저님 발언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왔어요.”

“로드매니저? 왜? 무슨 발언을 했는데?”

로드매니저와 헤어지고 나서 우리는 숙소에서 바로 회의를 했다. 로드매니저를 이대로 유지할지, 아니면 안 할지에 대해.

그런데 이건 우리끼리 말할 문제가 아니라 AA 엔터에 정식으로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사고를 내지는 않았으니 로드매니저를 당장 해고할 순 없어.”

“…해고할 명분이 없나요?”

“명분이 없지…….”

“팬들 사진 찍은 건요?”

“아니라고 하면 끝이야.”

…정말 해고할 명분이 없다고?

“명분이 없어도 교통사고를 낸다는 말은 하면 안 되잖아요.”

“…장난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어.”

하긴 장난이었다고 하면 할 말이 없긴 했다. 팀장님의 말에 건빵을 목에 욱여넣은 것처럼 답답했다.

“부당 해고로 우리가 고소당할 수도 있고. 너희들이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어.”

“…….”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보자. 어차피 하루만 더 참으면 되니까.”

하지만 나는 석연치가 않았다. 하루만 더 버티면, 그 뒤로는?

“팀장님, 그 후에 로드매니저님은 어떻게 되는데요?”

“…가끔 너희들 개인 스케줄이 있을 때 오지 않을까 싶은데.”

개인 스케줄이 있을 때 온다고? 이제 각자 개인 스케줄이 생기면서 김연호 혼자서 맡기는 어려운 단계에 올랐다.

“차라리 다른 매니저를 뽑는 게 낫지 않아요?”

“요새 매니저를 제대로 뽑을 수가 없거든. 인력난이야, 인력난.”

그러자 주이든이 어깨를 털며 투정을 부렸다.

“아… 진짜로 싫은데! 진짜 싫어!”

“이든아, 싫어도 할 수 없어. 맡을 사람이 없는데 어쩔 거야. 지금 당장 연호한테 차를 맡길 수도 없고.”

“…아, 정말 싫은데.”

“그래도 연호가 다시 오면 로드매니저랑 많이 만나게 되지는 않을 거야.”

팀장님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 커뮤 글도 로드매니저가 욕먹지, 너희들은 욕은 안 먹고 있다며.”

“…….”

“그럼 됐지. 너희들만 욕 안 먹으면 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괜찮을까.

“하루만 더 버텨, 하루만.”

“하루도 못 버티겠다면요?”

“…하루는 빨리 가.”

멤버들이 싫다는 듯이 입을 다물자 김연호는 한숨을 내쉬는 것처럼 말했다.

“얘들아, 어쩔 수가 없었어. 의사 선생님이 하루만 더 쉬라고 했거든.”

의사가 하루 더 쉬라고 했다면 어쩔 수 없네.

“하루만 더 버티자. 연호 형이 안 온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이정진의 말에 회의는 일단락이 되었다. 당장 로드매니저를 뽑으려고 해도 인원이 없고 하루만 참으면 김연호가 온다니까.

“자자! 아육대 이야기는 잘 들었다.”

팀장님이 아육대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가 넘어갔다. 화목현이 뿌듯하다는 듯이 멤버들을 보면서 칭찬했다.

“애들이 분량을 잘 챙겼어요.”

“그래, 그렇다고 하더라.”

팀장님이 테이블을 두드리면서 나한테 물었다.

“나비야, 계곡에서 뮤비를 찍겠다고 그랬지?”

“네, 아육대 분량을 챙기면요.”

“미리 카메라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카메라도 준비 중이에요.”

벌써 계곡에서 촬영할 카메라를 구해놨고, 계곡에 갈 준비도 해놨다.

‘어쩌나 빠른지.’

아육대가 끝나자마자 택배가 계속해서 숙소 현관문 앞에 쌓였다. 무슨 택배냐고 묻자 주이든이 말하기를, 계곡에서 쓸 튜브랑 물총을 샀다고.

“그래서 팀장님, 몇 박 며칠인데요?”

주이든이 설렌다는 표정으로 팀장님에게 말했다. 팀장님은 씩 웃으면서 검지를 펼쳤다.

“1박.”

1박? 그리고 팀장님이 중지를 펼쳤다.

“2일.”

정요셉이 입꼬리를 올리며 의자에서 힘차게 일어났다.

“헐! 1박 2일!”

1박 2일이면 팀장님이 정말로 많이 빼주셨다. 1박 2일이면 놀 건 다 놀 수 있는 시간이다.

“계곡에서 뮤비를 찍어야 해서 바쁘긴 하겠지만. 정진아, 러브 오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준비 끝났어요. 곧 곡 들려 드릴게요.”

이정진이 밤낮없이 준비한 덕에 이제 멤버들의 목소리만 담으면 된다. 가사는 멤버들이 적어서 이정진에게 전달했고.

“곡도 준비가 끝났고.”

팀장님은 신난 사람처럼 몸이 좌우로 흔들거렸다.

“아, 이걸 말하지 않았구나. 계곡 근처에 다른 방송사에서 촬영을 온다고 했거든?”

“그래요?”

“무슨 방송을 한다고 하긴 했는데. 우리랑 크게 상관은 없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최대한 잘 인사하고. 인맥도 중요하니까.”

점차 회의가 끝나가자 김연호가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나비야, 오늘 I.P 씨가 AA 엔터에 온다고 했거든?”

“그래요? 원래 제가 작업실에 가기로 하지 않았나요?”

내가 작업실로 가야 하는 줄 알았더니.

아육대가 끝나고 I.P한테 연락이 왔었다. 이번에 신인 작곡가에게 받은 ‘Bee’라는 곡이 좋다면서. 벌이 꽃을 따라간다는 내용의 노래라고 했다.

“지난번에 열애설이 터지는 바람에 미안해서 이번에는 우리 엔터로 오겠대.”

아, 열애설 때문에. 열애설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팀장님이 손에 깍지를 끼더니 턱에 가져다 댔다.

“열애설이 해프닝으로 끝나서 다행이야.”

“그렇죠…….”

“그날 요셉이가 같이 가서 해프닝으로 끝난 거 알지? 무슨 일 있으면 혼자서 나가지 말고, 꼭 멤버랑 같이 가고.”

“네…….”

“특히 신인은 열애설이 터지면 안 돼. 알지?”

그러더니 팀장님이 조용한 목소리로 우리한테 물었다.

“너희들, 연애는 안 하지?”

연애는 무슨. 예전에 정요셉이 나한테 말하길, 자신은 진지하게 자기 자신과 연애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런 놈도 있는데 무슨 연애를 한다고.

“다들 잘생기고 예뻐서 연애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야. 팬들이 배신감에 제일 치를 떠는 기사가 열애설 기사인 거 알지? 세상엔 연애 말고 재밌는 게 많아.”

팀장님이 이렇게나 말이 많은 건 처음인데. 연애가 무섭긴 하지. 아이돌 인생을 나락으로 만들기도 하니까.

“어디에 이런 팀장님도 없다? 내가 너희들 그렇게 꽉 잡고 있지는 않잖아. 신인인데 핸드폰도 쓸 수 있고. 마음껏 나가라고 하고.”

“그럼요~ 역시 팀장님입니다~”

“요셉이가 뭘 좀 알아.”

팀장님이 우리를 잘 풀어주긴 했다. 키오 시절에는 핸드폰도 금지, 패드도 금지, 컴퓨터도 금지였다. 모든 경로를 막아 열애설을 차단하려고 했으나 멤버들은 어떤 경로로든 연애하기 일쑤였다.

‘연애도 일종의 일탈이니. 원래 일탈이 제일 재밌는 법이니까.’

그런데 나는 그렇게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았다. 연애가 뭐라고 그렇게 굳이 만나려고 하는지. 차라리 내 커리어와 팬들이 더 좋았다. 팀장님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뭐, 너희들은 왜 이렇게 안심이 되는지 모르겠다.”

주이든은 손을 들어 물었다.

“팀장님, 저희도 연애 막 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도 잘 노는 주이든이라서 믿음이 가는 말은 아니었다. 팀장님은 그런 주이든의 귀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너희들, 회식도 싫어하잖아. 오죽하면 내가 너희들한테 회식 참여하라고 연락을 다 돌릴까.”

“…에이, 연애랑은 다르죠.”

“똑같아. 연애도 사회생활이거든?”

“우리가 집돌이라는 건가요?”

“아니야?”

“아니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이번 런엑스런 앨범을 88만 장 정도 팔았으니까. 거기다가 앨범이 품절되면서 다시 재생산에 돌입했다.

‘재생산을 축하하는 회식 자리였지.’

그런데 아무도 회식에 가지 않으려고 해서 팀장님이 고역을 겪긴 했다.

“나비는 살아남아라 회식도 안 가려고 그랬잖아.”

“…그땐.”

“설득한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죄송합니다.”

살아남아라 마지막 화 시청률은 5.5%로 이례적인 수치긴 했다.

“그나저나 너희들, 요즘은 뭐 해?”

“보드게임에 미쳐 있어요.”

딱 다섯 명이니까 보드게임을 하기 좋았다.

“밖에 나가서 뭐 해요.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걱정이 안 돼.”

외향적인 생활을 할 것 같은 정요셉도 주로 숙소에서 놀았다. 이제 나가서 노는 건 재미가 없다나. 오히려 집에서 멤버들과 노는 게 더 재밌다고.

“사고만 안 치면 되지.”

그러면서 팀장님은 나를 빤히 보았다. 왜 나를?

“그중 나비가 제일 걱정이 안 돼.”

“…감사합니다?”

“너는 인간을 돌처럼 봐.”

“…….”

“뭐, 나쁜 뜻은 아니고.”

그러면요? 내가 물으려는 찰나에 김연호가 끼어들었다.

“나비야, 혼자 있을 수 있겠어?”

“…뭘요?”

“나는 애들 숙소에 데려놓고 와야 하거든. 넌 그동안 로드매니저랑 있어야 해.”

아하, 그거야 뭐.

“저는 괜찮아요. 근데 형들은 숙소로 가겠네요.”

회의실이 조용하겠네. 그러자 이정진이 내 팔뚝을 두드렸다.

“막내야, 형들 가서 섭섭해?”

“그건 아닌데요……?”

“막내도 혼자서 잘 지내야지.”

“…네? 네.”

나는 그저 멤버들이 숙소로 가겠다고 말했을 뿐인데 이정진은 나를 어르고 달랬다. 달랠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정요셉이 씩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우리 막내는 우리가 없으면 안 돼서 그러는 거잖아~”

왜 이런 오해를 하는 거지?

“아닌데요.”

내가 반박하면 반박할수록 멤버들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 미소는 너무나도 음흉했고.

“그래, 그래.”

더군다나 이제 화목현까지.

“범나비, 잘 지내.”

“어차피 몇 시간 뒤에 만나는데요.”

“그래도.”

로드매니저랑 같이 있는다고 수고가 많다는 주이든의 마음이 읽혔다. 그러니까 저러는 거지.

“이제 해산하고. 얘들아, 계곡에서 잘 놀다 와.”

팀장님이 먼저 일어나 인사했다.

“네!”

멤버들은 활기차게 대답했고, 나는…….

“…예.”

반쯤 호흡을 섞어서 대답했다.

* * *

멤버들이 가고 나도 회의실에서 나왔다. AA 엔터 전용 작업실에서 가만히 I.P를 기다리는데 연락이 왔다.

(I.P 선배님) 나비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만 부탁할게! 정말 미안!

(나) 괜찮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기 위해 일단 엔터에서 나왔다. 밖에 나오니 로드매니저가 담배를 피우고는 꽁초를 바닥에 버리고 있었다.

혼자 카페 가고 싶었는데…….

“…어디 가세요?”

나는 대답 없이 꽁초를 들고 쓰레기통에 넣었다.

“I.P 선배님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부탁하셔서 카페에 가는 참이었어요.”

“…그거 저한테 말하죠.”

“작업실에 안 오시는 줄 알았거든요. 매니저님도 필요한 거 있으세요?”

“사주나요?”

“네.”

로드매니저도 사주는데 주말에 일하는 다른 직원분들도 사드릴까.

“오늘 직원 몇 명 계시는지 아세요?”

“…아니요?”

나는 그걸 알아야 하냐는 듯한 로드매니저의 말을 무참히 무시했다.

“…모를 수도 있죠.”

그리고 AA 엔터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 10잔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 나비야!”

그때 근처에서 나를 발견한 한 네온이 반갑게 달려왔다. 어디서 뵌 것 같았는데 팬 싸인회에 왔던 팬이 아닌가. 나도 반갑게 맞이하려고 할 때였다. 로드매니저가 팔로 네온을 막았다.

“안 돼요.”

“……?”

“밖인데 이렇게 달려오시면 큰일 나요.”

“…아, 죄송합니다.”

로드매니저는 팬을 훑어보면서 비웃었다.

“생각도 없이 달려오네.”

그 말에 나는 로드매니저를 노려보았다.

‘미친 새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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