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129화 (129/235)

129. 아육대 분량을 위하여(5)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행히 로드매니저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간 거지?

“매니저님은요?”

김밥을 먹던 화목현이 물을 마시고 대답했다.

“밖에서 밥 드시고 오신대.”

“밖에서요?”

“어.”

“왜 밖에서 먹는대요?”

“김밥은 별로래.”

거짓말하고 있네. 아까 화장실을 덮쳤어야 했는데… 주이든이 말려서 못 덮치긴 했지만.

“정진 형, 카메라 좀 봐도 될까요~?”

“내 카메라?”

“제가 잘 나왔는지 보고 싶어서~”

그러자 정요셉도 자신의 미모를 감상하고 싶다는 핑계를 대면서 내 옆에 앉았다. 이정진이 순순히 카메라를 주자 나는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로드매니저가 팬들 관객석을 카메라로 찍는 모습이.

“…있다.”

그런데 우리 팬들을 찍는 사진만 있을 뿐, 어떤 사진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너무 작게 나왔는데요.”

“아쉽다.”

사진을 확대해도 로드매니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이 사진은 쓸 수가 없었다. 그때 화목현이 내 허벅지 위에 김밥을 올려두었다.

“김밥 먹어야지. 아까 먹다가 나갔잖아.”

“…어, 안 먹어도 되는데.”

“그것만 먹고 체력이 될 것 같아?”

“네?”

“나비야, 요새 밥도 많이 안 먹고 그러던데.”

“저 잘 먹어요.”

“애들이 아니라고 하던데?”

그 말에 멤버들을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하나같이 내 시선을 피하며 각자 다른 일을 한다. 이 나쁜.

“안 먹을 거야?”

“아니요. 먹을게요.”

고집을 부려서 김밥을 안 먹으면 1시간 동안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일단 먹어야 했다.

“여러 번 씹고. 안 그러면 체한다?”

“네.”

가끔 보면 우리 엄마보다 더하다니까. 화목현은 만족스러운 답변을 들었다는 듯 웃고는 다시 김밥 먹기에 열중했다.

“막내가 밥을 안 먹긴 해.”

“정진 형, 제가요?”

“많이 안 먹잖아. 덩치에 비해서.”

“제가 언제요?”

“언제요? 언제요?!”

김밥을 먹던 주이든이 외쳤다.

“너 계속 울었을 때 말이야!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고 얼마나 그랬는지 알아?”

내가 아니었을 때였군. 그럼 입을 다물어야지. 그 자식은 팬들 보면서 울기도 하고, 멤버들을 보면서 투정도 부리고. 참 재밌게 놀다가 갔네…….

“그랬던 것 같기도 하네요.”

“같기도?”

“…그랬네요.”

그사이 김밥을 다 먹은 화목현이 말했다.

“그런데 나비, 요새 은근히 많이 웃어.”

내가 많이 웃는다고? 김밥을 입에 넣으면서 괜히 입꼬리를 한 번 문질렀다.

“아닐 텐데요.”

갑자기 정요셉은 내 말에 반박했다.

“우리 막내, 웃음이 많아졌어. 남들도 알걸~?”

“…제가요?”

웃음은 무슨. 정요셉이 내 볼을 콕 찌르면서 말했다.

“옛날엔 우리 막내가 웃으면 놀리기 바빴는데, 요즘은 자주 웃어서 놀릴 수도 없어. 너무 활짝 웃어서.”

“…활짝 웃어요?”

“몰랐어? 활짝 웃어.”

전혀 몰랐다. 영혼이 바뀌고 나서 멤버들에 대해 많은 걸 깨닫긴 했다. 멤버들이 없는 허무함, 공허함이 마음속에서 맴돌았으니까.

그리고 멤버들한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냥… 형들이 좋아서 웃은 거죠.”

그러자 순식간에 적막이 흘렸다. 뭐지? 마지막 남은 김밥을 입에 넣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멤버들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응?”

나는 눈을 크게 뜨면서 의문 섞인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정요셉이 자기 팔뚝을 문지르며 소름이 돋는다는 듯 주이든한테 물었다.

“우리 막내가 달라졌어. 이든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러니까……! 쟤가 이상해!”

주이든은 입에 머금고 있던 물을 바닥에 흘렸다. 나는 주변에 있던 휴지를 몇 장 뽑아 주이든한테 건네주었다.

“범나비… 몇 개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냥 형들을 만나서 달라진 거 같아요.”

그리고 멤버들과 떨어져 있으니 깨달은 바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한다는 점. 속에 담아둔 말을 못 하고 헤어지니까 답답했다.

그때 화목현이 입가에 묻은 양념을 휴지로 닦으면서 물었다.

“그런데 너희들, 뭘 봤길래 그렇게 허둥지둥 달려온 거야.”

“…아니, 목현 형! 내 말 잘 들어봐!”

“그래.”

드디어 주이든의 말문이 트였다.

“화장실에서 들었는데, 로드매니저가 우리 팬들 사진 찍고 농담 따먹기를 했다니까?”

“농담 따먹기를 했다고? 어떻게?”

“우리 팬들 못생겼다고 놀리는 것처럼 말했어.”

“…뭐?”

“심각하지 않아?”

“그건 좀 심각한데.”

화목현은 머리를 벽에 기대면서 침음을 흘렸다.

“…이든아, 증거는?”

“증거는 없지. 어쩌면 정진 형 카메라에 로드매니저가 찍혀 있을 것 같아서 확인해 봤는데.”

“없었구나.”

“그건 아닌데 잘 안 보이더라고! 이제 어떡하지?”

이정진이 가까이서 찍었으면 로드매니저의 핸드폰 화면을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가까이 찍으면 팬들 얼굴이 보일 것 같아서 되도록 멀리서 찍었거든.”

“정진아, 그건 잘했네.”

그렇다면 지금부터 찍으면 되는 거 아닌가. 나랑 똑같은 생각이었는지 이정진이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로드매니저를 찍을게. 이제 단체 미션 달리기랑 단체 농구만 남았잖아.”

“그것밖에 안 남긴 했어요.”

오후로 접어들면서 이제 단체전만 남아 있었다. 화목현은 최대한 입꼬리를 올리며 상체를 숙였다.

“얘들아, 우리가 로드매니저를 지켜보자.”

우리는 화목현의 말에 집중했다.

“우리가 증거를 찾아보자고. 로드매니저가 팬들 사진을 찍어서 조롱하고 다녔다는 말이 파다하게 퍼지면 우리가 욕을 먹는 건 물론이고 팬들도 불안할 거야.”

“상처도 받을 테고요.”

“그렇지.”

그리고 화목현은 말을 이어갔다.

“팬들도 관객석에서 사진을 찍잖아. 아니면 동영상을 찍거나. 모든 순간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있는데 설마 로드매니저가 하는 행동을 모르고 있을까?”

제발 누가 뭐라도 찍어놨으면 좋겠는데.

“증거가 있는데도 안 나가려고 하면 어떡하죠?”

로드매니저는 돈에 대해서 열등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우리가 팬들한테 돈을 쓰는 모습이 싫다고 계속해서 말했으니까.

“이 일로 해고를 당하면 부당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

그렇겠지. 이 일이 힘들지 않다고 했으니까. 어떻게든 계속 일하려고 할 것이다.

“어디서든 말이 나와야 한다고 봐요.”

팬들 사이에서 말이 나오면 어쩔 수 없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팬들의 항의가 더욱 거세질 수도 있고. 더군다나 며칠 뒤에는 김연호가 오니까.

“근데 로드매니저가 안 나갈 수도 있어.”

그때 가만히 있던 이정진이 입을 열었다.

“연호 형 일이 많아져서 로드매니저한테 계속 일을 주는 것 같던데.”

“맞아! 그런 것 같았어!”

“요새 일할 사람 찾기 힘들다고 연호 형이 계속 말했잖아. 그래서 로드매니저가 안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아.”

안 나갈 수도 있다… 만약 이 사건 이후에도 로드매니저가 안 나간다면 내가 직접 나가게 해야지. 저런 로드매니저는 별로다.

“로드매니저가 안 나간다면 팬들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싶네. 차라리 우리를 조롱했다면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되도록 팬들이 상처받지 않는 선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이제 슬슬 농구 준비하자, 요셉아.”

“네~ 요셉이는 이기고 오겠어요~”

정요셉은 기지개를 켜면서 씩 웃었다.

“내가 농구하는 모습을 보면 놀랄걸~”

자신만만한 정요셉의 모습을 보니 어떤 실력을 지녔을지 궁금했다. 쉬는 시간에 정요셉이 농구하는 모습을 보려고 했지만 절대 오지 말라고 했으니까. 멋있는 모습은 아육대에서 직접 봐야 우리한테서 좋은 리액션이 나온다고.

“자, 가볼까나.”

* * *

농구장의 열기는 한층 더 뜨거워져 있었다.

“정요셉! 정요셉! 정요셉!”

그 이유는 정요셉의 레이업 슛 때문에. 매번 연습이 끝나면 혼자서 농구장에 갈 정도로 정요셉은 농구를 좋아했다.

“정요셉 선수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MC 이서혁의 말처럼 정요셉은 모든 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정요셉을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금금이가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나비 형, 궁금한 게 있는데… 요셉 형 어디서 농구 특훈했어?”

“글쎄…….”

“…무슨 선수처럼 날아다녀!”

“나도 저런 모습은 처음 봐.”

정요셉은 무슨 농구의 신처럼 날아다니네. 옆으로 다가온 주이든이 금금이에게 설명했다.

“옛날에도 일이 잘 안 풀리면 혼자서 농구하러 가고 그랬거든.”

“오! 그래요?”

“그래서 잘하는 거 아닐까? 나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만!”

그제야 금금이도 이해가 간다면서 자기 팀을 응원하러 떠났다. 일단 우리에게는 이정진의 카메라가 우선이었다.

“정진 형, 어때요?”

“아직 핸드폰을 안 들고 있어서 못 찍었어.”

로드매니저가 핸드폰을 안 들고 있어서 아직 찍히지 않았다. 조금 아쉬운데.

“못 찍으면 어떡하지.”

“정진 형, 괜찮아요. 다른 방법도 많고.”

“그렇지?”

이정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카메라에 집중했다.

‘또 찍을 것 같은데.’

…원래 사람은 한번 한 나쁜 짓을 다시 하기 마련.

“정요셉 선수! 골을 넣습니다!”

정요셉은 아육대 농구 분량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잘하긴 잘한다.’

어차피 정요셉의 팀인 ‘에이스’가 우승 후보로 유력했다. 에이스는 정요셉이 연습생 시절부터 같이 농구했던 멤버들과 함께 만든 팀이라서 농구를 잘하는 아이돌들이 많이 소속되어 있었다.

정요셉은 중간중간에 카메라를 보면서 팬 서비스까지 했다. 상대방 팀은 속수무책으로 지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한 점이 남은 상황. 정요셉은 옆으로 돌아서 상대방을 따돌린 뒤에 공을 던졌다.

남은 시간은 5초.

정요셉의 손에서 떠난 공은 골대에 부딪히면서 돌더니 밑으로 빠졌다. 경기가 종료된 시점에 들어간 골. 심판은 신중하게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에이스의 승리!”

그러자 경기장을 울리는 환호성에 정요셉이 소리를 내질렀다.

“와아아아악!”

버저비터가 울렸다. 아육대 농구 4강전에서 정요셉이 승리했다. 일단 결승전 전에 쉬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정요셉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 물었다.

“정진 형, 찍었어?”

우리의 목적은 사진에 있었다.

“…어, 찍었어.”

이정진은 감정을 억누른 채 안경을 벗으며 우리한테 카메라를 건네주었다. 화목현은 조용히 카메라를 받고는 사진을 확인했다.

“…찍었네.”

“찍혔어요?”

로드매니저는 환호성 지르는 팬들을 찍고 있었다. 우리는 로드매니저가 낄낄 웃으며 사진 찍고 있는 모습을 찍었고.

‘증거도 확보했으니 이제 알려야겠지.’

화장실로 향하며 이걸 어떻게 알릴지 고민하는데 김연호의 톡이 왔다.

(김연호) 얘들아, 이 글 확인해 봐.

김연호가 보내준 링크를 클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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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네스트 매니저 뭐임?

네스트 팬들 사진 찍고 혼자서 낄낄거리는데

나만 이상하다고 생각하나?

(팬들_보면서_웃는_사진_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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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뭐지

-헐

-다른 영상 보니까 네스트 팬들 보면서 낄낄 웃네

-입모양으로 못생겼다고 하는 거 같은데?

-이 매니저 위즈 전 매니저 아님?

└ 진짜?

└ ㅇㅇ

└ 그때 위즈 교통사고 이 새끼가 냈잖아

└ ㅁㅊ

댓글까지 확인하고 고개를 드는데 화장실에서 나오는 로드매니저와 눈이 마주쳤다.

“…범나비 씨, 뭐 하세요?”

“아, 화장실 가려는데 복도에 벌레가 있어서.”

나는 벌레를 밟는 척하면서 웃었다.

“벌레 죽이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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