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아육대 분량을 위하여(4)
“장난입니다.”
나는 다시 허리를 숙이며 목을 긋는 시늉은 장난이었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활을 들어 신중하게 화살을 쐈다. 이번에는 10점을 노리고 싶어서.
“범나비 선수! 9점!”
아쉽다. 계속 9점만 맞히네.
“나비, 이기자!”
“막내야, 힘내!”
우렁찬 응원에 고개를 돌리자 언제 왔는지 화목현과 이정진도 합류해 있었다. 나랑 대결하는 다이아몬드 멤버는 이미 10점을 맞힌 상황.
‘…이거, 떨리네.’
떨려도 실수만 안 하면 돼. 손바닥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활시위가 내 손끝에서 떨어지고 화살이 과녁판에 꽂혔다.
“어.”
이거, 활의 방향이 좋았다. 정말로.
“범나비 선수! 10점을 맞히며 네스트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졌고 MC들은 흥분한 채로 나에게 똑똑히 말해주었다.
‘10점이라고.’
내가 활을 바닥에 놓자 뒤에서 멤버들이 나를 불렀다.
“범나비!”
“이겼어요!”
멤버들이 나에게 달려와 칭찬을 해주었다. 완벽한 승리로 돌아가자 그동안 다이아몬드한테 당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속이 뻥 뚫렸다. 다이아몬드는 2위 인터뷰도 하지 않은 채 활을 떨어트리며 팬들의 위로에도 반응하지 않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자, 이제 어떻게 되려나.’
다이아몬드는.
* * *
박랜서는 예감했다. 이번 아육대로 인해 커뮤니티가 시끄러울 것이라고. 그래서 네스트가 쉬는 틈을 타서 커뮤니티를 확인했는데,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서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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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ㅋㅋ 역시 망하는 이유가 다 있다니까?
아니 인성질이 뭔 지랄임?
김밥에 돌이 들어가 있질 않나
팬들이 부르는데 오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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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몬드 ㅅㅂ
└ 왜 돌멩이몬드?
└ 이번에 다이아몬드가 역조공한 김밥에 돌이 들어가 있었거든 ㅎㅎ
└ 근데 다른 아이돌 역조공은 난리 났던데 좋아서…
└ 그래서 더 빡쳐 ㅋ
-진짜 이번에 다이아몬드 탈덕함;;ㅋㅋ
└ 왜왜? 무슨 일 있었어?
└ 이번에 아육대에서 팬들한테 잘해주는 아이돌 보면서 현타 세게 왔거든? 그런데 다이아몬드는 계속 주변 아이돌들이랑 친목질만 함 ㅋㅋ 팬들이 아무리 불러도 안 옴
└ 거짓말 ㄴㄴ
└ 그래 쉴드 치고 싶으면 쳐… 진짜니까;
-비교하면 안 되는데 네스트랑 크래프트 역조공 좋다고 난리 남ㅠ
└ 미친?
└ 얼마나 좋길래?
└ 네스트는 아침 죽, 점심 소고기, 저녁은 모르겠다…
└ 헐 크래프트는?
└ 크래프트는 한정식집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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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 인성 레전드
활을 거기다가 쏨?ㅋㅋ
네스트는 왜 안 쏘냐?
다이아몬드 인성 알게 되니까
탈덕 마렵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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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덕할 거면 다이아몬드 카테고리 오지 좀 말지;
└ ㄹㅇ; 탈덕은 조용히 모름?
└ 유난스럽게 탈덕하고 또 입덕할지 누가 앎ㅋㅋ
-이야 다이아몬드 이 정도로 난리 났는데 아직도 팬이 있음?
└ 팬은 당연히 있지 ㅋㅋㅋ 뇌가 없거든
-팩트 : 다이아몬드 돌연프 때 네스트 존나 건드렸잖아
└ 222
└ ㅋㅋㅋㅋㅇㅈ
└ 이번에는 안 건드리고 가만히 있더라
└ HOR 엔터가 네스트 이기고 싶어서 바득바득거리는 거 ㄹㅈㄷ
└ 그러면 뭐 해 다이아몬드 못생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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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 첫 별명 생겼네
돌멩이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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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무슨 일이길래; 게시물에 죄다 다이아몬드 글밖에 없어;
└ 커뮤니티 글 확인해 봐 팬 아니라도 화딱지 날걸?
└ 아 ㅈㅅ 방금 확인하고 옴; 이윤도 개불쌍하다
-그만 좀 써
└ 그만 좀 써~ ㅇㅈㄹ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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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이제부터 네스트 욕하는 사람들 죽여
ㅈㄱ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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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ㅂ개극단적ㅋㅋㅋㅋㅋㅋ
-;;
-뭘 죽이기까지;;
-이 글 쓴 사람 크래프트 팬임……?
└ ㅇㅇㅋㅋㅋㅋㅋㅋ
└ 아… ㅇ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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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사죄합니다
크크와 네온이 싸웠던 나날들
우리의 최대 적인 돌멩이몬드가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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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
-ㄱㅇㄱ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뭘 사죄함?
└ 네스트랑 크래프트 팬들 맨날 싸웠음
└ 아아; 난 또 뭐 나온 줄
-왜 이러는 거야? 네스트 카테고리로 이런 글 좀 쓰지 마 네스트 욕먹이고 싶어?
└ 설명하면 긴데 아육대에서 다이아몬드 멤버가 크래프트 멤버한테 화살 쏴서 손목 부상당함. 그런데 다음 결승전에 네스트가 올라와서 거의 개처바름
└ 오 설명 ㄱㅅ 우리 애들 개멋있네 ㅠㅠ 그래도 이런 글은 쓰지 말자
└ ㅇㅋㅇ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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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근데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는데
맨날 글에서 처맞은 사람은 나비 아님?
이제 와서 구구절절 사과한다고 한들
과거가 사라지나…
맨날 팼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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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ㅇㅋㅋㅋㅋㅋ
-그냥 우리 애들 좋게 봐줬으면 그만인데 뇌절 개심해
-그래도 이런 글로 초 치지 말자ㅠㅠ 이러고 말겠지 뭐
└ 그래도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잖아?
└ 나중에 네스트가 걸고넘어지면 쟤들은 또 욕함
-네스트로 힐링해 얘들아 귀여워 죽어
└ ㅇㅈ 아육대 영상 귀엽다
-글쓴아 글 삭제하지 말고 놔둬 그만하겠지
└ 22
└ 나는 속이 시원함 우리 넽들 욕할 땐 언제고 존나 웃겨ㅎㅎ
└ 맨날 처맞는 포지션 누구? 우리 ㅋㅋ
-나비 사격도 잘한다 ㅁㅊ
└ 어? 진짜?
└ 영상 보고 오셈 진짜 잘함
└ 나비야 철저하게 준비했구나 우리 막내 장하다
“네온들!”
나비의 목소리에 박랜서는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었다. 나비가 정진이랑 둘이서 팬들이 있는 관객석에 왔다. 둘은 손가락을 꼬물거리더니 검지와 중지를 내밀었다.
“…아쉽게도 2등 했어요.”
나비가 그렇게 말하자,
“최선을 다했는데 2등 했습니다.”
정진이도 말을 이었다. 그러자 나비와 정진이는 서로의 눈을 보더니 외쳤다.
“죄송합니다.”
공손하게 배에 양손을 올린 채로 깊숙하게 허리를 숙이자 네온들이 외쳤다.
“아~ 괜찮은데~”
괜찮다는 네온의 반응에 나비가 되물었다.
“진짜요?”
“응!”
“정진 형, 네온들이 괜찮다는데요?”
정진도 네온들의 반응에 한시름 놓았는지 미소를 지었다.
“우리도 왔어요~”
뒤이어 다른 멤버들도 도착하자 목현이가 네온들의 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온의 카드 목걸이 상태를 확인하는 듯이.
“곧 점심 먹을 시간이잖아요?”
벌써 점심시간이라고? 시간을 확인하자 오후 1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네온들, 카드 목걸이 잘 챙겼죠?”
“응!”
“카드 목걸이 잃어버리면 안 돼요! 그러면 소고기 못 먹습니다.”
카드 목걸이가 없으면 소고기집에 못 들어가니까. 하나하나 챙겨주는 멤버들의 말에 박랜서는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갔다.
“자, 맛있게 먹고 오후에 뵙겠습니다.”
손목의 팔찌와 카드 목걸이를 확인하고 박랜서는 소고기집으로 향했다. 친한 팬은 없으나 같은 테이블에 앉으면 친구가 아니겠는가.
가게에는 네온들이 벌써 자리를 점령하고 있었다. 가게 밖으로 직원이 나와서 박랜서에게 물었다.
“혼자 오셨어요?”
“네!”
조금 눈치가 보이려고 하는 와중, 직원이 미소를 지었다.
“혼자 오신 분들은 테이블을 혼자서 써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았는데, 테이블 위에 메뉴판과 폴라로이드 카드, 편지가 있었다.
《네온!
소고기는 잘 먹고 있나요?
포카 예절을 위해서
폴라로이드 카드를!
그럼 맛있게 드세요!
ps. 돈 걱정하지 말고 드세요.》
어쩐지 이상하게 곳곳에서 네온들의 곡소리가 들린다 싶었다.
‘미친…….’
언제 또 이런 걸 준비했어. 사소한 배려에 감동한 박랜서는 혼자서 육회를 뚝딱 해치웠다. 당연히 네스트가 준 포카 예절을 빼놓지 않고.
‘이런 아이돌이 있긴 해?’
콩깍지를 아무리 벗어 던지고 싶어도 소고기가 너무 맛있었다. 혀에서 사르르 녹는 소고기를 사줬는데 콩깍지가 씔 수밖에.
“맛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박랜서는 행복한 고민에 휩싸였다.
* * *
사격을 2등밖에 못 하다니. 김밥을 입에 넣으면서 자책하고 있는데 화목현이 입을 열었다.
“로드매니저님 어디에 갔는지 아는 사람?”
“난 모르는데~”
“그래? 김밥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화목현이 로드매니저가 준비해 놓은 김밥을 꺼내면서 로드매니저를 찾았다. 하지만 어디로 갔는지 로드매니저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찾으러 가볼게요.”
“아니야. 내가 갈게.”
“목현 형은 여기에 있어요. 찾는 건 막내가 해야죠.”
혼자 가려고 했으나 예감이 좋지 않다면서 정요셉과 주이든이 따라붙었다. 아육대 대기실 복도를 돌아다녀도 로드매니저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우리 그냥 대기실로 가면 안 돼? 갑자기 귀찮아졌어.”
주이든은 재미없다며 대기실로 가자고 말했다.
“화장실까지 찾아보고 없으면 대기실로 가죠.”
내 의견에 정요셉과 주이든도 동의했다. 그래서 화장실로 갔는데,
“아, 그러니까. 팬들이 뭐라고 그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니까?”
로드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하는 건가?’
손을 씻으면서 전화를 하는 건지 물이 떨어지는 소리도 났다.
“아니, 소고기집을 팬들이 아니라 로드매니저가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분명 우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였다.
“아, 나한테도 가라고 하긴 했거든? 그런데 눈치가 있지. 나만 혼자 어떻게 가냐? 그건 봤어?”
뭘 보라고 했을까. 나는 정요셉, 주이든과 눈을 맞추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팬들 얼굴.”
…팬들이라면 우리 팬들을 말하는 건가?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서 상체를 깊이 숙였다. 그러자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는지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네스트 팬들?”
“어.”
“네가 지난번에 사진으로 보여줬잖아. 못생기긴 했더라.”
“그 못생긴 얼굴 매일 본다고 생각해 봐. 걔들은 뭐가 좋다고 맨날 팬들을 만나자고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힘들겠네.”
나는 듣다가 헛숨을 뱉었다.
“야, 잠깐만. 누가 오는 것 같은데.”
로드매니저가 화장실을 둘러보자 우리는 벽 쪽으로 몸을 숨겼다. 아무도 없다고 느꼈는지 로드매니저는 웃기 시작했다.
“어, 그래. 야, 이제 가봐야 한다. 끊어.”
끊는다는 말에 주이든은 황급히 나와 정요셉의 손목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더니 다른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곳이 하필 크래프트 대기실이었다.
“…안녕하세요?”
크래프트 멤버들은 밥을 먹은 후였는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왜 오셨어요?”
이남주의 질문에 무슨 대답을 할까 생각하다가 이윤도와 눈이 마주쳤다.
“그, 윤도 씨 손목은 괜찮은지 궁금해서요.”
“그래요?”
이윤도가 나에게 접근했다.
“저 손목 괜찮습니다!”
정말로 손목은 괜찮아 보이네. 나는 눈치껏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아, 너무 걱정이 돼서 급하게 오느라 노크도 없이 들어왔네요. 죄송합니다.”
주이든과 정요셉도 죄송하다고 말했다.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홍학의 말에 나는 거센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평소 행동을 보면 혼낼 것 같았던 홍학이 이렇게 다정하게 괜찮다고 하다니.
‘아, 사격 우리가 이겼지.’
그래서 저런 고분고분한 태도였군. 홍학이 손을 휘저었다.
“우리의 원수를 갚아준 거니까.”
“오~ 학이, 우리가 이겨서 봐주는 거야? 꼰대 짓 안 하네.”
정요셉이 홍학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갸륵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 좀 짓지 마. 기분 더럽다니까?”
“나는 학이 기분이 더러웠으면 좋겠어.”
“…이 자식이.”
둘은 또 어떻게 친해졌대? 그건 그렇고, 이남주는 왜 내 앞에 있어.
“남주 형, 무슨 할 말이라도?”
“고마워요.”
“뭐, 우리도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그러자 이윤도가 말했다.
“남주 형이 정말 화나 있었거든요.”
“그래요?”
“결승전 끝나고 다이아몬드가 괜찮냐면서 비웃고 지나갔거든요. 그래서 더 화가 났죠.”
지금도 이남주의 표정은 왠지 사나웠다. 언제라도 팔뚝을 물어뜯을 기세였다.
“윤도를 위해서 싸워주셨잖아요. 감사해요.”
“아니라니까.”
“멋있어요. 윤도를 위해서 싸워주시고.”
…얜 항상 이렇다니까. 이남주의 페이스에 넘어가기 전에 대기실로 가야 했다.
“범나비, 이제 가자.”
“가야죠.”
주이든은 빨리 가보자는 듯이 내 소매를 잡고 늘어졌다. 하긴 화장실에서 로드매니저가 했던 말을 다른 멤버한테도 전해줘야 하니까.
나는 홍학과 대화를 나누는 정요셉을 불렀다.
“요셉 형, 우리 가봐야죠.”
“아~ 우리 막내 말은 잘 들어야지.”
그렇게 간다는 인사를 남기고 우리는 대기실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주이든이 조용히 말했다.
“…우리 팬들 사진 찍은 거지?”
“네, 우리 팬들 사진 찍고 조롱한 거죠.”
“이거 어떡하지? 로드매니저가 그런 짓을 한 거면…….”
“죽여야죠.”
그러자 주이든과 정요셉이 내 어깨를 잡았다.
“우리 막내는 진짜 죽일 것 같아서 안 돼~”
어쨌든 어디에선가 팬들을 찍었을 것이다. 팬들이 그걸 몰랐을 리가 없다.
‘그 사진이 퍼지는 건 한순간이지…….’
하지만 팬들이 알면 상처를 받을 텐데. 정요셉과 주이든도 이걸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팬들 상처받으면 어떡해?”
“그러니까~ 우리 팬들 상처받으면 안 되는데.”
차라리 우리가 증거를 잡고 쫓아내는 방식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잠깐만… 정진 형이 정요셉 농구하는 거 사진 찍는다고 하지 않았어?”
“어, 맞아! 그랬어!”
그러고 보니 이정진은 정요셉이 농구하는 모습을 찍고 싶다며 카메라를 가져왔다. 그래서 방금 전 대기실에서 멤버들끼리 사진도 찍고 그랬는데.
“어쩌면 로드매니저가 팬들을 찍고 있는 모습을 찍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정요셉의 말에 우리는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대기실을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