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아육대 분량을 위하여(3)
귀가 찢어질 것처럼 네온들은 소리를 질렀다. 나비는 한 번 더 활시위를 잡아당기며 화살을 쐈다.
“이번에는 9점입니다!”
흥분의 도가니 속에 나비가 있었다. 뒤에 앉은 요셉과 이든은 무슨 일인지 입을 쩍 벌리며 얼어붙었다.
“이금금 선수! 활시위를 당기는데요!”
“안타깝습니다! 9점!”
나비는 차분한 표정으로 활시위를 당기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한 번 더 10점이 나올 수 있는 상황. 네온과 MC들은 조용히 나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범나비 선수! 마지막 활시위를 당겼습니다!”
나비의 손가락이 활시위를 떠났고, 그 순간.
“…카메라가.”
“망가졌네요.”
MC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처음으로 카메라 정중앙에 나비이 쏜 화살이 박혔다.
“정말로 카메라가 망가졌습니까?”
카메라 스태프가 카메라가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자 그제야 팬들은 소리를 지를 수 있었다. 범나비! 나비야! 각종 감탄이 이어졌다.
“범나비 선수, 양궁장에서 활시위를 당긴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게요. 저도 궁금해서 범나비 선수한테 물어보고 싶네요.”
뒤에 앉은 요셉과 이든이 달려가 나비를 끌어안았다. 요셉과 이든이 나비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으며 잘했다는 축하를 하자 나비가 활짝 웃었다.
‘나비가 웃는다…….’
활짝 미소를 지으며 형들 사이에서 웃는 나비는 누가 봐도 막내나 다름이 없었다. 목현이가 화보 인터뷰에서 나비를 이렇게 말했었지.
[Q, 범나비는 동생처럼 느껴지나요? 아니면 형처럼 느껴지나요?]
[화목현 : (웃음)나비는 언제는 형처럼 느껴지고, 언제는 동생처럼 느껴져요. 생활의 연륜이 있어서 가끔 형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나비가 멤버들과 있으면 막내 같아요.]
목현의 화보 인터뷰처럼 형들의 품에 들어간 나비는 그야말로 ‘막내’였다. 기세는 이미 네스트 쪽으로 몰렸다. 요셉이는 활시위를 처음 잡아보는 것처럼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요셉 선수는 양궁을 처음 한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이라고요?”
그러자 MC 이서혁이 나서서 말했다.
“제가 요셉이랑 친분이 조금 있어서 물어봤거든요. 얼마 전 양궁을 배웠고 감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이게 재능이라는 건가요?”
하지만 요셉이는 마지막에 실수를 했다. 요셉이는 짧게 혀를 내밀며 꾸벅꾸벅 허리를 숙였다. 이든이랑 나비가 괜찮다는 듯이 격려를 해주었고. 그렇다면 이제 남은 멤버는 이든이뿐이다.
“주이든 선수는 양궁을 실제로 배웠다죠?”
MC석에 앉아 있던 이서혁이 옆에 앉은 양궁 선수에게 물어보았다.
“네, 주이든 선수는 하루도 빼지 않고 꼬박꼬박 양궁장에 와서 양궁을 배우고 갔습니다.”
“실력은 어떤가요?”
“초반에는 실력이 안 좋았는데요.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와, 기대해도 되겠네요.”
이제 이든이가 잘해야 네스트가 이길 수 있었다.
‘…제발 이든이가 잘해줘야 할 텐데.’
박랜서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을까. MC 이서혁은 눈이 커진 채로 소리쳤다.
“네! 주이든 선수 텐! 10점을 기록합니다!”
이든이가 10점을 쐈다. 당연히 키오는 10점도 맞히지 못했다. 그것도 텐텐텐. 이로써 네스트가 이겼다. 박랜서는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벅차오르는 마음을 억눌렀다.
‘우리 네스트가 짱이야.’
네온들의 축하에 요셉이와 이든이, 그리고 나비가 팬석으로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 * *
키오 시절에 아육대를 위해서 양궁을 배웠었다. 아육대에서는 양궁이 인기 코너였기에 어쩔 수 없이 배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직도 할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역시 뭐든지 배워놓으면 도움이 되는 건가. 다음 대결자를 기다리면서 경기를 곱씹어보고 있을 때였다.
“나비 형!”
“어, 금금아.”
“형, 어디서 양궁 배웠어요? 진짜 잘하던데.”
금금이 호들갑을 떨면서 내 팔을 때렸다. 이거 앙심을 품고 있는 힘껏 때린 것 같은데. 덕분에 맞은 부위가 욱신거렸다.
“금금아, 아파.”
“아파요? 얄미워서 때리는 거니까 참아요.”
일부러 그런 게 맞았군.
“…그래, 알았으니까. 그만 때려.”
그러더니 한 번 더 때리고 금금이는 휭하니 가버렸다. 애써 표정을 가다듬으며 아픈 팔뚝을 문지르자 주이든이 나를 불렀다.
“범나비!”
주이든은 다가오더니 나를 꽉 끌어안았다.
“이 자식!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정말 잘하네!”
“…예?”
“너 이 자식, 옆에서 보기만 할 줄 알았더니 몰래 연습했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언젠간 양궁도 필요할 날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몰래 연마했어요.”
아이돌은 만능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미친 자식. 언제 몰래 연마한 거야?”
“사격 끝나고 양궁 배우러 종종 혼자 갔어요.”
“그렇다면 이 느낌 그대로 올라가 보자.”
정요셉은 물을 마시면서 흥분을 억눌렀다.
“정요셉! 너는 어때?”
“…실수 하나 하니까 멘탈이 나가 버릴 것 같았어~”
양궁장에서 정요셉이 제일 못 쏘긴 했으니까. 멘탈이 나갈 수밖에 없지.
“제가 더욱 열심히 할게요.”
“우리 막내가 다 해준다고?”
“…형이 힘들면 제가 해야죠.”
그러자 정요셉이 내 머리를 흩트렸다.
“고맙다.”
“그럼 머리에 손 좀 치워주시죠……?”
“그래, 그래.”
아니, 내 말은 아예 듣지도 않잖아. 정요셉과 투닥거리면서 싸우고 있는 도중에 비명이 들렸다. 곧장 고개를 돌려 비명의 정체를 확인했다. 보아하니 다이아몬드 멤버가 화살을 잘못 쏘는 바람에 앞으로 가서 화살을 받아 오던 크래프트 이윤도가 다칠 뻔했나 보다. 그런데,
“…아.”
이윤도가 화살을 피하다가 넘어지면서 손목을 바닥에 부딪혔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윤도야……!”
크래프트 멤버들이 이윤도에게 달려가면서 손목을 확인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이아몬드는 죄송하다면서 연신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로!”
다이아몬드 멤버들은 실수했다면서 크래프트한테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했지만,
‘…이상한데.’
그 상황에서 활시위를 왜 당긴 거지. 아무리 실수였다고 해도. 이윤도가 괜찮다는 듯이 다이아몬드 멤버들한테 말하는 모습에 우리도 일어났다.
“손목은 괜찮아요?”
“…나비 형! 괜찮은데.”
그래도 이윤도는 씩씩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활은 당기면 안 된대요.”
활시위를 당기면 손목이 안 좋아질 수도 있는 상황이란 말이네.
“그럼 시합은?”
“못 하죠.”
이남주가 말해주었다.
“그럼 우리가 다이아몬드랑 붙겠네요.”
“당신, 이겨요.”
이남주가 고고하게 으름장을 놓았다.
“알겠죠?”
“…뭐, 그럴게요.”
부탁한다는 뜻으로 내 어깨를 두드린 이남주는 이윤도와 밖으로 빠져나갔다. 내가 멤버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자 주이든이 물었다.
“이남주가 뭐래?”
“크래프트는 양궁 대회 못 나간대요.”
“그래? 그럼 우리가…….”
“다이아몬드랑 붙겠죠.”
주이든이 짜증 난다는 듯이 진절머리를 쳤다. 나는 주이든의 옆자리에 앉으면서 이남주의 표정을 떠올렸다.
‘이남주가 그렇게 화난 표정은 처음 봤지…….’
그렇게 일그러진 표정은 처음 보았다. 이건 말해주는 게 낫겠지.
“남주 형이 우리보고 이기래요. 지면 죽인다고.”
사실 뒷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러자 정요셉과 주이든은 몸을 떨며 스태프가 준비한 담요로 몸을 감쌌다.
“갑자기 왜 오한이 들지!”
“누군가 우리한테 저주를~?”
더군다나 원래 우리랑 대결할 계획이었던 그룹이 씨름을 하다가 다치는 바람에 얼떨결에 부전승으로 결승전에 올라가 버린 상황. 그래서 다이아몬드와 대결을 하게 되었다.
“네스트와 다이아몬드는 몸을 풀어주세요.”
MC 이서혁의 목소리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었다. 몸을 푸는데 주이든이 조용히 말했다.
“저 녀석들, 우리를 보면서 웃는데? 이거 기분 나쁜데?”
“어디서요?”
“저기 봐봐.”
주이든의 말처럼 무슨 생각인 건지 다이아몬드가 주이든을 보면서 비웃었다. 그래서인지 주이든은 승부욕이 들끓는 듯했다.
“왜 우리를 비웃지?”
“우리 이든이가 가소로워서?”
“뭐?!”
주이든은 주먹을 꽉 쥐었다.
“우리가 이기자……!”
“당연하지! 우리가 이기자~!”
결의를 다지는 주이든과 정요셉의 모습은 보기가 좋았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제가 활을 쏠게요.”
“…우리 막내, 사고는 치지 말자.”
나는 아육대에서 준비 운동을 할 때 쓰라고 놔뒀던 장난감 활을 들고 쐈다. 그러자 정확히 한 다이아몬드 멤버의 엉덩이에 장난감 화살이 꽂혔다.
‘어라.’
그러자 사고 치지 말라고 했던 정요셉이 제일 크게 웃었다. 그래도 엉덩이에 화살을 쏜 건 좀 실례인가.
“…뭐야, 이 화살은?”
그만 우스운 꼴이 되어버린 다이아몬드 멤버들은 나를 노려보았다.
“죄송합니다. 어깨 운동을 하다가 그만.”
“…빨리 빼!”
“정말 빼요?”
빼라고 했으니까. 나는 다이아몬드 멤버의 엉덩이에 꽂힌 장난감 화살을 뽑았다. 근데 그만, 뽁! 소리가 관객석을 집어삼켰다.
“푸핫!”
내 뒤를 따라온 주이든의 웃음소리였다.
“이이…….”
“빼라고 해서 뺐을 뿐인데. 화를 내신다면.”
장난감 화살을 회수하고 뒤를 돌자 정요셉과 주이든이 못 참겠다는 듯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웃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웃었을 뿐.
이제 양궁 대회 결승전에 돌입하는지 이서혁이 옆으로 오더니 마이크를 대고 외쳤다.
“이제 아이돌스타 선수권 대회 양궁 결승전에 돌입합니다.”
이제 시작이다.
“순서는 어떻게 할래?”
주이든의 질문에 내가 먼저 말했다.
“저는 세 번째로 할게요.”
“그래, 나는 두 번째.”
이렇게 결승전은 첫 번째 선수 주이든, 두 번째 선수 정요셉, 마무리는 내가 하기로 했다. 다이아몬드는 계속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이기자고 소리를 내질렀다. 얼마나 소리를 지르는지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어차피 아육대에서는 이런 소리가 담기지 않는다. 장면만 편집돼서 나올 것 같은데…….
‘뭐, 우리 그룹도 아니고.’
주이든이 앞으로 나가서 활시위를 만지며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주이든 선수! 9점! 안타깝습니다.”
“다이아몬드 제도전 선수! 10점입니다! 텐!”
우리는 다이아몬드를 이겨야만 했다. 지금까지 당한 게 워낙 많아서.
“아… 아쉬워.”
주이든이 쏜 세 발은 총 27점으로 끝났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도 28점이라서 아쉬운 상황은 아니었다. 고작 다이아몬드는 1점 앞선 상황. 여기서 정요셉이 잘해준다면…….
“얘들아, 걱정하지 마. 이 형님이 다녀올게.”
걱정과 다르게 정요셉이 떨지 않고 화살을 쐈다. 자세는 엉망이지만 잘 쏜단 말이지. 가까스로 화살이 꽂힌 부분은 9점에 가까웠다. 조금만 더 앞으로 갔으면 10점이었을 텐데. 정요셉이 안타깝다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이런… 네스트와 다이아몬드가 동점이 된 상황이네요? 누가 이길지 예상하시나요?”
이서혁의 말을 듣고 나는 카메라에 대고서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가리켰다. 어그로를 끌어야지. 그러자 이 모습을 본 양궁 선수가 말했다.
“범나비 선수가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데요?”
“확실하게 이겨주겠다는 포부 같네요.”
나는 활을 들고 네온들을 향해 흔들었다. 네온들과 크래프트의 팬들인 크크들도 나서서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모두들 우리가 이겨주길 바라는 상황 속에서 다이아몬드가 열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실수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아!”
그때, 다이아몬드가 정말로 실수를 했다. 화살은 저 멀리로 날아가 다이아몬드 현수막에 꽂혔다.
‘저런.’
곧바로 나는 침착하게 활을 들어 신중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손끝이 활시위를 놓자 빠른 속도로 화살이 9점에 꽂혔다.
“범나비 선수, 한 치의 양보도 없는 9점! 이러면 다이아몬드가 질 확률이 높아지겠는데요?”
“앞서 다이아몬드 멤버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네스트가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화살이 남았을 때, 옆에서 이서혁이 나에게 마이크를 들이댔다.
“범나비 선수, 현재 이기고 있는 상황인데 지금 다이아몬드 멤버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나요?”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으로 목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