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아육대 분량을 위하여(2)
아육대 수영 대회. 경기는 벌써 결승전에 돌입했다. 아이돌의 숫자가 현저하게 적었기 때문에.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몸을 보여주는 모습이 꺼려지긴 할 테니까.
“추석 특집 아육대! 벌써부터 뜨거운 응원이 귀를 울리고 있는데요!”
살아남아라에서 뵈었던 디아 선배님이 MC의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디아 선배님이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 동안 우리는 화목현의 곁에 다가가 컨디션을 물었다.
“목현 형, 새벽인데 몸은 괜찮아요?”
걱정스러운 내 물음에 화목현은 답했다.
“수영은 원래 새벽에 하는 거지.”
“괜찮다는 말이죠?”
“당연하지.”
그건 그렇지만.
“출발대 뒤에 서주세요!”
MC의 말에 화목현은 몸에 두른 대형 비치 타월을 내려두고 출발대 뒤에 섰다. 그리고 디딤대로 올라가라는 신호에 맞춰 올라가 자세를 취했다.
“레디.”
화목현은 허리를 숙이며 탕, 소리에 맞춰 물에 들어갔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화목현은 초접전을 벌였다.
그리고 한 바퀴를 돌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화목현을 따라잡는 아이돌은 없었다. 화목현의 속도감은 그야말로 절벽에서 내려오는 물처럼 빨랐다. 그 움직임을 보고 있다가 눈을 감았다 뜨자 이미 화목현이 손을 뻗어 벽을 짚고 있었다. 그리고 디아 선배님이 외쳤다.
“네스트의 화목현 선수! 수영 개인전 1등!”
화목현이 수영모과 수경을 벗으면서 소리를 지르자 우리도 함성을 질렀다. 허용할 수 없는 짜릿함이 발끝에서부터 피어올랐다.
자연스럽게 화목현은 위로 올라왔다. 정요셉이 대형 비치 타월을 가지고 뛰어가자 우리도 따라서 화목현한테 달려갔다.
“목현 형!”
“얘들아!”
우리가 서로를 안으면서 승리의 도취감에 빠져 있을 때였다. 디아 선배님이 마이크를 화목현한테 가져다 대며 물었다.
“네스트의 화목현 선수?”
“네, 안녕하세요.”
“원래 그렇게 수영을 잘했습니까?”
“아니요. 그냥 취미로 수영을 배우고 있습니다.”
“배우고 있다니. 그래서 1등을 할 수 있었던 거군요. 아무튼 수영 개인전 1등, 축하드립니다.”
이로써 아육대 수영 대회는 끝이 났다. 이제 아육대 그룹별 자기소개가 있을 예정이라서 우리는 빠르게 아육대 체육복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
아육대 체육복 복장으로 갈아입고서 체육관으로 돌아가는데 주이든이 화목현을 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형, 진짜 잘하더라!”
“그냥 평소처럼 했을 뿐인데.”
“…와, 진짜 재수 없게 말한다.”
“이든아.”
“진짜 재수 없긴 했어! 말투가!”
아직도 주이든은 수영 뽕이 빠지지 않는지 주먹을 들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에 화목현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크래프트 입장할게요.”
데뷔한 순서대로 체육관에 입장했다. 방송국에서 만들어준 깃발을 흔들며 네스트는 크래프트 옆에 섰다. 이남주와 이윤도를 발견하고 살짝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데… 잠깐, 이서혁이 왜 여기에 있어?
“어, 서혁 형? 왜 여기 있어요?”
정요셉도 이서혁을 봤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이서혁이 우리를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MC로 왔다, 인마.”
아육대에 일하러 왔군. 그러고 보니까 박정후도 있었네.
“이제 선서를 부탁합니다.”
오랜만에 보는 위영 선배님과 디아 선배님이 단상 위로 올라가 아이돌 대표로 선서를 했다. 먼저 디아 선배님이 말했다.
“아이돌스타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는 우리 선수 일동은 다치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열심히 협동하여 임하겠습니다.”
다음은 위영 선배님.
“아이돌스타 선수권 대회에 찾아온 팬들을 위해서 열심히 하는 자세를 보이겠습니다!”
쏟아지는 환호와 박수가 경기장을 울렸다. 이번에는 아육대의 메인 MC인 이서혁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럼 추석 특집 아이돌스타 선수권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갑자기 문 쪽에서 꽹과리 소리가 나더니 우리나라 전통 민요가 울렸다. 아이돌들은 전통 민요에 몸을 맡기면서 춤을 췄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네온이 있는 자리를 찾았다.
‘네온 자리가 어디지?’
자세히 보니 대기실에 들어가는 문 위에 네온의 좌석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넽집사 금메달 따 와 안 그럼 네온은 없어!》
현수막이 있었다. 바로 내 옆에 있는 주이든한테 이 소식을 알렸다.
“이든 형, 저기 현수막.”
“…오! 귀엽다!”
주이든의 목소리에 멤버들도 우리가 보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 현수막이네.”
화목현의 말에 우리는 네온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스태프가 와서 개인 달리기부터 한다고 말을 해주었다.
“우리 달리기 안 하니까 팬들한테 가자.”
“아싸!”
화목현이 네온들한테 가자고 하자 정요셉은 신나게 뛰면서 네온이 있는 곳에 가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 네온이 소리쳤다.
“목현아! 1등 축하해!”
아, 1등 한 게 나왔었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해요.”
화목현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네온들이 환호를 질렀다.
“목현 형 1등 한 거 모니터에 나왔어요?”
내 질문에 네온들이 모니터 화면에 나왔다고 말해주었다. 옆에서 정요셉이 손가락으로 죽을 가리켰다.
“우리 넹들, 우리가 준 죽은 먹었어요~?”
“어! 당연하지!”
“죽은 배가 빨리 꺼지니까 디저트도 먹기~ 약속~”
정요셉의 말에 네온들이 새끼손가락을 흔들었다. 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플라워 무대를 보여주는 그때였다. 허겁지겁 로드매니저가 우리를 부르더니 갑자기 내 뒷덜미를 꽉 잡았다.
“어.”
‘왜 내 뒷덜미를?’
나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로드매니저를 쳐다보았다. 이 광경을 목격한 네온들이 소리를 질렀다.
‘팬들이 걱정하겠는데.’
나는 눈치껏 미소를 지으면서 장난치지 말라는 듯이 로드매니저의 손을 쳤다.
“매니저 형~ 무슨 일이에요?”
정요셉이 최대한 사건 사고 없이 넘어가려는 듯이 로드매니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할 말이 있어서요.”
할 말이 있어서? 우리는 로드매니저의 뒤를 따라서 네스트 대기실로 향했다.
‘무슨 할 말이 있어서.’
당황한 얼굴로 내 뒷덜미를 잡았을까. 안 좋은 이야기라면 사양하고 싶은데. 내 뒤에 있던 이정진이 구겨진 내 옷을 펴주었다.
“형, 고마워요.”
“목은 괜찮아?”
“네.”
무슨 말이 있어서 뒷덜미를 잡은 거야.
“로드매니저님, 무슨 일인데요?”
“아, 양궁 개인전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팀전으로 바꾼다고 하더라고요.”
갑자기 양궁을 팀전으로 바꾼다고?
‘이상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방송이 시작하기 전에 이런 식으로 통보를 한다고?
로드매니저의 이마에 올라온 땀을 보면서 나는 다시 물었다.
“왜요? 방송국에서 이런 식으로 통보하지는 않을 텐데.”
“…아, 그게.”
로드매니저가 대답을 망설인다.
“제가 깜빡하고 조금 전에 봤거든요.”
“…예?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주이든의 큰 눈이 더 커졌다.
“그… 김연호 매니저가 말해줬는데 제가 하도 뒤치다꺼리를 많이 하니까 까먹은 것 같아요. 방금 전 톡을 확인하다가 생각이 나서.”
…뒤치다꺼리라. 카드 목걸이부터 시작해서 종이 가방까지 다 우리가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준비했는데. 자기가 한 건 상자를 옮겨준 것밖에 없다.
“미안하다, 얘들아. 나한테도 연락이 왔는데 못 봤어.”
화목현이 사과하자 로드매니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목현이도 못 봤다고 하니까.”
“아무리 그래도 지금 말하는 건 아니잖아요.”
“…네, 뭐. 아침에 일어나서 운전하니까 얼마나 힘들던지…….”
로드매니저의 얼굴은 표독스러웠다. 저러다가 독이 바짝 오른 복어가 될 것 같았다.
“제가 연호 형한테 듣기로는 로드매니저 일을 제외하고 다른 일이 있으면 월급에서 올려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 그걸 어ᄄᅠᇂ게.”
“제가 연호 형한테 물어봤거든요. 저희가 고집해서 하는 일인데 일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서요.”
“…….”
“저희가 로드매니저님한테 상자 나르게 한 건 죄송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일과 별개로 아육대 일정은 저희한테 바로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핸드폰을 잃어버리지 않는 이상 이해가 안 되는 일인데요.”
이번 아육대가 얼마나 중요한데. 깜빡할 게 따로 있지. 로드매니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정말 실수였어요, 실수.”
로드매니저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실수라고 말했다. 인정할 부분은 인정해야지. 벽과 대화하는 기분이라 나는 고개를 돌리고 고민에 빠졌다. 이걸 어쩐다.
‘…내가 양궁에 나간다고 할까.’
주이든을 따라서 양궁을 배우긴 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양궁 다음이 사격이라서 피로함이 몇 배로 몰려올 것이라는 점이었다.
‘크래프트한테 지긴 싫은데.’
그러자 화목현이 상황을 정리했다.
“얘들아, 이럴 때가 아니지. 누가 양궁에 나갈지 정하자. 나는 못 나가. 아예 하는 방법을 몰라서.”
화목현은 수영에 집중하는 바람에 다른 종목은 배우지 않았다.
아무도 나간다는 말이 없자 정요셉이 다시 물었다.
“이든이 따라서 양궁장에 가본 사람?”
나랑 정요셉밖에 없었다. 사격 연습이 없는 날에는 정요셉이 나를 끌고 주이든을 따라 양궁장에 몇 번 놀러 갔었으니까.
“나랑 나비뿐?”
“그럼 요셉이랑 나비가 양궁 팀전에 나가야겠다.”
“어, 내가?”
드물게 정요셉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양궁을 어떻게 하는지 직접 봤을 테니까.”
“…그건 그렇지만.”
“부탁한다… 요셉아, 나비야.”
화목현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면서 간절하게 부탁했다.
“나는 양궁장 따라가긴 했지만 정말 못했는데~”
“요셉이가 좋아하는 게임기 사줄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의 자랑스러운 목현 형.”
나가라고 한다면 나가면 된다.
“나비야.”
“…네, 형?”
“잘할 수 있지?”
“…예? 예.”
“믿는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육대 4년을 했으니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그 전에 저 로드매니저를 어떻게든 떨어트려야 하는데. 일단은 양궁을 끝내고 오자.
지금은 아육대 분량이 우선이니까.
***
박랜서가 쿠키를 먹고 있는 와중 양궁이 시작되었다. 그룹 특색에 맞게 양궁 복장으로 갈아입은 아이돌들을 보면서 웃고 있던 박랜서는,
“다음은 키오와 네스트죠?”
다음 시합을 알려주는 MC 이서혁의 말에 쿠키를 바닥에 떨굴 뻔했다. 위풍당당하게 활을 들고 나타나는 네스트 멤버들을 보면서 박랜서는 목소리가 나갈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이건 네온의 자존심이 달려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나비가 나간 것을 아쉬워하는 키오 팬들이 있었다. 최근에 이금금이 눈치도 없이 키오 연습생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나비가 리더 롤이었다는 말을 해버린 탓이었다.
그러면서 키오 팬들이 난리를 친 것.
‘…아, 다시 머리가 아파오네.’
돌연프 내내 HI 엔터에서 나간 나비를 배신자라고 낙인찍었으면서. 그래서 나비에게는 배신자라는 꼬리표가 있었다. 이걸로 몇 날 며칠을 싸웠는지 모른다.
양궁에 출전한 나비의 상대는 이금금이었다.
“형은 저한테 안 돼요.”
이금금의 농담에 나비는 웃었다. 그러고는,
“너야말로.”
나비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활을 들었다.
“먼저 범나비 선수가 나오네요. 그런데 양궁장에서 범나비 선수의 실력은 어땠나요?”
“…글쎄요? 가끔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은 보였는데, 별다른 활약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드디어 나비가 활시위를 당겼다. 그 모습에 박랜서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범나비 선수, 활시위를 당겼습니다!”
“…양궁장에서 본 모습과 다릅니다. 폼은 정말 좋네요!”
폼이 좋다는 말에 박랜서가 고개 숙인 채로 기도하고 있을 때였다.
“텐!”
“텐입니다! 텐!”
그 소리에 맞춰 박랜서가 환호성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