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아육대 분량을 위하여(1)
갑자기 스파이라고? 엔터에 놀러 온 게 스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흠.’
왠지 홍학은 내가 FG 엔터에 왔다는 것 자체가 싫은 것 같았다. 나를 보자마자 홍학의 얼굴이 굳었으니까.
‘그럴 수는 있는데.’
스파이라는 단어를 들을 정도로 내가 나쁜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조금 억울했다. 연습실 바닥에 널브러진 앨범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이윤도가 홍학의 옆자리에 서서 말렸다.
“…학 형, 스파이라니! 실례야!”
“곧 아육대잖아. 우리가 무슨 종목에 참가할지 알아보려고 온 거 아니야?”
“그건 알아볼 필요가 없잖아!”
“왜 알아볼 필요가 없어?”
“어차피 알아도 우리가 잘하면 끝이야!”
“아.”
“실례야, 형!”
이윤도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홍학을 쏘아보았다. 그제야 홍학은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는지 기침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이윤도, 리더가 그럴 수도 있지. 왜 노려봐.”
“노려볼 수밖에 없잖아요. 저분은 남주 형이랑 친해서 온 거예요. 아무 뜻도 없어요!”
“나도 아무 뜻 없어. 그냥 찔러본 거야.”
“그게 더 실례야!”
실례라고 말하자 홍학이 은근슬쩍 나를 보았다. 뭘 봐?
“너 무슨 종목으로 나가냐.”
홍학의 질문에 나는 눈을 껌뻑였다.
“말에 어폐가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런가?”
아까는 나보고 종목을 알아보러 온 스파이라고 말했으면서 자기는 나한테 종목을 왜 물어보는 건지.
“어차피 내일 되면 알게 되니까 말하지?”
“뭐, 사격이요.”
“사격?”
그러자 이윤도가 활짝 웃었다.
“저도 나가요! 학 형이랑.”
홍학이랑 이윤도가 사격에 나간다고?
“그럼 사격에서 보겠네요.”
홍학은 팔짱을 낀 채로 물었다.
“누가 이길 것 같아?”
“그건 모르죠.”
“우리가 이기면 선배님이라고 부르기.”
…저런 사람을 꼰대라고 부르지 않나.
“왜요?”
“몇 개월이지만 우리가 먼저 데뷔했잖아. 그러니까 선배님이라고 불러야지.”
“…아, 고작 그런 이유?”
나를 스파이라고 몰지 않나, 선배님이라고 부르라고 하지 않나. 홍학은 종잡을 수 없는 놈이었다.
“제가 사격에서 이기면요?”
“내가 먼저 인사할게.”
“고작 인사로?”
“그럼?”
“똑같이 선배라고 불러요.”
나는 잃을 게 없는 싸움이니까. 어차피 정말 선배라서 선배라고 부르면 그만이고. 먼저 인사하는 게 뭐가 어렵나.
홍학은 이상함을 느끼지도 않은 듯했다.
“그래, 그러지.”
그리고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면 이제 여기에 더 이상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가져온 가방을 들고 말했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이윤도는 아쉽다는 듯이 나한테 손바닥을 흔들었다.
“…또 봐요!”
그러고는 이남주도 따라가겠다면서 내 뒤를 따랐다.
“미안해요. 학 형이 원래 저런 형은 아니에요.”
“그럴 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로 직접 들으니까 조금 어이없긴 하네요.”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서.”
“…흠?”
이남주 입에서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 나오다니. 하긴 정말 나쁜 사람이라면 저렇게 말하진 않겠지. 그냥 말에 거침이 없는 사람 정도겠군.
FG 엔터에서 나와서 숙소로 갈 택시를 기다리다가 이남주한테 물었다.
“제가 사격으로 이겨도 괜찮아요?”
“네?”
“못 들었어요? 사격으로 이겨도 되는지 물어보는 건데.”
이남주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그래도 크래프트가 이기는 게 좋으니까.”
“아하.”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건가.
나도 팔짱을 낀 채 이남주를 노려보았다. 이남주의 활짝 올라간 입꼬리를 보면서 나는 다짐했다. 사격에서는 꼭 이기겠노라고.
“우리 막내도 사격은 잘해서.”
“이윤도가?”
걔가 사격을 잘한다고? 나는 앞에 도착한 택시에 올라타면서 미소를 지었다.
“네, 그건 싸워봐야 아는 거니까요. 그럼 그때 보죠.”
택시 안에서 나는 핸드폰을 꺼내 이정진한테 연락을 했다. 죽어도 크래프트한테 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범나비) 형, 새벽부터 훈련 가죠.
(이정진) 어?
(범나비) 안 되겠어요. 특훈입니다.
(이정진) 막내야?
(주이든) 정진 형 무시당함 ㅋㅋㅋ
(화목현) 둘이 싸웠어?
(정요셉) 싸운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당한 거야 저건 o(`・∀・´)○
“…사격은 꼭 1등 한다.”
이정진은 영문도 모른 채 사격을 연마할 수밖에 없게 됐지만.
* * *
이번 아육대에는 박랜서가 출동했다. 간절한 마음을 모아 아육대 방청을 신청했더니 덜컥 당첨되어 버렸다.
“졸려… 미치겠네.”
휴가 가는 셈 치고 2박 3일 동안 호텔을 잡아둔 뒤 새벽에 일어나 삼산체육관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그러자 박랜서와 비슷하게 꾸벅꾸벅 졸면서 계단을 올라가는 팬들이 보였다. 그들을 따라가자 먼저 온 팬들이 있었다.
[네온(neon)]
바닥에 ‘네온’이라고 적힌 곳에 앉아서 박랜서는 내부로 들어가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너무나도 지칠 뿐이었다.
“하아…….”
박랜서는 하품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서 네스트 현수막을 든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넽집사 금메달 따 와 안 그럼 네온은 없어!》
‘다시 봐도 귀엽네.’
곧 체육관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박랜서는 마음이 들떴다.
“어, 다른 팬덤들 체육관 들어간다.”
주변 네온의 말에 박랜서는 고개를 돌렸다. 체육관으로 들어가는 다른 팬덤을 보면서 박랜서는 가방에 손을 넣었다.
체육관에 들어가기 전에 네스트 팬 인증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집에서 가져온 음반과 음원 결제 내역, 음악 방송 방청 증거를 제시해야 팬 인증을 받을 수 있었다.
“심심하다.”
아직 체육관에 들어갈 수 있는 기미가 보이지 않아 노래를 들으려는 찰나였다. 익숙한 차가 다가오더니 누군가 내렸다.
“안녕하세요!”
…눈앞에 네스트가 나타났다. 지금 무슨 상황인 거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박랜서는 물론이거니와 주변 네온들도 난리가 났다.
“자자, 우리 네온들 진정하고.”
요셉이 네온들을 진정시키며 질서를 지키라고 엄숙하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차에서 나비가 방석을 가져왔다.
“이거 받으세요.”
이번에는 목현이가 나비한테 방석을 받고는 네온들한테 나눠주고 있었다. 헐, 방석을?
“와아아아아악!”
“최고!”
네온의 함성에 멤버들이 웃었다. 박랜서는 앞에서 뒤로 넘어가는 방석을 받으며 눈을 껌뻑였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 드신 네온 있어요?”
나비가 차분한 톤으로 물었다.
“아직!”
“먹고 왔어!”
아침을 먹고 왔다는 네온과 아직 안 먹었다는 네온을 보면서 나비가 말했다.
“아침을 안 먹고 온 네온을 위해서 저희가 아침을 준비했거든요, 죽으로?”
그 말에 박랜서의 머리는 고장이 났다.
‘이건 예상도 못 했는데.’
몇 번이나 역조공 받는 상상을 했지만, 이렇게 아침부터 받을 줄은 몰랐으니까. 멤버들이 주는 죽을 받고 박랜서는 또 한 번 놀랐다.
‘죽이 따뜻해.’
아침에 준비해서 가져왔구나. 네스트의 철저함을 여기서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네온들, 아육대 점심시간에 네온들은 식당에 갈 거거든요?”
식당? 요셉이가 이든을 보면서 물었다.
“이든 씨. 어떤 식당에 갈 거죠?”
“바로 제가 직접 고른 소고기집으로 갈 겁니다.”
“왜 소고기로 골랐죠?”
“우리 네온들을 위해서!”
네온들은 무슨 상황인지 아직 파악이 되지 않아 박수는커녕 입만 벌리고 있었다.
“우리 때문에 적게 먹거나 그러면 안 돼요. 많이 먹어도 되니까, 걱정 없이 드세요!”
소고기라니? 박랜서는 실소가 터질 지경이었다. 돈이 어디에 있다고 소고기를 사준다는 말인가. 아육대 팬들 인원이 적어도 100명인데…….
이든이가 바닥에 둔 종이 가방을 들며 설명했다.
“우리가 주는 종이 가방 안에 소고기집 주소랑 저희가 준비한 카드 목걸이가 있거든요? 카드 목걸이를 소고기집에 가서 보여주면 네스트 팬인 거 확인할 거예요.”
이든이의 목소리와 다르게 박랜서의 심장은 요동쳤다. 이게 꿈인 것만 같아서. 옆에서 목현이가 하나 빼먹은 게 있다며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도.”
뭐가 또 나오냐. 박랜서는 멤버들의 손에서 뭔가가 나오면 이젠 무서웠다. 종이 가방에서 나온 것은 카페 이용권이었다.
“여기에 오만 원씩 들어가 있으니까 마시고 싶은 거 마시면 돼요.”
미친… 얼마나 준비한 거야? 이번에는 정진이가 종이 가방에서 포토 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포토 카드도 있어요.”
포토 카드라는 말에 팬들은 눈을 껌뻑였다. 멤버들이 하나씩 나눠주는 종이 가방을 확인하자 포토 카드는 총 다섯 개가 들어 있었다.
‘…미쳤구나.’
아직 신인인데 이렇게 많이 준비를 해주다니? 하지만 박랜서는 걱정과는 다르게 손은 야무지게 종이 가방을 확인하고 있었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박랜서는 기분이 좋았다. 거기다가 작은 비닐봉지엔 초콜릿과 사탕, 그리고 쿠키가 들어가 있었다.
“네온들, 다들 확인했나요?”
“네!”
네온의 활기찬 대답에 나비가 슬쩍 말했다.
“네온들, 우리의 목표가 있어요.”
“뭔데!”
“네온들한테는 좋은 소식일 거예요.”
무슨 좋은 소식일까.
“아육대에서 분량을 많이 뽑으면 저희가 휴가로 계곡에 간답니다.”
“와! 휴가!”
“거기서 하나의 이벤트가 진행될 예정인데…….”
나비가 멤버들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네스트 신곡이 하나 나올 거예요.”
“와아아아아아악!”
네온들은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박랜서도 ‘신곡’이라는 단어가 귀에 꽂히자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으니까.
“그 곡은 우리 정진 형이 만들었어요!”
이든이가 정진의 등을 밀어서 정진이 억지로 앞으로 나왔다. 정진은 조용히 어필했다.
“네온들, 신곡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당연하지!”
신곡이 나온다는 스포까지 해주다니. 박랜서는 아육대에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앞에서 한 네온이 질문을 던졌다.
“아육대 종목은 뭔데?”
이든이가 대답했다.
“우리 목현 형, 수영해요!”
“미친!”
한 네온의 욕설에 멤버들은 하늘이 떠나가라 웃었다. 네온이 죄송하다고 말하자 목현이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
“우리 목현 형 몸이 좋긴 하죠~?”
“요셉아…….”
“근데 수영은 경기장에 우리만 들어갈 수 있어서, 나중에 TV로 확인해 주기~? 약속!”
네온들이 약속한다고 대답하자 요셉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목현의 몸매가 탄탄하다는 멤버들의 말은 라방에서 익히 들어왔다. 그런데 드디어 볼 수 있다니.
“진짜 마지막으로… 저녁은 간단하게 돈까스로 준비했거든요. 근데 배부르면 다른 메뉴를 먹어도 괜찮으니까 맛있게 드세요. 그럼 저희는 아육대 준비하러 가겠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해요!”
목현의 인사로 아육대 역조공은 마무리가 되었다. 네스트가 떠나가자 네온들은 오열했다.
“진짜… 방송국 거지인가…….”
다른 네온들도 똑같이 생각했는지 식사나 방석은 방송국에서 줘야지 뭐 하는 짓이냐는 말을 했다. 맞는 말이다. 방송국에서 식사를 준비해 주면 좋기는 하겠지만.
‘…사실 아육대는 역조공 때문에 가는 거지.’
아육대는 내 아이돌의 역조공을 위해 가는 거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박랜서는 그렇다고 이렇게 많은 조공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인지 약간 꿈인 것처럼 기분이 붕 떴다. 더군다나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마다 네스트 칭찬이 일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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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역조공 최강자다
아침 죽
점심 소고기
저녁 돈까스 혹은 다른 메뉴
지금 포토 카드 다섯 개 받았고요
거기다가 카페 오만 원권까지 받음
이게 무슨 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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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 네온 방청객 몇 명이지?
└ 100명
└ ㅁㅊ
-방석도 준비했잖아
└ 아 맞다 방석도
└ 와씨
└ 넹들 플래카드만 만들어서 역으로 미안하다고 외치는 중ㅋㅋㅋㅋ
-그게 문제가 아님
└ 그럼?
└ 화목현 수영한다고 함
└ ? ㅁㅊ
└ ??? 목현아 미쳤니?
└ 그 몸매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수영하는 거야 ㅡㅡ
└ 역삼각형 몸매 보여주겠네…
-목현아 뭘 벗으려고 그러는 거야; 지금 당장 옷 벗지 마; 아니야 벗어; 아니야 그냥 수영하지 말자 아니 어딜 그런 난폭한 몸을 보여주려고 그래; 나한테만 보여줘;
└ 인격이 몇 개임;
└ 한 100개인 듯ㅋㅋ
-왜? 화목현 몸매 좋음? 왜 그렇게 놀라는 거야
└ 신입 넹임?
└ ㅇㅇ
└ 개좋음 ㅎ
└ 아ㅎ ㅇㅋ
└ 화목현 몸매라고 치면 나올 거야 한번 보셈
└ 시발 진짜네 고자극임
-네스트 역대급 아님?
└ 아직까지는 역대급임
└ 다이아몬드는 난리 났던대 역조공 쿠키랑 김밥이라서ㅋㅋ
└ 네스트 글임 다른 그룹 이야기 ㄴㄴ
-아니 네스트 이제 정산받았다고 그랬잖아ㅠㅠ
└ 그니까…
└ 신인인데
└ 돈 없으면 또 벌면 된다고 해주는 센스까지 ㅅㅂㅠㅠㅠ
네온들은 종이 가방에서 카드 목걸이를 꺼내 멤버들이 준비한 포토 카드를 넣기 바빴다. 역시 이런 건 자랑스럽게 보여줘야지.
“입장하겠습니다.”
곧 스태프들은 손목에 거는 입장 팔찌를 나눠주었다.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는 동안 벌써 수영이 시작됐는지 중앙 TV에 수영 출전표가 떴다.
그때였다.
“와아아아악!”
갑자기 소란스러운 관중석의 반응. 박랜서는 시선을 돌려 중앙 TV를 보자마자 놀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