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울보 범나비
그렇게 영혼이 바뀌는 동안에 울보 범나비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행히 울기만 했을 뿐, 다른 일을 저지르고 가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멤버들의 행보가 악마 그 자체였다.
“우리 울보 막내 오셨어?”
일단 정요셉은 나만 보면 울보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나를 놀리기 바빴고.
“야! 정요셉! 우리 울보 울리지 마!”
주이든도 나를 위해주는 척하면서 놀리기 바빴다.
“형들, 다…….”
“왜? 또 눈물이 나?”
“요셉 형!”
나는 멤버들을 피해서 구석으로 가서 커뮤니티를 확인했다. 내가 울었다는 정보는 알게 되었지만 어떤 상황에서 울었는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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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실시간 범나비 오열 중
나비 울어서 베개에 눈물 자국 보이는데
요셉이한테 운 거 아니라고 말했나 봄
그걸 실시간으로 네온들한테 보여줌ㅋㅋㅋ
나비가 진짜 안 울었다고 댓글도 달았거든?
(나비가_진짜_안 울었다고_올린 댓글_jpg)
이랬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셉이가 ‘그래 안 울었다고?’ 하면서 흐느끼는 영상 올림
와 요셉아 너무한 거 아니야?
더 해봐 재밌다
(나비_베개_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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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진짜 요셉아 왜 그래
└ 지금 웃고 있지? 손 내려봐
└ 어떻게 알았어 요셉아 재밌다 더 하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들 한마음 한뜻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왜 울어?’ 하니까 ‘눈물이 안 멈춰요’라고 했던 나비 레전드
└ 범 : 범나비
나 : 나비야
비 : 울어
-나비 수도꼭지 계속 열고 있자 막내답고 귀여웠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ㄹㅇ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귀여웠음
└ 진짜 팬들 걱정은커녕 더 울라는 팬도 있었음
-그래도 런엑스런 활동 때 나비 많이 웃지 않았어?
└ ㄹㅇ 많이 웃음
└ 프리뷰 보면 거의 웃고 있던데 네온들한테 먼저 말도 걸고 신났음 완전 막내 호랑이ㅠ
└ 말은 계속 걸긴 했음ㅋㅋㅋㅋ
└ 이번에 울보 아이돌로 영상 퍼져서 팬 많아짐
-이번에 런엑스런 스타일링 정비공 복장으로 했는데 잘 어울리더라ㅠㅠㅠㅠ
└ 모나미룩보다 배로 좋음 ㅅㅂ
└ 정장 한번 입어달라고 했는데 이번 주에 입어주겠지? 막방이잖아
그 자식은 즐기고 있었다. 울고, 웃고, 팬들과 소통하고.
-나비가 인화 사진 천 장에 싸인한다고 힘들었다고 하지 않았어?
└ ㅇㅇ 근데 오히려 좋았대
└ 완전 행복했다는데?
└ 고작 싸인 하나로 자기가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 말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나비야ㅋㅋㅋㅋㅋㅋㅋㅋ
-멤버들 나비 우니까 신기해서 쳐다보는 거 개웃김
└ 멤버들 : 왜 이래?
└ 주이든 어디 아프냐고 묻는 거 ㅋㅋㅋㅋㅋ
└ 런엑스런 첫방 하고 요셉이 개인 라방 했는데 거기서 나비가 막 울더래
└ 울었다고?
└ 그래서 왜 그러냐니까 그냥 울고 싶어서 우는 거라고 흐느끼는데 요셉이 그 앞에서 크게 웃었대
└ ㅋㅋㅋㅋㅅㅂㅋㅋㅋㅋ
그래서 아까 내 옆에서 우는 시늉을 하면서 놀렸던 거군.
-초동 88만 장으로 끝남ㅠㅠㅠㅠㅠ
└ ㅠㅠㅠㅠㅠㅠㅠㅠㅠ
└ 진짜 눈물 난다
└ 제발 1위 들자 제발
-계속 1위 놓쳤지?
└ ㅇㅇ
└ ㅠㅠㅠㅠㅠ
└ 계속 2위만 함ㅠㅠㅠㅠ
-차트도 좋지 않아? 2위잖아
└ 좋은 추세임 ㄹㅇ
└ 제발 이번에 1위 하자
└ 1위 못 하면ㅡㅡ
내가 없는 사이에도 1위는 못 했네…….
‘이건 좀 아쉽다.’
그래도 런엑스런이 ‘고속도로에서 들으면 좋은 노래’로 라디오 방송을 타면서 차트 순위가 오른 것 같았다.
“…흠.”
나는 커뮤니티를 더 살펴보면서 혹시나 내가 사고를 치지는 않았는지 확인해 봤으나,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상황을 다 확인하고 핸드폰을 내려놓자 화목현이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나비야,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안 아파요.”
“이상하다. 계속 어딘가 아픈 줄 알고 병원에 가자고 말하려고 했거든.”
“안 가도 돼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화목현이 이상하리만큼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으니까. 더군다나.
“막내야, 이거 밥.”
“아까 밥 먹었는데요?”
“그래도 먹어. 사람이 배가 고프면 자꾸 눈물이 나고 감정 기복이 심해진대.”
이정진까지 합세하여 내 ‘밥’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들과 다른 두 명이 있었다.
“정진 형, 쟤가 배고파서 그런 것 같아요?”
“응, 그래서 막내가 감정 기복이 심한 거 아닐까.”
그러자 주이든이 검지를 흔들었다.
“그냥 아이돌 활동이 힘드니까 그런 거죠!”
아이돌 활동이 힘들어서? 전혀 아니다. 나는 오해를 키우기 싫어서 이정진과 주이든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이돌 활동 안 힘들어요.”
“얼씨구? 팬 싸인회에서 운 사람이 말이 많다?”
“형도 말 많거든요.”
나를 놀리기 급급한 주이든은 입꼬리를 들썩였다. 주이든은 사람을 놀리고 싶을 때마다 입꼬리를 들썩거리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곧 주이든은 내 옆자리에 앉더니 초콜릿을 까주었다.
“초콜릿이라도 먹어. 당 충전해야지. 오늘도 울면 어떡해?”
“…오늘은 안 울어요.”
“그래?”
주이든이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오늘은 두 번째 미니 앨범인 런엑스런 마지막 음악 방송이자 1위 후보에 든 날이었기 때문이다.
‘플라워로 1위를 못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주이든은 내 손바닥에 초콜릿을 얹어주면서 말을 이었다.
“오늘 금금이가 1위 후보 발표하는 날이거든.”
“…그렇죠.”
“그래서 몹시 떨려.”
거기다가 다이아몬드랑 함께 1위 후보에 붙었다. 지난번과 비슷한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1위 후보곡은 그저 그랬다. 팬들도 떨어져서 음원과 음반 점수도 엉망이었다.
‘조금만 팬들에게 잘 대해줬다면…….’
초동이 8만 장으로 떨어지지 않았겠지. 그래도 약간의 걱정은 들었다. 다이아몬드는 실력은 조금 떨어져도 엔터가 좋았으니까.
“이번에는 꼭 1위 해야지.”
자신감 넘치는 화목현의 목소리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플라워 때보다 런엑스런의 추이는 남달랐다.
‘…훨씬 인기를 끌고 있어.’
거기다가 런엑스런 앨범 수록곡인 ‘ready’도 인기를 끌고 있었다. 차트 순위가 20위였으니까. 우리랑 친분이 있는 선배님들이 SNS 계정에 추천을 해주면서 릴레이 인기를 터트렸다.
선배님들의 말에 의하면 ‘ready to go!’라는 가사가 마음에 든다고.
이제 슬슬 무대에 오를 때가 되었다.
“우리 1위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주이든이 던진 질문에 정요셉이 대답했다.
“…팬들을 향해 절하기?”
“절? 절은 그냥 할 수 있는 거잖아!”
절은 재미가 없다며 주이든이 싫다고 하자 정요셉이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럼 그거 해볼까~?”
“어떤 거?”
뭘 하고 싶길래 정요셉의 눈가에 장난기가 서려 있을까. 두렵기 시작했다. 곧 정요셉은 주이든의 귀에 속삭였다. 그러자 만족스러운지 주이든이 흔쾌히 허락했다.
“좋은데!”
주이든이 좋다고 할 정도면… 괜찮은 건가? 하지만 정요셉의 미소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궁금하긴 하지만 약간 무서운데. 옆에서 듣던 화목현이 물었다.
“이든아, 뭔데?”
“그게 어떤 거냐면!”
주이든이 말해주려는 찰나 대기실 문이 열리면서 음악 방송 스태프가 들어왔다. 이제 무대로 올라가야 한다고. 이런… 어떤 건지는 무대 위에서 듣겠네.
“이든아, 나중에 음방 끝나고 말해줘. 얘들아, 위로 올라갈 준비 하자.”
멤버들이 올라갈 준비를 끝내자 화목현이 우리를 모으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얘들아… 만약 우리가 1위를 하더라도…….”
“…….”
“이건 우리가 해낸 1위가 아니야. 스태프들과 제작진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는 거지. 그리고…….”
“…….”
“팬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1위를 할 수 있었던 거야.”
그러면서 화목현은 눈을 뜨고는 멤버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 보면서 소리쳤다.
“그래도 1위 했으면 좋겠다!”
화목현의 욕심 어린 말에 멤버들은 그만 웃음보가 터졌다.
“그럼 구호 외치자! 하나, 둘, 셋!”
멤버들이 외쳤다.
“네스트는 하나다!”
* * *
무대 위.
우리는 아이돌 선후배와 인사를 하면서 MC 옆에 섰다. 그런데 옆에 있던 다이아몬드 멤버들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랑 같은 1위 후보라서 기분이 나쁜가.’
무대 위에 1위 후보가 나란히 서자 음악 방송 MC인 금금이가 방송작가의 신호에 맞춰 입을 열었다.
“이번 음악 방송 1위 후보를 만나볼까요? 1위 후보는 네스트와 다이아몬드! 먼저 다이아몬드부터 만나볼까요?”
“Here you are! 안녕하세요! 다이아몬드입니다!”
옆자리에 있던 다이아몬드가 카메라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오늘 1위 후보에 든 소감을 들어볼까요?”
금금이가 다이아몬드의 제도전에게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1위 하면 행복하고 좋을 것 같습니다.”
“오~ 역시 행복하겠죠!”
이번에는 금금이가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려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이제 네스트를 만나볼까요? 네스트의 1위 후보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금금이는 옆에 있던 나에게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문득 시선을 내리자 무대 밑에 플래카드를 들고 우리의 1위를 기원하는 네온이 있어 미소를 지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때부터 우리를 지켜준 네온들에게 이 상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1위를 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습니다.”
내가 한 말은 사실이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지금껏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네온들은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주고 지켜주었다. 그런 건 사랑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네온들에게 꼭 이 상을 주고 싶었다.
“네, 네스트의 소감 잘 들었습니다.”
그때 주이든이 내 손을 꽉 잡았다. 나랑 주이든만 손을 잡고 있는 줄 알았는데 멤버들은 서로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이제 화면으로 1위를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음원과 음반 점수입니다.”
《네스트 5000
다이아몬드 3400》
“동영상 QTQ 방송 점수입니다.”
《네스트 100
다이아몬드 300》
“사전 투표 점수입니다.”
《네스트 990
다이아몬드 660》
“생방송 투표입니다.”
《네스트 910
다이아몬드 503》
“이제 결과를 보시죠!”
《네스트 7000
다이아몬드 4863》
누가 봐도 우리다, 우리.
“이번 주 1위! 네스트의 런엑스런입니다!”
금금이의 외침에 그제야 1위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마음을 버릴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활짝 미소를 지었다.
“네스트, 축하합니다! 이번 주 1위 소감을 들어봐야겠죠?”
그러자 네온들이 ‘범나비! 운다며!’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정작 내가 아닌 주이든과 이정진이 돌아선 채 흐느끼고 있었고, 화목현과 정요셉도 눈시울이 붉었다. 이거…….
‘내가 소감을 말해야겠네.’
멤버들의 태도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당연히 벅차오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나는 마이크를 들고 부르고 싶었던 이름을 불렀다.
“우리 네온!”
“까아아아악!”
우리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는 팬들을 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까지 잘 버텨주고 우리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해요. 언제나 네온 곁을 지키는 네스트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폭탄처럼 터진 멤버들의 눈물은 이제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금금이가 스태프에게 받은 휴지를 멤버들에게 건네주었고, 멤버들은 눈물을 닦았다.
“…저희를 아껴준 팀장님, 우리 매니저 연호 형, 헤어 메이크업 선생님들, 스타일리스트 선생님들… 그리고 앨범 준비로 고생하신 AA 엔터 직원분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너무 길었나…….
“형들.”
허리를 숙이자는 내 말을 신호로 멤버들과 같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음방 앵콜을 위해서 고개를 들고 지나가는 선후배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만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인사도 안 하네.
‘…다이아몬드 해체 기원.’
밤마다 물 떠놓고 빌어야겠네. 모두가 내려간 뒤에 금금이가 달려와 축하해 주었다.
“형! 축하해요!”
“축하해 줘서 고맙다.”
“…축하는 당연히 해줘야죠!”
응?
“…형이 최고고, 형이 앞으로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금금이는 나를 꽉 안아주었다.
“고맙다.”
그렇게 금금이는 나를 놓아주고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뒤늦게 멤버들은 정신을 차렸고, 그때 주이든이 외쳤다.
“우리 별 만들자!”
아… 설마 돌연프에서 보여줬던 그 별?
“자! 다들 어느 위치에 서야 하는지 알지?”
멤버들이 빠르게 별을 만들자 나는 무릎을 꿇고 팔을 뻗었다. 아니, 왜 하필 별이야? 네온들은 우리를 보면서 웃었다.
‘…네온들이 웃으면 됐지.’
그러면서 우리는 네온들과 같이 노래를 부르면서 앵콜 무대를 마쳤다. 그러고는 밑으로 내려갔는데 김연호가 아닌 다른 남자가 우리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어? 내려오셨네요.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어… 김연호 씨가 다쳐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
“네? 연호 형이 어쩌다가 다쳤는데요?”
“교통사고요.”
교통사고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