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120화 (120/235)

120. 돌아갈 수 있으면

“지금 카드로 퉁치려고?”

“퉁은 아니고. 유세?”

“…유세?”

“이 몸이 돈이 많아서.”

내가 신용카드를 건네자 남배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혀를 찼다.

“아니? 사과가 먼저지, 카드를 준다고요?”

“사과는 하던데. 제가 잘못 들었나요.”

남배우가 코웃음을 쳤다.

“사과는 무릎을 꿇고 해야 사과죠.”

“아~ 저랑 다른 생각이네요.”

그래서 나는 이윤도의 잘못을 한번 물어봤다.

“윤도가 무슨 짓을 했는데요?”

“쟤가 나한테 발을 걸다가 넘어져서 옷에 커피를 쏟았으니까.”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네요.”

점점 남배우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비꼬는 겁니까.”

“그것 또한 저랑 다른 생각이네요.”

“하!”

이윤도가 사과도 했고, 내가 카드를 줬으니 새 옷을 사 입으면 그만이다. 이렇게 큰일로 번질 일이 아닌데 무엇을 바라고 있어서 저러는 걸까.

“아니면 더 바라는 거라도 있나요.”

“…사과해야죠, 사과.”

“진짜로 돈이 아니라 사과를 원한다는 거죠.”

“네.”

갈고리처럼 이윤도를 잡고 늘어지고 있었다. 이윤도의 사과가 아니라 나의 사과를 바라는 건가. 그래서 운을 뗐다.

“제가 무릎이라도 꿇고 사과라도 할까요?”

“…….”

그걸 바랐던 사람처럼 남배우는 대답이 없었다. 연예계에는 저러는 인간이 널리고 널렸지만.

“그러죠.”

하지만 쉽게 무릎을 꿇을 의향은 없었다. 내가 진짜 크래프트의 매니저도 아니고. 그대로 남배우의 발등을 신발로 짓밟았다. 남배우는 아픈지 신음을 흘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나는 그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

“이러면 되죠?”

“…이 발.”

남배우가 발등에 놓인 발을 떼어놓으라고 말했으나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 무릎 꿇은 거 보셨죠?”

나는 화보 촬영 스태프들을 보면서 동의를 얻어냈다.

“그렇죠?”

그리고 남배우의 동의까지 얻어내기 위해 씩 웃었다. 하지만 남배우는 시뻘게진 얼굴로 입술만 깨물었다.

“무릎은 꿇었으니까. 그래도 눈치껏 행동합시다. 지금 이거 하나 때문에 화보 촬영 시간이 늦춰지고 있거든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던 스태프들이 남배우의 소란에 모두 멈췄다.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하고 화보 촬영이나 잘하자는 의미로 남배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일어납시다.”

나는 일어나면서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그리고 억지로 남배우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우며 작게 속삭였다.

“촬영은 재밌게.”

“…….”

“알겠죠?”

그렇게 화보 촬영은 재개가 되었다.

***

이남주와 이윤도의 화보는 표정 연기가 돋보였다. 화보에서는 표정을 잘 지어야 사진이 잘 나오니까.

‘…남배우도 뭐.’

깽판은 치지 않았다. 평탄하게 이남주, 이윤도와 어울려서 화보 촬영을 했고. 저 정도니까 계속 화보 촬영이 있는 거겠네.

나 또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이남주와 이윤도를 찍다가 스태프들이 힘들어할 때,

“이거 마시면서 하세요.”

커피와 디저트를 사 들고 와서 스태프들에게 전달했다.

“와,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진짜로 매니저 같아요.”

“뭘요.”

다 김연호한테 배운 거지만. 뒤에서 김연호가 매니저 역할은 톡톡히 잘해주었다.

김연호의 성격상 팬들을 낮게 보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좋았다. 팬들을 때리거나 밀치거나 그런 막무가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더 좋았고.

질서가 엉망이면 안 된다고 말하는 듯 강경한 태도인 한편, 패드로 우리 사진을 보여주면서 질서를 정리해 주었다.

그런 김연호의 행동을 직접 해보니까.

‘힘드네.’

내가 생각에 잠길 때였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렇게 멍해요?”

이남주가 촬영이 끝났는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아, 매니저 일이 힘들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하.”

나는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서 이남주한테 줬다.

“이마 닦아요.”

“와, 수건도 챙겼어요?”

“뭐든 챙기는 편이라.”

언제 왔는지 이윤도가 이마에 땀을 흘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저, 저도 수건 부탁드립니다!”

“빨리 말하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수건을 한 장 더 꺼내 이윤도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 닦아주었다.

“허어!”

“…왜 그래?”

“허어어어!”

“…어?”

손을 떨던 이윤도는 눈을 감으며 소리쳤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슨 은혜가 있었는데.”

“이 더러운 땀을 손수 닦아주신 거 말입니다!”

더러운 땀이라는 말에 웃어버렸다. 반응이 좋아서 더 닦아주고 싶네. 그러자 이남주가 말을 흘렸다.

“뭔가 신기하네요.”

“뭐가 신기해요?”

이남주가 나를 보면서 조용히 읊조렸다.

“얼굴에서 속마음이 티가 나서요. 그래서 신기해요.”

“…표정을 숨기는 법을 까먹고 살았거든요.”

네스트 멤버들과 살면서 표정 숨기는 방법을 까먹었다. 어차피 숨길 필요도 없었고.

“재밌게 사나 봐요.”

“…훨씬.”

이윤도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지 입술이 들썩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요?”

“멋지십니다!”

“그래요. 감사해요.”

쟤도 참 대단해. 이윤도가 생수를 가지러 떠나는 사이에 나는 이남주를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아는 이남주는 크래프트랑 사이가 별로 안 좋잖아.’

살짝 물어볼까. 지금은 이윤도가 없으니까.

“저, 하나 물어봐도 돼요?”

“어떤 걸 물어보려고요?”

“멤버들이랑 사이좋아요?”

“…음.”

이남주가 뜸을 들인다. 별로 안 좋나?

“개같죠.”

“…….”

“개새끼들 같은?”

…정말 사이가 안 좋군. 그나마 이윤도랑 친하게 지내는 모양이다.

“정말 개새끼들이라서 돈 좀 벌었다고 나갔거든요. 같이 있자고 했는데.”

그렇게는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같이 있자고 말하는 거 보니까. 이남주의 앙다문 입술이 그동안 힘들었다는 걸 알려주었다.

“당신은요?”

“…나야.”

아침에 일어나면 거실에서 주이든이 일어나 맞이해 주고, 화목현과 이정진이 밥을 시켜놨다면서 먹으라고 그러고, 정요셉은 내 옆에 앉아서 조잘거렸다.

“하루하루가 재밌어요.”

사이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싸움도 있긴 했지만 해봤자 닭다리를 먹냐 닭 날개를 먹냐 정도라 딱히 큰 싸움은 없었다.

“아, 물어보지 말걸.”

“…음?”

“짜증 나서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미소를 지었다. 내 미소를 본 이남주도 똑같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제 가겠네요.”

“…가야죠.”

“흠, 아쉽긴 하네요.”

“왜요?”

“당신을 보는 재미가 쏠쏠해서.”

“…전 딱히.”

“하하.”

이제 돌아가야지. 생수를 가져온 이윤도가 우리한테 물을 주면서 미소를 지었다.

“윤도야, 집에 가자.”

집으로 간다는 이남주의 말을 이윤도가 듣더니 어벙하게 눈을 껌뻑였다.

“그럼 나비 선배님도 가시겠네요?”

“가야지.”

“맞다… 가야죠… 저는 나비 선배님이 우리 숙소에서 살 줄 알았는데…….”

내가 어떻게 거기서 살아?

“윤도가 오해했나 봐요.”

“그러게요.”

내가 이윤도를 보면서 타일렀다.

“내가 어떻게 거기서 살아.”

“왜요! 같이 살면 안 되나요! 저도 선배님한테 노래 레슨을 받고 싶은데요.”

뭐야. 따로 목적이 있었군. 이윤도의 강렬한 의지에 나는 한 수 꺾였다.

“나중에 나한테 해달라고 부탁해.”

“진짜요……?”

“어, 부탁해 놓을게.”

“예? 예!”

부탁을 해놓으면 미안해서라도 이 몸이 이윤도한테 노래 레슨을 해주겠지. 이남주는 내 뜻이 무슨 말인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면 집에서 빨간색 노트에 저주라도 적어놓을까.

“오늘 하루 고생하셨습니다.”

그 난리 속에서 꿋꿋하게 일한 스태프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아, 그리고.”

내가 남배우에게 다가가니 남배우가 뒤로 주춤거린다.

“고생하셨어요.”

이 말을 하며 나는 이남주와 이윤도에게 다가갔다.

“왜 인사했어요?”

“매니저의 본분으로.”

“이거 너무 감사하네요.”

또다시 이남주의 차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더니 이윤도는 내 집에 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 그리고 이남주가 한 말은,

“그건 안 돼.”

“왜요!”

“원래 가수와 팬은 선을 넘으면 재미가 없거든.”

“…아! 그건 맞지만……!”

아쉬운 표정을 짓는 이윤도를 보면서 말했다.

“나중에 와.”

“진짜요?”

“어, 당연히 오라고 할 거야.”

“…어어? 네!”

내가 이윤도에게 말했던 것들을 빨간색 노트에 적어놓고 가야겠다. 이제 차에서 내리자.

“아쉽습니다!”

“그래? 어차피 또 만날 건데.”

“그렇다면 선배님, 다음엔 꼭 정규 앨범으로 나와주세요!”

“…음, 그건 나중에 봐야겠지.”

“네!”

이윤도와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누자 이남주가 차에서 내려 나를 따라왔다. 같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현관문 앞에 도달하자 이남주가 손을 내밀었다.

“왠지 당신… 세계의 이남주가 부럽기도 하고.”

뭐가 부럽다는 건지.

“그래서 내가 돌아갈 방법은 뭔데요?”

“아이돌 노트를 찢으면 된대요.”

“……?”

“그러면 영혼이 돌아간다고.”

이 새끼가… 아주 쉬운 행동이었잖아. 내가 눈을 부릅뜨자 이남주가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는 말은 나중에 들을게요. 들어가요.”

“…아니, 한 대 때려도 돼요?”

이남주는 이남주다. 내 눈앞에 있는 새끼가 낫다는 말은 취소다. 나는 발을 들어 이남주의 정강이를 차고 현관문을 잡았다.

“…이남주를 믿은 내가 잘못이지.”

한 번 더 이남주의 정강이를 차고 싶었지만 빨리 돌아가기 위해서 집으로 들어갔다. 바로 아이돌 노트를 찢으려다가 문득 이윤도가 생각났다.

‘걔는 잘못이 없지.’

가방에서 빨간색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이윤도 보컬 레슨

정규 앨범으로 보답

개새끼야.]

그렇게 짧게 노트에 적고는 아이돌 노트를 집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갈기갈기 찢었다.

‘진짜로 이런다고 영혼이 돌아가?’

곧 스르륵 눈이 감기고 다시 눈을 떴을 때였다.

***

“나비야!”

화목현이었다.

“형…….”

정말로 화목현이다.

“나비야, 아무리 불러도 일어나지 않아서 죽은 줄 알았잖아.”

“아, 스케줄 있어요?”

“아니, 이미 끝났어. 내일 마지막 음방이잖아.”

뭐라고?

“런엑스런 음방 마지막 주인데.”

“진짜… 진짜 마지막 주라고요?”

“응, 어제 연호 형한테 들었잖아.”

“저는…….”

그러자 화목현이 내 이마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나비야, 어디 우울하고 잠도 못 자고 그런 거 아니지?”

“그건 아니에요.”

“요새 나비가 조금 이상하긴 했어. 갑자기 우리를 보자마자 울어서 놀라기도 했고.”

…뭐? 울어?

“펑펑 울었는데 런엑스런 컴백하고 또 울었잖아.”

“…….”

“팬들을 만나서 너무 좋다면서. 그래서 얘가 런엑스런 컴백에 진심인가 싶었지.”

미친놈아… 왜 울어? 나는 마른세수를 하면서 진정했다.

“제가… 많이 울었죠.”

“그래서 기분이 오락가락한 줄 알았어.”

“그럴 때가 있긴 해요. 종종.”

“그래? 종종 있어?”

“엄청…….”

“그랬구나. 그런 적이 또 있었구나.”

화목현의 말은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울었다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왜 울어? 그러자 눈앞에 시스템창이 떴다.

【아이돌 노트가 재점검에 들어갑니다.】

【점검이 끝날 때까지 아이돌 노트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시스템을 점검한다는 말에 확실히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울었다는 점에서 쪽팔림이 몰려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화목현에게 물었다.

“제가 울면서 뭐라고 안 했어요?”

“…그냥 좋다는 말만 되풀이하던데. 나보고 뭐라고 했더라. 고맙다고 했잖아. 항상.”

항상……? 화목현이 팔짱을 끼면서 말을 이었다.

“네스트가 있는 건 형 덕분이라면서. 네스트의 리더로 있어줘서 고맙다며.”

“…하하.”

미친 새끼… 내 몸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막 뱉었네?

“나비야, 얼굴에 식은땀이 심하게 나는데…….”

“약간 몸이 안 좋나 봐요.”

“그래, 내가 감기약 가져올게.”

화목현이 방에서 나가자마자 나는 주먹을 쥐고 베개를 때렸다.

‘울었다고?’

팬들 앞에서 울었다는 화목현의 말이 뇌리에 스쳐 핸드폰을 찾았다. 그리고 침대 옆 협탁에 있는 핸드폰을 들고 커뮤니티에 내 이름을 검색했더니,

-나비 런엑스런 음악 방송에서 울었대ㅠㅠㅠㅠ

└ 정말?

└ 아마 런엑스런으로 나오기 힘들었나 봄

-영상 보고 왔는데 나비 예쁘게도 운다

└ 그니까 더 울었으면 좋겠는데

└ 나만 그런 거 아니지?

└ 와 나만 좆같은 새끼 될 줄 알고 말 안 했음 존나 예쁘게 울더라… 눈물 뚝뚝

-ㅋㅋㅋㅋ정요셉이 나비 우는 모습 드물다고 팬들한테 꼭 영상으로 찍으라고 함ㅋㅋㅋㅋ

└ 아니ㅋㅋㅋ 나비ㅋㅋㅋ 화장한 채로 울어서 다시 메이크업 받아야 했음ㅠㅠㅠ

└ 런엑스런 무대 하는데도 벅차오르는지 계속 눈물 참던데…

└ 진심? 어디?

└ (눈물_참는_나비_영상)

└ 나비야…

-이때 무슨 일 있었던 거야?

└ 아니 무슨 일은 없었음 나비 해맑아서 귀여워 죽어 음방 내내 미소 짓고 있던데

└ 런엑스런 진중한 무대인데 계속 미소 지으면서 보고 있음

…그래, 팬들이 좋으면 됐는데.

“아…….”

베개에 얼굴을 박으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는데 거실에서 정요셉과 주이든이 나를 불렀다.

“뭐, 목현 형? 우리 울보 막내가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요셉아! 울보를 또 울리려고 그래? 장난치지 마.”

“아! 우리 이든이가 형으로서 우리 막내를 위해주는 거구나!”

“그렇지! 우리 막내가 얼른 나왔으면 좋겠다!”

“나도! 나도!”

절대. 밖으로 안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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