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매니저 체험기(2)
얘는 그걸 어떻게 알아.
“그 몸의 주인이 술을 마시면서 말해줬어요.”
“…허…….”
그놈은 술을 입에 달고 사나. 팬들도 술을 마시는 걸 아는 것 같던데.
“어떻게 말했는데요?”
“음… 자신이 문제를 1부터 시작해서 99개를 만들었다. 그래서 빨간색 노트에 문제를 만들고 그 밑에 정답 풀이를 적어놨고, 자신을 각성하기 위해서 페널티까지 만들었다는? 거기다가 주변 사람들이 자신한테 주는 영향까지 적어놨다고 그랬어요.”
…어디까지 말하고 다닌 건지. 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한숨만 내뱉었다.
“전혀 몰라요?”
“저는 기억이 없어서…….”
이남주가 이맛살을 구기며 나를 쳐다보았다.
“…당신은 기억이 없다?”
“아예 기억이 없어요. 회귀한 기억도. 아이돌 노트를 제가 만들었다는 사실도 여기에 와서 알았어요.”
“이거 희한하네요.”
“저도 제가 희한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돌 노트에 모든 법칙을 넣었음에도 아이돌로서 성공을 못 한 나머지, 끝내 살인을 했고, 최종적으로 내 기억을 다 삭제했다는 거잖아…….
‘욕심이다, 욕심.’
최악의 욕심.
“이거.”
“그게 뭔데요.”
“그놈이 저한테 남기고 간 쪽지예요.”
이남주가 쪽지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그 쪽지를 받아 펼쳤다. 그 쪽지엔,
《소중한 깨달음》
저 단어를 보자 딱 하나가 떠올랐다.
‘멤버들.’
하지만 멤버들을 소중하게 여기라고 나를 여기로 보냈을 리가 없다.
‘더 큰 깨달음이 필요한 시점인가?’
무슨 내가 도인도 아니고… 지끈거리던 머리가 더 지끈거렸다. 나는 미간에 힘을 주며 뒷덜미를 문질렀다.
“깨달았어요?”
“깨닫긴.”
“오, 방금… 진짜 범나비 같았어요.”
“저도 진짜 범나비예요.”
“아~ 그렇지.”
나는 몰래 이남주의 정강이를 깠다.
“아……!”
“차는 맛이 있네요.”
“연예인 몸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데.”
“저도 연예인이거든요.”
“아차차.”
아차차는 무슨.
“이제 매니저니까 시간표를 알려줄게요.”
이남주가 나에게 바짝 다가오더니 핸드폰을 보여주며 매니저 시간표를 보여주었다.
‘차로 이동할 일이 많네.’
그런데 나 운전… 못하는데?
“일단 운전은 할 수 있어요……?”
“못하는데요?”
한 번도 운전해 본 적이 없었다.
***
원래 운전을 배울 생각도 없었고, 매니저가 있으니 차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나갈 일이 있으면 택시를 타고 다니면 되는 일이 아닌가.
“…운전은 안 배웠어요?”
“네.”
“그 녀석은 운전면허는 따긴 했다던데.”
“그놈은 땄어도 제가 못 땄으니까 운전을 하면 안 되죠.”
“은근히 깐깐하네요.”
그래서 이남주가 화보 촬영장까지 운전을 하기로 했다. 나는 매니저로서 카메라로 이남주와 이윤도를 찍었다.
“막 찍어도 되죠?”
“마음대로 하세요.”
뒷좌석에 앉은 이윤도가 중간으로 이동하더니 외쳤다.
“선배님, 멋있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카메라로 찍으니까 약간 첩보 영화 찍는 것 같습니다!”
첩보 영화……? 어디가 그렇게 보인다는 거지.
“다 왔어.”
“남주 형, 다 왔나요!”
“어, 그러니까 차에서 내리고 준비하자.”
“네!”
이남주는 주차하고 차에서 내렸다. 나도 차에서 내려 이남주와 이윤도를 계속해서 찍었다.
“남주 씨, 이번 화보는 어떤 화보인가요?”
“오~ 질문인가요?”
“네.”
이남주가 말하길, 잔디 위에 올라가서 활기 넘치는 컨셉으로 촬영하는 운동복 화보였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주변 스태프들이 고개를 돌렸다. 약간 분위기가 ‘좆 되고 싶지 않으면 고개 돌려’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지.
“안녕하세요.”
내 인사에 스태프들도 인사하며 각자 할 일을 했다. 연예계 생활이 편했겠네. 눈치를 보지 않고 살았으니까. 하지만 이건 솔로 가수라서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아이돌은 절대 할 수 없고. 그때 소란이 일어났다.
“너는 사진도 못 찍어?”
“죄송합니다…….”
“아래에서 위로 찍으라고.”
누군가 했더니 이번에 이남주, 이윤도랑 같이 화보를 찍는 남자 배우였다. 화보 촬영 장소에 오면서 이남주가 저 남배우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연기로 유명한 배우는 아니지만 스태프를 막 다룬다고 했었는데 진짜였네. 스태프들한테 인사를 다 했으니 이남주한테 가려는 찰나였다.
“안녕하세요?”
남배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 안녕하세요.”
“스태프들에게 들었어요. 매니저 체험기를 하신다고? 어떻게 하게 되신 거예요?”
“친해서요.”
“진짜로 친해요?”
“네, 그러면 가짜로 친해요?”
내 까칠한 말투에 남배우가 호들갑을 떤다.
“와하하!”
남배우가 놀라면서 검지로 나를 가리켰다.
“성격이 더럽다고 들었는데 은근히 괜찮네요?”
저 남배우의 시선을 보아하니 성격 더러운 사람은 나였다. 그러자 소란스러웠던 분위기가 잠잠해졌다.
“그래서?”
“잠깐만, 화났어요?”
“아니요.”
“그런 거 아니죠?”
“뭘 그런 게 아닌가요?”
남배우가 무식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들이 막 나한테 그랬거든요. 범나비 씨는 행실이 더럽다고. 그런데 생각보다 착한 것 같아서.”
“아.”
생각보다 착하다?
“우리 나비 선배님은 옛날에 드라마 했었습니다!”
대뜸 이윤도가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왔다.
“그래서 선배님이라고 부르셔야 마땅합니다!”
“아하? 나보고 연기도 안 하는 사람한테 선배님이라고 불러라?”
“예!”
이윤도가 할 말은 다 하는 타입이었네. 남배우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할 말이 있는지 입술이 움직였다.
‘…뭐 맞장구는 쳐야지.’
나는 입꼬리만 올리면서 팔짱을 꼈다.
“그러게. 선배님이라고 안 부르시나요?”
“…예?”
“선배님이라고 부르세요. 연예계에서는 이런 게 중요하지 않나 싶은데.”
이럴 땐 꼰대 문화가 좋단 말이지. 선배님이라고 부르지 않냐는 내 말에 남배우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선배님이라고 부르기 껄끄럽다는 뜻으로 보였다.
“제가 행실이 더러워서 호칭에 대해 꼰대 성향이 강하거든요.”
“…….”
“선배님이라고 부르지 않을 거라면 전 가볼게요.”
그렇게 이윤도를 데리고 메이크업하는 곳으로 가려는데 남배우가 조용히 읊조렸다.
“…어린 새끼가 말은 존나 많아.”
이윤도도 그 말을 들었는지 얼굴이 사색이 된 채 주변 눈치를 보았다. 얘가 무슨 죄라고.
‘말을 잘한 죄밖에 없지.’
나는 그대로 뒤를 돌아서 남배우의 오른쪽 정강이를 찼다. 남배우가 중심을 잃고 스태프의 어깨를 잡았다. 나는 중심을 다시 잡은 남배우를 보면서 물었다.
“왜 때렸다고 생각해요?”
“…….”
“그냥 때린 거예요.”
그리고 이번에는 왼쪽 정강이까지 구두로 찼다. 살살 차긴 했는데 힘이 들어갔는지 남배우는 중심을 잃고 뒤로 나자빠졌다.
“정강이가 좋네. 딱딱한 게.”
이제 크래프트 매니저 일을 해야지. 이남주가 있는 곳으로 가는데 이윤도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저, 선배님… 괜찮으시겠어요?”
“뭐가?”
“이러면 연예계에 소문이 나잖아요.”
소문이라…….
“나면 나는 거고.”
“…쿨하십니다!”
그러면서 이윤도는 자신 때문에 내 커리어에 흠집이 나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정강이 하나 찼다고 무슨 소문이 부풀어 오르겠나. 애초에 나는 싸가지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이 정도는 커리어에 흠집도 안 생겨.”
“…그런가요?! 역시 선배님이십니다!”
“고, 고맙다?”
“그래서 말입니다, 선배님.”
“어.”
“어떻게 하면 선배님처럼 살 수 있습니까?”
“글쎄.”
옆에서 조잘거리는 이윤도의 대화를 들으며 메이크업하는 곳으로 갔다. 벌써 이남주는 헤어와 메이크업을 끝낸 상태였다.
“매니저가 왜 이렇게 늦게 와요?”
“매니저의 일을 하고 왔죠.”
이남주가 핀잔했다. 내가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자 이남주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 어디 가지 말고 옆에 있어주세요, 일일 매니저님?”
“…예.”
나는 꺼졌던 카메라로 다시 이남주와 이윤도의 일상을 찍었다. 둘은 사소한 대화도 나누고 평범했다. 아이돌이라기엔 얼굴이 잘생겨서 카메라에 잘 담겼지만.
“아, 형!”
“윤도 반바지 입었네.”
“당연히 반바지를 입어야죠! 저의 멋진 다리를 보여 드려야 하니까요!”
“정말 멋진 다리네.”
이윤도가 손을 들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 범나비 선배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선배님은 화보 촬영장에서 주로 무엇을 하세요?”
화보 촬영장에서?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거나 어떻게 화보를 찍을지 대화를 나누고는 했지. 딱히 특별한 일은 안 했지만.
“운동 화보면… 몸매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운동을 하지.”
“…운, 운동이요?”
“몸이 좋아야 화보가 잘 나오거든.”
“오!”
“그리고 표정 어떻게 지을지 거울 보면서 연구하고.”
“연구요?”
“너는 조금만 표정을 연구해도 훨씬 좋아질 것 같은데.”
“그, 그렇습니까?”
이윤도가 눈빛 하나는 살아 있었다.
“눈빛만 잘 살리면 좋을 것 같은데.”
“한번 살려보겠습니다!”
살아 있는 눈빛만큼 좋은 건 없었다. 흥미를 잃은 눈동자는 재미도 없을뿐더러 가까이 가기 싫지 않은가.
“으아아!”
갑자기 이윤도가 복근 운동을 했다. 저런 열정적인 모습을 보니까 멤버들이 떠올랐다.
‘흠, 그립네…….’
…뭔가를 깨닫게 되기보다는 그리운 마음이 컸다. 옆에서 조잘거리는 멤버들이 그립기도 했고. 날 놀리는 멤버들이 머릿속에 그려졌으니까.
그 그리운 마음이 잠식하기 전에 나는 카메라를 들어서 이남주에게 질문했다.
“화보를 찍는 기분은 어떤가요?”
“…오, 질문인가요?”
“질문이죠.”
이남주는 소파에 앉아서 가만히 이윤도를 들여다보았다.
“재밌죠. 혼자 찍으면 썰렁하잖아요.”
“…재미.”
“저는 혼자 있는 것보다 멤버들과 있을 때 캐릭터가 확 살아나거든요.”
…캐릭터, 멤버들.
복근 운동을 하던 이윤도가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저도 혼자 있기 싫어서 숙소에서 안 나가고 남주 형이랑 있어요!”
“…그래요?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도 있지만 혼자 있으면 외롭잖아요.”
외롭다… 이윤도가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저는 멤버 형들이 좋거든요!”
솔직하네. 그 솔직함이 매력적이었다. 나도 저렇게 좋다는 말을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할 수 있을까. 이윽고 결정을 내렸다.
‘…못 한다.’
왠지 깨달음을 이윤도를 통해 얻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 하나 못 말했는데 말해도 돼요?”
“뭔데요?”
“제게는 멤버 형들이 제일 소중합니다! 10억을 줘도 안 바꿀 것 같아요!”
해맑은 이윤도의 말에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웃기네.’
이윤도를 보면서 알았다. 나는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이미 깨닫고 있었다.
처음에는 낯선 존재라 여겼다. 멤버들이 나를 받아줄까 하는 걱정이 들었고. 그럼에도 민폐를 끼치기 싫어서 조심히 다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입을 다문 채, 내가 알아서 사건을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멤버들이 나를 걱정해 주기 시작했다. 나를 배려해 주고 혼자 끙끙 앓지 말라는 충고까지.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소중하지 않을까.
가만히 있던 나에게 이윤도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비 선배님, 커피 가져올까요?”
“…그건 매니저인 제가 가져올게요.”
“아니요! 제가 가져올게요!”
이윤도는 씩씩하게 소파에서 일어나 스태프들이 준비해 준 커피를 가지러 떠났다. 그런 이윤도를 보면서 편안하게 소파에 기대서 미소 짓자 이남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예요? 그 미소는.”
“카메라 잠시 꺼도 돼요?”
“어, 네?”
막무가내로 카메라를 끄고 이남주에게 대화를 청했다.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데요.”
“…진짜요?”
이남주가 몸을 돌려서 나한테 질문을 할 때였다. 갑자기 우당탕 소리가 들리더니 이윤도가 넘어지고 남배우가 혀를 찼다.
“죄송합니다!”
“…이거 비싼 브랜드 옷인데.”
이윤도가 우리에게 오다가 그만 남배우의 옷에 커피를 쏟은 모양이다. 그런데 이윤도의 다리 밑에 남배우의 발이 살짝 보였다.
‘…발을 걸었네.’
치사한 방법으로 쪽을 주려고 하네. 차라리 나한테 하지, 제일 만만한 이윤도한테 하네. 이남주가 일어나려는 사이에 나도 같이 일어나 그쪽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에요?”
“얘가 내 옷에 커피를 쏟아서.”
저 브랜드 옷. 한눈에 봐도 비싼 옷이긴 했다. 위아래로 300만 원. 총 600만 원.
“어떻게 할래?”
어떻게 하긴.
“제가…….”
그냥 놔두려고 했지만 아까 저 남배우의 태도도 그렇고, 이윤도가 날 도와줬으니까. 나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이걸로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