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118화 (118/235)

118. 매니저 체험기(1)

“내가 매니저를?”

…왜 내가.

“알고 싶다면서요. 돌아갈 방법을?”

“…그 조건이 설마.”

“매니저 하는 거예요.”

허…….

“그리고 다음 주까지 너튜브에 올릴 자체 콘텐츠를 찍어야 하거든요.”

맞다. 이남주 자체 콘텐츠에 진심이었지…….

“그러면 저는 뭘 하면 되는데요.”

“저랑 윤도 화보 찍으러 가는데 같이 가면 돼요.”

“같이 가면 된다?”

그러자 뒤에서 듣고만 있던 이윤도가 벌떡 일어났다.

“남주 형, 진… 진짜로 같이 가요?”

“응, 진짜로 같이 가.”

이윤도가 기쁨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더니 나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

“싸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싸인은 쉽지.

“싸인해 드릴게요.”

이윤도는 누구보다 빠르게 방에 들어가서 보라색 상자를 가져왔다.

“상자는 뭐예요?”

“여기에 굿즈를 넣어놨거든요!”

“…굿즈를?”

“싸인을 많이 부탁드려도 될까요?”

“뭐, 괜찮습니다. 시간이 남아서.”

굿즈까지 사다니…….

“팬 싸인회는?”

“갔었어요! 아이돌로 데뷔하고는 못 갔고 연습생 시절에는 갔었습니다.”

“오, 대단하네요.”

그렇다면 얼굴을 기억할 텐데. 옆에서 이남주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싸가지가 없었어요.”

“…제가요?”

내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자 이남주가 웃었다.

“얼마나?”

“…지나가는 후배가 인사해도 그냥 지나갈 만큼?”

…후배를 지나치고 그랬다고? 연예계에서 인성이 제일 중요한데 후배가 인사해도 지나갔다고?

‘…유아독존.’

딱 그 짝인 모양이군, 이 몸은.

“그래도 팬들은 아꼈어요.”

“…그래요?”

“제가 실제로 보진 않고 당신이 그렇게 말하긴 했으니까.”

나는 자리를 잡고 보라색 상자를 열었다. 옆에서 이윤도는 기쁘다는 듯이 입꼬리가 귀에 걸려 있었다. 저러다가 입꼬리 찢어지겠네.

“이걸 다 모아놨어요?”

“앨범은 한정판으로 모았어요.”

“한정판도?”

한정판 앨범을 살 정도면 찐팬이다. 거기다가 상자에는 플래카드, 포토 카드 모으는 바인더까지 있었다.

‘얘 진짜다…….’

예전에 돌연프에서 이윤도를 보긴 했지만 구석진 곳에서 나를 쳐다봐서 인사한 적이 없었다. 걔가 나를 좋아했다니…….

“…고마워요.”

“……!”

“뭐라고 적을까요?”

내가 네임펜 뚜껑을 열고 상자에서 앨범을 하나씩 꺼냈다. 그러자 이윤도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윤, 윤도야.”

“……?”

“…‘팬 해줘서 고마워’라고……!”

…어, 그래. 이윤도가 옆에 다가와 내가 어떤 말을 적는지 눈으로 담았다. 그리고 내가 앨범을 건네주자 이번에는 다른 앨범을 나에게 주었다.

“이것도 해주세요…….”

팬이 아니었으면 진작 안 했을 것이다. 그런데 팬이라고 하니까. 이윤도의 얼굴부터 달라 보였다.

“…여기에 ‘사랑해’라고 적어주시면.”

“…어.”

“안 되겠죠?”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내가 고민에 빠지자 뒤에서 웃는 소리가 났다.

“윤도야, 행복해?”

“네! 남주 형! 너무 좋아요!”

“그럼 됐어. 됐죠?”

마지막 말은 나한테 묻는 거겠지? 나도 뭐, 팬한테 하는 말이니까. ‘사랑해’라고 적어주니까 옆에서 이윤도가 또다시 요구했다.

“사랑해 옆에 하트도.”

“…….”

“해주세요…….”

하트까지 그리고 이윤도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좋아했어요?”

“…어, 제가 연습생 시절에 우연히 나비 선배님의 플라워를 듣게 됐어요. 뭔가를 바라는 것처럼 목소리가 애달팠다고 해야 하나.”

“…….”

“그래서 노래를 듣게 됐다가 점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이윤도가 주먹을 꽉 쥐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어떻게 데뷔했는지도 알아요?”

“잘 알죠! 원래 나비 선배님을 떨어트리려는 무리가 있었는데 그 무리를 이겨내고 HI 엔터에서 솔로 가수로 데뷔했다는 사실을요!”

“오, 그래요?”

그러자 이윤도가 역으로 나한테 질문했다.

“제가 그걸 모를 리가 있겠어요? 그건 연예계에서 내려오는 전설이에요!”

전설처럼 내려온다고……? 이윤도는 신나서 말을 이어갔다.

“거기다가 나비 선배님은 솔로 가수로 잘 안 풀리면 다시 아이돌그룹으로 데뷔하겠다고 했는데!”

“…했는데?”

“나비 선배님의 목소리가 담긴 플라워가 너무 잘돼서 솔로 가수로 데뷔를 했다는 것까지!”

…솔로 가수 활동곡으로 플라워랑 런엑스런을 했다는 건가. 그룹 노래라서 솔로로 부르기엔 벅찬 감이 있을 텐데. 그래도 불렀다는 건.

‘외로웠다는 증거…….’

멤버들이 그리워서 플라워랑 런엑스런을 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주변에는 선배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

“선배님의 따뜻한 눈빛과 말이 저한테는 힘이 됐습니다!”

어떤 말을 했길래…….

“제가 뭐라고 했는데요?”

“선배님이 담배를 피우면서 저한테 말씀하셨습니다.”

“…뭐라고?”

“그딴 식으로 아이돌 할 거면 닥치고 연습만 하라고.”

…그건 따뜻한 말이 아니라 그냥 꺼지라는 거잖아.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다가 노래를 부르는 새끼가 담배를?

‘미친 새끼인가?’

아이돌 노트가 말했지. 내가 회귀했던 기억을 삭제하고 다시 회귀했다고. 기억을 삭제하고 다시 시작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안 그랬으면 온갖 루머와 어그로는 내가 도맡아서 살았을 것이다.

‘성격이 더러워서.’

일단은 이윤도한테 했던 말을 수습했다.

“미안해. 그런 말을…….”

“아니요. 오히려 영광스러웠는데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그래? 그렇다면 다행인데.”

나는 황급히 핸드폰을 켜서 커뮤니티에 범나비를 쳤다. 쳤더니…….

-범나비 사건 사고 자주 치지만 본업 존나 잘해서 욕도 못 해 ㅋㅋㅋㅋㅋ

└ 싸가지가 없잖아 선배랑 후배랑 싸웠다는 루머가 1년에 한 번씩 있음ㅋㅋ 팬들한테 잘하면 뭐 해

└ 근데 왜 좋아해?

└ 그냥 개또라이 같아서ㅠ 범나비 편의점에서 술 마시는데 사생 오니까 술 사주면서 오지 말라고 했다잖아ㅋㅋㅋㅋ 아 개웃겨서

└ 헐ㅋㅋㅋㅋㅋㅋㅋ

└ 진심?ㅋㅋㅋㅋㅋㅋㅋㅋ

-본업 잘하면 어ᄍᅠᆯ 수 없지 솔로 가수로 100만 장 돌파함ㅎ 솔로 가수인데 아이돌이라고 불림ㅋㅋㅋ 그래요 그 솔로 가수를 좋아하는 나도 등신이지

└ ㅋㅋㅋㅋㅋㅋㅋ 잘 아네 근데 나도 그래ㅠ

└ 노래 오지게 잘 부르잖아ㅠㅠㅠ 어쩔 수 없어

-맨날 촬영 지각 논란에 인성 논란까지 있지만 교통사고 내기 싫어서 차도 없고 술집 싫어해서 편의점에서 술 마심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팬 사랑 오지고 라방 때 팬들이 해달라는 리액션 잘해주잖아 팬 싸인회에서 아이돌 춤도 춰주고 그럼ㅋㅋ

└ 아 ㄹㅇ 그리고 최근에 범나비 사과 축제 행사에서도 팬들한테 사과 사주고 대학교 축제에 팬들 오면 커피차나 간식차 보내고ㅋㅋㅋ 성격 화끈함

└ 와 미쳤다 ㄷㄷ

└ 범나비 유일하게 아육대에서 팬들이랑 같이 식당 가서 밥 사준 연예인일걸?

-범나비 팬질 재밌겠다ㅋㅋㅋㅋㅋㅋ

└ 빠와 까가 동시에 있어서 존잼임

└ 본업 존잘이라 더 재밌음

└ ㅋㅋㅋ 존잼ㅎㅎ

…하, 팬들이 좋아하니까 괜찮긴 하네. 싸가지가 없어도 잘나가는 가수라서 욕은커녕 연예계 헛소문은 돌지 않네.

-근데 이남주랑 친하더라

└ ㄴㅁㅇ

└ 본업 존잘들이 만나서 뭐 딱히 사고도 안 치고

└ 둘이 좋아ㅠ 자주 만나줘

이남주랑 친한 것도 알고 있고.

“다들 선배님이 대단하다고 해요!”

“…뭐.”

“역시! 선배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네요.”

“그건 아닌데.”

…얘도 나에 대해 착각하네.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다. 나는 가늘게 눈을 뜨면서 이윤도에게 물었다.

“이윤도 후배는 제가 싸가지 없다고 생각해요?”

“네!”

“어?”

이윤도는 자기 입술을 때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싸가지가 없다고 생각하네.

“얼마나 싸가지가 없어요?”

“…지나가는 후배의 정강이를 때리는 정도?”

“…그리고?”

“선배님이 정강이 킬러라는 별명도 있다는…….”

정강이만 때려서 생긴 별명이군. 지금도 정강이만 노리면서 때리긴 했다. 얼굴이나 몸을 때리면 상처가 생기니까. 그에 비해 정강이는 때려도 약간 열받는 정도가 아닌가.

‘…이놈도 나긴 나네.’

내가 한숨을 내쉬자 이윤도가 몸을 떨었다. 왜 저래?

“그래도 제일 존경하는 선배님을 물어보면 대부분의 후배들이 선배님을 말합니다!”

“…….”

“그러니까 너무 상처받지 마세요!”

나를 보며 눈이 반짝이는 이윤도를 보면서 웃었다. 그리고 이윤도의 머리를 꾹 눌러주며 입을 열었다.

“고맙다.”

“…예!”

“나중에 맛있는 거 사달라고 말해요.”

“진짜요? 남주 형! 증인 해줘요!”

나는 이남주를 쳐다보았다.

“내가 들었으니까 증인이지.”

이윤도는 어떻게 노래를 부르는지, 어떻게 하면 오래 연예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조언을 구했다.

내 대답은 하나였다.

“사고만 안 치면 돼.”

“진짜요?”

“그게 제일 어렵고 제일 쉬워.”

“하긴 그렇죠.”

“그리고 팬들을 생각해야지.”

아이돌로 살아가기는 힘들지만 그만큼 돌아오는 사랑도 크다. 그걸 망각하는 순간 아이돌이라는 정체성을 잃는 거지.

여전히 묻고 싶은 게 있는지 이윤도가 입을 열려는 찰나 이남주가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자자, 이제 윤도는 씻으러 가고. 매니저 어떻게 하는지 알아야죠.”

이남주는 내일은 화보 촬영이 있는 날이라서 식사는 밥 대신 샐러드로 대체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SNS 계정에 올릴 사진을 위해 둘을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찍어주면 된다고 했다.

“카메라로 우리 찍어주면 돼요.”

“콘텐츠 때문이죠?”

“네, 콘텐츠 때문에.”

콘텐츠 못 찍어서 죽은 귀신이 씌었나.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윤도가 잠옷을 가지고 와서 말했다.

“저는 씻으러 가겠습니다!”

이윤도가 샤워하러 떠나자 거실이 조용해졌다.

“근데 왜 매니저예요?”

“시스템이 당신을 도우려면 매니저를 시키라고 하던데요.”

…매니저를 시켜라.

“왜요?”

내가 의심하자 이남주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거야 저는 모르죠.”

“…정말 몰라요?”

“정말 몰라요.”

이남주의 태도로 보아 정말 모르는 사람 같기는 했다.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 실소를 뱉자 이남주가 호탕하게 웃었다.

“당황하는 모습 처음 보네.”

“…사람이 당황할 수도 있죠.”

“아니, 뭐 신기하잖아요.”

“나를 약간 바보 취급 하는 것 같은데요?”

“아하하!”

이남주가 크게 웃으면서 손을 휘저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그 녀석은 잘 웃지도 않고 맨날 미간에 힘만 주고 다니거든요.”

“미간에 힘만 주고 다녀요?”

“원래 인상이 차갑잖아요. 그래서 주변 사람 접근 못 하도록 그러는 것 같던데.”

그런가. 외로움 많이 타고 멤버들이 보고 싶어 내 몸을 탐했던 주제에.

‘봐줘야 하나…….’

걔도 나니까. 그래도 이남주가 그 녀석을 잘 아는 모양이라 다행이네.

“저한테 궁금한 점 없어요?”

“…궁금한 점?”

별로 없지만. 문득 이 세상의 이남주는 나와 이남주의 시스템 공유를 끊는 방법을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몸이랑 시스템 공유를 하고 있어요?”

“…공유?”

“페널티요. 제가 아프면 당신이 아픈 것 같은.”

이남주는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 거 없어요.”

“…범나비랑 페널티 공유하는 게 없어요?”

페널티 공유를 안 하는 건가. 이남주의 태도를 보니 이것에 대해 처음 듣는 것 같았다.

“거기서는 공유해요?”

“…네, 페널티를 공유해요.”

이남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시스템이 자기 멋대로인 녀석이라…….”

그런데 왜 나를 지그시 쳐다봐? 시스템 자체를 내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그건 알죠?”

“……?”

“아이돌 노트 시스템창, 당신이 만들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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