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살아남아라 1화
모든 출연자들이 차에 올라탔고, 납치된다는 말에 제각각의 반응을 보였다. 놀라기도 하고,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기도 하고.
특히 내 반응이 제일 웃겼다.
[범나비 : 납치요?]
저렇게 삑사리를 내면서 김연호를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범나비, 정말 몰랐어?”
“납치됐다는 말까지도 안 믿었어요.”
“와하핫!”
주이든이 내 허벅지를 때리면서 크게 웃었다.
‘그래, 많이 웃어라.’
무인도에 오르기 전, 배에서 가방 수색이 이루어졌다.
[방송작가 : 가방 수색을 할게요.]
그렇게 출연자들의 가방 속이 나오는데, 나만 가방 수색 분량이 많았다. 자잘한 물건을 많이 넣고 가서 그런가…….
[방송작가 : 와… 많다.]
[기겁하는 스태프들]
[기겁하는 스태프들을 보며 익숙한 나비]
여기서 짧게 인터뷰를 했었다.
[방송작가 : 제가 가방에서 물건을 뺐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요?]
[범나비 : 다행히 작가님께서 가방 깊은 곳까지는 안 보신다고 생각했어요.]
[방송작가 : 가방 깊은 곳엔 뭐가 있었어요?]
[범나비 : -삐 처리-]
[~스포~]
다시 원래의 화면으로 돌아와 방송작가가 나에게 가방을 돌려주는 부분이 나왔다. 주이든은 궁금했는지 고개를 올려 나를 보았다.
“범나비, 가방에 뭐가 그렇게 많이 들어 있어?”
“무인도에서 필요한 물품이나 수건, 신문지, 소금, 후추… 이렇게요? 손수건도 가져갔고…….”
“그게 다 들어갔어?”
“네, 가방이 워낙 크기도 하고. 조미료는 소분해서 가져갔어요.”
“…언제? 부엌에서 못 봤는데.”
“아침 일찍 했어요. 형들 깰까 봐 새벽엔 못 했지만.”
“그 가방, 아직도 있어?”
살아남아라 촬영 당시 썼던 가방이 있긴 했다.
“네, 있어요.”
“봐도 돼?”
“…네, 좀 더러울 텐데.”
“더러워도 괜찮아.”
왜 보려고 하는 거지?
“내가 가방 가져올게~”
“오! 정요셉!”
내 허락이 떨어지자 정요셉이 내 방에서 가방을 가져왔다. 정요셉도 은근히 궁금했던 모양이다. 신나서 가방을 가져오던 정요셉은 가방을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우리 막내는 바보야. 가방 지퍼가 열려 있잖아.”
…어? 저 가방은 살아남아라 촬영을 하고 정리한 뒤에 손을 댄 적이 없었다.
‘…이남주의 말대로 영혼이 건드는 건가?’
꺼림칙한 기분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DANGER】
그와 동시에 불길한 붉은색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여기에 집중을 빼앗길 수는 없지. 나는 시선을 돌리면서 살아남아라 실시간 채팅 반응을 확인했다.
-쟤 가방에만 뭔가 많아
-어디 살림 차렸어?ㅋㅋㅋㅋㅋㅋ
-우리 요술 가방 큰일이다
-ㅋㅋㅋㅋㅋㅋㅋ
-또 빼앗기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슬슬 모두들 무인도에 도착했다. 무인도 규칙이 적혀 있는 종이를 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벌써 자리를 잡고 무인도에 오는 참가자들의 뒤통수를 노리는 박정후도 있었다. 박정후는 상대방의 카드가 무슨 카드인지 물어본 다음, 알아내면 바로 참가자들의 카드 목걸이를 벗겨 죽이는 작전을 펼쳤다.
‘진짜 욕먹겠네.’
-이건 선 넘은 거 아니야?
-박정후 아이돌 아님?
-박정후 아이돌 ㄴㄴ
-이미지 미친;
-아이돌 이미지 빼니까 신기하다 ㄷㄷ
박정후는 탈락한 참가자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박정후 : 어쩔 수 없잖아요?]
강렬하고 짧은 순간이라 시청자 반응이 재밌었다.
-ㄷㄷ 아이돌 나와서 재미없을 줄 알았는데
-진짜 악역이었네
-정후야 ㅠㅠㅠ
-박정후가 악역을 자처했네 원래 이런 악역이 있어야 예능이 재밌음
멤버들은 박정후의 행동을 보면서 놀라기는커녕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범나비, 정후 형이 너한테 해코지는 안 했어?”
“보면 아실 거예요.”
“이것도 안 알려주다니…….”
내 미소에 주이든이 혀를 찼다. 그러고는 내 입에 팝콘을 억지로 하나씩 욱여넣었다. 그때였다. 박정후가 있는 세 번째 텐트에 디아 선배님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화면이 교차되더니 뛰어다니는 디아 선배님과 추격하는 박정후가 보였다. 긴박한 BGM이 흐르고, 디아 선배님은 나뭇가지에 쓸려 팔뚝을 다쳤으면서도 계속 달렸다.
[디아 : 정후야, 따라오지 마!]
[박정후 : 예! 안 따라가요!]
[디아 : 따라오는 소리 들리거든?]
디아 선배님의 뒷덜미를 잡으려는 박정후의 모습에서 화면이 전환되었다. 청량한 바다가 있는 무인도에 마지막 멤버인 내가 도착했다.
[무인도에 마지막 참가자가 도착했습니다.]
무인도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그런데 나는 경계는커녕,
[범나비 : 오, 텐트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나왔잖아……? 나는 텐트로 다가가 무인도 규칙을 읽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내가 저랬어?’
스피커에서 탈락했다는 음성이 나오는데도 가방을 정리하는 내 모습이 이질적으로 보였다. 더군다나 가방에서 신문지를 꺼내 방석으로 이용하는 내 모습은 차마 볼 수 없었다.
[범나비 : 모래는 더러우니까.]
살아남아라 제작진이 나를 이런 식으로 이용하다니.
거기다가 화면에는 발랄한 BGM이 깔리고 있었다.
[범나비 : 밥은 언제 먹지?]
내가… 저랬다고?
-이거 생존물 맞죠?
-ㅋㅋㅋㅋㅋ아 PD님 살아남아라 1화에서 범나비가 치트키라고 했잖아
-생존물인데 힐링물이 되어버림ㅋㅋㅋㅋㅋㅋ
-저런 애가 기존나쎔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갑자기 분위기 풀어져서 개놀람
-저런 캐릭터가 하나쯤은 있어야 좋긴 한데ㅋㅋㅋㅋㅋ
…멋있고 강렬한 캐릭터로 남고 싶었는데. 이건 내 계획에 어긋나는 상황이었다. 내가 이마를 짚으며 침음을 흘리자 멤버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나비야, 왜?”
“…목현 형, 화면 속에 나오는 저 모습이 제가 아닌 것 같아서요.”
“아닌데. 나비 가끔 저러잖아.”
“제가요?”
정요셉은 내 모습에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우리 막내, 귀엽게 나오면 됐어~ 나쁜 이미지보다는 낫잖아.”
“그렇긴 하죠…….”
“꽤 잘 어울리네.”
“예?”
“그냥 그렇다고~”
애써 부정하면서 다음 장면을 기다렸다. 이남주와 이서혁, 그리고 디아 선배님이 나타났다.
‘디아 선배님, 분명…….’
디아 선배님이 박정후의 손에 죽었다고 추측했던 멤버들은 디아 선배님의 등장에 혼란을 겪었다. 디아 선배님의 등장이 혼란을 불러일으켜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실시간 채팅도 난리가 났다.
-뭐야?
-?????
-디아 왜 나옴
-죽은 거 아니었어?
-뭐야 너희들만 알고 있었냐고
-오 박정후가 놔줬나?
박정후와 디아가 친분이 있다는 댓글이 올라오자 박정후가 그냥 놔준 거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박정후의 카드 사냥은 끝나지 않았다.
거기에 박정후는 숨어서 다른 팀들을 전멸시키기 이르렀다.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서고운 : 어쩌죠. 저는 총이라서.]
이미 내분이 생긴 상태였고, 서고운은 총을 꺼내 참가자들을 협박했다.
-뭐야?
-총을 들 수도 있었음?
-헐
-무인도 생존 게임에서 총이라니
-**
갑작스러운 총의 등장에 채팅창은 혼란스러워졌다. 총과 배신, 그리고 무해하게 라면을 끓여 먹는 우리의 모습까지.
[범나비 : 남의 카드를 목걸이에 넣을 수 있나요?]
[PD : 네.]
[범나비 : 그러면…….]
이렇게 짧은 예고편과 함께 1시간 20분이라는 분량으로 살아남아라 1화는 끝이 났다.
-생각보다 재밌음
-오 다음 화 기대?
-생각보다 노잼은 아니네
-기 싸움 레전드
-그런데 호불호 갈리겠다ㅋㅋㅋ 일단 나는 호임
-호불호의 호를 맡고 있습니다 다음 화 내놔
생각보다 평도 좋았고.
“…범나비, 남의 카드를 쓸 수도 있어?”
“모르겠는데요?”
“이것도 안 알려줘?”
“당연하죠.”
침대에 드러누운 채 알려달라는 주이든을 보면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점점 땡깡만 늘어나. 그러자 정요셉이 가방에 물건을 넣으며 말했다.
“우리 막내가 알려주겠어? 다음 정규 앨범 내용도 안 알려주잖아~”
“그건 다 때가 되면…….”
“알아. 아직은 만드는 단계라고?”
“네, 아직 어떻게 할지 갈피도 못 잡았다고요.”
정요셉은 나한테 가방을 주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이든이 편 들어줘야지.”
“…형?”
“그치?”
“…아.”
주이든의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주이든이 더 땡깡을 부릴 거라는 정요셉의 눈짓이었다.
“하아~”
주이든은 베개를 꽉 끌어안으면서 깊은 한숨을 뱉었다. 삐진 척하는 거다, 삐진 척. 진짜로 삐졌으면 나를 노려보면서 시비를 걸었을 것이다.
‘이럴 때는 다 방법이 있지…….’
나는 핸드폰을 들고 흔들었다.
“형들, 치킨 드실래요?”
그러자 언제 한숨을 내쉬었냐는 듯이 주이든이 재빨리 반응했다.
“나는 피자도 먹고 싶은데?”
“피자도 시키세요.”
“그럼 스파게티도 시킨다?”
“너무 많이 먹진 마세요. 그러다가 배탈 나요.”
“당연하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면 된다.
“너한테 무슨 돈이 있어서.”
“돈이 없진 않아요.”
“…그럼 부담 없이.”
치킨과 피자를 시킨 뒤 방으로 들어가는 이정진을 따라갔다. 물어볼 것이 있었으니까. 내가 뒤따라 들어오자 이정진이 나를 쳐다보았다.
“막내야, 무슨 할 말 있어?”
“별다른 건 아니고. 정진 형, 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뭔데?”
“…혹시 제가 이상한 행동을 한 적 있어요?”
혹시 모르지 않나. 그 회귀자가 내 몸에 들어와서 어떤 짓을 하고 다녔을지. 그리고 이정진은 나의 룸메이트니까 그런 것에 대해 제일 잘 알지 않을까 싶어서 물어본 것이다.
“이상한 행동이라…….”
곰곰이 생각하던 이정진이 말했다.
“자다가 일어났는데, 막내가 울고 있던데.”
“…제가요?”
“나를 부르면서 울던데.”
…내가 이정진을 보면서 울었다는 거지.
“얼마나 울었어요?”
“…펑펑 울었어. 그래서 나쁜 꿈을 꿨다고 생각했지.”
내가 울었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언제 울었는지 기억나요?”
“…엊그제였나?”
엊그제라면 내가 아니다.
“아, ‘정진 형 오랜만이에요’라는 말도 했었어.”
“제가요?”
“어, 조금 이상하긴 했어.”
…이정진이 본 사람은 내가 아닌, 회귀자가 맞는 것 같았다. 잠시 생각을 하기 위해 침대에 걸터앉았는데, 그 순간 붉은색 시스템창이 반짝였다.
【DANGER】
【접근을 금지합니다.】
접근을 금지한다고? 설마 이 근처에 있나. 그때 주이든이 방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치킨 먼저 왔다! 빨리 안 나오면 닭다리 내 거!”
이정진이 그건 안 된다면서 침대에서 내려왔다.
“근데 막내야.”
“……?”
“너무 걱정하지 마. 다른 애들한테는 막내가 운다는 말 안 했어.”
“아, 감사해요.”
“사람이 울 수도 있는 거지.”
이정진은 저렇게 넘어가서 다행인데.
‘…골치 아프네.’
…내 몸에 들어오기도 한단 말인가.
“나비야, 안 오면 이든이가 다 먹겠대!”
“네, 나갈게요!”
일단은 별다른 시스템창이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아직은… 거실로 나가 탁자 위에 있는 치킨과 피자를 보는데,
“…없는데요?”
치킨은 두 조각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피자는 네 조각이 남아 있는 상태.
“뭐야. 범나비 안 나오는 줄 알았더니?”
“이든 형, 나오려고 했거든요.”
“그럼 최대한 늦게 나오지 그랬냐.”
“왜요?”
“내가 다 먹게.”
“…돼지.”
“뭐!?”
화를 내는 주이든을 내버려 두고 자리에 앉자 화목현이 나한테 그릇을 챙겨주었다.
“목현 형, 고마워요.”
“뭘.
그제야 피자와 치킨을 먹는데, 갑자기 주이든이 의문이 가득한 목소리로 나한테 물었다.
“근데 범나비, 어제 왜 그랬냐?”
“뭐가요?”
“어제 연습실에서 가만히 거울만 보고 있었잖아.”
“네?”
“아니, 나 봐도 말도 안 걸고 가만히 있던데.”
나는 어제 연습실을 간 적이 없는데.
“우리 이든이, 꿈이라도 꿨어?”
“왜?”
“어제 우리 막내 연습실 안 가고 나랑 거실에서 라면 먹었는데~”
어제, 정요셉은 연습실 가지 말고 오랜만에 같이 라면이나 먹자며 나를 잡았다.
“…나 진짜로 봤는데?”
“이든이, 귀신이라도 본 건가.”
“아니야! 진짜로!”
어떻게 보면 귀신이 맞지. 내가 가만히 있자 주이든은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면서 나를 흔들었다.
“연습실 안 갔어요.”
“진짜 귀신이었나…….”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화목현이 말했다.
“내일 휴가지? 나는 내일 개인 스케줄이 있어서. 정진이랑 이든이는 본가에 내려간다며?”
“아빠가 맛있는 고기 줄 테니까 들고 가라고 해서.”
“이든이 갈빗집 아들이잖아.”
그래서 냉장고에 항상 갈비가 있었구나.
“응, 이제 앨범 준비 때문에 자주 못 본다고 하니까.”
“나중에 이든이 집도 가봐야겠다.”
“왜? 난 싫어.”
“이든아, 너 때문에 가는 거 아니야. 아버지, 어머니가 갈비를 자주 보내주시니까 감사하다고 찾아뵐 겸.”
단호한 화목현의 말투에 주이든은 포크로 피클을 찔렀다. 화목현은 피클을 빼앗아 먹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 안 해도 알거든요.”
“그렇구나. 이든이 많이 컸네.”
역시 주이든을 잡는 사람은 화목현밖에 없다. 양념치킨을 입에 넣으려고 할 때였다.
툭.
내 방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막내, 어디 가.”
“아, 요셉 형. 방에서 뭐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서요.”
“떨어지는 소리?”
“네, 다녀올게요.”
“빨리 다녀와~”
혹시 무슨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방문을 잠그고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확인했다. 바닥에 떨어진 물건은, 고작 볼펜 하나. 그 볼펜을 주우려고 상체를 숙이는데,
【안녕.】
나랑 똑같이 생긴 회귀자, 아이돌 노트가 내 침대 밑에 숨은 채로 인사를 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