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생일 선물
“…어, 얘들아.”
I.P가 이상한 기사가 떴다고 하길래 확인했더니,
‘뭐야?’
우리가 I.P랑 사귄다는 어이없는 기사가 떴다.
[네스트, I.P의 작업실이 LOVE실?]
[사실 I.P의 양다리가 아닌 정요셉-범나비와 합의된 관계?]
이딴 더러운 기사나 내다니.
“너희 둘 중에 나랑 사귀는 사람?”
“없죠.”
“아니면 셋이서 사귀나?”
정요셉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배를 잡고 작업실이 떠나가라 웃었다.
“무슨 기사를 이따위로 쓰지?”
“재밌는 기사가 없었나 보지.”
어떻게 열애설이 뜬 걸까.
핸드폰을 켜서 확인해 보니 그냥 우리 얼굴을 아는 어떤 사람이 SNS 계정에 사진을 찍어 올린 모양이다.
그 사진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우리 둘 중에 누가 I.P랑 사귀냐는 소문이 난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네.’
하지만 I.P는 미안한지 한숨을 푹 쉬었다.
“얘들아, 미안해서 어떡하지.”
“괜찮습니다. 어차피 팀장님과 매니저한테도 I.P 선배님 작업실에 간다고 말해놨어요.”
“…다행이네.”
설마설마했던 일이었다.
‘작업실에 갔다고 연애하러 가는 건가?’
기자들 망상하고는. 그렇다고 내가 기자들한테 쉽게 당할까. 미리 김연호한테 혹시나 열애설이 뜨면 앨범 작업이라고 해명하자고 말해놓은 상태였다.
“내가 나비랑 앨범 작업 중이라고 말할게.”
“감사합니다.”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어쩔 수 없지.”
기사도 기사지만, 가볍게 웃어넘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럼 선배님,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응? 뭔데?”
“작업하는 중이라고 SNS 계정에 올려주실 수 있으세요? 저희도 SNS 계정에 I.P 선배님 작업실에서 곡 작업한다고 올릴게요.”
“그래!”
그렇게 정하자마자 팀장님과 김연호한테 톡을 보냈다.
(나) SNS 계정에 사진 좀 올리겠습니다.
(팀장님) 응, 그래. 열애설은 바로 피드백할 거다.
(나) 감사합니다.
(김연호) 무슨 사진 올릴 건데?
나는 앨범 작업 중이라는 사실을 못 박기 위해서 가사지를 찍었다.
(나) (가사지_jpg)
(나) 이걸로 올리면 되지 않을까요?
(김연호) 좋네. 올려도 돼.
(나) 네.
일단 SNS에 글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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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언사네]
안녕하세요^^ 나비입니다.
미리 말을 안 해서 죄송해요.
제가 I.P 선배님의 정규 앨범에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이상하게 기사가 나서 이렇게 올립니다.
(셋이서_같이_찍은_사진_jpg)
(요셉과_카페에서_찍은_사진_jpg)
(요거트스무디랑_요셉_jpg)
(아이스아메리카노랑_나비_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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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글을 I.P한테 보여주었다.
“선배님, 이렇게 올려도 되나요?”
“어, 괜찮아!”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SNS에 글을 올렸다. 이윽고 커뮤니티 반응을 확인했다.
-뭐야 아무것도 아니었잖아
└ 이게 뭐임?
└ 팬들이 일을 키웠음 ㅋㅋ
└ 근데 그 글 적은 사람 팬 아닐걸? 바로 글 삭제하고 도망감
└ 팬 아님
-팬이 한 거 아니라고요 ㅡㅡ
└ ㄹㅇ 팬들은 아니라고 반박까지 함
└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일은 팬들이 한 거라고 하냐?
-ㅅㅂ 근데 누가 연애를 한다는 건데 두 명이 애인 만나러 작업실에 갔다는 게 기사 팩트임? 그러니까 삼각관계라는 거야?
└ 댓글에서는 그렇다고 함ㅋㅋㅋㅋ
└ 더 큰 대한민국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ㅁㅊㅋㅋㅋㅋㅋㅋㅋ
└ 진짜 이랬으면 믿었을 수도 있겠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 뭘 믿어ㅋㅋㅋㅋㅋㅋ
-애들이 직접 아니라고 하니까 마음이 편안하다
└ 애들도 당황했는지 바로 올려주네ㅠㅠ
└ 곡 작업하러 왔는데 갑자기 열애설 의혹이라고 기사 뜨면 나라도 놀란다
-곡 작업이 맞긴 함? 아닐 수도 있잖아
└ 응 I.P도 정규 앨범 나온다고 SNS에 사진 올림 ㅅㄱ
└ 아무리 어그로라도 좀 알고 어그로를 끌자 제발
└ 아니라잖아;
-응 곡 작업 맞아 I.P도 말해줌
└ 모르면 가만히 있기라도 하자
빠르게 소식을 알려서 그런지 팬들도 안심했다.
“노래 다 들었으면 이제 가봐도 돼. 나중에 내가 다시 연락할게.”
“네.”
“조심히 잘 가고! 오늘은 정말 미안하다.”
정요셉이 손을 휘저었다.
“아니에요. 약간 재밌기도 했고.”
I.P의 작업실에서 나와서 숙소로 가려는데 정요셉이 내 어깨를 딱 잡았다.
“우리 막내?”
“…예?”
“나한테 할 말은?”
나는 바로 대답했다.
“요셉 형, 감사해요.”
“감사하지?”
“당연히 감사하죠.”
그러자 정요셉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면서 택시가 있는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우리 집이나 가자.”
“…예? 숙소에 가는 거 아니었어요?”
정요셉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 데이트하기로 했잖아.”
“그건 농담인 줄 알았는데.”
“내가 농담하는 거 봤어?”
정요셉의 제안에 놀란 나머지 딸꾹질을 했다.
‘어… 이게 아닌데.’
데이트를 하러 어디로 가는데? 그제야 내 어깨에 올라간 정요셉의 팔이 족쇄라는 걸 깨달았다.
“아무튼 우리 집으로 가자.”
“네……? 저는 대답한 적이 없는데…….”
결국 김연호한테 정요셉의 본가에 간다고 연락을 한 뒤 택시에 올라탔다.
“그나저나, 집에 부모님이 있을 거야.”
“…….”
“무슨 뜻인지 알지?”
아니요.
***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정요셉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는 검은색 마스크를 꼈다.
“우리 막내는 마스크 안 낄래?”
“저도 낄게요.”
“자, 껴.”
내가 마스크를 끼자 정요셉은 자연스럽게 아파트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본가는 왜 가는 건데요?”
“너한테 줄 게 있어서.”
“저요?”
“우리 막내, 지난주에 생일이었잖아.”
아, 맞다. 내 생일… 완벽하게 까먹고 있었다. 딱히 생일을 챙기는 성격도 아니었고.
“만우절 날이었나. 연호 형이 연습실에서 우리 막내 생일이라고 하잖아. 그때는 거짓말하는 줄 알고 그냥 넘겼지~”
“그렇다고 본가에 와요?”
“우리 막내 생일 선물을 숙소가 아니라 우리 집 주소로 잘못 시켰거든.”
그래서 본가에 가는 거군. 11층에 도착하자 정요셉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분이 기다리고 계셨다. 정요셉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목덜미를 문질렀다.
“엄마, 오랜만이네요.”
“…요셉아, 왔니?”
정요셉이 어머니를 닮았구나. 그것도 엄청. 아들 혼자 오는 줄 알았는지 어머니는 내 등장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저 표정도 정요셉과 똑같네.’
역시 핏줄은 못 속인다.
“어… 멤버도 같이 왔니?”
“아까 같이 간다고 했잖아요.”
“여기까지 같이 올라올 줄은 몰랐지. 아무튼 안으로 들어가자.”
그렇게 들어선 집 안은 아기자기했다.
“요셉아, 과일이라도 깎아줘?”
“뭐… 마음대로 해주세요.”
“방에 들어가서 조금만 기다려 봐.”
내가 가만히 목석처럼 서 있자 정요셉이 턱짓으로 자기 방을 가르쳐 주었다.
“거실 오른쪽이 내 방.”
“저기요?”
“어, 먼저 들어가 있어.”
“네…….”
정요셉이 알려준 대로 방에 들어갔는데.
‘…허.’
벽지가 꽃무늬였다. 베개 커버랑 이불도 마찬가지. 내가 멍하니 꽃무늬 벽지를 만지고 있자 정요셉이 들어와 물었다.
“꽃무늬 예쁘지?”
“…요셉 형 취향이에요?”
“어, 왜? 우리 막내, 형 취향에 놀랐어?”
“예, 좀 많이…….”
숙소에서 본 정요셉의 취향은 검은색이나 흰색이 아니었나? 정요셉은 책상 위에 있는 박스를 뜯더니 나한테 포토 앨범을 건네주었다.
“우리 막내 생일 선물인 포토 앨범! 그리고……!”
“그리고?”
정요셉은 박스에서 포토 프린터와 그걸로 인화한 사진을 꺼냈다.
“우리 막내가 사진을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어.”
생일 선물로 포토 프린터를 받을 줄은 몰랐다. 침대에 걸터앉아 정요셉이 준 사진을 보는데, 뜻밖의 사진이 튀어나왔다.
“돌연프 사진이네요?”
“어, 싫어?”
“아니요… 그건 아니고.”
힘들 때마다 종종 돌연프 사진을 보고는 했다. 이때가 더 힘들었다고 생각하며 위로를 받으려고.
“멤버들이랑 골랐어.”
“형들이랑요?”
“어~ 포토 앨범은 목현이 형이 골랐고. 이 포토 프린터는 이든이랑 정진 형이 골랐어. 사진 인화는 내가 했지!”
“…그런데 왜 다 사진에 관련된 거예요?”
“우리 막내가 멤버들 사진 찍는 거 좋아하잖아.”
핸드폰으로 사진을 자주 찍긴 했지만, 멤버들도 나를 이렇게 많이 찍었을 줄은 몰랐다. 인화한 사진에서 나는 주로 활짝 웃고 있었다.
‘…행복해 보이네.’
신기할 정도로.
“죄다 제가 웃는 사진이네요.”
“우리 막내, 웃는 모습 귀하잖아.”
“…귀해요?”
“많이 귀하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지금껏 한 번도 나를 위해준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었다. 대부분 나만 버티면 그룹을 이끌 수 있다고 채찍질만 했으니까.
‘…처음이다.’
나를 위해서 선물을 해준 사람들은.
“자, 우리 막내.”
정요셉은 포토 앨범 비닐을 벗기더니 나한테 들이댔다.
“사진을 포토 앨범에 하나씩 넣자.”
그리고 사진을 포토 앨범에 차곡차곡 넣었다. 머릿속에 기억을 적립하는 것처럼.
“고마워요, 요셉 형.”
“역시 앨범이 최고네. 비싼 선물도 아니고 가성비 있는 선물이니까 너무 부담 갖지는 말고.”
“…가성비 있는 건 아닌데.”
가성비 있다기엔 이건 너무 값지고 좋은 추억이 아닌가.
“좋은 추억을 주셔서 감사해요.”
“왜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해?”
정요셉의 질문에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저한테는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때 좋은 기억이 많이 없어서요.”
“…….”
“형들과 함께했던 기억은 희미해지고 나쁜 기억만 크게 남아 있었거든요.”
정말이다.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에서 죽어라 까였던 나날만 기억에 남아 있었다. 원래 사람의 뇌는 간사해서 기뻤던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고, 나빴던 기억만 잘 떠오르니까.
‘…안 좋은 기억이 사라지겠네.’
멤버들 덕분에.
“그렇게 생각한다니까 기분이 좋네.”
“저야말로 감사하죠.”
정요셉은 슬쩍 머리를 흩트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거 보고 있어. 나 화장실 갔다 올게.”
그사이에 정요셉의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오셨다.
“저기, 이거 먹어요.”
내가 일어나서 과일을 받자 정요셉의 어머니가 나를 빤히 쳐다보셨다.
“…내가 나비라고 불러도 될까?”
“네, 물론이죠.”
“잠깐 대화를 놔두고 싶은데.”
“괜찮습니다.”
내 허락에 정요셉의 어머니는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요셉이 말이다… 요새 뭘 하고 있니?”
“런엑스런 미니 앨범 준비 중입니다.”
“앨범 준비는 기사로 봐서 알고 있어. 그냥… 요셉이한테 고민이 없나 싶어서.”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정요셉의 고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맨날 싱글벙글 웃으면서 날 놀리기 바빴지.
“그… 요셉이가 연기는 하고 싶대?”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아직도 연기가 싫다고 하지?”
“…제가 할 대답은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음… 그래?”
정요셉의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같은 멤버한테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어, 네.”
“…우리 남편이 막장 드라마의 사용법에 나온 요셉이를 보고 요셉이한테 연락을 했었거든.”
“아… 그랬군요.”
“…그냥 잘 봤다고 하면 되는데 남편이 요셉이한테 푸념을 했어.”
“뭐라고 하셨는데요?”
“아이돌을 그만두면 안 되겠냐고… 그런 말을 했나 봐.”
…아, 하필.
“사실은 나도 요셉이가 연기를 그만두지 않았으면 하거든. 드라마에 나오는 요셉이의 모습이 반짝거려 보여서.”
“…요셉 형이 연기를 잘하긴 하죠.”
하긴 연기하는 정요셉은 반짝거렸다. 단독 예능을 끝내고 나 역시 정요셉이 등장한 부분을 틈틈이 돌려 봤다.
‘얼마나 잘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런데 정요셉은 연기를 몇 년이나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기를 잘했지.’
정요셉의 부모님이 정요셉의 연기를 못 놓는 이유도 알 것만 같았다. 자기 자식이 연기를 그렇게 잘하는데 그걸 모르는 부모가 어디에 있을까.
“나중에 요셉 형과 직접 대화를 나눠보는 건 어떠세요?”
“…직접?”
“네, 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방법보다 직접 대화를 나눠보면 또 다를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
활짝 웃는 정요셉의 어머니를 보니까 더더욱 정요셉과 닮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엄마가 보고 싶었다. 다음 휴가 때 편의점에 놀러나 가볼까.
“요셉이가 좋은 멤버를 만나서 다행이야.”
“아니에요. 저한테는 요셉 형이 더 좋은 형이자 멤버거든요.”
“그렇게 말해주니까 기쁘네…….”
그때 정요셉이 등장했다.
“엄마?”
“…어, 요셉아.”
“우리 막내한테 잔소리했어요?”
“아니, 그냥 얘기만 했어.”
“진짜죠?”
내가 나서서 잔소리를 듣지 않았다고 하자 그제야 정요셉이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그… 요셉아, 아빠는 안 볼 거니.”
“그건 알아서 할게요, 엄마~”
나는 멤버들이 준 생일 선물을 들고서 정요셉의 어머니한테 인사했다.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또 와.”
“네, 그동안 잘 지내세요.”
“그럼~ 잘 지내야지.”
그러고는 정요셉의 뒤를 따라 아파트 복도로 나왔다. 정요셉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 엄마랑 친해졌어?”
“음… 아마도.”
“이상한 질문도 막 했지?”
“이상한 질문은 안 하셨어요. 그냥 요셉 형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고 하셨어요.”
숙소로 가는 내내 정요셉의 심문에 머리가 아팠다. 그사이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엄마한테 문자를 했다.
(나) 엄마, 다음 휴가 때 내려갈게요.
(엄마) 오지 마.
(엄마) 힘들어.
(나) 엄마?
…음, 우리 엄마는 내가 보고 싶긴 한 걸까?
(엄마) 당연히 나는 울 아들 뒈지게 보고 싶단다^^
(나) 엄마, 뒈지게요?
(엄마) 요즘 유행하는 말이라고 그러던데 아니야?
(엄마) 어머 아닌가 보네^^
(나) 엄마…
나는 그 말이 욕이라고 알려주고는 핸드폰 화면을 껐다. 그리고 며칠 뒤,
[NES 네스트 'RUNXRUN' MV Teaser #1 #범나비]
기다리고 기다리던 런엑스런 티저가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