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상습 표절
런엑스런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 나는 이정진에게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며칠 내내 고민을 하는 것 같던데.
“막내야, 이 곡 말이다.”
“네, 왜요?”
“이거 내가 아는 외국곡이랑 비슷하다?”
“얼마나 비슷해요……?”
이정진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이 원곡을 모르면 노래가 무척 잘 빠졌다고 할 정도로. 코드 진행이 거의 똑같아.”
역시나…….
“사실 몇 코드가 비슷하다고 해서 표절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거든.”
“그렇죠.”
“특히 나는 작곡가로 활동하는 만큼 어떤 작품에 표절이라는 말을 함부로 내뱉으면 안 되긴 하지만…….”
“…하지만?”
이정진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 이건 좀 달라. 코드 진행부터 시작해서 멜로디까지, 전체적으로 빼다 박은 것처럼 똑같아. 이 곡은 나처럼 외국 노래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바로 알아차릴 거야.”
…그 정도라. 이정진은 한참이나 고민하더니 나한테 물었다.
“그런데 막내야, 이 곡 작곡가 누군지 알아?”
“그건 몰라요. I.P 선배님이 그냥 신인 작곡가라고 했거든요.”
“음… 신인 작곡가?”
“왜요?”
내 말에 이정진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막내야, 이 곡… 피처링하지 말자.”
“하지 마요?”
“어, 하지 마.”
이렇게 강경한 모습의 이정진은 처음 보았다.
“그리고 I.P 선배님한테 물어봐.”
“어떤 걸 물어봐요?”
“이번 앨범에 그 신인 작곡가 곡이 더 있냐고.”
우리가 대화를 하는 와중에 김연호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정진아, 네가 찍을 차례래.”
“네, 알겠어요.”
이정진은 의자에서 일어나면서도 나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알았지, 막내야? 네가 표절곡을 피처링했다는 것만으로 큰 사건에 휘말릴 수도 있을 것 같아.”
“알겠어요.”
“그리고 이 문제는 멤버들한테도 말해.”
“네……?”
나는 이정진한테만 말하고 나 혼자 해결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그걸 파악했다는 듯이 이정진은 어깨에 두르고 있던 담요를 벗어 의자에 두고는 입을 열었다.
“막내는 맨날 혼자 생각하고 넘어가니까.”
“…아.”
“이렇게 말하면 모르겠구나. 혹시 그 문제가 커질 경우를 대비해서 멤버들한테 미리 말하라고. 이제 알아듣겠지?”
“형들한테도 말할게요.”
“어, 꼭 말해.”
그렇게 이정진은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는 가버렸다. 멤버들에게 말하기 전에 일단은 I.P한테 톡을 보냈다.
(범나비) I.P 선배님,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선배님이 주신 곡을 들어봤는데 어떤 곡과 유사한 점을 발견해서요. (노래 정보_mp3)
(범나비) 이 곡 들어보시고 연락 부탁드립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 톡을 보낸 뒤에야 나는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으러 갔다.
‘이렇게 말하면 I.P 선배님도 아시겠지.’
***
다음 날, I.P한테 작업실로 와달라는 연락이 왔다.
(I.P 선배님) 시간 있으면 내 작업실로 와줄래?
(I.P 선배님) 할 이야기도 있고.
뮤직비디오 촬영이 끝나고 잠시 시간이 생겨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이정진한테 물어봤더니 다른 멤버랑 같이 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서 이정진한테 추천받은 멤버는,
“오~ 나랑 I.P 선배님 작업실에 간다고?”
“네, 요셉 형이랑 가려고요.”
“나랑~? 막내랑 데이트하는 건가.”
“…일하는 겁니다.”
“아쉽네.”
정요셉이다. 이제 런엑스런 연습을 할 거라는 정요셉한테 같이 가자고 부탁했더니 정요셉은 냉큼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더니 정요셉은 갑자기 나를 바라보았다.
“작업실까지는 어떻게 갈 건데?”
“연호 형이 데려다준대요.”
“그으래~?”
말끝을 늘리면서 정요셉이 씩 웃었다.
“내가 선택받은 거지?”
“네, 선택받긴 했죠.”
선택받았다는 말이 기분 좋은지 정요셉은 어깨를 들썩였다.
“우리 막내는 내가 같이 가서 싫어?”
“그건 아닌데.”
“아니라면 다행이네~”
왜 이정진이 정요셉과 같이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한 건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I.P의 작업실에 가까워지자 차가 멈췄다.
“얘들아, 도착했다.”
“연호 형, 고맙습니다~”
“아니야.”
김연호가 정요셉을 보며 물었다.
“요셉아, 일 끝나면 어디 갈 거야?”
“우리 막내랑 데이트해야죠~”
“그래, 잘 다녀오고.”
먼저 정요셉이 차에서 내리고 뒤이어 내가 내렸다.
“일 있으면 연락할게요.”
“그래.”
그리고 우리는 I.P의 작업실로 올라갔다.
“오, 어서 와!”
작업실 앞에는 I.P가 있었다. 나와 정요셉은 모자를 벗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오~ 요셉이도 같이 왔네?”
“우리 막내가 세상 물정을 몰라서 같이 왔어요.”
“그랬어? 요셉이가 나비를 많이 아끼나 봐.”
“제가 많이 아끼죠.”
“자자, 안으로 들어와.”
나는 정요셉의 옆구리를 치면서 I.P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우리가 소파에 앉자 I.P가 커피를 가져다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나비가 말해준 곡을 들어봤거든?”
“어땠어요?”
I.P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신인 작곡가한테 물어봤어. 이 곡과 비슷한 것 같다고.”
“…그랬더니 뭐래요?”
“…갑자기 화를 냈어. 자기를 표절 작곡가로 몰면 나를 매장시키겠다고.”
매장이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사실 신인 작곡가는 맞는데… 연예계에서 활동했던 사람이라서.”
연예계에서 활동했던 사람이라고……? 대체 정체가 뭐지. I.P는 입맛을 다시면서 뜸을 들였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선배님?”
“…마침 그 작곡가가 작업실로 온다고 했거든.”
“지금 온대요?”
“어, 방금 밑에 도착했대. 들어오라고 해도 될까?”
직접 등판하겠다는 거네. 하지만 나는 작곡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정진이 아니라 정요셉을 데려왔는데 어떻게 하지.
‘…말로 조질까.’
걱정스러워하는 나와 다르게 정요셉은 내 발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고는 씩 미소를 지으면서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아, 오라고 하세요.”
“진짜 괜찮겠어? 싸우면 안 된다.”
“네, 어떻게든 되겠죠.”
정요셉이 능글스럽게 대답하자 I.P도 마음이 놓였는지 호흡을 가다듬었다. I.P가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몇 분이 지나자 신인 작곡가가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신인 작곡가의 얼굴을 보자마자 누군지 알아챘다. 몇 개월 전 남자 아이돌 그룹에서 솔로로 데뷔한 임훼이 선배님이잖아.
“와! 임훼이 선배님이셨네요?”
정요셉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아, 안녕.”
“안녕하세요.”
나도 인사를 하자 I.P의 눈이 커졌다.
“서로 아는 사이였어?”
“당연히 알죠. 이번에 활동이 겹쳤거든요. 그렇죠?”
“어, 맞아.”
임훼이는 짧게 헛기침을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둘 다 훼이를 알고 있었구나.”
“네, 그런데 신인 작곡가로 활동하시는 건 몰랐어요!”
해맑은 정요셉의 말에 임훼이가 눈을 굴렸다. 정요셉은 거침없이 질문을 퍼부었다.
“어쩌다가 활동하게 되신 거예요? 신인 작곡가로 활동하는 건 힘들지 않으세요? 저라면 힘들 것 같은데.”
“…어, 나는 돈이 없으니까. 이번 솔로 활동으로 조금 힘들었거든.”
현실적인 말이다.
“돈이 없어서 작곡을 시작하게 됐다니… 정말 멋있어요~!”
“정, 정말?”
“당연하죠. 저는 돈이 없어도 그런 생각 못 할 것 같거든요!”
임훼이의 경계심이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나였으면 저렇게 경계심을 풀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경계하며 나를 노려봤겠지.
나도 정요셉처럼 임훼이에게 질문을 했다.
“선배님은 언제부터 작곡하셨는데요?”
“그, 그게… 올해부터였나.”
“올해부터 시작했는데 벌써 노래를 내다니 신기하네요.”
“나도 나한테 이런 재능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
“…어디서 배웠는데요?”
“그냥 너튜브…….”
너튜브로 작곡을 배웠다고?
‘어떻게 보면 미친 재능이네…….’
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은 없겠네. 그래 놓고 외국 노래랑 똑같다는 말을 들으니까 달려온 건가.
이정진을 데리고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노력하는 이정진을 보다가 임훼이를 보니까…….
‘…짜증이 나긴 하네.’
그리고 이런 사람과 이정진을 비교하기도 싫고.
“그나저나… 왜 외국 노래랑 똑같다고 그러는 거야…….”
“똑같다고는 안 했어요. 비슷하다고 했지.”
“…그래?”
임훼이가 화내려는 기색을 보이자 정요셉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요. 세상은 넓잖아요.”
“…하지만.”
“그런데 훼이 선배님, 형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친근하고 좋잖아요~”
“…호칭은 마음대로 해도 돼.”
호칭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자 정요셉은 냉큼 형이라고 불렀다.
“저는 훼이 형이 표절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연히 비슷한 곡을 쓰게 된 거 아닐까요~?”
“…그건 그렇지만 오해는 풀고 싶어.”
오해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임훼이를 보며 정곡을 찔렀다.
“어쩌면 표절 논란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깐요.”
“…표절.”
표절이라는 말에 임훼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I.P 선배님이 표절 가수로 낙인찍힐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비슷하다고 했던 겁니다. 임훼이 선배님의 곡을 모욕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네 말도 어느 정도는 이해해.”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나는 돈이 급해서.”
갑자기 왜 돈을 언급하는 거지. 어쩌라는 거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참았다.
“음, 훼이 형 말은 다 이해하죠. 돈이 없다는 말도 이해해요.”
그러자 임훼이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은 돈 잘 벌잖아.”
아직 정산 안 됐거든요… 이 말이 나오기 전에 정요셉이 나섰다.
“에이, 아니면 차라리 이 노래를 훼이 형 솔로로 내는 건 어떠세요?”
“그러면 돈을 못 벌잖아.”
그때 가만히 있던 I.P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 곡은 안 될 것 같다, 훼이야.”
“…여기서 갑자기 이러시면.”
“오랜만에 나오는 정규 앨범인 만큼 작은 잡음도 듣기 싫거든.”
“그럼 저는…….”
“미안. 진짜 안 되겠어.”
I.P가 단호하게 안 되겠다고 말하자 임훼이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가볼게요.”
“그래, 훼이야.”
“…그 미리 주신 돈은.”
“그냥 내가 주는 성의라고 생각해.”
“…그럼 저는 이만.”
마지막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임훼이는 I.P의 작업실에서 떠났다. I.P는 그대로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한숨을 푹 쉬었다.
“얘들아… 도와줘서 고맙다.”
“아니에요~”
정요셉은 싱글벙글 웃었다.
“근데 요셉이 말 잘하더라?”
“저런 사람들이랑 말하면 재밌잖아요.”
“…오,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가 괴상하구나.”
“뭐, 그렇다고도 할 수 있죠.”
원래 정요셉이 기 싸움이나 말싸움을 좋아하긴 했다. 그냥 저런 사람을 누르는 걸 좋아하는 거겠지.
“나비야, 내가 미안해.”
“아니에요, 선배님.”
“거절하지 않고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고.”
“선배님 곡에 피처링하는 걸 거절할 수는 없잖아요.”
I.P는 울상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좋은 곡이 하나 있긴 하거든.”
“…어떤 곡인데요?”
“한번 들어볼래?”
“네, 들어볼래요.”
어떤 곡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들어봐야지.
“그러면 듣기 전에 밥부터 먹을까?”
밥이요?
“저는 갈비찜이 먹고 싶습니다.”
“…나비, 비싼 걸 좋아하는구나.”
“원래 비싼 게 맛있잖아요.”
***
오랜만에 김올팬은 커뮤니티를 돌았다. 런엑스런 앨범 사양과 네스트 자컨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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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SNS에서 봤는데 이거 뭐임?
(작업실로_들어가는_요셉나비_jpg)
(요셉나비_모자를_쓴_jpg)
요셉이랑 나비 둘이 I.P 작업실로 들어가는
사진이 올라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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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ㅅㅂ
└ 아 제발
└ 뭐 사귀는 건가?
└ …일단 가마니
-작업실까지 가는 거면 I.P랑 친한 사이라는 뜻 아님?
└ ㅋㅋ얼마나 친하길래 작업실을 놀러 가?
└ 무슨 작업이라도 하는 거 아닐까…
└ ? 그렇다고 굳이 작업실을 가?
└ 아니 그럼 어딜 가?
-이야 I.P랑 친한 멤버 요셉 나비 둘 중에 누구임?ㅋㅋ
└ 누가 봐도 범나비일 것 같음 ㅇㅇ
└ 왜 친해 둘이?
└ I.P가 나비 목소리 좋다고 그랬음 ㅎ
└ 헐 빼박이네 ㄷㄷ
└ 뭐가 빼박?
└ …알면서 묻는 건 눈새임?
-근데 아직 말 안 나오지 않았나 우리가 섣불리 말하다가 큰일 나는 거 아니야? 요새 기자들 커뮤 반응 다 확인하고 그러던데
└ 22 좀 불안함
└ 33 아직 SNS에서만 말 나온 건데
-불안불안했다 계속 나비랑 I.P랑 일로 엮었잖아
└ 요셉이 나비한테 물들면 안 되는데ㅠㅠㅠ
-사귀는 거 아닌 것 같은데? 저기 I.P 작업실 아님?
└ ㅇㅇ 작업실임
└ 원래 아이돌들 작업실에서 연애하는 거 모름?ㅎㅎ
└ 뭔 아이돌이 작업실에서 연애를 하냐; 멍청이들만 있나 ㅡㅡ
김올팬은 어그로라고 생각했다. 누가 봐도 연애를 하는 사이는 아니지 않나? 연애를 한다면 둘이 붙어 있는 사진이 아니라 I.P랑 같이 있는 사진이 찍혔겠지.
“…절대 아닐 것 같은데.”
김올팬이 처음으로 아니라는 댓글을 달려고 했으나,
[작성자가 삭제한 글입니다.]
이미 작성자가 글을 삭제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네스트 정요셉과 범나비, 무슨 이유로 작업실을?]
[불거지는 열애설? 불안한 팬들…]
기사가 떠버렸다. 근데 왜일까. 김올팬은 딱히 불안하지 않았다. 그냥 팬들이 호들갑을 떨어서 큰 사건으로 만든 게 아닐까 싶은데.
“…범나비가 연애를?”
김올팬은 어이가 없어서 댓글 하나를 썼다.
-너희들 나비랑 요셉이 못 믿음?
└ ㄴㅁㅇ
└ 아니 연애하는 거면 왜 둘이 같이 가겠음? 셋이서 사귐?
차라리 지나가는 개미가 연애를 한다면 믿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