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게릴라 콘서트(2)
떨림이라는 울림은 기적과 같았다.
‘…조용해서 무섭네.’
아무도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작은 소리라도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평일이면 팬이 없을 텐데…….
‘왜 시스템은 게릴라 콘서트를 고집한 건지.’
떨리는 마음을 감추고 한숨을 내쉴 때였다. 주이든이 내 손을 꽉 잡았다.
“…떨려.”
“저도요.”
그러면서 I.P의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네스트는 안대를 내려주세요!”
나는 멤버들의 손을 놓고 안대를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환한 빛이 나를 집어삼키는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와아아아아악!”
“네스트! 네스트!”
화려한 빛 속에서 움직이는 인영을. 나는 숨을 멈춘 채 가만히 팬들의 모습을 눈에 담고 또 담았다.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를 위해서 여기까지 달려와 준 팬들이지 않은가.
“네스트, 게릴라 콘서트 성공!”
I.P의 말에 팬들이 야광봉을 흔들었다.
“네스트! 화목현! 이정진! 정요셉! 주이든! 범나비! 사랑해!”
팬들은 플라워 무대 구호를 외쳐주었다. I.P가 화목현한테 마이크를 건네자 화목현은 멤버들에게 인사하자는 눈짓을 했다.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ONLY ONE 네스트입니다!”
“와아아아아악!”
팬들의 함성에 멤버들이 웃음 지었다.
“제작진분들이 몇 명이 왔는지 알려주셨거든요? 무려 이만 명이 왔다고 합니다.”
이만 명… 만오천 명도 아니고. 어마어마한 숫자에 멤버들의 눈이 커졌다.
“원래 만오천 명까지 수용하려고 했는데,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어서 이만 명까지 뽑았다고 하네요.”
화목현이 허리를 숙이며 I.P를 이겨라 제작진에게 감사 인사를 전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뒤이어 우리도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그때 화목현이 팬들을 보면서 물었다.
“직장인 네온도 있지 않아요?”
“있어요!”
“그럼 학생분들은?”
“쨌어!”
…쨌다고?
“어떻게 쨌어요?”
“내 마음이지!”
“예?”
화목현은 진지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를 위해서 쨌다는 거니까. 그렇다면 오늘 하루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우리를 보러 오셨으니 더욱 행복하게 해드려야지.
“범나비 씨, 네온에게 할 말이 있나요?”
“네, 있습니다.”
나는 I.P에게 마이크를 받아 말했다.
“우리 네온!”
“나비야!”
“사실 누군가를 위해서 시간을 내준다는 것 자체가 엄청 힘들잖아요.”
누군가에게 온전한 내 시간을 준다는 건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 네온들이 우리를 위해서 시간을 내줬다는 생각에 감동이 밀려오더라고요. 앞으로 더욱 노력해서 네온에게 더 잘하겠습니다!”
팬들이 있어 네스트가 있는 것. 고로 팬들이 없으면 네스트라는 존재는 없다.
“와~ 이 멘트는 이길 수가 없다~”
정요셉이 고개를 내저으며 박수를 쳤다.
“우리 막내를 위해서 박수!”
박수갈채가 이어지자 나는 마이크를 I.P에게 돌려주었다. 슬슬 무대 시작을 위해서 I.P가 입을 열었다.
“멋진 멘트도 들었겠다, 이제 무대를 시작해 볼까요? I.P를 이겨라 게릴라 콘서트의 첫 번째 무대는 ‘플라워’입니다.”
무대의 불빛이 꺼지고 우리는 각자 자리에 섰다. 원래 플라워 무대에 필요한 스탠딩 마이크가 없는 데다 인이어로 들리는 음향도 딱히 좋지 않았다.
‘…헤드 마이크가 안 좋네.’
팬들이 앞에 있는 만큼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기에 스태프에게 무선 마이크를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내 자리로 돌아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팬들을 보면서 나는 마이크를 꽉 쥐었다.
‘…잘하자.’
나중에 팬들이 네스트의 무대 중 제일 좋은 무대를 뽑는다면 이 무대를 떠올릴 만큼 팬들을 기쁘게 하고 싶었다. 팬들에게 최고의 기쁨은,
‘자기 아이돌이 무대를 잘한다는 거겠지.’
이 게릴라 콘서트 영상이 퍼져서 팬들에게 자랑거리가 되고 싶었다. MR이 흐르고 이정진이 고개를 들었다.
-nanana- nanana-
nanana- nanana-
***
“플라워! 네스트!”
이백수는 벅찬 마음으로 소리를 지르며 플래카드를 흔들었다. 나비의 파트가 다가올 때였다. 나비가 마이크를 들고 평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한없이 흘러나오는 유혹에
너를 가지고 싶은 욕망에
나는 마음을 졸여-
나비의 고음이 음향을 뚫었다.
‘이건 직캠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고음을 시원하게 지르는 나비의 모습에 이백수는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이백수와 같은 생각인지 모든 팬들이 웅성거렸다.
“라이브 미쳤는데?”
“…와 귀 호강하는 느낌.”
“나비는 우리의 자부심이다…….”
그러자 멤버들도 춤을 추는 동시에 눈동자를 굴려 열창하는 나비를 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따뜻했다.
-I LOVE YOU
가사에 맞춰 팬들이 외쳤다.
“네스트!”
칼같은 호흡에 나비가 팬들을 보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이백수도 똑같이 미소를 지었다.
플라워 무대가 끝나자마자 요셉이 항의하듯이 팔을 번쩍 들었다.
“하, 저 할 말이 있는데.”
요셉이 앞으로 나와서 나비를 쳐다보았다.
“우리 막내, 신난 건 알겠는데… 노래를 그렇게 잘 부르면 어떡해? 따라 부르기 힘들잖아~”
요셉의 앙탈에 나비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 원래 실력대로 불렀는데요?”
“네온들, 봐봐요. 요즘 자꾸 이렇게 뻔뻔스럽게 말한다니깐요.”
나비는 대답하기 싫다는 듯이 화목현의 뒤에 섰다.
“요셉아, 사이좋게 지내야지.”
“아… 형!”
“나비는 막내잖아.”
그러자 주이든이 옆에서 말했다.
“요새 네온들 사이에서 ‘나비스럽다’가 ‘뻔뻔스럽다’라는 말이라고 하던데?”
“그건 이든 형이 미는 밈이잖아요.”
“내가 만들긴 했어도 잘 만들었지?”
이든이가 단독 라이브 방송에서 만들어낸 ‘나비스럽다’라는 밈이었다. 팬들 사이에서 ‘나비스럽다’라는 말이 뻔뻔스럽다는 뜻으로 쓰이긴 하지.
“네온들,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요?”
“응!”
어떤 네온의 대답에 나비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막내가 뻔뻔스럽긴 해.”
가만히 있던 이정진까지 그렇게 말하자 나비가 마른세수를 했다.
“아닌데!”
팬들의 웃음에 나비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웃었죠?”
“아니요~”
“웃었는데? 이러면 다음 무대 못 보여줘요.”
나비가 못 보여준다며 요망하게 고개를 내젓자,
“보여줘!”
팬들은 완강하게 보여달라고 소리쳤다.
“오늘 목현 형이 런엑스런 1분 미리보기를 하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와악!”
아니, 팬미팅도 아니고! 게릴라 콘서트에서 런엑스런 1분 미리보기를 한다고? 이백수는 집에 안 가고 게릴라 콘서트에 온 게 너무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요셉이는 나비 옆으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하지만 MR 없이 불러서 우리 팬분들 귀가 괜찮을지 걱정이 됩니다~”
아무나 MR 없이 부를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네스트는 진작에 라이브를 잘한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에.
하지만 이백수는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근데… 이거 실화가 맞긴 하지?’
몇 년간 덕질했던 이백수지만 네스트처럼 팬 사랑이 지극한 아이돌은 처음 봤다. 월급을 탈탈 털어 팬 싸인회를 갔다가 ‘아, 진짜요?’라는 말을 실제로 들어보기도 했다.
그것뿐이랴. 오랜만에 다 같이 라이브 방송을 켜더니 10분 만에 떠나 슬퍼했던 기억도 있었다.
하물며 이백수는 엔터 앞에서 최애에게 ‘꺼져’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오로지 최애를 보려고 갔다가 사생으로 몰려서 들은 말이었다.
덕질을 안 해본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고는 한다.
‘안 좋아하면 그만이지.’
물론 그들은 사랑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사랑을 줬을 뿐이지.
그러나 사랑은 준 게 죄는 아니었다. 나는 그대로인데 그들이 변한 거니까.
‘나비가 신기해…….’
그래서 이백수는 그런 나비가 신기했다. 한결같이 팬을 사랑해 주는 아이돌이라.
‘꿈에서만 그리던 아이돌이 아닌가.’
그러다가 가만히 네스트의 말을 듣던 I.P가 외쳤다.
“그래서 여러분, 런엑스런 미리보기는 언제 시작하는 거예요?”
I.P의 질문에 화목현이 마이크를 받으면서 대답했다.
“지금 불러 드리겠습니다.”
일자로 앞으로 나온 네스트가 마이크를 받았다.
“박자를 조금 틀려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AA 엔터는 정말 무슨 복을 얻은 건지 궁금했다. 그렇게 런엑스런 1분 미리보기가 시작되었다.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꽃
암흑을 구해줄 빛
이번에는 도입부가 나비다.
-너에게 달려가 Here we go
위아래가 없이 너를 향해서 Here we go
이런 감성적인 가사는 정진이가 쓴 게 분명하다. 런엑스런은 정진이가 작사할 거라고 하더니 진짜였네.
이백수는 정진이의 감성이 마음에 들었다.
‘딱 정진이 같은 느낌.’
-현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꽃 조각을 찾으면
환상에서 나올 테니까.
요셉을 마지막으로 런엑스런 1분 미리보기는 끝났다. 감성적이면서도 드라이브하면서 들을 수 있는 노래. 대중적이면서도 네스트의 컨셉을 잃지 않았다.
“가사만 들었는데도 뭔가 신나는데?”
I.P의 한마디에 굳어졌던 이정진의 표정이 풀리며 사르르 미소를 지었다. 멤버들이 감사 인사를 할 때 I.P가 팬들에게 물었다.
“팬분들은 노래 가사 어때요?”
“좋아요!”
“진짜로 좋죠!”
“네!”
“그러면 이번에는 어떤 음악 방송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네스트의 heart를 듣고 게릴라 콘서트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가끔 행사에서만 듣던 heart를 게릴라 콘서트에서 보다니! 이백수는 여기서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
게릴라 콘서트가 뜨자마자 시스템창이 반짝였다.
「정답, 게릴라 콘서트를 성공했습니다!
풀이:게릴라 콘서트로 ‘네스트’라는 이름이 널리 퍼져 나갑니다.
SNS 동영상 개수 1000개 이상!
SNS 트렌드 1,2000개 이상!
너튜브 알고리즘 조회수 떡상!」
【힌트:아이돌 노트의 영혼】
‘영혼……?’
그런데 힌트가 고작 이거라고? 이게 무슨 소리야. 설마 유령은 아닐 테고. 내가 영혼에 대해 고민하면서 차에 오르자 저 멀리서 I.P가 나한테 달려와 USB를 건네주었다.
“조만간 나 신곡 나온다고 했잖아.”
“이번에 나오세요?”
“어, 이번에 나와. 그 약속, 잊지 않았지?”
아, 피처링해 달라는…….
“그래서 노래 들어보라고 주는 거야. 내가 이번에 받은 곡이 신인 작곡가 노래라서, 피처링 안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거절해도 돼.”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I.P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그래도 해주길 바라고 있지만.”
“듣고 연락드릴게요.”
“그래, 꼭이다!”
I.P는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기론,
‘…이 곡이 표절곡이었지?’
키오 시절에 큰 표절 논란이 있었다. 그 표절곡의 주인공이 I.P였고. 하지만 I.P가 표절한 건 아니고, I.P의 곡을 만든 신인 작곡가가 문제였다.
대중들은 우리나라에서 유명하지 않은 외국 노래의 비트를 표절해서 만든 곡이라고 했으나, 몇 가지 비트가 달라서 표절곡으로 인정되지 않은 사례였다.
그래 봤자 대중의 시선은 싸늘했다. 그렇게 I.P는 표절 가수라는 오명을 얻고 나락으로 떨어져 몇 년간 자숙 기간을 가졌다. 일단은 이 사실을 I.P에게 알려야겠지.
“정진 형, 이 곡 좀 들어보실래요?”
“뭔데?”
“이번에 I.P 선배님 새 앨범이 나오거든요.”
“오, 그래?”
“노래가 어떤지 정진 형이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시간 괜찮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