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109화 (109/235)

109. 게릴라 콘서트(1)

우리는 I.P를 이겨라 촬영이 끝나자마자 게릴라 콘서트 열 준비를 했다.

“이제 30분 남았으니까, 게릴라 콘서트에 올 인원을 말해줄게. 만오천여 명의 팬들이 자리를 꽉 채워줄 거야.”

I.P가 말을 하다가 말고 우리를 한 번씩 훑었다.

“그런데, 게릴라 콘서트가 벌칙인 건 알지?”

“네!”

멤버들이 명량하게 대답했다.

“너희처럼 벌칙을 좋아하는 애들은 처음 봤다. 게릴라 콘서트, 은근 떨리지 않아?”

“떨리는데 재밌어요.”

화목현이 대답했다.

“신기하다… 떨리는데도 좋아하다니.”

대기실에서 자연스럽게 연습을 하는데, 대기실 TV에서 연예 뉴스가 흘러나왔다.

[MC : 오늘 아이돌 커플이 탄생했다고 하는데요.]

아이돌 커플? 멤버들은 아무 관심이 없는지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기 할 일을 했다. 나도 별다른 관심이 없어 옷을 점검하는데 I.P가 물었다.

“너희들, 연애는 생각 없지?”

연애에 대해서는 멤버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딱히 말할 것도 없었을뿐더러 다들 연애에 관심도 없었으니까.

“관심이 없습니다.”

화목현이 바로 선을 그었다.

“관심이 없어도 접근하는 사람은 있을 거 아냐.”

접근이 있었나? 주이든이 시집을 읽다가 눈을 껌뻑였다.

“선배님, 접근하는 사람이 있을 거 아니냐고요?”

“…어, 그렇지 않아?”

“우리를 공격하려고 접근하는 사람은 있을 것 같은데.”

엉뚱한 주이든의 대답에 I.P는 고개를 내저었다.

“못 들은 걸로 해. 너희는 정말 아이돌이구나.”

주이든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아이돌도 연애는 할 수 있겠죠. 근데 저는 별로.”

“왜 별로라고 하는 건지 궁금하네.”

“딱히 사귀고 싶지도 않고… 팬들이 있어서 외롭지도 않아요.”

팬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다. 맞는 말이다.

‘팬들의 소중함을 모르는 녀석들은 연애도 하고 그랬지만.’

나랑 같은 생각인지 I.P가 다시 물었다.

“정말 연애할 마음이 없어? 진짜로?”

그러자 화목현이 아이돌로서 정석인 대답을 했다.

“정말 없습니다. 네스트랑 팬들이 더 소중해요.”

“진심이구나…….”

“어떻게 아이돌이 됐는데, 갑자기 연애에 빠지는 삶은 살고 싶지 않아요.”

화목현의 말이 내 마음을 대변했다. 지금껏 아이돌이 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가. 거기다가 아이돌은 멈춰 서서 한 우물만 파면 되는 직업이 아니었다.

기존의 팬들을 이끌면서 새로운 팬들을 잡아야 하는 게 아이돌이다.

‘…연애가 뭐라고.’

키오 시절, 멤버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연애하긴 했지만… 여긴 연애의 징조조차 없었다.

“나도 너희들을 추궁하려고 그런 건 아니고… 이 바닥이 원래 그렇잖아?”

“압니다.”

“그래서 물어봤다. 내 말이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나는 살포시 웃었다.

“선배님도 걱정돼서 하는 말인 거 알아요.”

“…나비야, 고맙다.”

“뭘요.”

그렇게 연애에 관련된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그래서 옷은, 그대로 교복 입으려고?”

“팬들이 교복을 좋아해서요~!”

“지금껏 교복 컨셉을 한 적이 없어?”

“네, 이번에 좋은 반응이 많아서 계속 입으려고요~!”

정요셉의 말대로 많은 팬들이 교복 입은 걸 좋아해 주셨다. 플라워 음악방송 무대에서는 모나미룩만 입었으니까.

그래서 팬들은 이번에도 모나미룩을 입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모양이었다.

‘모나미룩이 이상하긴 했지.’

그나마 뮤직비디오 촬영 때 입은 옷으로 음방을 돌긴 했지만, 대부분 비슷비슷했으니까.

주이든이 나를 보면서 엄지를 들었다.

“역시 교복이 잘 먹히긴 해.”

“그렇긴 하죠.”

그때 I.P가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

“너희들, 컴백 전이니까 게릴라 콘서트에서 팬들한테 선물을 주면 좋을 것 같은데?”

“선물이요?”

“예를 들면… 재밌는 무대 같은 거?”

I.P의 말대로 게릴라 콘서트에서 선물을 주면 좋을 것 같았다. 아직 런엑스런 컴백 전이고, 오늘 앨범 사양도 올라갔으니까.

그렇다면 런엑스런 무대를 보여주면 어떨까.

“런엑스런 무대를 미리 보여 드리는 건 어때요?”

“어?”

그러자 화목현이 내 의견에 힘을 실었다.

“그렇다면 런엑스런 1분 미리보기는 어때? 돌연프에서 했던 거 있잖아.”

1분 미리보기. 좋은 생각이다. 돌연프에서 했을 때도 반응이 꽤 좋았으니까. 그리고 게릴라 콘서트에 온 팬들이 너튜브에 동영상을 올리면 그것 또한 괜찮은 전략이었다.

‘…네스트를 아는 사람들은 알고리즘을 탈 테니까.’

거기다가 내일은 런엑스런 티저가 올라간다. 생각할수록 괜찮은 의견이다. 이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무대를 하려면 팀장님의 허락이 있어야겠지?”

그때 가만히 앉아 있던 김연호가 말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연호 형.”

정요셉이 부탁한다며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내가 팀장님한테 연락할게.”

“역시 연호 형밖에 없어~”

주이든은 열심히 읽고 있던 시집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나 런엑스런 가사 덜 외웠는데?”

“그럼 이든이 빼고 가사 잘 모르는 멤버?”

화목현이 묻자 주이든만 손을 들었다.

“나만 모른다고? 나만?”

“이든 형이 가사 잘 틀리긴 하잖아요.”

“내가 언제……!”

“플라워 막방 때 ‘네 환상의 플라워’를 ‘네 환장의 플라워’라고 해서 팬들한테 놀림을 받았잖아요.”

덕분에 ‘환장의 주이든’이라는 별명도 생겼지.

“범나비! 나 까먹고 있었는데 왜 아픈 데를 찔러.”

“까먹고 있었어요? 몰랐어요.”

“너! 너어……!”

“진짜로 몰랐어요.”

약이 바짝 오른 주이든은 시집을 내 가방에 넣었다. 주이든은 평소에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아서 주로 내 가방에 물건을 넣었으니까. 그러고 나서 주이든은 의자에서 일어나 이정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정진 형, 런엑스런 가사지 보여줘! 나 지금 외워야겠어.”

“그래, 여기.”

이정진은 가지고 있던 가사지를 주이든한테 건네주었다. 그러자 주이든은 구석에 가서 가사지를 달달 읽었다.

“…네가 필요해.”

그런 주이든을 놔두고 팀장님한테 연락이 오지는 않았는지 김연호한테 물었다.

“연호 형, 팀장님한테 연락 왔어요?”

“…아직. 팀장님도 고민 중인가.”

몇 분 뒤 팀장님한테 연락이 왔는지, 김연호의 낯빛이 좋아졌다.

“어… 얘들아, 팀장님께서 된대!”

그렇다면 런엑스런 MR은 어디서 받아 오지?

“정진 형, MR은 있어요?”

“아니? 없지……?”

어쩔 수 없이 생라이브로 해야겠는데.

“얘들아, 목 풀자.”

화목현의 지시에 멤버들은 각자 목을 풀었다.

“우리 네온들한테 잘 보여야지.”

***

이백수는 떨리는 마음으로 여의도 한강공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줄이 길어도 너무 길었다.

‘내가 들어갈 틈이 있을까…….’

이러다가 커트 당하겠는데… 잠깐이나마 네스트의 인기를 체감할 수 있었지만, 이백수는 걱정이 들었다. 혹시라도 게릴라 콘서트를 볼 수 없을까 봐.

“몇 명까지 수용하는 거야?”

“몰라…….”

“이렇게 기다렸는데 끊기면…….”

팬들의 불평을 들으면서 이백수는 게릴라 콘서트가 언제 시작하는지 검색했다.

-게릴라 콘서트 30분 뒤에 한다는데? 스태프들이 하는 말 들었음

└ 30분 뒤에?

-와씨 개떨린다 게릴라 콘서트 성공할 것 같아? 나도 애들 직접 보고 싶긴 한데 ㅠ 사람 줄 보고 안 갔음

└ (팬줄_jpg) 이 사진을 봐 성공하고도 남음 ㅋㅋ

└ 와 진짜 길다; 30분 전에 통보한 거 맞지?

└ ㅇㅇ 30분 전에 통보했는데도 이렇게 길어

게릴라 콘서트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스태프들이 팬들에게 티켓과 야광봉을 건네주었다. 점점 사라지는 티켓과 야광봉을 보면서 이백수는 마음이 쫄렸다.

‘저러다가 내 앞에서 끊기면…….’

오늘 하루 완전히 꽝이다. 면접도 꽝이고, 게릴라 콘서트도 꽝. 이백수가 속으로 기도 메타에 들어가는 순간, 스태프가 가까이 오더니 이백수에게 티켓과 야광봉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여기까지입니다.”

뒤에서 들려오는 곡소리에 스태프들은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몸을 돌렸다.

‘…허.’

오늘 면접 망쳤는데 이게 다 운을 게릴라 콘서트에 쓰기 위함이었나? 역시 고난이 있으면 행복이 오는 법이었다.

게릴라 콘서트장 안으로 들어가자 스태프들이 주의 사항을 알려주었다.

“네스트가 도착했을 때, 아무 소리도 내시면 안 됩니다. 멤버들이 안대를 벗었을 때만 환호성을 지를 수 있다는 점 유의해 주세요.”

스태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백수는 핸드폰으로 전광판을 만들었다. 소리를 못 낸다면 이런 거라도 해야지.

『면접 망치고 네스트 보러 왔다!』

이렇게 눈에 띄도록 어그로를 끌었다.

“저기…….”

“어, 네?”

“혹시 나비 팬이시면, 제가 플래카드를 만들었는데 하나 가지실래요?”

옆에 있는 네온이 말한 플래카드에는 ‘호랑이야? 나비야? 둘 중 하나만’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거 저 주셔도 돼요?”

“괜찮아요. 어차피 무료 나눔을 하다가 남은 거라서.”

이백수는 왼손으로는 전광판을 들고 나머지 오른손으로는 플래카드를 동시에 들었다. 슬슬 게릴라 콘서트가 시작되려는지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때 무대 조명이 켜지더니 I.P가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교복을 입고 있는 I.P의 등장에 팬들은 차마 소리는 못 지르고 야광봉을 흔들었다.

“…와, 소리를 못 질러서 팬분들 힘드시겠다.”

게릴라 콘서트의 묘미는 ‘몇 명이 왔는가’여서 소리를 지를 수가 없었다. 이백수는 빨리 네스트를 보고 싶어서 숨을 죽인 채 플래카드와 전광판만 계속 흔들었다.

“이 게릴라 콘서트를 어떻게 주최하게 됐는지, 다음 주에 I.P를 이겨라를 꼭 확인해 주세요? 아시겠죠!”

I.P가 I.P를 이겨라를 홍보하는 동안 네스트가 차에서 내렸다. 팬들은 소리를 지르지 못해 끙끙 앓는 소리만 냈다.

“I.P를 이겨라 홍보가 끝났으니 이제 네스트를 만날 차례인데요. 게릴라 콘서트의 규칙을 알고 계시죠?”

규칙을 알고 있다는 듯이 팬들이 야광봉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럼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서로의 손을 맞잡고 무대 위로 올라오는 네스트를 보면서 이백수는 아랫입술을 씹었다.

‘범나비!!!!!!!!’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싶어서. 아침에 떴던 프리뷰에서 본 교복을 그대로 입고 있는 네스트가 눈을 가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게릴라 콘서트의 꽃, 네스트가 무대 위로 도착했습니다.”

나비의 손이 덜덜 떨렸다.

‘나비야!’

사람이 별로 안 온 것처럼 느껴졌나? 나비의 기분을 고스란히 느낀 것처럼 이백수도 떨렸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인터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I.P는 목현의 입에 마이크를 들이댔다.

“화목현 씨, 지금 이 순간! 관객석에 몇 명이 왔는지 가늠이 되나요?”

“…전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몇 명이 왔을 것 같아요.”

“한… 천 명?”

“오, 천 명? 과연 그럴까요?”

천 명이라니. 이백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설마 천 명보다 더 적나요?”

“…어쩌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I.P가 정진에게로 마이크를 돌렸다.

“자, 이정진 씨는 지금 아무것도 들리지 않죠?”

“…네, 아무것도 안 들려서 미치겠습니다.”

“팬들이 안 왔을까 봐?”

“네… 조금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고.”

“네온분들, 정진 씨가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하는데…….”

운다고? 이백수는 정진의 눈물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들떴다.

“다음으로 넘어가서! 주이든 씨, 팬분들을 향해서 한마디?”

“지금 이곳에 계신 팬분들, 빨리 다른 분들한테 전화해서 여기 오라고 하세요!”

다급한 이든의 말투에 팬들에게서 웃음이 터졌다.

“어? 웃었다!”

그리고 요셉이 그만하라면서 이든의 어깨를 쳤다.

“정요셉 씨에게는 게릴라 콘서트가 어떤 의미인가요?”

“음, 심장 박살~?”

“심장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네~ 지금 심장이 터질 것 같거든요. 죽을 것 같아요~ 살려줘~”

귀여운 요셉이의 인터뷰가 마무리되고, 네스트 막내인 나비의 인터뷰만 남아 있었다.

“자! 마지막으로 범나비 씨는 팬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사랑해.”

뜬금없이 튀어나온 나비의 사랑 고백에 네온들은 숨이 막혔다. 그렇다고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나비는 아깝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이러면 소리를 지를 줄 알았는데.”

“와!”

이백수는 나비의 지능적인 플레이에 입을 쩍 벌렸다.

“아쉽네요. 우리 네온들이 규칙은 진짜 잘 지키거든요.”

나비는 미소를 지었다.

‘은근 요셉이한테 잘 배웠다니까.’

저런 장난은 주로 요셉이가 치던 건데 나비도 옮았나 보네.

“그럼 인터뷰도 끝났겠다…….”

“…….”

“게릴라 콘서트의 하이라이트죠. 안대를 벗는 순서가 다가왔는데요. 네스트는 제가 ‘하나, 둘, 셋!’이라고 외쳤을 때 안대를 내려주시면 됩니다!”

드디어 안대를 내리는 순간이 찾아왔다. 팬들은 네스트가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야광봉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하나!”

“…….”

“둘!”

I.P가 한숨을 고르다가 뜸을 들였다

“…셋! 네스트는 안대를 내려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