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마피아(3)
“화목현 먼저 할래?”
I.P는 화목현을 보면서 말해보라는 듯이 눈짓했다. 화목현은 당당하게 교실 뒤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교실 뒤편에 네스트라고, 요즘 잘나가는 아이돌 그룹의 앨범이 있어.”
“어떤 앨범인데?”
“플라워지.”
화목현의 당당한 말투에 I.P가 씩 웃었다.
“땡! 그건 원래 교실 뒤편에 있던 앨범인데.”
“…어?”
…원래 있었던 건데. 화목현의 눈동자가 설핏 떨렸다.
“사실 요새 네스트가 잘나가는 것 같길래, 한번 말해봤어.”
“요새 네스트가 대박이긴 하지…….”
정요셉이 맞장구를 치자 화목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현아, 또 있어?”
그러자 화목현은 자신감이 떨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은… 교실 뒤편 사물함에 올라가 있는 저 작은 종이?”
“그것도 원래 있었는데. 땡!”
이번에는 제대로 찾은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니.
“아니라고?”
의도치 않게 화목현이 트롤이 되어버렸다. 이정진은 나서지 말라는 듯이 화목현을 막아섰다.
“가만히 있어, 목현아.”
“…허, 나도 이제 몰라.”
화목현은 전혀 모르겠다며 나에게 속삭였다.
‘저도 모르겠어요.’
마피아라는 신분 때문에 주변을 여유롭게 살펴볼 겨를이 없어서.
“다음으로 다른 부분을 찾을 사람?”
I.P가 묻자 주이든이 침을 꿀꺽 삼켰다.
“나…….”
“우리 이든이, 맞힐 자신 있어?”
“글쎄?”
“요셉이는 주이든의 답변에 무서워지기 시작했어요.”
“마음껏 무서워해라.”
주이든은 주먹을 꽉 쥐면서 앞으로 나갔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단상 위에 있는 출석부 색깔이 달라졌어.”
“오, 정답. 문제 5개 남았어.”
“그리고 칠판에 있던 펜이 분필로 바뀌었어.”
“와! 주이든 정답! 이제 문제는 4개 남았어.”
막상 하니까 주이든이 새처럼 훨훨 날아다닌다.
“그리고 하나 더! 정요셉의 가방이 보라색이었는데 파란색으로 바뀌었지.”
“정답! 이제 기회는 15번 남았어.”
생각보다 잘 찾고 있다.
“내 가방 색깔은 언제 또 바뀌었어?”
정요셉도 모르는 사이에 가방 색깔이 바뀐 모양이다.
“…어, 이제 문제 몇 개 남았어?”
“3개?”
거기에 이어 책상도 하나 더 생겼다고 주이든이 말했다.
“정답!”
“헐! 나 맞혔다!”
주이든이 신나서 양손을 흔들 때였다. 이정진이 끼어들었다.
“이제 내가 말해도 될까.”
정중한 말투에 광기 어린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양보할게.”
“그럼 사양하지 않고.”
이정진은 I.P의 신발을 보면서 말했다.
“신발이 달라졌어.”
신발이? 일제히 I.P의 신발로 시선이 갔다.
“…이건 모를 줄 알았는데. 정답! 이제 마지막 문제만 남았어.”
마지막 문제만 남았다.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정답을 외쳤으나 마지막 정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주이든은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아는데!”
“아는데?”
“모르겠어…….”
우리가 너무 못 맞히는 바람에 제작진은 힌트도 줬다. 교실의 칠판을 유심히 보라면서.
‘어떤 칠판을 보라는 거지?’
나는 동그란 안경을 벗으면서 칠판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칠판 구석에 적혀 있는 청소 당번이 보였다. 나는 손을 들어 외쳤다.
“청소 당번?”
설마 맞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정답!”
…어, 맞혀 버렸네.
“칠판에 적혀 있던 청소 당번이 범나비에서 정요셉으로 바뀌었어.”
“와!”
멤버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기쁜 척을 했다.
“이렇게 네스트의 승리로 돌아가서, 마피아에 대한 힌트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정요셉이 나를 가리키며 기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우리 막내, 어떻게 알았어?”
“그냥 찍었어요.”
어쩌다 보니.
“나비는 절대 마피아가 아니야.”
그러고는 정요셉이 나를 보며 윙크했다.
‘전 마피아인데요…….’
그렇게 세 번째 게임도 마무리가 되면서 I.P가 제작진에게 마피아에 대한 힌트가 적힌 종이를 받았다.
“네스트 공고의 승리로 마피아에 대한 힌트가 나에게 들어왔거든? 여기에는… ‘이번 컴백 때문에 탈색한 사람’이라고 적혀 있어.”
두 번째 미니 앨범 런엑스런 컴백 때문에 탈색한 사람은 나랑 주이든뿐이었다.
“뭐야? 탈색한 사람은 나비랑 이든이밖에 없잖아~?”
정요셉이 나랑 주이든을 번갈아 보면서 고민에 빠졌다.
“우리가 마피아를 맞히면 게릴라 콘서트 인원이 원래 인원인 오천 명으로 돌아가거든?”
이정진의 말에 I.P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오천 명. 듣기만 해도 아찔하다.
“…마피아를 못 맞히면 만오천 명 그대로지?”
“그렇지.”
정요셉의 질문에 I.P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요셉과 주이든은 고개를 내저었다. 멤버들은 신중하게 마피아에 대해 토론했다.
“…나비는 마피아가 아닌 것 같아.”
“정진 형, 솔직히 나도 우리 나비는 아니라고 생각해.”
“요셉아, 너도?”
왜 내가 마피아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그렇다면 이든이로 뽑을까.”
화목현까지 주이든을 거론하자,
“그래, 마음대로 해라.”
주이든은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하품을 했다.
“자! 이제 스케치북에 누가 마피아인 것 같은지 적어주면 돼.”
멤버들은 각자 스케치북에 이름을 적었다.
‘나는 주이든으로…….’
이윽고 모두 작성했는지 멤버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들었다. I.P는 스케치북을 확인하더니 입을 열었다.
“주이든 3표, 범나비 2표로, 주이든이 마피아로 선택되었습니다. 자, 마피아인 주이든은 일어나서 최후의 한마디를 한 뒤 자신이 마피아인지 알려주세요.”
주이든이 마피아로 선택되었다는 말에 나와 주이든은 눈을 마주쳤다. 주이든은 책상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고개를 숙였다.
“절 뽑아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주이든은 끝까지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고 나에게 다가왔다.
“고생했어, 범나비.”
나는 일어나서 주이든의 손을 맞잡았다.
“이든 형이 제일 수고 많았죠.”
“재밌는 장면이 많이 나왔겠어.”
우리는 카메라에 대고 맞잡은 손을 보여주었다. 이럴 땐 손과 발이 착착 맞았다. 맞잡은 우리의 손을 보면서 멤버들은 당황한 듯 눈이 커졌다.
“네스트 공고에 숨어 있던 마피아는 누구죠?”
“접니다.”
내가 대답하면서 의자에서 일어나자 전혀 예상 못 했다는 듯 정요셉이 어깨를 으쓱였다.
“왜 우리 이든이랑 손을 잡았어?”
“제가 우승하면 받는 300만 원을 나눠준다고 했거든요.”
“배신감 들어.”
“왜요?”
“나랑 손을 잡았어야지! 이든이라니!”
이런 이유였군. 정요셉은 배신감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책상을 두드렸다.
“…이제 나비도 못 믿겠다.”
“어째서요?”
“거짓말하면 얼굴에 바로 드러나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화목현의 말에 나는 눈을 껌뻑였다.
“형들이 알아서 자멸해 주던데요?”
“자멸?”
“저는 토론에 낀 적이 딱히 없어요. 형들이 서로 의심했고…….”
“…그랬던 것 같기도.”
“진짜로 그랬어요.”
다시 촬영본을 돌려 볼 수도 없고. 이정진은 애초에 나를 마피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가만히 있었다.
“범나비 씨가 우승하여, 300만 원을 지급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바로 지급해 주시는 거예요?”
I.P를 이겨라 PD는 봉투를 건네주었다. 진짜인가 싶어서 봉투를 확인해 보니 진짜로 돈이 있었다.
“그렇다면 마피아를 우승한 소감은?”
나는 멤버들을 보면서 활짝 웃었다.
“그런데 저는 이 상금을 기부하고 싶습니다. 이름은 네스트로 해도 될까요?”
그러자 뜻밖이라는 듯이 모두가 놀랐다.
“나비야, 진짜로?”
“네, 어차피 제 목적은 게릴라 콘서트였거든요. 돈은 목적이 아니었어요.”
제작진이 박수를 치자 가만히 있던 주이든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기부하겠습니다.”
“이든 형?”
주이든은 굉장히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이게 좋겠죠?”
“…그래 주신다면 저희는 고맙죠. 그렇죠?”
I.P의 질문에 제작진은 ‘네!’라며 호응했다.
“이렇게 I.P를 이겨라에서 마피아가 최종 우승을 했습니다. 이번에 두 번째 미니 앨범 런엑스런으로 컴백하신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서열 1위 컨셉에서 네스트의 리더로 돌아온 화목현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맞습니다. 두 번째 미니 앨범인 런엑스런은 플라워의 연장선인데요. 이어지는 스토리가 볼 만하니까 뮤직비디오도 많이 봐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일어나 카메라를 보며 인사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그럼 이제 게릴라 콘서트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I.P를 이겨라 촬영이 끝나고, 우리는 게릴라 콘서트를 하기 위해 스튜디오에서 벗어났다.
***
이백수는 회사에서 면접을 보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내가 들어갈 회사는 없네.”
이백수는 덕질을 조금 더 여유롭게 하고 싶었다. 1년 동안 백수로 지냈더니 월세, 휴대폰, 공과금 등 나가는 돈이 많아 통장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으니까.
이대로는 이번 런엑스런 앨범도 살 수 없을 지경이라 충격을 받은 이백수는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다.
이번에 AA 엔터에서 공식으로 나온 인형도 당연히 못 샀다. 돈이 없어서.
언젠간 살 수 있겠지 하면서 미뤄왔더니, 인형과 같이 주는 나비 포카인 ‘호랑말랑인형 나비 포카’의 시세는 한없이 올라갔다.
‘…이번에 나비가 포카를 잘 찍긴 했지.’
원래 이백수의 목적은 인형이었지만 나비 포카도 갖고 싶긴 했다.
‘내 주식은 바닥인데… 포카 시세는 계속 올라가네.’
그래도 오늘은 큰마음을 먹고 이백수는 집으로 가는 길에 AA 엔터 굿즈 스토어에 들렀다. 스트레스볼처럼 생긴 말랑말랑한 인형은 나비의 얼굴에 호랑이 수염을 그린 형태로 귀엽게 나왔다.
“아, 귀엽다…….”
바로 인형을 사고 굿즈 스토어에서 나오자마자 포카를 확인했더니…….
“…뭐야.”
나비 포카는커녕 0.1%로 나온다는 인형 단체 포카였다.
‘이 개같은.’
멤버 단체 포카도 아니고 인형 단체 포카라니. 어디서 상술을 배워 가지고. 이백수는 화가 나서 커뮤니티에 사진을 올리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그래, 언젠간 쓸모가 있겠지.”
===============
[네스트] 나비 얼빡 포카 가지고 싶다…
양 볼에 나비 스티커 붙이고 있는 거…
엔터에서 일을 잘하는 건지
아니면 나비 얼굴이 일을 잘하는 건지
말랑인형 구성 나오자마자
그 포카 보고 놀라서 진짜 뒤로 넘어갔잖아
===============
-ㄹㅇ 말랑인형 포카 다른 애들 얼빡도 개쩔긴 하더라
└ 요셉이 토끼 귀 앙 문 사진?
└ ㅅㅂㅅㅂㅅㅂ 우리 요셉이 포카 장인이라고
└ 이든이 눈썹 상처 포카도 좋더라
└ 아… 내 통장 어떡하냐
“왜 나는…….”
이백수가 한탄하는 사이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
[네스트] 두 번째 미니 앨범 런엑스런 구성 봤음?
앨범 구성 세 가지인데 포스터가 없어
앨범 첫 페이지가 심장에 꽃이 피어난 그림이더라?
이거 뭐야…
개쩐다는 말밖에 안 나오고…
제일 중요한 포카는 세 가지 버전인 것 같음
===============
-와 앨범 구성 미쳤네; 플라워 바이러스 연구지랑 애들 서류 있더라?
└ 앨범 구성 떴음?
└ ㅇㅇ
└ 유출됨
-런엑스런 구성에 수배서는 또 뭐임? 나 아직도 플라워 세계관 이해 못 함ㅋㅋ
└ 컨포에 나비 수배서 나오긴 했음
└ 컨포 확인 안 했네 ㄷㄷ
-나 플라워 세계관 이해시켜 줄 네온 구함 ㅎ
└ 내가 설명해 줘도 됨?
└ ㅇㅇ
└ 내 생각엔… 누가 공장에서 심장에 꽃 피우는 약을 제조한 것 같음. 즉, 나비가 공장에 있는 이유=플라워 세계관 실험자
└ 오 대박
└ 런엑스런 티저가 나와야 자세히 알 것 같지만. 아마 나비가 플라워 바이러스 실험자이자, 유일하게 꽃을 피울 수 있는 존재인 듯?
└ 이런 생각 대체 어떻게 함
└ 그래서 컨포에 수배서 나온 거라고 추측하고 있음 팬들끼리
-나비 플라워 세계관 독자적으로 만들었다고 하더니 대박이다ㅋㅋ
└ 특히 과한 감정 때문에 심장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설정이 오타쿠 심장에 불 지름
-포스터 없는 거 너무 좋아 귀찮았는데 렌티큘러 카드로 바뀌어서 좋음
└ 22
-앨범 구성은 좋은데 애들 헤메코 괜찮을지 모르겠다 ㅎㅎ
└ ㅋㅋㅋ 모나미룩만 아니면 됨
└ 전설의 모나미룩 ㅅㅂ
└ 진심 셔츠만 바뀌고 바지는 똑같았잖아 ㅡㅡ
이백수가 런엑스런 앨범 구성에 눈이 돌아가 있는 그때, 네스트 계정에 알람이 떴다.
==========
[#네스트]
안녕하세요! 특별한 날에 요셉이가 왔어용 =^∇^*=
저희가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비밀을 지켜주실 수 있는 분은
이곳으로 와주시면 될 것 같아요.
여의도 한강공원 물빛무대 꼭 와주세요!
(게릴라_규칙_jpg)
==========
“뭐?!”
지하철역으로 들어서던 이백수는 곧장 다시 밖으로 빠져나왔다.
-저기서 뭐 하는데?
└ 몰라?
└ 아니 얘들아;;
└ 뭐지;
-오늘 애들 교복 프리뷰 뜨지 않았음?
└ ㅇㅇ
└ 그 I.P를 이겨라에서 게릴라 콘서트 자주 하지 않았나? 그거 때문인 듯?
└ ㅁㅊ
└ 꼭 간다
└ 오늘 학원 가는데 ㅠ
└ 오늘 강의 있는데 그냥 빠질까…
└ 회사원은 ㅎㅎ;
꼭 가야지. 게릴라 콘서트라는 댓글을 본 이백수는 황급히 몸을 틀어서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얘들아, 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