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마피아(2)
나는 정신을 차리고 슬쩍 멤버들의 토론에 혼란을 줬다.
“우리 모두가 마피아일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러자 정요셉이 내 말을 덥석 물었다.
“오~ 범나비, 머리 좀 쓰는데? 모두가 마피아일 수도 있다?”
“…응.”
“오호~ 굉장히 일리 있는 말이었어.”
그 말을 듣고 있던 I.P가 턱을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을 할게. 다른 사람이 입던 속옷 입기VS다른 사람이 쓰던 칫솔 쓰기.”
밸런스 게임 질문을 듣자마자 나는 눈에 초점을 잃었다. 주이든이 다급하게 손을 들어서 물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누구 속옷이야?”
“쉽게 친구 속옷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I.P의 발언에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나는 친구가 없다. 있어도… 그나마 멤버들?
“너희들의 속옷이라…….”
멤버들의 속옷?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칫솔도 양호한 상태인가요?”
I.P가 방송작가에게 묻자 방송작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칫솔도 양호하대.”
그렇다면 빨아놓은 속옷과 계속 쓰던 칫솔… 그때 주이든이 질문했다.
“전학생은 어떤 걸 고를 것 같아?”
“나는 말하면 안 되지!”
“안 넘어오네.”
주이든은 입술을 삐죽이다가 다시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미소 천사 컨셉을 잊지 않았다. 그때 조용히 있던 이정진이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나는 칫솔. 차라리 그게 낫지.”
“왜 그렇게 생각해?”
주이든이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칫솔은 그나마 맨날 물로 씻잖아.”
“정진아, 우리가 머리가 있고 눈이 있잖아? 속옷은 우리 생각보다 더러워.”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주이든의 말에는 신빙성이 있었다.
“그런데 속옷도 나쁘지 않은 게, 빨아놓은 거라고 했으니까…….”
“속옷은 원래 빨아야지. 빨래를 안 하면… 악……!”
상상도 하기 싫다는 듯이 주이든은 소리를 빽 질렀다. 화목현은 가만히 있다가 질문을 툭 뱉었다.
“칫솔을 같이 쓰면 안 좋지 않나?”
“왜?”
“비위생적이잖아.”
“그럼 속옷은!”
“속옷은 빌려 입을 수도 있는 거고. 내가 깨끗하게 입으면 되는 거 아닌가.”
“아악!”
주이든이 귀를 막으면서 진절머리를 쳤다. 점점 더러워지는 토론 속에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떻게 보면 살균한 칫솔이 빨아놓은 속옷과 비슷한 느낌 아닐까.”
“요셉이는 잘 모르겠어.”
이제 질문을 회피하는 사람까지 나왔다.
‘아주 난리다.’
이 난리 통에 I.P가 팔을 휘저으며 토론을 끊어냈다.
“토론 끝! 이제 내가 고를 것 같은 선택지를 적으면 돼.”
I.P가 대화를 안 끊어냈으면 더러운 대화가 쭉 이어졌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네. 나는 스케치북을 보면서 고민에 빠졌다.
‘멤버들이 제일 많이 말했던 단어가 뭐였지?’
이윽고 선택지가 떠올라 막힘없이 적었다.
“다 적었으면 다들 스케치북을 오픈!”
스케치북을 공개하자 I.P는 눈을 크게 떴다.
“뭐야? 범나비랑 주이든 둘이서만 속옷을 골랐잖아.”
계획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드러내고자 입꼬리를 씩 올렸다.
“이제 둘이 속옷 같이 입으면 되겠다.”
“정요셉!”
“음… 요셉이는 귀가 멍해서 잘 안 들려.”
정요셉이 귀를 막으면서 아- 하고 소리를 냈다.
“자, 내가 고른 선택지는……!”
I.P가 고른 선택지는 바로,
“속옷!”
바로 속옷이었다. 이번에도 I.P가 이겼다.
“이렇게 내가 이기게 되었네.”
화목현이 억지로 화난 말투로 말했다.
“도대체 마피아가 누구야?”
화목현의 질문에 이정진이 나섰다.
“내가 보기엔 주이든 아니면 범나비.”
“나? 내가?”
“이든아, 이상하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그래.”
이정진이 주이든을 마피아라고 몰아세우자 주이든은 팔로 엑스자를 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마피아다? 그러면 손바닥에 장을 지진다.”
그러자 정요셉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아싸, 우리 이든이가 손바닥에 장을 지진대. 너무나도 기대돼.”
주이든은 가증스럽다는 듯 정요셉을 보더니 나를 가리켰다.
“아니, 범나비도 있잖아!”
“가만히 있던 날…….”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
“설마 마피아라서?”
나는 멤버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주이든을 먹잇감으로 몰았다. 분위기가 토론장으로 변하자 I.P가 손을 들었다.
“자자, 다들 진정하고. 이제 두 번째 게임을 진행해야지.”
어느새 우리 옆에는 의자 두 개와 헤드셋 두 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두 번째 게임은 멤버들이 노래가 나오는 헤드셋을 낀 상태로 상대방의 입모양을 보고서 단어를 맞히는 게임. 간단하고 쉽지?”
이건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던 게임이다. 입모양만 보면 되니까 꽤 쉬운 게임이다.
“너희들이 정답을 5개 이상 맞히면 네스트의 성공으로 돌아가게 될 텐데, 마피아는 잘 생각해. 날 도와줘야지.”
이거, 나는 머리를 잘 써야 한다.
‘…마피아는 네스트의 성공을 바라고 참여하면 안 되니까.’
여기서 내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면 진짜로 못하는 척을 해야 한다… 그때 화목현이 질문했다.
“단어만 있나?”
“오, 화목현! 좋은 질문이었어. 단어도 있고 속담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둬.”
…속담도 있다면 5개는 힘들겠는데?
“자, 첫 번째 팀은 정요셉과 이정진!”
첫 번째 팀이 얼마나 잘하겠어.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너무 쉽잖아?”
“정요셉 잘하더라.”
“내가 입모양을 좀 잘 보거든.”
웬걸, 정요셉과 이정진의 팀워크는 환상적이었다.
“정요셉과 이정진이 총 3개를 맞혔네.”
…젠장, 멤버들이 너무 잘해도 문젠데.
“다음 팀은… 주이든과 범나비!”
주이든이 콧김을 내뿜었다.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다. 이번이 기회다.
‘실패할 기회.’
나는 의자에 앉자마자 헤드셋을 꼈다.
“잠깐만, 이거 너무 안 들리는데요?”
마침 헤드셋에서 플라워가 나와서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그때 주이든이 헤드셋을 강제로 벗기더니 내가 끼고 있는 뿔테 안경을 벗겼다.
“안경은 왜…….”
내 질문에 주이든이 말했다.
“어차피 도수 없는 안경인데, 이러면 내 입모양이 더 잘 보일 테니까.”
뿔테 안경을 껴도 입모양은 잘 보이지 않나? 주이든이 자기 입술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내 입모양 잘 보여?”
주이든의 입모양?
“잠시만.”
다시 헤드셋을 끼고 주이든의 입모양을 확인했다.
[…열!]
“열?”
[이…]
이 뒤로 뭐라고 하는지 전혀 안 들렸다. 나는 다시 헤드셋을 벗어 고개를 저었다.
“전혀 모르겠는데…….”
“우리 큰일 났다.”
순간 주이든의 입에서 ‘좆 됐다’가 나오는 것 같았는데. 주이든이 답답하다며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으나 화목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주이든에게 말했다.
“날 믿어.”
“못 믿겠는데?”
…이건 좀 기분이 나쁜데.
“나 열심히 할 자신 있어.”
“진짜지……?”
“응, 열심히 안 하면 내가 산으로 들어가서 자연인이 될게.”
“나, 진짜로 너 믿는다.”
“응, 믿어도 돼.”
“설마 마피아는 아니겠지?”
“설마.”
주이든이 날 믿는다면서 새끼손가락까지 걸었다.
‘이든 형, 미안해요. 절 믿지 마세요.’
나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헤드셋을 꼈다.
[범나비.]
“응?”
[시작.]
주이든이 입모양으로 시작한다고 말해주길래 고개를 끄덕였다. 입모양 보고 맞히는 거, 은근히 쉬울 수도 있겠는데? 하지만 그 생각은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1초 만에 바뀌었다.
[이거! 이거! 발!]
“발?”
발이 왜.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발가락에 나는 거!]
“발가락에 나는 거.”
발가락… 발가락에 나는 거?
“털?”
[아니라고!]
“아니라고? 그럼?”
주이든이 다시 한번 천천히 단어를 설명했다. 그런데 왜 자꾸 아래를 보는 거지?
“아래?”
[아니야!]
아니라는 말은 또렷하게 눈에 읽힌다.
[속담! 속담!]
“아~ 속담!”
[발가락에 나는 거야. 이거 굉장히 아파!]
발가락에 나는 건데 고통이 동반한다는 거지? 그렇다면 사마귀?
“사마귀?”
[아니야!!!!!!!!!]
“…예? 아니라고요?”
[다른 거! 다른 거!]
“다른 거라면 티눈? 티눈이에요?”
[어! 티눈!]
“근데 티눈이…….”
저게 무슨 말이지. 내 말에 안 그래도 큰 주이든의 눈이 더 커지더니 이번에는 주이든이 어깨를 흔들었다.
‘답답한 모양인데.’
이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형, 어깨 움직이지 말고 말을 해요.”
[정답을 맞히라고!!!!!!!]
“정답은 맞히고 있는데요…….”
나도 급한 나머지 반말 컨셉이 아닌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그럼 뭐지?’
다시 주이든이 무어라 설명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답답해! 패스!]
“패스?”
문제를 패스하고 주이든이 다시 설명을 했다.
[단어!]
“단어!”
[어! 단어인데!]
“단어인데?”
뭐지?
[활짝!]
“활짝?”
활짝 피는 거?
[우리!]
저게 도대체 뭐야. 주이든은 발을 동동거리다가 무슨 춤을 췄다.
“춤?”
갑자기 왜 춤을 추지…….
[아래!]
“그나저나 왜 계속 아래를 보는 거예요? 혹시… 이 단어 너튜브니까 언급해도 돼요?”
[아니!]
“아래? 하체?”
그러자 이상하게 멤버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발을 동동거리는 사람은 주이든밖에 없었다. 도통 대화가 통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렀고, 마침내 주이든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악!]
왜 이런 단어만 읽히지.
“아악? 왜 아악이에요? 이든 형, 설명을 해요. 그래야 제가 대답을 하죠!”
[너 잘났다!]
이제 주이든은 포기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끝이라는 듯이 멤버들이 팔로 엑스자를 그리자 나는 헤드셋을 벗었다.
“아니, 이든 형은 도대체 왜 계속 아래를 쳐다봐요?”
“아래가 아니라고! 입모양을 봐야지!”
“입모양을 봐도 모르겠던데요?”
“아오!”
계속 아래를 보길래 이상한 상상을 했는데.
“그래서 정답이 뭐예요?”
“발가락의 티눈만큼도 안 여긴다랑 플라워.”
속담은 어려워서 설명을 제대로 못 한 것도 이해는 하는데. 플라워 설명은 왜 이렇게 못해?
“아니, 플라워인데 왜 계속 활짝이라고 말해요?”
“활짝 몰라? 꽃은 활짝 펴.”
“…아니.”
쉬운 단어를 굳이 그렇게 어렵게 낸다고? 주이든이 포기했다는 듯이 양팔을 들었다.
“우리 이런 부분은 잘 안 맞네.”
“그러게요…….”
“아쉽다, 아쉬워.”
다른 건 잘 통하는데, 이건 안 되는구나.
“범나비… 마피아 같은데?”
정요셉이 그렇게 말하며 나를 수상하게 보았으나,
“다음은 이정진, 주이든!”
다행히도 다음 차례인 이정진과 주이든이 문제를 더럽게도 못 맞혀서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내가 너무 쉽게 이기는 것 같은데? 또 오천 명이 늘어났다는 사실, 알지?”
마피아에 대한 힌트를 얻지 못한 멤버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렇게 게릴라 콘서트의 인원이 만오천 명이 되었다.
‘이대로 가면 인원이 이만 명이 되겠네.’
그때 이정진이 말했다.
“마피아, 너무 잘하는데?”
내가 잘한다고? 옆에서 주이든이 심드렁한 말투로 말했다.
“마피아 범나비라니까.”
“우리 나비는 가만히 있는데 왜 그래, 이든아.”
“정요셉! 너는 모르겠어?”
“요셉이는 모르겠어.”
다시 한번 싸움이 번질 수도 있었는데, 스태프가 나와 슬레이트를 쳤다.
“30분 쉬겠습니다!”
나는 뿔테 안경을 벗으며 눈 주변을 문질렀다. 주이든의 입모양에 집중해서 그런지 눈이 아팠다.
“화장실 갈 사람!”
“저요~”
“나.”
주이든을 제외하고 모두가 화장실에 간 틈을 노려 나는 주이든과 접선했다. 내가 할 일은 따로 있었기 때문에.
“이든 형, 저랑 대화 좀 나누시죠.”
“뭔데?”
“형은 마피아가 누구라고 생각해요?”
주이든은 인상을 찌푸리며 턱짓했다.
“너.”
“그렇다면 제가 마피아인 것 같다고 계속 말해주세요.”
나는 조용히 주이든의 귀에 대고 말했다.
“제가 마피아라서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면서 주이든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그래서?”
“마피아가 우승하면 300만 원을 받거든요.”
“300만 원… 뭐?”
주이든의 목소리가 한층 온화해졌다.
“제가 우승하면 150만 원 드릴게요.”
“…반을 주겠다고?”
“네, 그러면 형도 좋고. 저도 좋고.”
“이걸 왜 나한테……?”
“계속 형이 마피아라고 몰리고 있잖아요. 그걸 이용하자는 거죠.”
“…이럴 땐 죽이 척척 맞는다?”
“죽이 척척 맞으니까 이든 형한테 말하는 거죠.”
주이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오천 명이든, 만오천 명이든 우리를 보러 오는 인원이 많다면 좋은 거 아닐까요.”
그 말에 주이든의 표정도 온화해졌다.
“그래, 해보자.”
내가 손을 내밀자 주이든이 세게 맞잡았다. 이렇게 주이든과의 거래가 체결되었다. 그래서인지 주이든은 아까보다 더더욱 의욕적인 티를 냈다.
멤버들이 도착하자 주이든은 나를 보며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내 생각에는 역시 범나비가 수상해.”
“또또! 우리 이든이, 어디서 우리 막내한테 수상함을 느꼈을까?”
“그냥 수상하잖아!”
내가 준 손수건으로 물기를 닦던 정요셉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긴 우리 나비가 의심스럽긴 해.”
“맞지? 범나비 의심스럽다니까.”
“그런데 자꾸 그렇게 몰아붙이는 너도 수상해.”
“…내가?”
“형들, 봤어?”
정요셉이 여유롭게 다리를 꼬며 말했다.
“평소의 이든이었으면 자기는 아니라고 박박 우겼을 텐데.”
“…에이.”
“지금도 화내지 않고 있어, 형들!”
그러자 주이든이 나한테 몰래 윙크를 하면서 입모양으로 ‘잘했지?’라고 말했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주이든다워서 웃음을 참았다.
다시 촬영이 돌아가고, I.P가 교탁에 섰다.
“벌써 마지막 게임인데.”
“와!”
“정요셉, 좋아하면 안 돼.”
정요셉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I.P가 출석부로 단상을 두드리며 우리에게 경고했다.
“벌써 세 번째 게임이자 마지막 게임이 시작할 거야.”
그러면서 I.P는 말을 이어갔다.
“마지막 게임은 교실 틀린 그림 찾기. 너희들이 쉬는 동안 교실에 새로운 물건이 생기거나 사라졌어. 전과 달라진 부분 6개를 찾으면 네스트의 승리야.”
“마피아는?”
“마피아는 당연히 대답을 틀리게 해야지. 기회는 총 20번.”
멤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둘러보았다. 그때 I.P가 물었다.
“벌써 찾은 사람?”
I.P의 물음에 화목현이 손을 들었다.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