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99화 (99/235)

99. 컨셉 도둑놈

그러니까 김연호의 말은, 내가 무인도에서 예능을 찍을 동안 KIN이 컨셉 회의 일자를 앞당겼다는 것. 내가 준 런엑스런 컨셉 PPT로 회의를 하는데 KIN은 마음에 안 든다며 태클을 걸었다고 했다.

플라워 앨범보다 런엑스런 앨범에 들어가는 돈이 많다는 이유로.

‘…스트레스.’

그놈의 돈타령. 그래서 두 번째 미니 앨범인 런엑스런도 CG는커녕 돈이 들어가지 않는 방향으로 뮤직비디오 감독과 상의를 했는데, KIN의 귓구멍에는 아직 들어가지 않은 모양.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AA 엔터 회의실에 도착했다.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화목현이 제일 먼저 반겨주었다.

“나비야.”

“목현 형, 잘 지냈어요?”

1박 2일.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같은 멤버의 얼굴을 보니까 좋긴 했다.

“응, 너는 다친 곳은 없고?”

“…네, 살짝 몸이 뻐근한 것 빼고는 괜찮아요. 다른 형들은요?”

“잠시 연습실에. 그런데 나비야…….”

화목현의 목소리가 길어지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저 여기로 오면서 연호 형한테 들었어요. 제가 없는 사이에 런엑스런 컨셉 회의를 했다면서요?”

“…그래.”

“KIN 프로듀서가 아예 안 된다고 했어요?”

“아예 안 된다고 그랬어.”

확정된 결과에 나는 의자에 기대며 분노를 삭였다.

“왜 아예 안 된다고 그랬어요?”

“플라워 앨범에 돈을 많이 썼다고 엔터에서 더 이상 투자하지 않겠대.”

…들은 대로네. 가지가지하는군. 이런 마음으로 왜 아이돌을 만든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네스트가 그렇게 망돌도 아니지 않은가.

‘…플라워 48만 장이면 많이 판 거 아닌가?’

신인치곤 괜찮은 수치인데. 뒤이어 팀장님이 회의실에 등장했다.

“어, 나비야!”

“팀장님.”

멤버들보다 팀장님이 더 일찍 오셨다. 일단 팀장님한테 인사를 했다.

“저, 팀장님.”

“응?”

그리고 팀장님이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질문을 했다.

“왜 KIN 프로듀서는 계속 돈이 없다고 그러는 거예요?”

“글쎄다…….”

“혹시 돈이 있는데 돈이 없다고 하는 건 아닐까요.”

그러자 팀장님의 외마디 소리를 뱉었다.

“아!”

나랑 화목현은 무슨 일인가 싶어 팀장님을 쳐다보았다.

“사실 지금 아이돌 사업 본부에 본부장이 없어서, 계속 배우 사업 본부 본부장님한테 결재 서류를 넘기고 있거든?”

“…네.”

“그런데 그 본부장님이 아이돌 쪽은 잘 몰라. 그래서 자꾸 돈이 없다고 그러시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그쪽 본부장이 왜 이렇게 돈이 많이 필요하냐고 따질 수도 있다? 일리가 있다.

“저는 그분을 본 적이 없어요.”

“아, 하긴 나비는 본부장님을 아직 못 봤겠구나.”

“네, 목현 형…….”

이렇게 운영을 하는 엔터가 있다는 것도 웃기긴 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첫 번째 미니 앨범인 플라워도 KIN 프로듀서랑 같이 갔고… 이번 두 번째 미니 앨범인 런엑스런도 KIN 프로듀서랑 같이 갔었는데.”

잠깐만… 같이……?

“팀장님, KIN 프로듀서랑 왜 같이 갔어요?”

“…같이 가고 싶다고 하던데? 본부장님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다고 해서.”

KIN은 이 AA 엔터의 생태계를 잘 아는 놈이다.

‘어쩌면 좋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단 하나. 우리도 똑같이 배우 쪽에 있는 본부장을 포섭해야 한다.

“그 배우 쪽 본부장님한테는 런엑스런 컨셉을 말해봤어요?”

“…말했는데 우리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길래.”

“알아서 하라고요? 런엑스런 컨셉을 보기는 했을까요.”

“…보통 결재 서류만 봐서 네가 만든 PPT는 안 봤을 거다. 내가 알기론.”

…가슴이 묵직하고 답답하다. 곧바로 쓰레기통에 처넣을 정도로 그렇게 나쁜 컨셉은 아닌데.

“…그럼 팀장님.”

팀장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KIN 프로듀서의 의견이 바로 본부장님에게 전달되나요?”

“아마도? 그 본부장님은 KIN 프로듀서가 다 하는 줄 알거든.”

“그래요?”

“응, 네스트의 프로듀서로 알고 있으니까.”

내 한숨에 팀장님이 미안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차라리 내가 본부장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미안하다.”

이 문제는 KIN 프로듀서가 계속 우리를 막아서 생기는 일이지, 팀장님이 미안해할 필요는 없었다. 화목현이 옆에서 팀장님을 다독거렸다.

“팀장님, 지금까지 저희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목현아, 고맙다.”

화목현의 위로에 팀장님이 고맙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우리 본부장님은 언제 오시나요?”

“그래도 하반기에 새로운 본부장이 아이돌 쪽으로 온다고 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건 다행이지만. 우리의 문제는 컨셉인데. 이대로 가다가는 런엑스런 활동은 시작도 못 하고 끝나게 생겼다…….

특히 런엑스런은 플라워의 연작처럼 이어지는 노래라서 활동을 못 하면 큰일이다. 더군다나 플라워 쇼케이스 때 런엑스런 홍보까지 하지 않았나.

‘…이걸 KIN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대화의 끝자락으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팀장님을 붙잡았다.

“팀장님, 저 하나 부탁드려도 돼요?”

“뭔데? 나 나비가 부탁한다고 하면 떨려서 심장이 조금 아파.”

“저 본부장님과 만나게 해주세요.”

일단 직접 부딪히고 봐야지.

“어떤 말을 하려고?”

“런엑스런 컨셉에 대해서 제가 직접 설명하고 싶어서요.”

“…그거면, 뭐.”

팀장님은 알겠다고 대답하더니 전화를 받는다며 나가 버렸다. 나는 의자에 노곤한 몸을 기대고 화목현을 바라보았다.

“형들은 언제 와요?”

“아마 지금쯤 오고 있을 거야.”

“그래요?”

핸드폰으로 단톡방을 확인했다. 내가 없던 사이에 톡이 많이 쌓여 있었다.

(정요셉) 막내는 뭐 할까?

(주이든) 옆에 있는데 굳이 톡을 해?

(정요셉) ㅇㅉㄹㄱ

(이정진) 또 싸워?

(화목현) 오늘 저녁은 뭐 먹을래.

(정요셉) 치킨?

(이정진) 치킨은 내가 사줄게. 둘이 그만 싸워.

(정요셉) 넹 (。•̀ᴗ-ღ)

(주이든) 아싸!

…재밌게 놀았네. 언제나 사이는 좋고. 그 톡을 읽으면서 웃을 때였다. 회의실 문이 활짝 열리더니 뛰어 들어온 정요셉이 나를 끌어안았다.

“우리 막내, 보고 싶었어~!”

“…요셉 형, 저 숨 막혀요.”

정요셉이 나를 보자마자 눈물 흘리는 시늉을 했다.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

“예, 알죠…….”

“우리 막내는 형들이 그립지 않았어?”

그립지 않았냐는 말에 아니라는 말이 나올 수가 없었다. 바다를 보면서 멤버들이 떠오르긴 했으니까.

“뭐, 그리웠어요.”

“진짜로?”

의외의 답변이라는 듯이 정요셉이 내 옆에 앉았다.

“우리 막내, 살아남아라 촬영은 어땠어?”

“촬영 자체가 재밌었어요.”

“그래? 우리랑 같이 있는 것보다?”

“그건 아니죠.”

정요셉이 뿌듯하다는 듯이 내 어깨에 팔을 올렸다.

“상금은 탔어? 살아남아라 예고편 보니까 상금이 1억이던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스포라 말할 수 없어요.”

“아~ 재미없어.”

정요셉의 흥미가 식은 듯하자 나는 맞은편에 앉은 이정진한테 물어보았다.

“정진 형, 저 들었어요.”

그러자 이정진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 런엑스런 컨셉 이해도가 낮은 탓에 내가 제대로 된 설명을 못 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 같아.”

“제 생각에는 정진 형이 설명을 못 해서 일어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막내가 날 믿고 맡겨줬는데.”

그러자 주이든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진 형이 의견을 밀어붙였는데도 안 된다고! 안 된다고!”

“그랬어요?”

“어!”

이 의견에 화목현이 말을 덧붙였다.

“초반에 PPT를 보고서 KIN 프로듀서가 놀랐어.”

“왜요?”

“나비가 앨범을 CD 플레이어처럼 만들고 싶다고 했잖아.”

런엑스런 컨셉은 약간 90년대 느낌으로 잡고 싶었다. 그래서 앨범 모양을 CD 플레이어처럼 만들면 안 되냐고 했었다.

“나비의 의견은 좋았던 것 같아.”

내 의견이 좋으면 뭐 하나. KIN 프로듀서가 안 된다고 그러는데. 주이든이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딱 봐도 KIN 프로듀서는 범나비 컨셉이 좋으니까 괜히 싫다고 하는 거겠지.”

“이든아.”

“아니, 목현 형! 맞잖아! 누가 봐도 범나비가 만든 컨셉이 좋은 게 뻔히 보이는데! 플라워에 이어 세계관이 이어진다는 설정도 얼마나 좋아? 거기다가 앨범 컨셉까지 있는데.”

“그건 그렇지만.”

화목현이 인정하자 입에 불이 붙은 것처럼 주이든의 말이 빨라졌다.

“그거 들었지? CD 플레이어 컨셉 별로라는 듯이 말하는 거. 자기 말투가 제일 촌스러우면서!”

화목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주이든… 누가 들어.”

“걱정하지 마. 누가 들어도 맞는 말이라고 인정할걸.”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숙소 제외하고 이런 말은 하지 마.”

“예~”

주이든은 듣기 싫은지 입술을 쭉 내밀며 의자에 몸을 맡겼다. 화목현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 막내는 본부장님 만나서 어떻게 하려고?”

“말은 해봐야죠.

그러자 정요셉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배우 쪽 본부장님 은근히 까탈스러워.”

“…어떻게 알아요?”

“전에 한번 뵌 적이 있는데, 나보고 아이돌을 왜 하는지 물어보길래 ‘이 일이 좋아서’라는 답변을 했다가 혼났거든. 연예계에 들어왔으면 정확한 꿈과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꿈과 목표… 지향점이 있는 분. 정요셉의 말에 주이든이 반박했다.

“어, 나랑 다르네. 내가 보기엔 좋은 분이었어.”

“좋은 분이요?”

“…요셉이처럼 왜 아이돌이 되고 싶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었거든. 그때 내가 생각해도 꽤 잘 대답했어. 그랬더니 커피도 사주시고 그랬지.”

옆에서 정요셉이 이건 차별이라고 했지만, 본부장님은 내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하는 분일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막내야, 본부장님을 만나서 어떻게 하려고?”

“컨셉 PPT를 보여 드릴 거예요.”

그리고 내 계획을 멤버들한테 말했다.

“근데 본부장님이 안 만나려고 하시면~?”

나는 정요셉을 보면서 말했다.

“죽치고 그 앞에 앉아서 기다려야죠.”

배우 쪽 본부장이 런엑스런 PPT 보는 모습을 꼭 봐야겠다. 일단 PPT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그림을 더 넣고, 설명은 간략하게 줄여야겠다.

그런데 나만 본부장을 만나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형들, 도와주실래요?”

***

며칠이 지나고, 배우 쪽 본부장을 만날 날을 기다렸다. 그동안 커뮤니티에 네스트 컴백이 늦어진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

[네스트] 런엑스런 컴백 일정 밀렸나?

아무 떡밥이 없네;

떡밥 없는 공백기는 너무 힘든데…

이건 그냥 엔터가 일을 안 하는 거 아님?

그렇게 떡밥을 뿌렸으면 컴백 빨리 해야 하는 거 아닌지?ㅋㅋ

===============

-엔터 쪽에서 이렇게 아무 떡밥 없는 거면 확실히 밀린 거 확실함

└ 너튜브 콘텐츠라도 만들어ㅠㅠ

└ ㄹㅇ 떡밥 자체가 없음 너무 조용하잖아 이게 뭐임 예능만 돌면 다인 것 같나?

-밀려도 런엑스런은 보여주자 제발 쇼케이스에서 다음 앨범 런엑스런이라고 했잖아 나 기대 중이라고 ㅠㅠ

└ ㄹㅇ 컨셉 확실해서 좋았는데

└ 엔터가 능력이 없어도 너무 없다

-그냥 AA 엔터가 네스트를 데리고 있는 것부터 분수에 안 맞았어

└ ㅇㅈ 이남주가 AA 엔터 나간 거 너무 잘한 선택임

└ 남주는 정말 미래를 봤던 거니?

└ ㅠㅠ 크래프트 엔터도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망돌 엔터라도 첫 앨범 나오면 후속곡 바로 하는 편인데 이게 무슨 짓임?

└ 망돌 엔터가 아니라 ㅈ같은 엔터라서 그럼

└ ㄹㅇ 반응도 좋았잖아 초동 48만 장…

당연히 팬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떡밥도 없는 아이돌을 누가 좋아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팀장님) 회의실로 올라와.

기다리고 기다리던 팀장님의 톡이 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