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예능 살아남아라!(6)
‘무인도에 주택이 있는 사실부터 이상하긴 했지.’
아마 제작진은 주택을 뒤져보는 상황을 원했을 것이다.
“찢어진 보물 지도 상과 하를 합치면 주택이 떠.”
“보물은 확인했어요?”
“어, 확인했지.”
어떤 보물일까 물어보려는 찰나,
“보물이 뭔지는 말 안 해줄 거다?”
내가 발을 들자 박정후가 움찔했다. 방심하는 사이에 정강이를 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정통으로 들어갔는지 박정후가 괴롭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야!”
“주택에 그대로 있어요?”
“…그건 내가 말해줄 필요가 없지 않나?”
한 번 더 때리려고 발을 들자 박정후가 소리쳤다.
“아! 가보면 되잖아!”
하긴, 가보면 된다. 하지만 보물이 그 자리에 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박정후가 보물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놔뒀을 리가 없으니까.
“거짓말은 아니죠?”
“아니야. 내가 이 시점에 거짓말을 하겠어?”
“예.”
“…이 나쁜 놈.”
나는 박정후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작게 하품을 했다.
‘이제 마이크를 차도 되겠지.’
나는 대충 마이크를 차고 난 뒤에 어제 먹다 남은 라면 사리를 가져와 부쉈다. 그러고는 가방을 열어 남아 있던 라면 수프를 꺼냈다.
“뭐 해?”
“아침 먹으려고요.”
“아침을?”
그리고 라면 수프를 넣고 흔들었다.
“그거 먹게?”
“정후 형, 배고프죠?”
“어…….”
“줘요?”
내가 라면을 보여주자 박정후는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어쩌지.
“아, 정후 형은 손이 없네요. 제가 손수 먹여 드릴까요?”
“돼, 됐거든. 미쳤냐……!”
“왜 거절해요. 어제 저녁도 제대로 못 먹었잖아요.”
억지로 생라면을 박정후의 입에 넣어주었다. 박정후가 괴롭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자 나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웃어요.”
“…미친.”
“친한 동생이 생라면을 먹여 드리는데 웃어야죠.”
내가 박정후를 괴롭히는 동안 해가 떠오르자 이서혁과 이남주가 일어났다. 내가 박정후한테 생라면을 먹이고 있는 모습을 본 이서혁이 입을 쩍 벌렸다.
“뭐야? 둘이 많이 친해졌네.”
“친하긴!”
박정후가 필사적으로 반박했다.
“친해졌어요.”
“야!”
“정후 형, 저는 우리가 순수하게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정후 형은 아니에요?”
내가 카메라를 보면서 우는 시늉을 하자 박정후는 내 시선을 피했다.
“…하, 친해졌지.”
“그쵸?”
이서혁은 내 머리를 토닥였다.
“역시 젊어서 그런지 용서도 잘하네.”
용서는 무슨. 저 멀리서 디아 선배님과 서고운이 도착했다.
“뭐야, 다 일어났네?”
“…산책 갔다 오셨어요?”
디아 선배님이 뒷덜미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운이도 일찍 일어났길래 산책 다녀왔지. 여기 풍경 좋잖아.”
“풍경이 좋긴 하죠.”
“그런데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길래 분위기가 이렇게 심각해?”
“정후 형이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셨거든요.”
그러자 모두가 박정후를 쳐다보았다.
“어쩌다가 알려줬어?”
“그거야…….”
서고운도 궁금했는지 눈을 크게 뜨며 나한테 물었다. 이남주가 검지로 자기 뺨을 가리켰다.
“제 뺨을 봐서라도 알려주긴 해야죠.”
“…그건 어제 미안하다고 했잖아.”
“손바닥 마주 대고 빌지는 않았잖아요?”
“이 미친놈…….”
사실 발까지 싹싹 빌었는데 새벽이라서 카메라에 잡히질 않았다. 이남주는 그걸 다시 환기시키더니 박정후한테 카메라에 대고 빌라고 말했다.
“진짜로 할 거예요?”
“…그게.”
“갑자기 뺨이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자존심으로 살아가는 박정후한테는 아무래도 어렵겠지만.
“…싫, 싫다면.”
“정후 형을 싫어할 거예요.”
“어?”
“아는 척도 안 할 거예요.”
…과연 저게 먹힐까 싶었지만.
“…야, 아는 척은 해야지. 이거 끝나면 제작발표회도 있고.”
“형이 저랑 친하다고 온갖 인터뷰에서 말하고 다닌 거 알아요.”
“아, 알았어!”
가끔씩 인터뷰를 진행할 때면 돌연프에서 아직 친하게 지내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고는 했다. 그때마다 박정후는 이남주를 거론했군.
‘간도 크다.’
이남주 팬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텐데.
“카메라를 보면서 하면 돼?”
“네, 해주세요.”
그러자 박정후가 손과 발을 싹싹 빌었다. 그 모습에 이남주가 미소를 지었다.
“됐어요, 정후 형.”
저렇게 인맥을 유지하고 싶을까. 모든 게 대략적으로 정리되고 나자 디아 선배님이 바다를 보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그럼 보물이 있는 곳으로 가볼까?”
***
그렇게 보물이 있다는 주택에 도착했다. 내가 설거지를 하러 왔을 때는 부엌이나 안방을 다 둘러봤는데도 보물을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다시 주택을 헤집으며 보물을 찾았으나 보물은커녕 먼지만 들이마셨다. 디아 선배님은 허리에 손을 올리며 박정후에게 물었다.
“정후야,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디아 누나, 제가 거짓말을 하겠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보물이 안 나오잖아.”
그때 디아 선배님이 바지 주머니에서 강아지풀을 꺼냈다.
“정후야, 이거 알지.”
“…그걸 왜.”
“난 지금부터 널 괴롭힐 거야. 그러니까 어디에 있는지 빨리 불어.”
그렇게 디아 선배님이 박정후의 몸을 간지럽힐 때였다.
“여기 있어요.”
조용히 내부를 둘러보던 이남주가 바닥을 손으로 두드렸다. 둔탁한 소리가 아닌, 가벼운 나무 소리.
“밟을게요.”
이남주가 거침없이 바닥을 밟았다. 그러더니 바닥이 밑으로 꺼지면서 새로운 지하 공간이 나타났다. 그 순간,
[새로운 탈출구가 나타납니다.]
[네 번째 바닷가로 가주세요.]
[곧 무인도는 폐쇄됩니다.]
[제한 시간은 30분입니다.]
스피커에서 울리는 방송에 나만 빼고 모두가 행동을 멈췄다. 오로지 나만이 새로운 지하 공간에 들어가 보물 상자를 찾아다녔다. 그때, 웬 검은색 상자 위에 있는 보물 상자를 발견했다.
“찾았어요!”
나는 해적 영화에나 나올 법한 보물 상자를 어느새 내려온 이남주한테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지하 공간에서 빠져나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보물 상자에 들어 있는 건?”
“아직 안 봤어요.”
“그럼 이제 열어보자.”
이남주는 한숨을 내쉬고는 보물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상금이 표시되어 있는 쪽지가 들어 있었다.
《+100,000,000》
※상금 1억을 획득했습니다.
…상금 1억. 디아 선배님은 믿기지 않는지 자기 뺨을 때려보더니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그럼 여기서 정하자.”
“뭘 정해요?”
내 질문에 디아 선배님이 박정후를 보며 턱짓했다.
“정후는 어떻게 할래?”
아, 아직 박정후가 남았지.
“한 명이라도 원한다면 박정후 죽이자.”
이서혁이 크게 눈을 뜨며 고개를 저었다.
“어? 누나, 그건 지금 말고…….”
“지금 말고?”
“우리 탈출하기 직전에 죽이면 되잖아. 그게 더 재밌고.”
“그렇다면 일단은 끌고 가는 쪽으로 간다.”
결국, 나중에 박정후의 카드 목걸이를 벗기기로 결정이 되었다.
“가자, 얘들아. 시간이 없어.”
디아 선배님이 탱커처럼 앞에 서서 네 번째 바닷가로 뛰었다. 하지만 네 번째 바닷가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차라리 먼 길로 돌아서 가는 편이 나을 정도.
[15분 남았습니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소리에 우리는 잠깐 걸음을 멈췄다. 그때 디아 선배님이 이남주를 보았다.
“남주야, 이 길이 맞지?”
“누나, 이 길이 맞아요.”
“그런데 왜 바다가 안 보일까…….”
돌고 도는 건가? 나는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나뭇가지에 묶었다.
“제가 이 부분을 손수건으로 묶었거든요? 손수건이 다시 보이면 다른 길로 가죠.”
모두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다. 발목에 진흙이 묻어서 걷기 어려웠으며, 추워서 몸도 떨렸다.
[10분 남았습니다.]
우리는 바닷가로 뛰었고, 어느 정도 걸음을 옮기자 나뭇가지에 묶여 있는 손수건을 발견했다.
‘같은 자리를 돌고 있었네.’
이서혁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제 시간이 없지 않아?”
디아 선배님이 인상을 썼다. 아까 10분이 남았다고 했으니까 이제는 약 7분 정도.
“일단 바다를 발견하면 뛰죠.”
“그러면 늦을 것 같은데.”
“늦어도 뭐, 어쩔 수 없는 거 아닐까요?”
최선을 다해서 뛰어도 탈출을 못 하면 그게 끝인 셈이다. 어쨌든 할 수 있는 노력은 하지 않았나.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일단 뛰어요.”
우리는 뛰고 또 뛰었다. 그렇게 뜀박질을 하고 나니 다행히 모래사장이 보였고, 근처에 바다가 있었다. 이제 몇 분이 채 남지 않은 상황.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디아 선배님이 끌고 온 박정후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다급하게 외쳤다.
“디아 누나, 사실은 하트가 아니야!”
하트가 아니라고? 그럼? 박정후의 말에 모두들 일제히 디아 선배님을 쳐다보았다.
“사실은 조커거든.”
조커라는 말에 디아 선배님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었다. 아… 그래서 초반에 내 카드를 보고 놀랐구나.
그러자 디아 선배님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정후야, 돈 안 나눠준다?”
박정후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차피 여기서 나 죽일 거잖아! 아니야?”
맞지.
“이렇게라도 내 분량 챙겨야지.”
“너 안 죽여.”
“거짓말하지 마. 지금 서고운 씨 총 꺼냈거든?”
이럴수록 시간만 지체된다. 차라리 박정후를 신경 쓰지 않는 쪽이 좋을 텐데. 그때 이남주가 귀찮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후 형을 죽이면 되는 일 아닌가요.”
“지금 죽일까요?”
서고운이 총을 가볍게 쥐고 박정후를 향하자.
“디아 누나 카드가 나한테 있는데. 죽이면 안 될걸?”
디아 선배님의 카드를 박정후가 가지고 있다고? 애초에 자기가 뽑은 카드는 남한테 줄 수 없을 텐데. 그러자 디아 선배님이 카드 목걸이에서 하트 카드를 빼냈다. 저러면 죽을 텐데?
“디아 누나!”
이서혁이 놀라서 디아 선배님의 행동을 제지했으나 새로운 반전이 일어났다. 원래 텅 빈 카드 목걸이가 나와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그러나 하트 카드를 빼낸 자리에는 조커 카드가 반듯하게 있었다.
‘어떻게 저게 있는 거야?’
박정후의 눈동자가 크게 동요했다. 이건 박정후도 몰랐던 사실 같은데.
“죽은 참가자들의 카드 목걸이에서 카드를 빼서 카드 목걸이에 넣었어.”
“…그게 돼?”
이서혁의 물음에 디아 선배님이 웃었다.
“이렇게 해도 별말이 없더라고.”
“…와.”
“반칙이라면 처음부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어.”
이건 디아 선배님의 완벽한 승리가 아닌가. 박정후는 할 말을 잃은 듯이 입을 쩍 벌렸다.
처음으로 박정후에게 연민을 느꼈다.
“…정후 형, 바보였네요.”
내 말에 박정후가 처음으로 반박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고운이 박정후를 향해 총을 겨눴다. 탕! 경쾌한 총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면서 박정후가 무릎을 꿇었다.
[한 명이 탈락했습니다.]
탈락했다는 소리에 우리는 눈빛을 교환했다.
[3분 남았습니다.]
[배가 떠납니다.]
[살아남은 참가자는 배에 올라타시길 바랍니다.]
“얘들아.”
디아 선배님이 바닷가를 보면서 턱짓했다.
“가자.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방송으로 보고.”
방송으로 확인하라는 말인가.
“탈출하자!”
***
1박 2일 동안 지냈던 무인도에서 나와 제작진을 만났다. 간단한 엔딩 멘트를 하고는 근처의 샤워장에서 몸을 씻고 나왔다. 그와 동시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정답, 예능에서 탈락하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풀이:예상 악플을 보여 드립니다.
-범나비 개노잼
-쟤 때문에 보기 싫어짐 진짜로 ㅋㅋ
-범나비 나옴? 그래서 하차함 ㅈㅅ
-나비야; 이건 나도 쉴드 불가]
이런… 욕을 먹을 뻔했군. 그리고,
【랜덤 박스 1개를 얻었습니다.】
랜덤 박스를 얻었다는 시스템창까지 떴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김연호가 안 오지?’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걱정하던 찰나 역시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저 멀리서 우리 차가 나타났다. 그리고 김연호가 다급하게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포착했다.
“나비야!”
“형, 왜 이렇게 늦었어요.”
“미안해. 엔터에 일이 있어서.”
엔터에 일이 있었다고?
“컨디션은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다친 곳은 없어요.”
“손목은 괜찮고?”
“네, 괜찮아요.”
이상하게 찝찝해서 김연호한테 되물었다.
“엔터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김연호가 한숨을 내뱉듯이 말했다.
“그게 말이다. 나비야, 듣고 너무 놀라지 마.”
도대체 뭐길래?
“새롭게 런칭되는 두 번째 미니 앨범인 런엑스런 컨셉, 무산됐어.”
“…왜요?”
두 번째로 들어가는 미니 앨범인 런엑스런이 무산됐다고? 이해가 전혀 안 되는데.
“KIN 프로듀서가 다시 나타났어.”
“투표에서 졌잖아요?”
“KIN 프로듀서가 하는 말이, 그건 첫 번째 미니 앨범이었고 이번에는 두 번째 미니 앨범이라고… 회의에 참여하겠대…….”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