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예능 살아남아라!(4)
이서혁은 화들짝 놀랐다.
“미쳤어?”
그런데 디아까지 나섰다.
“아니,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나을 것 같다.”
“누나까지 왜 그래!”
이남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안 된다는 듯이 디아를 말렸다. 이미 마음을 굳힌 디아는 카드 목걸이를 잡았다.
“내가 죽으면 서혁이 풀어주는 거지?”
“당연하죠.”
이서혁은 점점 두통이 왔다.
“지금 가져갈게요.”
박정후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디아의 카드 목걸이를 가져갔다. 동시에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한 명이 죽었습니다.]
“허…….”
연달아 박정후는 범나비의 카드 목걸이까지 가져가 버렸다.
“이러면 끝났죠?”
[한 명이 죽었습니다.]
이로써 박정후는 디아와 범나비를 죽인 뒤에 이서혁에게 다가갔다.
“찢어진 보물 지도 가져갑니다?”
“…이 미친.”
이서혁은 욕설을 뱉을 뻔했다. 그리고 박정후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정후야, 이러다가 너 골탕 먹는다.”
“골탕 먹으면서 1억 받으면 그거야 손해 볼 게 없죠.”
그러면서 박정후는 이서혁의 찢어진 보물 지도를 보면서 말했다.
“그거 알아요? 찢어진 보물 지도에 상과 하가 있는 거.”
“상?”
“그래서 찢어진 보물 지도 두 개를 퍼즐처럼 맞추면 완벽한 지도가 돼요. 이렇게?”
박정후가 이서혁에게 찢어진 보물 지도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이걸 나에게 알려주면 어떡해?”
“뭐 어차피 형이 나를 죽일 수 있겠어요?”
이서혁은 살살 약이 올랐다.
“그럼 서고운 씨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러더니 박정후는 서고운을 데리고 떠나 버렸다. 이남주와 이서혁은 손이 묶인 채 덩그러니 버려진 쓰레기처럼 놓여 버렸다.
“남주야, 우리 어떡하냐.”
“…그러게요.”
이서혁과 이남주가 지금 이 상황을 한탄할 때, 탈락했던 범나비의 몸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
끝났나? 나는 살짝 눈을 떴다.
‘…박정후가 없네.’
참가자들은 탈락하면 자리에서 입을 다물거나 눈을 감는다. 나는 박정후가 가고 난 뒤에 눈을 떴다. 그때 갑자기 눈을 뜬 나를 본 이서혁이 깜짝 놀랐다.
“…너 죽은 거 아니었어?”
“죽긴 죽었죠.”
그래 봤자 조커라서 죽지는 않지만.
“죽었는데 어떻게 살아나?”
“자다가 일어난 거죠.”
뒤늦게 디아 선배님도 일어났다.
“아니, 디아 누나도 죽었잖아!”
“하트는 탈락 면제권이 있어서.”
옆에서 디아 선배님이 벌떡 일어나 양팔을 위로 올리며 이서혁한테 들이댔다.
“생명이 하나 더!”
“…그런데 왜 말을 안 해줬어!”
“그 상황에서 어떻게 말하냐?”
“그건 그렇지만.”
디아 선배님이 이서혁의 손목을 풀어주고 있을 때 나는 이남주한테 다가갔다.
“손목은 어때요?”
“괜찮아요.”
이남주가 손목을 움직이며 조용히 나한테 귓속말을 했다.
“때리고 싶었는데.”
“……?”
“참았어요.”
그때 디아 선배님이 자기 머리를 헝클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 찢어진 보물 지도도 빼앗기고.”
…어떻게 다시 찢어진 보물 지도를 찾아올까.
“박정후가 그랬어. 우리가 가진 찢어진 보물 지도가 상이라고.”
“상?”
“어, 자기는 다른 쪽을 가지고 있대.”
그러니까 찢어진 보물 지도는 상과 하로 나누어져 있었다는 거네.
“그래서 박정후가 서혁 형과 고운 선배님을 붙잡은 거네요. 찢어진 보물 지도를 가지려고.”
“…그것 말고는 설명이 되질 않아.”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은 위기였다. 찢어진 보물 지도도 빼앗기고. 박정후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아까 박정후가 자기는 서고운과 같은 스페이드라고 했어.”
“정말요?”
“어, 총으로 참가자를 탈락시키는 능력이라고.”
…참가자를 탈락시킨다? 서고운이 혼자서 살아남은 이유를 알겠네. 그래서 박정후가 같은 카드를 가지고 있는 서고운을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고.
“거기다가!”
이서혁이 손바닥을 펼쳤다.
“고운 선배가 이렇게 손바닥을 펼쳤어.”
“…그거.”
“가기 싫다는 뜻이었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최고의 방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인데.
“우리도 정후 형처럼 덮칠까요?”
내 제안에 안 그래도 큰 이서혁의 눈이 더 커졌다.
“역시 우리 나비야.”
“…네?”
“복수하는 방법을 잘 알아. 우리도 몸으로 싸우자고. 복수를 해야지!”
그때 디아 선배님이 손을 들었다.
“복수는 안 돼.”
“왜, 누나!”
“복수는 아닌 것 같아. 차라리 미끼를 던진다면 모를까.”
미끼?
“디아 선배님, 어떻게 미끼를 던져요?”
“…음, 박정후는 힘들 것 같고. 곁에 있는 참가자들한테?”
그 참가자들한테 미끼를 던진다? 디아 선배님의 의견에 이서혁이 박수를 한 번 치며 말했다.
“고운 선배를 불러서 도와달라고 하면 되잖아.”
아, 맞아. 서고운이 있었지.
“그렇다면 고운이한테 같이 미끼를 던지자는 식으로 말하면 되겠네.”
“근데 그 미끼가 뭔데?”
이서혁의 질문에 디아 선배님이 허리에 손을 얹으며 씨익 웃었다.
“뒤통수를 같이 치자고.”
“아, 박정후의 뒤통수를?”
“어.”
좋은 방법이다. 서고운도 어쩔 수 없이 박정후의 편을 든 거니까. 어쩌면 이 방법이 제일 잘 통하겠다. 디아 선배님이 우리를 보며 물었다.
“언제 할까?”
나는 시선을 위로 올려 하늘을 쳐다보았다. 예쁜 별이 반짝이는 밤. 박정후는 기분 좋게 자고 있을 것이다. 완벽한 승리에 취해서.
“새벽이 좋죠. 모두가 잠든 밤.”
미끼를 던지기 딱 좋았다.
***
우리의 계획은 이러했다. 모두가 잠든 밤에 몰래 서고운에게 다가가서 박정후의 뒤통수를 치자고 말하는 것이다.
“다 왔다.”
앞에 나섰던 이남주가 뒤를 돌아 우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에 있어요.”
이남주가 가리킨 곳엔 텐트가 있었다. 박정후의 기분 좋은 웃음이 소라의 고동 소리처럼 귓가에 울려서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재밌게 노네.’
그러다가 박정후의 웃음이 사라질 즈음 텐트에 걸린 조명이 꺼졌다.
“언제 갈까? 지금?”
디아 선배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나갈 타이밍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모닥불의 불씨까지 모조리 꺼졌고, 이서혁이 살짝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운이가 망을 보고 있네.”
이러면 쉽게 서고운한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 나 심장이 떨린다?”
이서혁이 가슴에 손을 얹으며 조용히 말했다.
“이런 잠입 수사물을 옛날부터 좋아했거든. 너무 두근거려서 심장이 아프다.”
나는 이서혁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서고운을 어떻게 부를지 고민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서고운을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가 텐트에서 자고 있는 박정후가 일어나면 안 되니까.
빠각.
이런, 이서혁이 걸음을 옮기다가 나뭇가지를 밟아서 나는 소리였다.
“무슨 소리야?”
텐트에서 대충 얼굴만 내민 박정후가 손가락으로 눈을 비볐다. 우리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이서혁을 각자 붙잡았다.
나는 이서혁의 다리를, 이남주는 팔을, 디아 선배님은 머리를. 그리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제발 박정후가 다시 텐트 안으로 들어가길 바라면서.
그때 망을 보고 있던 서고운이 박정후에게 말했다.
“고양이 같던데.”
“고양이? 이 무인도에 무슨 고양이가 있어.”
“무인도라고 해도 여기 사람도 살잖아요.”
“아, 그래? 난 또 남주랑 서혁 형이 온 줄 알았지.”
다행히 서고운이 우리 편을 들어준 덕분에 박정후는 다시 텐트에 들어갔다.
“와…….”
이서혁은 조용히 감탄을 하면서 자세를 잡았다. 하마터면 진짜 걸릴 뻔했다.
“휴.”
우리가 한시름 놓고 있을 때. 텐트 안으로 들어간 박정후가 코를 골자 서고운은 눈치를 보더니 우리가 있는 쪽으로 살며시 다가왔다. 나무 뒤에 숨은 우리를 발견한 서고운은 인상을 찌푸렸다.
“거기서 뭐 해요?”
서고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저 뒤로 가서 이야기 좀 해요.”
서고운은 박정후의 눈치를 보면서 앞으로 걸어왔다. 텐트에서 거의 다 벗어났을 때였다. 서고운이 우리한테 말을 걸었다.
“저 배신한 거 아니에요.”
“알고 있어요.”
이남주가 대답했다. 서고운은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읊조렸다.
“찢어진 보물 지도를 박정후가 가지고 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이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 고운 선배가 우릴 배신할 리가 없지.”
“근데 방금 전에 서혁 후배도 그랬잖아요.”
“야, 그건…….”
뭐길래? 이서혁도 뒤늦게 눈치챘는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서혁이 말을 막으려고 입을 벌리자 서고운이 치고 나왔다.
“나보고 배신하면 안 되냐고 그랬거든요.”
…배신? 내가 이서혁을 노려보았다.
“정말 그랬어요?”
“아니, 묶여 있는 상태로 있으면 손목에 상처도 나고 그러니까~ 너희들도 안 오고.”
“고운 선배는 상처가 나도 된다?”
“이거 끝나면 드라마 촬영이 잡혀 있어서 그랬지~”
이서혁은 역시 이서혁다웠다. 뭐, 결과적으로는 배신을 안 했으니까. 그때 서고운이 조용히 우리에게 물었다.
“근데 분명히 디아 언니랑 범나비 씨는 죽지 않았어요?”
리더인 디아 선배님이 설명해 주었다.
“내 능력은 한 번 더 살 수 있는 능력이고, 나비는 조커라서 죽지 않아.”
“그래서…….”
서고운은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제일 중요한 설명이 남아 있었다. 디아 선배님은 뒤를 살짝 돌아보며 텐트를 확인한 후에 입을 열었다.
“우리가 여기로 온 목적은 바로 미끼를 납치하기 위해서야.”
“미끼를 납치한다고요?”
“응, 미끼가 박정후야.”
“아하.”
결의를 다진 표정으로 디아 선배님이 이를 갈았다.
“아까 고운이랑 서혁이가 붙잡혔잖아. 우리도 박정후를 잡아서 족을 치려고.”
“어떻게 하려고요?”
“박정후가 방심하는 사이에 텐트 입구를 봉쇄할 거야. 텐트 입구를 봉쇄하면 나올 수도 없을뿐더러 텐트를 찢어야 나올 수 있을 테니까.”
한 명씩 나올 때 강제로 카드 목걸이를 벗길 수도 있고. 그건 그렇고, 박정후가 찢어진 보물 지도를 어디에 숨겼는지 그걸 알아야 하는 게 제일 문제인데.
“혹시 찢어진 보물 지도는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서고운이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제가 보는 앞에서 찢어진 보물 지도를 불에 태웠어요.”
“불에 태웠다고요? 왜요?”
“박정후는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했어요.”
“최대한 박정후를 구슬리는 방향으로 가야겠네요.”
그때였다. 이남주가 가만히 있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코 고는 소리가 안 들려서요.”
멀리 떨어진 곳이긴 했으나 박정후는 코 고는 소리가 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박정후가 코를 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나랑 디아 선배님만 숲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박정후가 바보긴 해도 촉은 기가 막히게 좋은 놈이라 방심하면 안 된다.
[한 명이 탈락했습니다.]
[한 명이 탈락했습니다.]
정확하게 이남주가 말을 한 뒤에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왔다.
‘설마 지금 박정후가 텐트에 남아 있는 두 명을 처리했나?’
…그렇다면 텐트에는 박정후 혼자라는 말인데.
“고운아.”
그때 텐트 쪽에서 박정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