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93화 (93/235)

93. 예능 살아남아라!(1)

설마… 몸싸움이 있었나?

“아, 손이요?”

이남주가 뒤를 돌더니 붉은 페인트 통을 보여주었다.

“숲에서 서혁 형과 같이 깃발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아.”

깃발을 그리고 있었다고? 그때 이서혁이 만화에서나 볼 법한 해골 문양이 그려져 있는 깃발을 나를 보며 흔들었다.

“오~ 범나비.”

“안녕하세요, 서혁 형.”

“오랜만이다?”

“네, 그러게요.”

이서혁은 너튜브 홍보 영상을 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이서혁 옆에 서 있는 여자 선배님을 보자마자 허리를 숙이며 깍듯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디아 선배님.”

“오, 안녕하세요!”

RT 엔터의 7년 차 걸 그룹 ‘위즈’의 디아 선배님이었다. 최근에 나온 앨범 선주문량이 70만 장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만큼 탄탄한 팬덤을 가진 그룹.

“이름이 범나비 맞죠?”

“네, 맞습니다.”

디아 선배님은 눈치를 보면서 나한테 물었다.

“그… 반말해도 될까요?”

“반말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럼… 나비라고 부를게!”

그러면서 디아 선배님은 나를 유심히 보더니 내 카드 목걸이에 있는 조커 카드를 보고 눈이 커졌다.

“나비 카드가 조커네? 나는 하트거든. 서혁이는 다이아몬드고, 남주가 뭐였지?”

이남주가 말했다.

“저는 킹이요.”

킹? 이남주는 자신과 비슷한 카드를 골랐네.

“나비야, 나는 널 여기서 볼 줄은 몰랐다?”

“저도 서혁 형을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이런 생존 예능을 할 타입으로는 안 보였거든요.”

“뭐~ 생존 예능이라니 신선하기도 하고 재밌어 보였거든. 그런데… 너도 이런 곳에 나올 타입은 아니잖아.”

“…저도 서혁 형이랑 비슷해요.”

내가 말하자마자 이서혁은 단숨에 나한테 다가와 머리를 헝클였다. 또, 머리카락.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이서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었다.

“넌 잘생겼으니까 괜찮아.”

“제가 그런 말에는 안 속는 편이라.”

“그래, 그래.”

이제 자기소개도 끝났겠다.

“그럼 이 공간엔 4명이 끝인가요?”

“아마 끝인 것 같은데.”

이남주의 답변에 나는 침음을 흘렸다.

“우리 어떻게 할지 구상 좀 할까요?”

내 말에 우리는 텐트 앞에 모여서 어떻게 생활을 할지 토론을 했다. 그러다가 이서혁이 뜻밖의 제안을 꺼냈다.

“우리, 동맹할까?”

모두가 눈을 껌뻑였다.

“와… 뭐야, 이 반응. 진짜 싸울 거야?”

“싸우고 싶었으면 진작에 싸웠겠죠……?”

“그럼 우리 동맹이다!”

…그것도 나쁠 건 없지만. 이렇게 쉽게 동맹을 맺어도 되는 건지.

“그럼 이제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갈 거야?”

이건 디아 선배님의 질문이었다.

“디아 누나, 뭐 침략이라도 할 셈이야?”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침략하면 재밌는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

이서혁이 고개를 저으며 기겁했다.

“침략? 디아 누나, 그게 될 것 같아?”

“안 되면 뭐… 뒈지든가.”

“뒈지라니, 누나!”

“죽으면 죽는 거지.”

디아 선배님의 의견이 좋은 의견이긴 했다. 어쨌든 침략하면 더 많은 음식이 생기지 않겠는가. 아침, 점심, 저녁을 라면 3개와 빵 3개로 버틸 수는 없으니까. 나는 짐을 바닥에 두면서 대답했다.

“일단 지금은 다른 참가자를 적으로 두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음, 왜?”

“디아 선배님과 서혁 형은 참가자 몇 명이 있는지 아세요?”

내 질문에 디아 선배님과 이서혁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저도 잘 몰라요. 50명이 왔을지, 100명이 왔을지. 어쩌면 침략보다는 가만히 있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하긴 제작진분들도 몇 명이 참가했는지는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디아 선배님도 이남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그때 이서혁이 넌지시 말을 던졌다.

“나는 우리가 안 싸웠으면 좋겠어. 이 예능이 싸우라고 만든 건 맞지만. 지금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랑 싸워봤자 좋을 건 없잖아~?”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나는 텐트에서 생존 물품 가방을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냄비를 꺼내서 흔들었다.

“일단은 굶주린 배부터 채우죠.”

“오, 나비가 요리하게?”

“제가 할게요.”

“어디서 요리를 배운 거야?”

“원래 요리는 했어요.”

그러자 각자 생존 물품 가방에서 라면을 꺼냈다.

“남주야, 가만히 놔둬. 나비 혼자 하게.”

“…예? 그래도.”

“원래 막내가 라면도 끓이고 그러는 거지.”

이게 막내긴 하지. 우리 멤버들은 막내를 잘 굴리지 못하는 편에 속하니까. 내가 하려고 하면 나서서 도와주기도 했는데…….

‘뭔가… 멤버들이 보고 싶네.’

라면은 정진 형이 제일 잘 끓이는데. 내가 라면을 끓이는 동안 디아 선배님과 이서혁은 둘이서 텐트를 숲 쪽으로 옮겼다.

“아, 맞다.”

라면 냄비에 라면을 넣고 보니까 불이 없다. 나는 이남주를 보면서 물었다.

“불을 지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네요? 어떡하죠.”

디아 선배님이 우리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불 지펴줘?”

“할 수 있으세요?”

“당연하지. 이래 봬도 내가 정글 예능에서 배운 게 많거든.”

숲에서 마른풀과 나뭇가지를 가져온 디아 선배님은 순식간에 뚝딱 불을 지폈다. 나랑 이남주는 디아 선배님을 보며 박수를 쳤다.

“멋있어요, 선배님.”

“정말?”

“네.”

진짜로.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걸로 맛있는 라면이나 끓여줘.”

디아 선배님은 옆에서 내가 가져온 신문지로 불의 화력을 높였다. 멋있다. 이서혁은 농땡이나 까고 있는데.

“서혁 형은 뭐 안 하세요?”

“나는 존재 자체가 발악이라.”

발광이겠지.

나는 카메라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가방을 열어 손을 깊숙하게 넣었다. 그리고 후춧가루를 꺼냈다.

“그건 뭐야?”

“후추요.”

“그걸 가져올 수 있었어?”

나는 이서혁을 보면서 씩 웃었다.

“작가님이 가방에서 이건 못 찾으셨더라고요.”

“와… 대단한데?”

라면에 후추를 넣고는 젓가락으로 냄비를 휘저었다. 꼬들꼬들한 면발을 보자마자 군침이 돌았다.

“다 끓였어요.”

이미 라면의 향기를 맡은 사람들은 젓가락을 준비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냄비 받침대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가방 위에 신문지를 깔고 냄비를 올려두었다.

“잘 먹겠습니다.”

라면을 입에 넣자 하나둘씩 미간을 찌푸렸다.

“음, 후추가 큰 역할을 했네.”

“감사합니다.”

“나비야, 칭찬한 거 아닌데?”

“다시는 제 라면 먹지 마세요.”

“하하하하!”

뭐가 웃긴지. 이서혁의 웃는 모습을 보면서 다짐했다. 다음엔 국물도 없다고. 덕분에 천천히 무인도를 살펴보았다.

무인도는 한눈에 보기에도 넓었다. 이러면 다른 참가자들이 숲에 몸을 숨기고 우리를 지켜볼 확률도 높겠는데.

‘…지도가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지도가 있으면 무인도를 안전하게 활보하면서 다닐 수 있었다.

“혹시 무인도 지도를 가진 분 계세요?”

라면을 다 먹은 이서혁과 디아 선배님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

“지도는 나한테 있어.”

이남주가 가지고 있다고?

“어떻게 가지고 있어.”

“킹의 능력이라고 하던데? 여기.”

이남주가 주머니에서 꺼내준 지도를 보니 지형지물이 자세히 표시되어 있었다. 산이면 산, 텐트면 텐트. 그때 스피커에서 소리가 났다.

[한 명이 탈락했습니다.]

참가자 탈락 소식이었다.

‘어디서 싸울까.’

흠… 디아 선배님과 이서혁이 주변을 둘러보자 이남주가 손을 들었다.

“…그건 그렇고. 설거지는 어떻게 하지?”

설거지? 그러고 보니 아까 지도에서 ‘설거지’라는 단어를 봤는데? 다시 지도를 펼쳐서 아까 본 단어를 찾았다.

“여기 있다.”

이남주한테 ‘설거지’라고 적혀 있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로 가면 될 것 같은데…….”

문제는 다른 사람들도 지도를 지니고 있다는 거다. 이남주 말고도 킹의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내가 곁눈질로 사람들을 훑어보자 이서혁이 내 어깨를 딱 잡았다.

“우리는 우리만 믿자고.”

이서혁이 그렇게 말하자 디아 선배님이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만 믿자.”

“그렇다면 우리가 팀이라는 표식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표식?”

“네.”

나는 가방에서 볼펜을 꺼냈다.

“혹시나 다른 참가자들이 우리한테 이간질을 시도할 수도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그때 손바닥에 있는 검은 점을 보여주면 내 말을 믿어달라는 뜻으로 해석하죠.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라는 식으로?”

“오~ 좋은 방법.”

흔쾌히 이서혁의 허락이 떨어지자 디아 선배님과 이남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서로의 손바닥에 검은 점을 그렸다.

“이제 저랑 나비는 설거지하고 올게요.”

나는 가방을 메고서 이남주를 따라나섰다. 그러자 이남주가 내 가방을 쳐다보았다.

“가방은 왜?”

“가방에 온갖 물건을 넣어놔서 두고 가면 안 돼요.”

“황금이라도 들었나.”

“황금보다 더 귀중한 게 들어갔죠.”

그때 이남주가 입꼬리를 올리면서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그래서 연락을 안 했어요?”

갑자기 연락? 먼저 연락한 적도 없으면서. 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답했다.

“연락이 안 와서요.”

“매번 제가 해요?”

“그건 아니지만…….”

어이가 없어서 뒤를 돌아보자 이남주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연락할 수는 있으면서.”

용건이 있어야 연락하지. 이남주가 말한 대로 지도상에 ‘설거지’라고 적혀 있던 장소에 도착했다. 작은 주택이었는데, 일단은 주변에 사람이 없나 살펴보았다.

‘누군가 들어간 흔적은 없고…….’

지나간 흔적은 있네. 움푹 파인 땅에 금방 지나간 것처럼 신발 자국이 찍혀 있었다. 어디로 향하는 신발 자국이지?

“남주 형… 신발 자국.”

이 정도만 말해도 이남주는 상황을 파악했다.

“우리 텐트 쪽으로 가는 것 같은데…….”

“그렇죠?”

일단은 디아 선배님과 이서혁이 있어서 문제는 없었다. 말발이 세기 때문.

“이왕 온 김에 빨리 설거지하고 가죠.”

“그럼 망 좀 봐줘.”

“그럴게요.”

주택에는 설거지할 수 있는 부엌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이남주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는 주택을 샅샅이 뒤졌다.

‘…음식 빼고 있을 건 다 있네.’

완벽하게 주택 확인을 끝내고 이남주한테 다가갔다.

“설거지 끝났어요?”

“응, 끝났어. 이제 가자.”

그렇게 설거지를 끝내고 텐트로 돌아가는 숲속에서 완연하게 찍힌 발자국을 확인했다. 자세히 보니 저 멀리에서 어떤 무리가 우리 텐트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남주 형, 잠시만요.”

이남주를 끌고 나무 뒤로 숨었다.

“저기 어떤 무리가 보이거든요?”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이남주는 냄비와 그릇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면서 말했다.

“누구지.”

“글쎄요.”

어두워서 얼굴이 잘 안 보이는데.

갑자기 텐트 주변에서 조명이 켜지면서 무리 중 한 명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나랑 이남주는 얼굴을 확인하고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박정후.”

“…정후 형.”

하필 박정후가? 저 사람은 나를 보면 화를 낼 것 같단 말이지. 박정후의 무리는 계속해서 텐트를 뒤지고 물건을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물건을 가져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네.”

“저한테 방법이 있어요.”

나는 가방을 바닥에 두고 들어 있는 물건들을 빼냈다. 그러고는 근처에 있던 커다란 나뭇잎으로 물건들을 가려놓았다. 그 대신 가방 안에는 돌을 넣었다.

이남주도 나를 도와서 가방에 돌을 넣었다.

“이제 가?”

“네, 남주 형이 먼저 일어나 주세요.”

“알았어.”

개인 팬덤이 제일 강한 이남주를 앞으로 내세워야지. 그나마 박정후의 사고 회로가 돌아간다면 험한 일은 안 하겠지.

“뭐예요?”

내가 가방을 멘 채 천천히 다가가자 박정후가 나를 발견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다가와 내 카드 목걸이를 잡아당겼다.

“나비야, 너.”

“……?”

“조커네.”

조커라는 발언에 텐트 주변을 뒤지던 사람들이 나를 응시했다.

“뺏어.”

나는 어물쩍 몸에 힘이 없는 척을 하면서 박정후가 내 가방을 빼앗도록 놔뒀다. 돌을 넣어서 가방을 들기 힘든지 가방을 받은 박정후의 몸이 휘청거렸다.

“왜 이렇게 무거워?”

그거야 가방에 돌이 들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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