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92화 (92/235)

92. 예능 납치

결국 나는 하는 수 없이 김연호의 말에 따라서 가방에 짐을 넣었다.

“왜 가방을 챙기라고 하는 거지…….”

“그러게. 미팅을 새벽에 하는 것도 수상하고.”

“…그러게요.”

화목현의 말대로 고작 예능 미팅인데… 준비해 놓은 물건들을 넣자 가방이 빵빵해졌다. 그러자 소파에서 구경하고 있던 정요셉이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막내, 지금 등산하러 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가방이 등산 가방처럼 거대해져서~ 등산하러 가는 줄~”

나를 놀리는 정요셉한테 반박하고 싶었으나 가방이 거대하긴 거대했다. 거의 등을 덮는 수준이었으니까.

내가 가방을 메자 김연호가 말했다.

“그럼 나비야, 다 챙겼으면 가자.”

나는 멤버들을 보면서 잘 다녀오겠다며 인사를 했다.

“근데 뭔가 불안하다. 연호 형 행동도 그렇고. 나비야,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목현 형도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요.”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그래도.”

“알았어. 미팅이나 잘 다녀와.”

내가 없는 동안 화목현의 아버지가 등장하면 큰일인데…….

“다녀올게요, 형들.”

이정진은 다녀오라면서 손을 흔들었고, 주이든은 당이 떨어지면 먹으라며 초콜릿을 주었다. 그런데 정요셉은 아무런 말도 없이 팔을 벌렸다.

“우리 막내,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형 생각 많이 하고.”

“…아, 예.”

정요셉의 팔을 피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연호 형, 예능 미팅을 하러 가는 건 맞죠?”

“맞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와 차에 올라타려고 할 때 스태프들이 나를 가로막았다.

“누구세요……?”

그러자 누군가가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살아남아라 방송작가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왜 미팅을 주차장에서 하지……?

“저기, 저는 주차장에서 미팅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데…….”

“괜찮습니다. 예능 미팅이 아니라서요.”

“…예? 그럼…….”

설마… 아니겠지. 나는 불길한 기운을 느껴 곧장 고개를 돌려 김연호를 쳐다보았다.

“형?”

“응?”

“…아니죠?”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거, 미팅이 아니라 촬영하러 가는 길 같은데.’

나는 괜히 가방끈을 꽉 잡았다. 정신이라도 잡기 위해서.

그렇게 방송작가의 뒤를 따라가서 우리 차가 아닌 스태프의 차에 올라탔다.

“안녕하세요, 범나비 씨.”

“네… 안녕하세요.”

“저는 살아남아라 방송작가인 방작가라고 합니다.”

방작가는 소개를 끝내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부터 범나비 씨랑 함께 짧은 미팅을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무인도로 떠날 준비는 하셨나요?”

“어디로 떠난다고요?”

“무인도에 가셔야죠.”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나는 원망 어린 눈동자로 김연호를 쳐다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가방은 챙겼으니까.

“…예, 떠날 준비가 됐습니다.”

“준비가 됐다면 이제부터 살아남아라의 룰을 간단히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잘 들으세요.”

“…네.”

“살아남아라는 총 1억의 상금을 우승자들에게 분배할 예정입니다.”

1억 분배… 여기까지는 내가 아는 룰이었다.

“당연히 무인도에서 탈출한 사람들에게 상금이 분배되겠죠.”

“…상금을 분배한다고요? 한 명이 독식을 못 한다는 뜻인가요.”

“한 명이 독식할 수도 있지만 만약 살아남은 참가자가 많으면 상금 액수가 달라집니다.”

간단하네. 제일 중요한 문제는.

“누가 참여하나요?”

방작가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배우, 아이돌, 개그맨, 일반인이 참여합니다.”

다양한 직업군이 참여하는군. 옆에서 다른 스태프분이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짧게 인상을 쓰던 방작가가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일반인 한 분이 도망가셨다고.”

…갑자기 심각한 분위기를 조성하시네.

“이제 카드를 뽑을 거예요.”

“카드?”

“포커 카드 아시죠?”

“네.”

방작가가 가방에서 포커 카드를 꺼냈다.

“자… 범나비 씨, 카드를 뽑아주세요.”

방송을 생각한다면 제일 좋은 카드는 조커. 나는 조커를 뽑아야 한다.

“…뽑겠습니다.”

신중하게 생각하자.

“조커를 뽑고 싶은데요.”

“…조커요?”

“네, 있나요?”

그때 방작가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나는 그대로 제일 오른쪽에 있는 카드를 뽑아서 방작가에게 건네주었다.

“자, 카드를 확인하겠습니다.”

눈을 감은 채로 카드를 방작가한테 보여주자 제작진들의 감탄이 이어졌다. 왜지? 좋은 카드인가?

“범나비 씨, 눈을 뜨고 카드를 확인해 주세요.”

호흡을 가다듬고 카드를 확인했다. 조커다.

“조커인데요?”

“조커는 죽지 않는 캐릭터입니다.”

“죽지 않는다고요?”

“카드를 뺏겨도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캐릭터지만…….”

“…지만?”

“참가자들을 죽일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닙니다.”

죽지도, 죽이지도 못하는 캐릭터. 자주 죽어도 괜찮겠네.

“그렇다면 카드를 빼앗기면 안 되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저희가 드리는 목걸이에 카드를 넣고 다녀야 합니다. 목욕할 때를 제외하고 카드 목걸이를 벗으면 탈락입니다.”

이걸 악용하면 재밌긴 하겠다.

“폭력을 사용하는 건 안 되겠죠.”

“…뭐, 상관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불필요한 폭력이 있을 수도 있겠는데.

“며칠 동안 진행하나요?”

“1박 2일입니다.”

1박 2일 동안 카드를 빼앗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천천히 머리를 굴리자 방작가가 미소를 지었다.

싸늘하다.

“곧 무인도로 떠납니다.”

‘제길.’

***

차에서 내려 무인도로 향하는 배에 올라타자 방작가가 내 가방을 달라고 했다.

“왜 제 가방을.”

“가방을 확인해야 하니까요.”

“…음, 알겠습니다.”

나는 가방을 벗어서 방작가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무거운 짐을 든 것처럼 방작가의 몸이 휘청거렸다.

‘…저 정도는 아닌데.’

방작가가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나에게 질문했다.

“가방이 왜 이렇게 무거워요?”

“많은 걸 넣어서요.”

이불 용도로 신문부터 시작해서 필요할 것 같은 물품을 다 가져왔는데. 방작가는 가방을 열어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것도 준비했어요?”

가방 안에 있는 도끼를 보자마자 방작가는 놀랍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예, 필요할 것 같아서요.”

“이 도끼는 제가 가져갈게요.”

“아, 그건…….”

“저희는 참가자 생존 예능이지만 이런 것까지는 필요 없어요.”

“…예.”

김연호한테 부탁해서 겨우 작은 도끼를 구했는데 한순간에 빼앗기다니. 방작가도 이런 출연자는 처음이라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즉석밥까지 준비했어요?”

“…밥을 안 줄 것 같아서.”

“생존에 필수적인 건 무인도의 텐트 안에 있어서 괜찮습니다.”

이번에는 방작가가 라면을 꺼냈다. 들켰다.

“그건 제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네, 이제 없어질 겁니다.”

감정 호소도 안 통하네… 그러더니 방작가는 가방을 다시 돌려주었다. 나는 가방을 받아 들었다.

“범나비 씨, 무인도가 보이시나요?”

“보입니다.”

저 멀리 거대한 무인도가 보였다. 거기에다가 텐트와 하얀 깃발까지. 아직 사람은 없어 보였다.

“저 하얀 깃발이 있는 지점에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차에서 기사를 확인해 본 후라서 누구일지 알 수 있었다. 그중 이남주가 있었지. 하긴 애초에 이남주는 살아남아라에 나올 거라는 소문이 커뮤에 무성했으니까.

“대신 배에서 내리기 전에 도망칠 수 있는 기회를 드릴 겁니다.”

도망을……? 내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방작가가 나한테 패드를 들이댔다. 패드를 보니 김연호가 나한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여기서 도망칠 건지, 아니면 무인도에 갈 건지 결정하라는 건가.

“결정하셨습니까?”

나는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멨다.

“무인도로 가겠습니다.”

“이렇게 범나비 씨는 마지막으로 도망갈 기회를 잃었습니다.”

“…네.”

방작가가 패드로 김연호가 차에 오르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었다. 김연호는 창문을 내리더니 나한테 손을 흔들었다. 무척이나 애틋한 손길이었다.

“나비야, 파이팅!”

“…잘 다녀올게요, 연호 형.”

…그럼 그렇지. 나의 마지막 희망인 김연호도 사라지고 이제 내가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무인도를 쳐다보았다.

“이 목걸이에 카드를 넣으면 됩니다.”

방작가가 방수가 되는 카드 목걸이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걸 보니까 궁금한 게 있었다.

“작가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가요?”

“만약 다른 참가자가 제 카드를 빼앗는다면, 제 카드의 능력을 쓸 수 있는 건가요?”

이건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나. 방송작가가 곧바로 다른 스태프과 대화를 나누었다.

“아뇨, 빼앗은 카드의 능력은 쓸 수 없습니다.”

빼앗은 카드의 능력은 쓸 수 없다…….

“그럼 2일 뒤에 뵙겠습니다.”

내려가면 된다는 신호에 배에서 내렸다. 나는 푹 들어가는 모래를 밟으며 깃발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범나비 씨, 아무도 믿지 마세요.”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이미 방작가를 태운 배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문제 19, 예능에서 탈락하지 않고 살아남기!

페널티:쉴드 없는 악플

정답 풀이:랜덤 박스 1개」

‘…이제 시작인가.’

시스템창도 떠올랐으니까. 깃발이 있는 곳에는 텐트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인도에 마지막 참가자가 도착했습니다.]

사람도 아무도 없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우선 신문지를 꺼냈다. 이불 용도로 가져오긴 했으나 방석으로 이용할 수도 있었다.

“정말 아무도 없나?”

뭐, 기다리면 누군가 오겠지. 내가 직접 숲에 들어가 사람들을 찾아볼 생각은 죽어도 없었다. 이런 곳에서 체력 낭비를 하는 건 안 좋으니까. 그래도 텐트 주변을 뒤지자 생존 물품이 들어 있는 가방과 《무인도 규칙》이라고 적혀 있는 종이가 나왔다.

《무인도 규칙》

1. 카드 목걸이를 벗을 수 없습니다.

2. 카드를 빼앗기면 탈락입니다.

3. 탈락한 참가자의 카드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4. 찢어진 보물 지도를 찾아야 합니다.

…딱히 별다른 룰은 없네. 생존 물품 가방을 열자 라면과 빵 세 개, 물 한 병이 나왔다. 특이한 건 냄비가 있다는 점인데.

“흠.”

그렇다고 지도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텐트 옆에는 스피커만 덩그러니 있었다. 그때였다. 스피커에서 풀 밟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명이 탈락했습니다.]

[한 명이 탈락했습니다.]

벌써 참가자들이 탈락했다는 음성이 사방에서 울렸다. 아무도 믿지 말라는 방작가의 말이 잊히지가 않네. 나는 가방을 손에 쥐었다.

‘여차하면 가방으로 패도 되잖아.’

원래 그런 프로그램이고. 풀 밟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자 나는 고개를 들어 침을 삼켰다. 그리고 가방을 든 채 주변을 둘러보는 와중에 이남주와 눈이 마주쳤다.

“…나비?”

“형?”

이남주를 만난 건 그렇다 치고… 왜 이남주의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건데?

“…왜 손에 피를 흘리고 있어요?”

이거 도대체 어떻게 굴러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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