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음악 방송 1위 후보
(김연호) 우리가 알아서 할게
(김연호) 너무 걱정하지 말고
(범나비) 목현 형한테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연호) 나중에 내가 말할게
(범나비) 감사해요
김연호한테 긴급 연락은 해놨다. 김연호가 화목현의 아버지가 어디서 뭘 하는지 알아본다고 했으니 안심이기는 한데. 왜 화목현의 아버지가 락카로 벽에 글씨를 적었을까?
“1위 후보가 우리랑 다이아몬드라는데?”
화목현의 말에 주이든이 화들짝 놀라면서 되물었다.
“…1위 후보에 우리랑 다이아몬드가 있다고?”
“어, 1위 후보가 우리랑 다이아몬드래.”
…하필.
새해부터 다이아몬드랑 같이 1위 후보라는 소식을 듣다니. 역시 일이 꼬이려면 다 꼬이네. 그때 이정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다이아몬드 곡 음원 사이트 10위권도 아니지 않나?”
그러자 정요셉이 비꼬듯이 말했다.
“이제 음원 사이트 10위권이 아니라도 1위 후보에 들 수 있나 보네~”
다이아몬드 앨범 초동은 24만이었다. 신인치곤 괜찮은 성적이었으나.
‘1위 후보라고 할 수 있나…….’
QTQ 방송국이 HOR 엔터랑 가까운 관계는 맞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이러다가 네스트의 첫 1위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기에 신경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범나비, 왜 그렇게 똥 씹은 표정이야?”
주이든이 내 옆에 벌러덩 앉았다.
“첫 1위를 하고 싶었는데…….”
“범나비, 1위가 그렇게 중요해?”
“당연하죠. 네스트 커리어에 좋잖아요.”
“그렇다고 1등을 못 해도 우리가 욕먹는 건 아니잖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나를 달래주려고 긍정적인 말을 해줬으나… 내 옆에 앉은 주이든은 불안하다는 듯이 다리를 덜덜 떨었다.
“리허설할 때 손목은 어때?”
“다 나았어요. 약간 움직임이 불편하긴 하지만.”
“움직임이 불편하면 앉아서 노래하지.”
“과격한 안무도 아니잖아요.”
주이든에게 괜찮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요즘 들어 계속 ‘네스트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악질적인 너튜브 렉카의 영상이 올라와서 말이지.
똑똑.
대기실을 두드리는 소리에 멤버들이 고개를 들었다.
“들어오세요.”
들어오라는 화목현의 말에 대기실 문이 빼꼼히 열렸다. 그리고 등장한 사람은,
“안녕하세요? 키오의 리더 이금금입니다. 나비 형 보러 왔는데…….”
금금이였다. 뭐, 금금이? 내가 벌떡 일어나자 금금이가 나에게 달려와 방방 뛰었다.
“형, 저 이번에 일일 MC 맡았거든요!”
…금금이가 대기실에 올 줄은 몰랐는데.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아, 봤어.”
“봤는데 절 안 찾아왔어요?”
“네가 찾아올 줄 알았지.”
“형! 거짓말!”
금금이가 불만스럽다는 듯이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미안. 까먹었네.”
“그치? 형이 날 얼마나 좋아하는데!”
“당연히 좋아하지.”
그러면서 나는 대화의 주제를 돌리기 위해서 금금이의 개인 활동에 대해서 물었다.
“개인 활동 시작이 순조로워 보여.”
“형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너무 좋다!”
키오는 데뷔 활동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개인 활동에 돌입했다. 특히 금금이의 활기차고 백치 같은 모습이 먹히는지 공중파 예능에 자주 나오기도 했고.
“지금 내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알아?”
“왜?”
“당연하잖아! 네스트가 1위 후보라니! 내 일도 아닌데 괜히 기분이 좋더라고!”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정요셉과 주이든이 끼어들더니 그런 금금이를 보면서 불만을 토했다.
“아니, 우리는 안 보이냐?”
“안녕하세요, 이든 형…….”
“이건 명백한 차별이야, 차별. 나중에 꼭 복수한다.”
거기다가 정요셉은 금금이의 소매를 잡으면서 슬픈 표정을 지었다.
“금금이가 이제 우리를 잊은 것 같으니까… 소매만 꽉 잡아야겠다.”
“아, 요셉 형도 안녕하세요!”
은근히 낯을 가리는 금금이는 인사성이 조금 떨어진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를 무시하냐고 묻곤 했다. 금금이는 뒤에 앉은 이정진과 화목현한테도 인사를 한 뒤에 나를 보았다.
“아! 그리고 그것도 있어.”
멤버들의 눈치를 보더니 금금이가 낮게 읊조렸다.
“그거 봤어?”
“응?”
“다른 1위 후보.”
“아, 안 그래도 말하고 있었어.”
“진짜로?”
금금이는 내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조금 이상하지 않아?”
“그…….”
말을 이어가려던 순간, 눈앞에 시스템창이 번쩍하고 빛났다.
「문제 18, 음방 1위인 다이아몬드를 보면서 배꼽 인사 하기!
페널티:천장에서 조명이 떨어짐
정답 풀이:랜덤 박스 1개」
음, 우리가 1위가 아니라는 말이네.
“형?”
“아, 아니야. 그나저나 그거 알려주려고 온 거야?”
“응! 당연하지.”
“고맙다.”
“뭘! 나 이제 방송 시간 다가오니까 가볼게! 형, 잘하고!”
“그래, 너도 MC 잘 봐.”
금금이는 다음에 보자는 듯이 내 팔뚝을 치고 대기실을 나가 버렸다. 팔이 약간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알려주려고 온 게 어딘가. 이제 친하게 지낼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범나비, 너 아프지.”
“네, 이든 형이 때린 것보다 더 아파요.”
“내가 더 때려줘?”
“사양할게요.”
주이든은 자기도 세게 때릴 수 있다며 주먹을 들고 위협적인 자세를 취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무대에 다이아몬드가 나왔다.
“…와 HOR 엔터가 이를 갈았네.”
다이아몬드의 무대는 신인치곤 무척 화려했다. 무대 위에서부터 철창이 내려와 있었고, 오토바이가 3대나 있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HOR 엔터는 대체 무엇을 보고 다이아몬드에 투자하는 걸까?
주이든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비틀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나를 노려보듯 쳐다보았다.
“범나비, 우리 대화나 할까?”
“예?”
“저기에 정신이 쏠리기 싫어서 대화 주제를 바꾸고 싶거든.”
“아하.”
주이든은 슬슬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네 학교생활은 어땠어?”
“제 학교생활은…….”
“어, 어땠는데?”
나는 뭐.
“맨날 잤죠.”
“…이야, 누구랑 똑같다.”
“누구랑요?”
“정요셉.”
은근 학교생활을 잘했을 것 같은 정요셉이 잠만 잤다고?
“요셉 형이?”
“왜? 막내야, 나 성실하게 보여?”
“아니요. 그냥 학교를 누볐을 것 같은데.”
돌연프를 보면 정요셉은 10분만 놔둬도 다른 팀 연습생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래서 학교생활도 잘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라니.
“나 학교 친구 하나도 없잖아.”
“…예?”
“연예계 생활이 어떤지 계속 묻길래, 자발적으로 친구를 안 사귀었어.”
제일 친구가 많을 것처럼 생긴 정요셉이 친구가 없었다니? 내가 놀라서 쳐다보자 정요셉이 씩 웃었다.
“목현 형은 나랑 반대일걸?”
“목현 형 이야기는 들었어요. 친한 사람도 많았다는 거 진짜예요?”
“어, 진짜야.”
거창하게 말하자면, 화목현의 얼굴은 학창 시절에서도 빛났다고 들었다.
“어떻게 그랬어요?”
“나는… 학생회를 했었거든.”
다른 학생들과 교류가 많아서 과거 사진이 많았던 거구나. 멤버들의 과거 사진은 한 번도 찾아본 적이 없지만 이참에 봐야겠는데.
“우리 막내가 궁금해할까 봐 내가 저장해 놓은 우리 목현 형 과거 사진 보여줄게.”
“어디에 있는데요?”
“내가 핸드폰에 저장해 놨지~”
정요셉이 핸드폰을 꺼내서 보여준 화목현의 과거 사진은 기가 막혔다.
친목 도모를 위해서 학생회 회의를 하는 모습과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래서 화목현의 과거가 터졌을 때 사람들이 놀랐던 거구나.
하긴 나여도 놀랐을 것이다.
“저 형은 대학교도 갔잖아.”
“…완벽하네요.”
화목현의 진가를 또다시 느끼는 바였다.
“이제 1위 후보 올라가야 한대.”
김연호의 신호에 멤버들이 목을 가다듬었다.
“얘들아, 1위 못 해도 웃자.”
나는 입꼬리를 움직였다.
‘웃긴 웃어야지.’
***
박랜서는 일을 하다가 말고 SES 1위 후보인 네스트를 기다렸다. 개새끼 다이아몬드랑 같은 1위 후보라니? 박랜서는 믿을 수가 없었다.
“진짜… 자본주의 망해라.”
누가 봐도 HOR 엔터의 돈지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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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SES 네스트와 다이아몬드 1위 후보
오 다이아몬드 학폭돌 아닌가 ㄷㄷ
왜 네스트랑 같이 붙었냐
역시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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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랑 다이아몬드 1위 후보라고? 믿을 수가 없네
└ 왜 믿을 수가 없음?
└ 다이아몬드 음원 사이트 10위도 못 올라갔거든?
└ 요즘 뻑하면 1위 주는 세상이긴 하지
└ 네스트 팬임? 치열하게 산다
└ 진심 사재기했거나 차트 순위 돈 주고 만든 거 아니야?
-네스트 첫 1위를 다이아몬드한테 뺏겨야 함?
└ 네스트가 무슨 대단한 그룹도 아니고 ㅋㅋ 크래프트면 ㅇㅈ
└ 갑자기 크래프트는 왜 나옴?
└ 팬다운 게 아니라 초동이랑 차트 순위 낮은 다이아몬드가 네스트를 이긴다는 게 말이 됨? 네스트가 좆소니까 지는 것 같아서 빡치는 거임
└ 나도 이거 인정
다이아몬드는 학폭을 인정한 그룹인 데다 주이든을 왕따까지 시켰으면서 HOR 엔터는 과감하게 데뷔를 시켰다.
-HOR 엔터는 왜 다이아몬드를 데뷔시키냐 지금 남자 아이돌이 얼마나 많은데…
└ 다이아몬드 몇 명 부자라고 그러더라
└ ㅋㅋㅋㅋ요즘 잘생긴 애가 없잖아ㅠ 그래도 다이아몬드 얼굴은 준수한 편임
└ 부자라고 아이돌 한단다ㅋㅋㅋㅋㅋ 지랄ㄴ
└ ㅋㅋㅋㅋㅋ준수하다고 학폭돌을 데뷔시킴?
-너희들은 다이아몬드 1위 하면 인정해 줄 거야?
└ ㄴㄴ
└ 할 만하니까 하겠지
└ 지나가는 사람이 다이아몬드 노래 안다고 하면 인정할 거임ㅋ
박랜서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때 MC가 네스트를 불렀다.
“나비다……!”
네스트와 다이아몬드가 같은 무대에 서서 1위 후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때 나비가 자리를 옮기다가 다이아몬드 멤버인 제도전의 발을 밟아버렸다.
제도전이 인상을 쓰면서 아, 소리를 내자 나비가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금금 : 네스트분들, 몇 주 만에 1위 후보에 올랐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화목현 : 우리 팬들의 사랑 덕분에 1위 후보에 올랐다고 생각합니다.]
신인다운 귀여움에 박랜서는 흐뭇했는데,
[이금금 : 다이아몬드분들은 데뷔하자마자 1위 후보에 오른 비결이 따로 있나요?]
[제도전 : 우리 실력으로 1위에 오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면서 다이아몬드는 자기들끼리 웃었다.
-쟤들 뭐라냐?
└ 자기들의 실력이래ㅋㅋㅋ
└ 팬들 개우습게 본다 와~
└ 팬들도 있었음?
-신인의 패기 ㄷㄷ
└ 저러다가 나락
└ 나락은 무슨 쟤네 팬들 인정하는 중임
-아 귀엽다ㅋㅋ
└ 저게 귀여워?
└ 와 비위 짱이다
박랜서는 기함을 했다. 인정한다고? 정말 아이돌 착즙하는 수준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위 후보 인터뷰가 끝나고 1위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이금금 : 이번 모든 차트를 합산한 1위는?]
화면에 집계가 뜨면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제발, 제발.”
박랜서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네스트!
-이건 네스트 줘라 학폭돌 주기 싫은데?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
댓글창이 빠르게 올라갔고, 이금금이 입을 열었다.
[이금금 : 축하합니다, 다이아몬드!]
말도 안 돼.
“다이아몬드가 1위라고?”
이해가 안 간다.
-엥
-1위 뭐임
-아니 왜 집계에 앨범 판매를 빼놓음?
-…뭐야
박랜서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만 욕설을 지껄였다. 어떻게 다이아몬드가 1위야?
그때 네스트가 다이아몬드에게 다가가 축하하는 모습이 보였다. 축하한다면서 웃는 네스트를 보며 박랜서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네스트 인성 완벽하네~ 웃으면서 1위 축하한다고 하는 모습 카메라에 잡힘 ㅠ
-범나비 병원에서 일어나서 첫 무대인데 참…
[이금금 :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도전 : 당연히 1위는 우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금금 : 아하….]
-ㅋ……
-다이아몬드 팬들 불쌍ㅠ
-이야 팬들한테 감사하다는 말도 없네 ㅋㅋ
화제성도 없어. 얼굴도 별로야. 노래도 못 불러. 춤도 못 춰.
“…아아.”
[이금금 : 그럼 다음에 봐요. 안녕~]
마지막으로 다이아몬드가 HOR 선배인 트렌디를 끌어안더니 무대에서 1위 앵콜곡을 부르지도 않고 음방이 끝났다. 거기에다가 선배들 덕분이라는 말소리가 마이크에 들렸다.
-?ㅋㅋㅋ
-이야 다이아몬드 인성 봐
-말도 안 되네 네스트 노래는 차트인하고 몇 주가 지났는데도 15위잖아
-네스트 개불쌍ㅠㅠㅠ
-나만 플라워 듣고 있음?
└ 나도 들어ㅠㅠ
└ 노래 개좋음ㅋㅋㅋㅋ
└ 이렇게 좋은 노래가 1위를 못 했다는 게 웃기다ㅋㅋㅋ
-이번 1위 후보는 일주일 초동을 본다는데?
└ ㄴㅁㅇ 나도 그거 보고 놀랐잖아 앨범 사재기만 하면 다 1위 하겠다
└ 헐 갑자기 그렇게 바뀌었어?
박랜서는 애써 나중에 1위를 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을 곱씹을수록 짜증이 났다. 어떻게 다이아몬드가 상을 받을 수가 있어?
-네스트 영상 하나 떴다
└ 헐ㅠㅠㅠㅠㅠㅠㅠ
└ 어디에?
└ 커뮤니티 검색해 봐
└ 마음이 안 좋네
└ 나도 어쩌다가 봤는데 마음 안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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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울 애들이 창문 내리고 인사했는데
팬들에게 미안하대
1위를 못 한 게 자기들 탓이라고
팬들이 울 필요도 없고 너무 신경 쓰지 말라면서
나중에 1위 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는 모습 보이겠대
울 애들ㅠㅠㅠㅠㅠㅠㅠㅠ
특히 나비가 죄송하다는 듯이 고개 숙였는데
아 마음 아파 시발…
(창문내려서_인사하는_네스트_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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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 이게 참
-ㅠㅠ우리가 더 미안해
└ 왜 너희들이;ㅠㅠ
└ 나비 우는 것처럼 보였는데
└ 왜?
└ 고개 숙이고 눈 닦는 거 보니까
└ 하…
“아… 씨.”
1위 못 했다고 미안해하는 아이돌을 보며 박랜서가 욕을 내뱉었다.
***
배가 아프긴 했다. 1위를 할 수 있었는데…….
‘뭐 1위를 못 한 건 아깝지만.’
이제 현실을 생각하자. 1위는 나중에 할 수도 있는 거고.
그때 김연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나를 불렀다.
“나비야, 가방 챙겨.”
“가방이요?”
“응, 오늘 살아남아라 미팅 있다고 했잖아.”
“그랬죠?”
아, 그랬지. 근데 미팅 때문에 가방을 챙기라고?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