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학폭 가해자?(2)
“진짜잖아!”
주이든이 놀라서 내 핸드폰을 가져가 확인했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화목현이 나한테 되물었다.
“나비야, 오한준 SNS가 털렸다고?”
“네, 목현 형.”
“…그렇다면.”
“오한준과 정진 형이 친했다면 증거가 있겠죠. 그런데 증거가 없으면 사람들이 믿어줄까요?”
이정진은 오한준과 같은 반이고 친하다는 가정하에 계속 욕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오한준의 SNS에 이정진과 친하다는 증거가 없다면?
‘사람들이 이상함을 느끼겠지.’
나는 그걸 노리고 있고.
“…증거가 없어도 믿지 않을까.”
“그러면 오한준 SNS에 정진 형과 찍은 사진이 있었겠죠.”
오한준의 고등학생 시절 SNS가 털리면서 상황은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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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오한준 이정진 안 친함
오한준 고등학교 시절 내내 행복하고 좋았다고 했음
이정진 고등학교 시절 찐따였다고 말함
이 둘의 차이점을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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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래 쉴드 친다고 수고가 많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22
└ 333
-실제로 이정진 고등학교 수학여행 단체 사진에 없어
└ 진짜 없어?
└ ????
└ 왜 이정진은 없지
└ 이거 팬싸 때 정진이가 수학여행 못 갔다고 하지 않았나
└ ㅇㅇ 못 갔다고 했음
-보니까 오한준이랑 이정진 비즈니스로 친하다고 했네 ㅋㅋ
└ ㄷㄷ 존나 둘이 찐친이라고 말했잖아
└ 그건 오한준이 말한 거고 이정진은 아니었음
-이렇게 해봤자ㅋㅋ 한준이는 승승장구함
└ ㅇㅈ 22
└ 우리 한준이 지켜
└ 학폭돌 좋아하네… 인성 개쓰레기 좋아하는 네 인생도 대단하다
└ 학폭돌 좋아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야? 얼굴 때문에?
└ 얼굴 ㅇㅇ
-한준이가 너희 덕질하라고 협박했어? 덕질 안 하면 되는 거잖아
└ 학폭돌 좋아하는 전형적인 팬들의 논리를 펼치네
└ 오 그러면 너는 한준이한테 협박받아서 덕질하는 거야?ㅠㅠ
-한준이가 왜 싫음? 한준이가 너희 때렸어?
└ 오… 이런 팬들 때문에 학폭돌이 나대지
└ 한준이가 팼으면 인정함 ㅇㅇ
-ㅋㅋㅋㅋㅋㅋㅋㅋ 어차피 소속사에서 오한준 안 놓을걸?
└ ㅇㅈㅋㅋㅋㅋㅋㅋ
└ 이렇게 뇌 빼기를 하시겠다?
오한준의 계정이 털리고 이정진과 찍은 사진이 나왔다면 계속 이정진을 물고 늘어졌을 것이다. 오한준은 이미 탄탄한 팬덤이 생성되어 있었으니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죠.”
“그래, 그러자.”
화목현이 이정진의 어깨에 팔을 두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음악 방송이 끝나고 박랜서는 미니 팬미팅에 참석했다.
‘조금 걱정스러운데.’
음악 방송 방청객으로 있을 때 이정진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네온이 정진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네스트가 분위기를 풀려고 나비 몰이를 해서 재밌긴 했지만. 저 멀리 네스트가 허리를 숙이며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ONLY ONE 네스트입니다.”
네온의 함성에 네스트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데뷔하고 처음 하는 미니 팬미팅이라서 너무 떨리는데 어떡하죠~?”
요셉이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떨린다는 표현을 했다.
“보라색 머리는 어떻게 하게 됐어!”
한 네온의 외침에 요셉이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만졌다.
“이거요? 보라색 장미를 선택한 자의 보상이라고 할까요. 탈색하면 두피가 아프니까 우리 네온이는 하지 마세요~”
그래도 탈색은 자주 안 했으면 좋겠다. 애들 나이가 몇인데 탈모 걸리면 어떡해.
“이번에는 멤버들이 하나씩 포스트잇을 골라서 질문의 답변하는 시간을 가질 건데요!”
그러고 보니 미니 팬미팅을 진행하기 전 김연호 매니저가 포스트잇에 네스트에게 궁금한 점을 적어달라고 부탁했었다. 박랜서는 포스트잇에 정진이를 응원하겠다고 적었다.
“네스트의 리더인 제가 먼저 뽑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천천히 포스트잇을 살펴보다가 화목현은 파란색 포스트잇을 뽑았다.
“이제 읽겠습니다. 정진아,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어. 우리는 언제나 너를 응원하고 있어.”
네온들이 정진이 응원 포스트잇을 적은 걸까? 옆에서 정요셉이 또다시 포스트잇을 읽었다.
“…연습생 시절부터 응원한 정진아, 네가 누구보다 착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힘내.”
포스트잇을 읽으면 읽을수록 정진이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어떡해.’
박랜서는 안타까움에 코가 시큰했다.
“죄송합니다…….”
네온이 울지 말라고 외쳐도 소용이 없는지 정진은 뒤돌아서 눈물을 하염없이 닦았다. 나비가 정진의 모습을 등으로 가려주면서 화제를 돌렸다.
“근데 저기에 ‘나비야, 네가 이든이는 이기지?’라는 포스트잇이 있었거든요?”
“뭐! 당연히 내가 이기지.”
“이든 형, 정말 그럴까요…….”
이든의 주먹이 날아가 나비의 팔뚝에 떨어졌다. 그러나 아픈 느낌이 없는지 나비는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아프지?”
“이든 형, 아프네요.”
“그치? 그치? 내 주먹이 매서워.”
그냥 호랑이 앞에 주름잡는 참새 같다고 박랜서는 생각했다. 이든은 허리에 손을 얹고는 턱을 들어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미니 팬미팅이 끝날 시점이 다가왔다. 김연호 매니저가 화목현한테 귓속말을 했다.
“이제 미니 팬미팅은 끝내야 할 것 같네요. 내일도 꼭 봬요!”
김연호 매니저가 스케치북에 ‘지금!’이라고 적힌 페이지를 보여주자, 네온들이 소리쳤다.
“정진아, 고생했어!”
차에 올라타기 전까지 네온을 보면서 손을 흔들어주는 정진의 모습에 박랜서는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조심히 들어가요! 사람 조심! 차 조심! 네온들!”
“네온, 사랑해요~”
“오늘 고마웠습니다.”
이든이 그렇게 외치자 차례대로 정요셉과 화목현이 소감을 말했다. 박랜서가 흐뭇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나비가 들고 왔던 보부상 가방을 열었다.
“이거 초콜릿과 사탕이에요.”
언제 준비했는지 나비가 초콜릿과 사탕을 네온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나비야! 이런 건 언제 준비했어!”
“오늘 아침에요.”
나비의 입꼬리에 미소가 걸렸다. 이러니까 공방을 못 끊는 거다.
“꼭 나눠 드세요. 돈 많이 벌어서 더 많이 사드릴게요.”
그러면서 차에 올라탄 나비는 창문을 내려 손을 흔들었다. 언제 나비의 뒤에 왔는지 멤버들이 얼굴을 보여주었다.
“아, 형들!”
네온은 사이좋게 사탕과 초콜릿을 나누고 흩어졌다.
“정진이가 걱정되네.”
크게 울던데.
***
차 안에서 목 놓아 울던 이정진은 숙소에 오자마자 눈물을 그쳤다. 화목현은 비닐봉지에 얼음을 넣고 이정진의 눈두덩이에 올렸다.
“…정진아, 괜찮아?”
“응…….”
“엄청 울어서 탈진하는 줄 알았어.”
이정진은 얼음이 담긴 비닐봉지를 받아서 소파에 앉았다.
“나 때문에 네스트가 망하게 되는 줄 알았어.”
심신이 약한 이정진은 네스트가 망하는 상상까지 한 모양이다. 이정진은 벅차오른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지 아흑, 하고 안쓰러운 소리를 내며 울었다. 주이든은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우리가 왜 망해?”
“그룹에 학폭 가해자가 있으면 인기가 떨어지긴 하지~?”
정요셉이 정답을 가르쳐 줬지만 주이든은 도통 이해를 못 한 것 같았다.
“그런데 정진 형은 학폭 가해자가 아니잖아.”
“아니어도~ 여론이~”
“우리가 여론에 휘말릴 필요는 없지!”
주이든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탄산음료를 마셨다. 그러고 보면 저렇게 멘탈이 단단한 것도 다행인 거긴 하지.
“내가 시킨 치킨이나 먹으면서 차트나 확인할까?”
화목현이 아파트 복도에서 치킨을 가져와 거실 바닥에 놓았다. 치킨의 냄새가 거실에 돌면서 이정진의 눈물이 뚝 그쳤다.
“나비야, 우리 순위가…….”
“우리 순위…….”
화목현의 지시에 핸드폰으로 순위를 확인하는데,
“…이거 맞죠?”
플라워 순위가 말도 안 된다. 내 어그로에 정요셉이 반응했다.
“왜? 우리 막내, 우리 노래가 차트에 없어서 놀랐어?”
“아니요…….”
89위였던 순위가 30위로 상승했다. 예상치 못한 순위에 나도 말문이 막혔다. 다행히 노래가 먹혔다는 점인데.
“30위인데요?”
그 말에 주이든이 닭다리를 먹다가 그대로 떨어트렸다.
“30위?!”
이게 무슨 일이냐면서 주이든이 입을 쩍 벌렸다. 음원 사이트 댓글을 샅샅이 확인했으나 어느 경로로 듣게 되었다는 말은 딱히 없었다. 그저 응원 댓글이 많을 뿐이었다.
-이정진 파이팅!
-네스트 응원합니다.
-갑자기 순위 상승했길래 들어봤는데 노래 괜찮은데? 아이돌 노래 맞음?ㅋㅋ
왜 상승했지? 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차 안에서 잠을 몰아 자서 핸드폰을 확인할 겨를도 없었으니까.
“왜 우리 노래가 갑자기 상승했지?”
“글쎄요. 그냥 노래가 좋아서 상승하지 않았나 싶어요.”
화목현의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해주고 싶었으나 커뮤니티를 확인해도 별다른 이유가 나오지 않았다.
“어! 이거네! 연호 형이 보내줬어.”
계속 핸드폰을 보던 주이든이 침대에서 박차고 일어나 우리한테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 너튜브 영상, 보라고 했어.”
그 너튜브 영상의 제목은 ‘오한준의 대기실 만행’이었다. 조회수가 40만을 돌파했고, 댓글은 오천 개가 넘어갔다.
“와…….”
“허.”
영상에는 오한준이 음악 방송 대기실에서 어떤 일을 벌였는지 자세히 나와 있었다. 대기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대기실에서 멤버의 뺨을 때리며, 음방 무대 위로 올라가기 싫다면서 매니저를 폭행하는 장면까지. 적나라하게 오한준의 모습이 드러나 있었다.
거기다가,
-이정진 걔 왕따였잖아. 내가 왕따로 만들었거든.
술에 취했는지 오한준의 발음이 어눌했다.
-존나 못생긴 새끼가 연습생이라니까 꼴받아서 맨날 때렸지
정요셉이 주이든의 귀를 미리 손으로 막았다. 영상은 그렇게 끝이었다. 오한준의 만행에 질린 누군가가 영상을 만들어서 터트린 것이다.
-이야ㅋㅋㅋㅋㅋ 오한준 개같이 떡락
└ 찐따가 아니라 왕따였음을…
-한준아 잘 가라 너는 그냥 좆망이 답이다
-수능 준비하자~ 근데 구구단도 못 외우는 머저리가 수능을 준비할 수 있으려나
-ㅋㅋㅋ 열등감에 왕따 시킨거네
└ ㅇㅈㅋㅋ
-그룹 비주얼 나락 멤버 폭행 ㅠ 멤버들이 불쌍하다
-오한준은 학폭돌의 레전드로 남겠네 ㅋㅋ
-오늘 네스트 미니 팬미팅 했는데 이정진 울었잖아
└ 헐… 얼마나 억울했을까
└ 피해자가 울어야 하는 이 세상은 걍 미쳤음
어쩐지. 갑자기 순위가 갑자기 올라간다 했지.
“나비야, 내가 댓글 읽어볼게.”
“여기요.”
이정진이 핸드폰을 받아서 댓글을 확인했다.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이정진의 아랫입술이 떨렸다.
“정진 형, 봐봐! 사람의 업보는 돌아온다니까!”
“…진짜네, 이든아.”
“형이 울 필요가 없어! 형은 항상 미소만 지으면 돼!”
피해자가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 가해자가 울어야지. 정요셉은 닭다리를 양보하겠다면서 이정진의 입에 닭다리를 욱여넣었다.
“우리 정진 형, 맛있게 먹어~”
“…으응.”
맛있게 먹는 거 맞나. 신종 괴롭힘 같은데? 이정진이 닭다리를 뜯으며 맛있게 먹었다. 나도 치킨을 먹는데 눈앞에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이정진의 사회성이 대폭 상승합니다. D → C】
【이정진이 ‘우울함’에서 벗어납니다.】
【이정진의 상태:(ノ›_‹)ノ 행복 모드】
행복 모드에 돌입한 이정진의 낯빛이 좋아졌다.
“오~ 막내야, 그러면 1위는 누구야?”
“…크래프트 커버요.”
“와, 벌써 1위라고?”
신인이 벌써 1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남주의 인기는 날로 상승했다. 돌연프에 나왔던 그룹 중 크래프트는 논란도 없어서 안정적으로 커리어하이를 찍을 기세였다.
내 기억에 의하면 원래 크래프트는 망돌이었다. 키오를 이길 거라면서 패기 있게 홍보를 많이 하기는 했지만. 그래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1위를 잡을 줄은 몰랐네.’
이남주도 아이돌 생태계를 잘 알고 있어서인지 좋은 노래를 뽑은 모양이다. 이러면 크래프트를 견제할 수밖에 없는데…….
“나비야, 닭다리.”
화목현이 건네주는 닭다리를 보다가 문득 팬 싸인회가 떠올랐다. 내일은 첫 팬 싸인회니까 좋은 추억을 드리고 싶은데.
“내일 팬싸니까 팬들이 왕인 컨셉으로 진행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요?”
“괜찮은데~?”
정요셉이 내 그릇에 치킨 무를 올려주면서 동의했다.
“그러면 옷도 갈아입자.”
“어떤 옷으로요?”
“음… 집사 컨셉은 어떨까.”
“목현 형, 그 아이디어 좋은 것 같아요.”
키오 시절에 한 번 해봤던 이벤트였다. 반응이 역대급이었고 화제성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팬들이 무척 좋아했다.
“연호 형이 허락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