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학폭 가해자?(1)
찐따라는 발언에 기자도 할 말이 없는지 눈만 끔벅였다.
“저는 구석에서 음악만 들었습니다.”
그 발언에 기자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럴 수밖에. 나 같아도 머릿속이 도화지처럼 하얗게 변했을 것이다.
“오호, 정진 씨, 그나저나 드디어 팬명을 정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팬명이 뭐죠?”
정요셉이 맥을 끊으며 팬명으로 화제를 돌렸다.
“네온입니다.”
“네온?”
“온리원 네스트를 줄여서 네온입니다.”
“그렇다면 원래 온네가 아닌가요?”
중간에서 주이든이 고개를 저었다.
“온네는 조금…….”
“뭐가 문제죠?”
원래 온리원과 네온 중에서 고르다가 네온이 이기고 말았다. 정요셉이 적극적으로 어필한 덕분에.
“잠시 화장실 좀 갔다 오겠습니다.”
갑자기 정요셉은 그렇게 말하더니 MC의 자리에서 벗어나서 우리 옆에 남은 한 자리에 앉았다.
“사실 제가 네온을 하자고 했거든요.”
“어? 요셉아, 언제 왔어.”
화목현이 능글스럽게 받아주었다.
“아까 왔는데 못 봤구나. 그럼 제가 네온을 하자고 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이든이는 온리원을 하고 싶어 했고, 저는 네온을 하고 싶었어요. 네온, 네온이… 어감이 귀엽잖아요? 무엇보다 우리 팬들을 귀엽게 부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저렇게 말하는데 누가 반박을 하겠는가. ‘네온이’라는 어감이 귀여우니까. 이 말에 손과 발을 들었다.
“네온이가 귀엽긴 하지.”
“맞지, 정진 형!”
다시 정요셉이 MC의 자리에 돌아오더니 화목현한테 질문을 했다.
“이제 쇼케이스 소감을 들어볼 차례인데요. 누가 말해볼까요?”
화목현이 나를 쳐다보았다.
“쇼케이스 소감은 나비가 말하기로 했어요.”
나? 내가 화목현을 보면서 눈을 크게 떴다.
“나비가 네온이를 많이 좋아하거든요.”
“그건 맞지만.”
나도 팬들을 만나서 떨렸다. 말을 잘할 수 있을까 싶어서. 무지갯빛 물결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를 위한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응원까지 해준다. 저 마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예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네온.”
“…….”
“항상 보답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허리를 숙이자 멤버들도 허리를 숙였다. 정말로 팬들한테 잘할 자신이 있었다.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며 아이돌을 했으니까.
“저는 네스트 쇼케이스 MC를 맡은 요셉이자 네스트의 서브보컬 정요셉이었습니다. 여러분, 네스트의 플라워, 많이 사랑해 주세요!”
팬들한테 인사를 한 뒤 무대 밑으로 내려오자 김연호가 다급하게 우리를 불렀다.
“…미안한데, 기사를 좀 봐야겠다.”
얼마나 급했으면 쇼케이스가 끝나자마자 기사를 보라고 할까.
[네스트 이정진, 학폭 가해자 의혹…]
이정진이 학폭 가해자?
***
QTQ 음방 대기실 안 분위기는 우울했다.
“하아…….”
이정진의 학폭 논란은 멈추지 않았다. 이정진은 부정했지만 조롱과 날조가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찐따야 왜 그랬냐;
└ ㅋㅋ이정진이 찐따? 말이 됨?
└ 아이돌이 학폭 가해자라니 ㄷㄷ
└ 조심해라; 이러다가 이정진이 다 고소할 수도 있음
-우리 찐따 프레임 짜려고 난리ㅠ 그게 말이 되냐?
└ 아 차라리 모르는 사이라고 하지 찐따가 뭐냐 ㅋㅋ
└ ㄹㅇ 그 얼굴에 찐따는 말이 안 되긴 하는데 졸업 사진 보면 그땐 찐따 맞는 듯?ㅋㅋ
└ 이상한 안경까지 쓰고 있었잖아 지금은 라식 했다고 해도
-AA 엔터는 아이돌 관리를 어떻게 하면 아이돌이 찐따라는 발언을 할 수 있지?
└ 그는 찐따였습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ㅅㅂ
└ 아 배 아파 ㅋㅋㅋㅋㅋㅋㅋㅋ
-쇼케이스 끝나고 찐 프리뷰 보니까 이정진 얼굴 썩었던데? 팬들한테 인사도 안 해주고 ㅋㅋ
└ ㅎㄷㄷ 역시 오한준과 같은 반이어서?
└ ㄷㄷ 일찐은 남다르네
프리뷰에 잡힌 이정진의 표정은 눈물을 억지로 참으려고 노력하는 표정이었다. 팬들한테 인사도 잘했고.
팀장님은 이정진이 정말 학폭 가해자가 아니라면 기자 오피셜만 내자고 했다.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AA 엔터, “이정진 학폭 가해자 아니다” 일침]
그러나 이후로 더욱 안 좋은 댓글만 늘어나기 시작했다.
-학폭 가해자가 아니라고? 아니라고? 같은 반인 데다 친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 아닐 수도 있지 ㅇㅇ
└ 찐따라잖아ㅠ
-이정진 탈덕합니다. 탈덕할 굿즈는 없지만 내 마음을 드릴게요.
└ 이정진 발언 오히려 좋아~ 앨범 사기 전에 탈덕했으니까~
여론이 좋지 않은 건 이정진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찐따 발언의 파장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어.”
이정진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읊조렸다.
“찐따가 나쁜 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나를 학폭 가해자로 몰아갈 줄은 몰랐지.”
화목현 말대로 나는 이정진의 찐따 발언으로 논란이 번질 줄 알았다. 아이돌이 찐따라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정진 형, 반에 다른 친구는 없었어요?”
“…음, 없었어.”
그러니 당연히 누구 하나 이정진을 변호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 피해자가 이정진이라는 생각은 당연히 못 하겠지.
-오늘 오한준도 음방 나오지 않음?
└ 엥? 이정진은 몰라도 오한준은 왜 나와?
└ 그냥 나오는 거지 학폭 인정하고 사과했다고ㅋㅋ
고작 사과했다고 음방에 나온다고? 어이가 없어지려는 찰나였다.
“어, 저기요!”
복도에서 김연호의 목소리가 들리고 대기실 문이 활짝 열렸다.
“야, 이정진!”
오한준이었다. 화장으로 떡칠을 해놓은 오한준은 숨을 거칠게 뱉으며 이정진을 불렀다.
“저기, 왜 오셨어요?”
화목현이 의자에서 일어나 오한준에게 말했다.
“왜 왔는지 진짜 몰라?”
“저는 모르겠습니다.”
“누구 만나러 왔는데.”
이정진을 만나러 왔나? 그런데 오한준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야, 너!”
오한준이 다가오더니 내 멱살을 틀어잡았다. 무섭지는 않았지만 의상이 구겨져서 오한준을 떼어내고 싶었다. 음방이라 팬들한테 예쁘게 보여야 하는데…….
“너냐? 너지?”
“뭐가요?”
“기자한테 학폭 말한 거!”
“제가요?”
“네가 아니면 누가 기자한테 말하는데!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단 말이야!”
그걸 말하면 이정진한테도 피해가 가는데 그걸 내가 말했을까. 나는 아래를 보면서 오한준의 어깨를 손으로 쳤다.
“제가 말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
“어쩌죠. 아닌데요.”
자신이 저지른 일은 반성하지도 않고,
“…씨발!”
천박하게 욕을 뱉다니. 근처에서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저러나.
“오한준!”
뒤늦게 오한준의 매니저가 찾아왔다. 오한준을 막으려고 뒤에서 그를 잡았으나 오한준은 꿈쩍도 안 했다.
오히려 오한준은 아득바득 이를 갈면서 이정진을 쳐다보았다.
“아니면 네가 제보했냐, 이정진?”
“…….”
“그러니까 왕따나 당하지!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었어?”
…말이 심한데? 우리는 이정진 앞에 줄을 지어 섰다. 오한준은 짜증 난다는 듯이 괴성을 질렀다.
“악! 왕따를 당했으면 당한 이유를 생각하고 반성이라도 해야지. 어째 너는 발전이 없냐, 발전이?”
“오~ 그건 아니다~”
“원래 왕따 당하는 새끼들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야.”
“그 이유가 너 때문이잖아~? 아닌가.”
오한준의 몸이 살짝 흠칫했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놈들은 강약약강의 표본이더라. HOR 녀석들이나 박정후도 그렇고.
“왜 내가 반성을 해?”
그때 입에 풀칠을 하고 있던 이정진이 말했다.
“그럼 네가 반성해야지, 찐따 새끼가.”
“가만히 있던 나를 건드린 사람은 너잖아.”
“건드려? 찐따처럼 가만히 노래만 듣고 있는데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하잖아. 맨날 구석에서 이상한 가사나 쓰고.”
오한준의 입에서 나온 건 평범한 학생의 모습이었다. 그걸 왜 찐따라고 생각하지?
“저딴 새끼가 연습생이나 되고.”
“…너도 마찬가지잖아.”
“너랑 나랑 동급이라는 사실이 싫어.”
사람이 사람을 싫어할 순 있다. 그런데 전형적인 열등감을 내비치는 오한준을 보니 인권을 짓밟고 싶었다.
“저 오한준 선배님,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어요.”
“뭐?”
“저도 실수를 하나 해서요.”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오한준한테 녹음 화면을 보여주었다.
“대기실에서 노래 연습할 때 녹음을 하고 있었는데 선배님이 하는 말씀이 다 들어간 것 같아서요. 어쩌죠?”
오한준이 빠르게 내 핸드폰을 낚아채려는 순간, 내 뒤에서 뜨개질하던 털실 뭉치가 날아오더니 오한준의 얼굴에 떨어졌다.
“아!”
오한준이 신경질을 부리면서 털실 뭉치를 밟았다.
“왜 내 털실이 저기로 떨어졌지.”
구석에서 심신미약 상태로 뜨개질을 하고 있던 주이든이었다. 주이든은 벌레 밀치듯 오한준을 옆으로 밀며 바닥에 떨어진 털실 뭉치를 주웠다.
“…지랄한다, 지랄해.”
이미 인터넷에서 욕이란 욕을 다 들은 오한준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선배님은 욕 말고는 할 말이 없죠.”
“……!”
“그래서 그렇게 천박하게 계속 욕을 하는 거는 건가. 난 선배 같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선배님, 감사합니다.”
주이든이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차리자 오한준이 주먹을 쥐었다.
“너… 이름 뭐야!”
“범나비, 내 이름 뭐더라?”
능글스럽게 물어보는 주이든을 보면서 나는 말했다.
“형이죠.”
“아, 형이긴 하지.”
이럴 땐 주이든의 멘탈을 본받고 싶다니까. 슬슬 약이 오르는지 오한준의 미간에 고속도로가 생겼다.
“이런 새끼들만 모여 있으니까 이정진이 찐따라고 욕을 먹지… 씨발.”
마지막까지 욕을 지껄이네.
“한준아, 가자… 제발…….”
오한준의 매니저가 오한준을 잡으며 대기실을 나갔다. 정적이 가라앉자 나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나비야, 녹음했다는 거 거짓말이지?”
“진짜 했는데요.”
“…잘했어. 종종 그런 게 필요하더라.”
혼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잘된 일인가.
“은근히 저런 게 도움이 된다니까, 진짜로! 짜증 나서 녹음본 퍼트리고 싶네.”
“그건 안 돼, 이든아.”
“목현 형, 생각을 해봐. 선배라는 이유로 갑질을 당했는데 화가 안 나?”
“화는 나지.”
무엇보다 이정진이 신경 쓰이겠지. 누가 과거의 아픔을 드러내고 싶겠나. 이정진은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바닥에 두고 있었다.
“악!”
그때 주이든이 털실 뭉치를 들고 일어나더니 소리를 질렀다.
“왜 저 형이 반성을 하고 있냐고!”
“우리 이든이, 침착하자~ 뜨개질 마저 해야지.”
“뜨개질 개빡쳐!”
“그러게 시집이나 읽으라고 했잖아.”
정요셉이 주이든의 어깨를 주물렀다.
“괜찮아. 우리 이든이, 뜨개질할까?”
“어우, 진짜!”
이번에 화를 삼키는 방법을 찾았다고 하더니, 뜨개질을 시작했을 줄은. 주이든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어쩐지 어울렸다.
“조용히 넘어가는 편이 나아. 팀장님도 아무 말 없으셨잖아.”
화목현이 침착하게 분위기를 잡았다. 하긴 오한준의 멱살을 잡고 팰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게 되면 뒷감당은 누가 하고.
그러고 보니까 아까 오한준 SNS 계정이 털렸다고 했지? 가만히 있어도 손을 씻을 방법이 있네.
“정진 형, 학폭 가해자 오해는 곧 풀릴 거예요.”
내 말에 멤버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왜?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데?”
의문을 품은 주이든을 보면서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어? 오한준 고등학교 SNS 계정 털림
그리고 이 댓글을 주이든에게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