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82화 (82/235)

82. 플라워 쇼케이스

“왜 내가 떨리지?”

데뷔는 네스트가 하는데 박랜서는 자신이 데뷔하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쇼케이스 근처에서 받은 플래카드, ‘네스트 데뷔 이리 오너라’를 흔들었다. 하지만 속상한 건 따로 있었다.

‘…나비만 티저가 안 나왔어.’

나비만 티저가 없었다. 무슨 이유가 있다고 느끼긴 했지만.

“까아아아악!”

쇼케이스 시작에 팬들의 함성이 커지고 MC가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네스트 쇼케이스 MC인 요셉이라고 합니다.”

요셉의 목소리에 박랜서는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아이돌 후배의 쇼케이스 MC를 맡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능글스러운 요셉을 보면서 팬들이 웃어버렸다.

“네스트의 나비 씨가 저한테 MC를 부탁했거든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후배인 나비 씨라… 후배를 아끼는 마음으로 쇼케이스에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싫진 않으시죠?”

“좋아요!”

오히려 좋았다. 팬들의 답변에 요셉이 허리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오늘 쇼케이스에서 뮤직비디오가 선공개된다고 하는데요. 그 전에! 네스트를 봐야겠죠? 저랑 닮은 정요셉 씨가 나올 거라고 하더라고요. 신기하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세요!”

박랜서는 귀여운 정요셉의 행동에 웃었다.

“감정 없이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을 위한 헌정곡이라는데요. 플라워 무대, 보러 갈까요?”

팬들의 외침에 무대의 조명이 완전히 꺼지고 요셉이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스크린에 개인 티저가 뜨면서 천장에서 장미 꽃잎이 떨어졌다.

넘실거리는 장미 꽃잎 사이, 무대 위로 네스트가 올라왔다. 그리고 조명이 네스트를 비출 때 비명을 질렀다.

‘…시발! 정진이 은발!’

제일 탈색을 안 할 것 같은 정진이가 은발이라니! 헤어랑 메이크업은 괜찮은데 스타일링은 별로였다. 하얀색 셔츠에 검은색 슬랙스. 하네스도 아이돌이 자주 보여주는 무대 위 패션이었다.

‘그냥 얼굴이 다 했네…….’

스타일리스트가 네스트 얼굴만 믿고 스타일링은 포기했나 싶었다. 스타일링에 돈을 쓴 티가 나질 않았다. 네스트가 중앙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센터가 다름 아닌 이정진이었다.

이정진은 센터를 잡으면서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살짝 시선을 올렸다.

-nanana- nanana-

nanana- nanana-

무대 위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반주가 나왔다.

-물방울이 눈에 떨어지면

나는 떠나갈 수 없어

박랜서는 혼동이 왔다. 이정진의 포지션은 랩인데 노래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잘 부른다…….”

옆에서 홀린 듯이 말하는 팬의 말에 박랜서는 동의했다. 정말로 잘 부른다. 이건 뭐, 더 할 말이 없는데?

-너라는 꽃봉오리에 갇혀

플라워 나는 꽃을 피우지 못해

장소를 넓게 쓰지 않고 큰 동작도 아니라서 노래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어쿠스틱 댄스 장르인가?

-NO WAY NO WAY

너를 깊게

네가 보고 싶어서

헤어 나올 수가 없어

I WANT YOU

이정진의 파트가 끝나자 마이크에 달린 물방울 모양 조명이 켜지면서 네스트가 고개를 들었다. 절제된 웨이브에 팬들은 소리를 질렀다.

‘미쳤나? 미쳤어!’

나비가 마이크를 아랫입술 아래로 두며 시선을 아래로 두었다.

-한없이 흘러나오는 유혹에

너를 가지고 싶은 욕망에

나는 마음을 졸여-

확실히 올라가는 고음은 없으나 나비의 독보적인 보컬이 노래를 휘감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확실히 나비는 솔로로 나와도 흥하겠다고 박랜서는 생각했다.

노래가 중후반으로 가면서 화목현이 애절한 표정을 지으며 양손으로 마이크를 쥐었다.

-I LOVE YOU

…잘생긴 애들이 사랑한다고 외치는데 홀릴 수밖에. 돈이 많이 들어간 비트가 아니라서 세련된 느낌은 없었으나 차트 인을 할 거라고 예상했다. 이미 초동은 70만을 넘었기 때문에.

‘어?’

나비가 춤을 추면서 인이어가 계속 떨어지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이윽고 인이어를 빼면서 나비가 앞으로 나왔다.

-낮과 밤이 흐르는 세월에(moonlight)

너를 사랑하는 세월은

시간의 감각이 없나 봐 WO WO~

편안하게 고음을 내지르며 카메라를 보는 여유까지. 이 무대는 계속 볼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노래는 무조건 뜬다, 떠.’

편안한 고음과 감미로운 음색이라서 식당이나 카페에서도 자주 틀 법한 노래였다.

-nanana- nanana-

nanana- nanana-

물방울 모양 조명이 꺼지며 스크린에 장미꽃이 활짝 폈을 때야 비로소 무대가 끝났다. 벅차오르는 감정과 함께 희열이 동반된 무대는 참 오랜만이었다.

“와! 지금까지 사랑스럽고 멋진 네스트의 플라워 무대였습니다!”

다른 멤버들은 무대 밑에 가서 옷을 갈아입는지 정요셉이 재킷만 바꿔 입고 무대에 나타났다. 그런 와중에 박랜서는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려고 했는데.

‘…이게 뭐야?’

[오한준, 고등학교 시절 학교 폭력 가해자 인정하다?]

박랜서는 오한준이 누군지 빠르게 머리에 떠올렸다. 저번에 애들이랑 인터뷰했던 아이돌 아닌가.

-오한준 이정진이랑 친하다고 하지 않았음?

└ 엥?

└ 누가 그럼

└ 지금 네스트 쇼케이스 진행 중이잖아

-오한준 지난번에는 학교 폭력 가해자 아니라고 했으면 갑자기 인정한 거야?

└ 빼박 증거 나옴 ㅠ

└ 무슨 증거?

└ 같은 반 애 패는 영상 ㅋㅋ

└ 그런데 왜 이정진을 끌고 와?

└ 같은 반이라서

우리 정진이랑 연관되어 있다고? 박랜서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다음 댓글을 확인했다.

-아 ㅋㅋ 오한준이랑 이정진 같은 반이었네~

오… 시발이다.

***

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만큼 나쁜 일도 일어난다. 그게 인생의 법칙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이정진과 오한준이 엮일 줄은…….

[오한준, 학교 폭력 인정]

정요셉이 무대를 휘젓고 있는 동안 김연호가 이정진한테 물었다.

“…정진아, 오한준 씨랑 친해?”

“…아니요. 왜요?”

“오한준이 같은 반 아이를 때리는 영상이 떠서, 오한준이 너랑 같은 반이었다는 기사가 올라왔거든.”

“…그거.”

“왜?”

이정진의 눈동자가 떨렸다.

“저일 수도 있는데.”

“너?”

“…네.”

같은 반 아이를 패는 영상이 너튜브에 떠돌고 있는데… 그 영상의 주인공이 이정진일 수도 있다는 말이군. 그런데 오한준의 얼굴은 확실하게 나와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겠네.

“일단 팀장님께서 최대한 보도를 막아보겠다고 하셨거든? 무대 올라갈 수 있겠어?”

“올라갈 수 있어요.”

“그런데 기자들 질문을 피할 수 있을까…….”

재밌는 기사를 올릴 수 있도록 최적화된 쇼케이스가 아닌가. 기자들의 질문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괜찮아요.”

“…정진이가 괜찮다면 다행인데.”

이대로 오한준과 이정진이 계속 엮이면 이정진에게도 안 좋은 이미지가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그래서 김연호가 뜸을 들이는 거겠지.

역시나. 붉은색 시스템창이 떴다.

【이정진의 사회성이 떨어져 우울감이 급증합니다.】

【이정진의 상태:。゜(`Д´)゜。 우울 모드 ON】

※사회성이 내려가면 작곡과 작사를 그만둡니다.

이런. 시스템창을 보고 고개를 돌려 이정진을 확인했다. 이미 또렷했던 눈동자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쇼케이스라서 도망치지는 못하니까 패닉이 온 것 같은데. 그나마 이정진의 사회성이 올라가서 버틸 수 있는 것 같았다.

기자의 질문이 최대한 이정진한테 향하지 않도록 해야겠는데?

“안녕하세요, 네스트 여러분?”

“안녕하세요, 요셉 선배님!”

멤버들은 웃으면서 정요셉과 인사했다.

“나비 씨?”

“네?”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이자 정요셉이 손을 휘저었다.

“아니! 아까 팬들한테 친하다고 했는데!”

“아, 그랬나요?”

정요셉이 능숙하게 말을 이어갔다.

“인사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큐카드를 보면 플라워의 뮤직비디오를 볼 차례죠? 누가 소개를 해볼까요?”

주이든이 팔을 번쩍 들었다.

“이번 뮤직비디오는 드라마 형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오, 옛날 뮤직비디오처럼?”

“네! 역시 정요셉 선배님, 잘 아시네요!”

“제 첫 앨범이 뮤직비디오였거든요. 그래서 잘 알고 있습니다.”

정요셉은 큐카드를 넘기면서 말을 이었다.

“이제 팬들과 함께 플라워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너튜브 채팅에 대답하기였죠? 목현 씨.”

화목현이 정면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네, 그 후에 네스트 공식 너튜브에 플라워 뮤직비디오가 올라갈 테니, 흐름이 끊긴다면 너튜브 공식 뮤직비디오를 봐주시면 됩니다!”

나는 너튜브 채팅을 확인하면서 뮤직비디오를 쳐다보았다.

-nanana- nanana-

각종 포털사이트에 심장에서 장미가 피어나기 시작했다는 속보가 올라오는 동시에, 사람들의 심장에서 장미가 피어나며 사람들이 쓰러진다.

-와 드라마 형식 좋다

-애들 잘생겼네

-이 뮤비 극락이다

계속 내린 비 때문에 멤버들의 옷이 젖은 상태라 팬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정요셉이 사랑했던 연인의 사진을 보며 집에서 오열하는 장면이 나왔다.

‘연기는 잘한단 말이지.’

그때 정요셉이 팬들에게 슬쩍 말했다.

“요셉 씨한테 문자가 왔는데, 울지 말라고 하는데요?”

“네…….”

팬들의 귀여운 대답에 정요셉은 더 울어야겠다고 말했다. 서서히 태양이 뜨고, 멤버들이 눈물을 닦으면서 일어나자 비가 서서히 그쳤다.

그때 포털사이트에 기사 하나가 올라왔다. 심장에서 장미를 피어나게 하는 약을 만든 사람을 찾았다는 기사. 경찰서에서는 수배서를 만들고 벽에 붙였다.

-헐?

-잠만?

-수배서 누군지 알 것 같은데

서서히 눈치를 챈 팬들이 있었다. 그리고 멤버들의 핸드폰에 동시에 문자가 왔다.

[-RUNXRUN 공장]

주소를 보자마자 멤버들이 달려갔다.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RUNXRUN 공장에 도착한 멤버들은 공장의 문을 열었고, 그때 뮤직비디오는 끝이 났다.

“…와, 뭐죠?”

뻔뻔스러운 정요셉의 감탄사에 멤버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왜 뮤직비디오에 나비 씨가 안 나오는 걸까요?”

“글쎄요?”

내 웃음에 정요셉이 침음을 흘렸다.

“팬분들은 안 궁금해요?”

“궁금해요!”

“저도 너무 궁금해서, 빨리 나비 씨 개인 티저를 시청하도록 하겠습니다!”

팬들은 야광봉을 흔들며 좋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 스크린에 내 개인 티저가 올라왔다. 아무런 BGM이 없는 티저에서는 발소리만 들려왔다.

멤버들이 폐공장에 들어오고, 홀로 의자에 묶여 있는 나는 고개를 들며 눈을 떴다. 그러자 거미줄과 칙칙한 폐공장이 흑장미로 가득 차는 순간.

《RUNXRUN》

두 번째 미니 앨범 홍보가 떴다.

“…런엑스런?”

정요셉은 처음 듣는다는 것처럼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이게 뭐죠?”

“쇼케이스에서 다음 타이틀곡 홍보하기입니다!”

주이든의 말에 팬들의 함성이 커졌다. 얼마나 재밌겠는가. 플라워 세계관이 런엑스런으로 연결되니까.

“이 런엑스런은 누가 작곡 작사를 했는지, 아주 살짝 스포 가능한가요?”

“…제가 했습니다.”

현재 상태로 이정진은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내가 대신 덧붙였다.

“플라워 편곡을 하던 정진 형이 저한테 새로운 노래를 들려주더라고요.”

“오, 그래요?”

“정진 형은 저랑 같은 방이라서 형들은 못 들어봤을 겁니다.”

정요셉이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급하게 휴대폰 보는 척을 했다.

“지금 문자가 왔네요. 요셉 씨도 처음 들어본다고.”

“뭐라고 연락이 오던가요.”

내 질문에 정요셉이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만 질문하라는 듯이.

“아, 궁금한데요?”

“섭섭하대요.”

“그래요?”

“네~ 질문은 여기까지입니다.”

팬들의 곡소리에 어물쩍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려는 때였다. 기자 한 분이 손을 들었다.

“네스트의 이정진 씨?”

“…네?”

“오늘 오한준 씨 소식에 대해서 들으셨나요?”

그러자 여기저기서 들리던 팬들의 목소리가 끊겼다. 기자는 꿋꿋하게 마이크를 들고서 질문했다.

“혹시 이정진 씨도 오한준처럼 학폭 가해자였는지 궁금합니다. 아니라면 아니라고 말해주시겠죠?”

이정진을 대신해서 멤버들이 마이크를 동시에 들었으나 이정진의 말이 더 빨랐다.

“저는…….”

“아니면 학교에서 같이 노는 무리였나요?”

쥐가 죽은 듯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숨을 죽이고 이정진의 대답을 기다렸다. 기자는 포식자처럼 이정진의 말실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쁜 말만 안 하면 되는데.

“…저는 찐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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