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76화 (76/235)

76. 험난한 데뷔 과정

나는 속으로 기뻐했다. 안 맡아주면 나야 좋으니까.

“…컨셉 투표 결과를 발표할게.”

그때 팀장님이 투표 결과가 적힌 종이를 펼쳤다.

“네스트가 이겼네.”

…우리가 이겼다.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절로 나와 일부러 슬픈 표정을 지었다. KIN은 다음 앨범 컨셉을 생각해 보겠다며 회의실을 박차고 떠났다. 우리는 덩그러니 놓인 포대 자루처럼 적막한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와, 이걸.”

주이든은 답답한 마음에 자기 가슴을 때렸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나가 버린다고? 팀장님! 우리 어떻게 해요?”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AA 엔터가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 나갈지 궁금했다. 주이든의 물음에 팀장님은 한숨을 흘렸다.

“너희들 데뷔 컨셉은 나비가 준 PPT로 시작해야지. 뮤비 컨셉도 만들어서 올렸던데.”

“아, 네.”

“뮤비에 쿠키도 넣으려고?”

“그 부분은 나중에 뮤비 감독님과 이야기해 보려고요.”

이정진이 편곡한 노래가 좋아서 플라워의 연장선처럼 그려보고 싶었는데 영화의 쿠키 영상이 떠올랐다. 어쩌면 팬들한테 재미를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어서.

“이건 괜찮은 의견 같아서 물어본 거고. 헤어나 옷은 외주로 맡겨보마.”

“감사합니다.”

팀장님은 앞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머릿속이 복잡한지 팀장님의 말이 어수선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좋은 감독님을 찾아볼게! 대표님한테 연락도 하고…….”

팀장님이 회의실에서 나가자마자 내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했다.

“근데 프로듀서가 이렇게 책임감 없이 나가도 되는 거야?”

“이든아, 이 판이 원래 그렇잖아~”

“아무리 그래도…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싶기도 하고.”

저런 일은 다반사다. 데뷔조가 무당 말에 엎어지고, 대표의 한마디에 연습생이 퇴출당하는 일도 있다.

“막내야, 안 그래~?”

“요셉 형 말처럼 원래 그렇긴 하죠.”

제일 큰 골칫덩어리는 KIN이다. 이번 미니 앨범에서는 손 뗄 거라는 말을 했으니까. 이건 다음 앨범에도 참여한다는 포부를 남긴 거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다음 앨범이라니, 골치 아픈데…….’

너무 처져 있지 말자. 어차피 일어난 일일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였다.

“…자!”

내 귓가에 화목현의 목소리가 울렸다. 어느새 화목현은 의자에서 일어나 나를 내려다보았다.

“우리가 할 일은 나비 도와주기. 또 혼자 고민하고 있을 테니까.”

“…예?”

…아주 살짝 그렇게 생각하긴 했는데.

“우리 다 같이 해보자. 어쨌든 한고비는 넘겼다고 생각하니까.”

“맞아! 우리는 한고비를 넘긴 것!”

그대로 앞으로 나간 화목현은 화이트보드를 두드렸다.

<네스트 첫 데뷔>

그러고는 화이트보드에 글자를 적으면서 붉은색 마커로 둥글게 표시를 했다.

“정진이는 계속 편곡에 중점을 두고.”

“알겠어. 플라워 편곡에 중점을 둘게. 안 그래도 플라워를 작곡한 형과 계속 대화를 하고 있으니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면 나한테 말하고.”

이정진은 계속 편곡을 하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팀장님이 몇 주 뒤에 안무 영상이 나올 거라고 했으니까, 안무 영상은 이든이가 확인해 줘.”

“어, 안무 영상이 나오면 확인한 다음에 고칠 부분은 안무 단장님과 상의해 볼게!”

일이 척척 잘 돌아가는 팀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경험이 흔치 않아서 머릿속이 일시적으로 멈췄다.

“나비야.”

“네?”

“너는 뭔지 알지?”

“예? 예.”

화목현은 허리에 손을 얹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KIN 프로듀서가 다음 앨범에는 참여할 거라고 했잖아. 분명 나비가 정한 컨셉이 망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

“그러니까 우리는 잘해야 해.”

그치. 잘해야지. 네스트의 첫 데뷔다. KIN의 꿍꿍이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지.

“나비야, 알았지?”

“…네.”

“멤버들도 이 정도는 인지하고 있으니까.”

솔로 앨범을 내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끙끙 앓을 필요는 없지. 멤버들이 있는데.

“제 PPT를 보고서 수정할 만한 내용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피드백 하겠습니다.”

***

박랜서는 갑작스러운 디자인 외주가 들어와 한동안 일에 열중하다가 네스트 컴백 떡밥을 보고 눈에 광기가 서렸다.

“애들 데뷔 떡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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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이거 데뷔 떡밥인가?

AA 엔터 다니는 직원이 그러는데

어떤 연예인이 직원한테

꽃을 나눠주는 이벤트를 했다고 하더라고

그때는 배우라는 추측이 있었거든?

근데 우리 애들 꽃집에서 보고 싸인받았다는 후기가 있어서

장미를 백 송이나 샀다는데?

(꽃집_싸인_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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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들이 왜 직원들한테 꽃 나눠주는 이벤트를 함?

└ 그냥 나눠줬을 확률은?

└ 데뷔 떡밥이 아니라 뭔가 일이 있는 거 아님?

└ 그 일이 뭘까 도대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야지 ㅠㅠ

└ 22 데뷔나 하자

└ 33

-내 친구가 AA 엔터 다니는데 ㅋㅋ 대충 말하자면 울 애들 데뷔 컨셉 때문에 직원들한테 투표하라고 했대

└ ㄹㅇ?

└ 투표로 컨셉을 뽑아?

└ 종종 데뷔곡 투표로 뽑는 엔터도 있긴 하잖아

└ 근데 컨셉을? 주작 아님?

댓글을 유심히 지켜보던 박랜서의 눈이 커졌다.

“우리 애들 글씨는 잘 쓰네.”

그 자리에서 박랜서가 다시 커뮤니티 새로고침을 하자 새로운 댓글이 달렸다.

└ (인증_JPG) 네스트 프로듀서가 말도 안 되는 컨셉을 내놓아서 네스트가 싫다고 했다던데

└ 어떤 컨셉이길래?

└ 친구가 돌려서 말해줬는데 무슨 조선시대? 아무튼 국뽕 차는 컨셉이었음;ㅎㅎ

└ ㅅㅂ 애들이 싫다고 할 만하네

└ 미친 좆같은 컨셉을

-근데 한복 입혀놓으면 멋있긴 하겠다

└ 그래도; 조선시대 컨셉은 도대체 뭔 컨셉이냐

└ 25세기 컨셉인 듯ㅋㅋ

한복 입는 컨셉이라면 좋기는 하겠지만. 대놓고 국뽕 컨셉을 하면 있던 팬들도 나가떨어질 것이다. 이로써 박랜서는 깨달았다. AA 엔터는 역시 좆소라는 사실을.

-내가 그동안 대형만 팠었는데 중소돌들 다 이럼?

└ ㅇㅇ 요즘 중소도 아이돌 잘 나오는 편인데 AA가…

└ AA 엔터가 감이 없는 거지

└ 요즘 AA 엔터 아이돌 자회사 만든다는 기사 떴잖아 그럼 더 잘해야 하는 거 아님?

└ 중소돌들도 안 그래 그냥 AA 엔터가 워낙 좆소라ㅎㅎ;;

더군다나 아이돌 자회사도 만든다고? 박랜서는 손으로 머리를 짚으면서 댓글을 내렸다.

-헐 떡밥 떡밥! 진짜 데뷔 떡밥인데?

└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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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후스트 뮤비 감독이었던 사람인데

SNS에 공장에서 찍은 사진 올라옴

(공장_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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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우리 네스트?

└ 근데 저 그림자는 누구야

└ 네스트일 수도?

…후스트 뮤비? 후스트는 아무도 안 입을 것 같은 반짝이 의상을 입고 아이돌인지 트로트 가수인지 헷갈리는 노래를 불러서 데뷔하자마자 폭망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대중들의 기억에 후스트는 남지 않았지만 네스트가 뜨면서 후스트가 알고리즘에 계속 뜨긴 했지. 그래서 알고 있었다. 후스트라는 이름을.

-네스트 때문에 뜨는 후스트?

└ ㅇㅇ

└ ㅁㅊ 같은 소속사였음?

└ 팬들이 초조해하는 이유임…

└ …ㅎㅎ

-그런데 얘들아, 우리 큰일 난 듯

└ 뭔데?

└ 후스트 뮤비 봄?

└ 안 봤는데 왜?

└ 개쌉구려

AA 엔터가 돈을 쓰지 않았는지 후스트 뮤비는 쌉구렸다. 특히 뮤비 감독의 편집도 별로였는데,

-아…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좆망

-…대형돌 덕질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네ㅋㅋ 역시 덕질할 땐 대형이 좋긴 하다 ㅎㅎ 대형도 안 좋긴 매한가지인데

-AA 엔터는 무슨 복이 있어서…

처참한 댓글에 할 말을 잃었다.

“…좆 된 거 아니야?”

***

뮤비 촬영장.

후스트 뮤비 감독인 정 감독이 플라워 뮤비를 촬영하러 왔다.

“…좋은 감독이 없더라.”

다른 감독들은 이미 스케줄이 꽉 차서 스케줄을 맞출 수 없었다는 팀장님의 변명을 인정했다. 유명한 감독은 다른 엔터로 빠졌을 가능성이 있기에. 그저 나는 뮤비를 촬영한다는 데 이의를 뒀다.

그래서 기대 없이 뮤비 촬영장에 왔다가 공장을 보고 놀라긴 했다. 낡은 폐공장 컨셉을 준비하기 위해서 많이 고생하셨다고.

‘진짜 내가 부탁한 대로 해주셨네.’

그러고 있는데 주이든이 스트레칭을 하면서 나에게 물었다.

“범나비, 너는 떨리지도 않냐?”

“딱히 떨리지는 않는데.”

“나는 슬슬 데뷔한다고 생각하니까 떨리고 졸려…….”

이정진은 돈까스를 한 입 베어 물며 아무렇지 않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건 그냥 졸린 거지.”

“정진 형! 아니라니까?”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졸린 건 졸린 거지.”

이정진이 장난스럽게 받아치자 주이든의 입이 댓 발로 튀어나왔다.

“예전에는 내가 변명해도 그냥 ‘그렇구나, 이든아’라고 해줬으면서!”

“어… 그랬나.”

“아니, 형!”

둘이 투닥거리는 사이에 단독샷을 찍고 있던 정요셉과 화목현이 대기실에 들어왔다. 정요셉은 좀비처럼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저녁은 돈까스네…….”

생존을 위해서 돈까스를 입에 넣은 정요셉이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 목현 형도 돈까스 먹어야지…….”

“어, 먼저 먹어. 나는 우선 얼굴부터 씻고 올게. 나비야, 가방에서 수건 좀 빌릴게.”

그렇게 화목현은 내 가방에서 수건을 가지고 얼굴을 씻으러 떠났다. 나는 단독샷 찍을 차례를 기다리면서 밥 대신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우리 막내, 밥은?”

“안 먹었어요.”

“왜? 밥은 먹어야지.”

“얼굴이 부을 수도 있어서요.”

“거기까지 생각을 한다고? 돈까스 한 입이라도 먹지. 힘이 없으면 쓰러질 수도 있잖아.”

“배가 안 고파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달콤하고 맛있는 돈까스인데도?”

“전혀 안 땡겨요.”

정요셉이 아무리 돈까스를 영업해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내가 밥을 못 먹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눈앞에 나타난 시스템창이 말썽이었기 때문에.

【System Error!】

【System Error!】

공장에 들어선 이후로 계속 시스템 에러가 떠서 눈이 어지러웠다.

“그러다가 우리 막내가 픽 쓰러지면 어떡해?”

“야! 걱정도! 쟤도 곧 있으면 성인이거든?”

“우리 이든이가 뭘 모르네. 저러다가 훅 간다.”

“훅 가긴 무슨.”

주이든이 정요셉의 멱살을 잡고 끌어 올리는데 이정진이 나에게 비타민을 챙겨주었다.

“이거라도 먹어. 그러다 쓰러져.”

“…아, 네.”

그래도 아침에 밥은 먹긴 했는데 말이다.

“나비야, 이제 단독샷 찍으러 가자.”

김연호가 대기실 밖에서 나에게 손짓했다. 멤버들은 나에게 힘들면 꼭 쉬라는 말을 남겼다.

“컨디션 안 좋아?”

“아니요. 저녁을 안 먹어서요.”

다음부터는 밥 먹었다고 거짓말을 쳐야겠다. 김연호를 따라가자 공장처럼 꾸민 공간 중심에 의자가 있었다. 정 감독이 한걸음에 나에게 다가와 이번 촬영에 대해서 설명을 해줬다.

“여기는 플라워 뮤비 맨 마지막에 나올 장면을 촬영할 공간이에요. 나비 씨가 공장에 쓸쓸하게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거미줄로 허름한 느낌을 준 건가요?”

“네, 맞아요!”

정 감독이 준 콘티를 보면,

“제가 의자에 묶여 있네요?”

“예! 이렇게 하는 게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제가 보낸 내용이 그렇긴 했죠.”

하필 스타일리스트분이 셔츠를 한 치수 작은 걸로 가져와서 타이트했다. 손목까지 묶이면 셔츠가 터질 수도 있겠는데.

“나비 씨, 의자에 앉아주세요!”

내가 의자에 앉자 스태프분들이 다가와 나를 묶었다.

“자, 나비 씨, 이제 카메라를 노려보면서 카메라가 뒤로 빠질 때 미소를 지어주면 될 것 같아요.”

“네.”

“근접 조명이 따가울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한 번에 찍고 갑시다!”

분위기를 잡자 노래가 나왔고, 나는 정 감독이 말했던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에러창은 여전히 계속 떠 있는 상태였다.

【System Error!】

【System Error!】

그러더니 시스템창이 하나 더 떴다.

【힌트에 도달했습니다.

힌트:새로운 만남】

힌트?

그때 시스템창이 연기처럼 사라지더니, 조명을 만지고 있던 스태프의 행동이 한순간에 멈췄다.

‘…뭐지.’

그리고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들어 정면을 응시했다. 연기처럼 흐릿한 시야에 눈을 감았다가 뜨자, 눈앞에 나랑 똑같이 생긴 놈이 앞에 있었다.

단 하나, 눈동자 색만 다른 놈.

“…뭐야, 너?”

내 물음에 시스템이 답해주었다.

【당신은 아이돌 노트에 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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