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75화 (75/235)

75. 컨셉 투표

때마침 숙소에 도착한 나를 화목현이 맞이해 주었다.

“나비야, 컨셉 투표를 한다고?”

“…어, 네.”

벌써 멤버들한테도 소문이 돌았는지 부엌에서 컵라면을 준비하고 있던 화목현과 거실에서 쉬고 있던 이정진의 시선이 나한테로 몰렸다.

“근데 그 말은 어디에서 들었어요?”

“어? 이 말?”

“설마 이든 형한테 들은 건 아니죠?”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주이든을 쳐다보았다.

“범나비! 나 아니야!”

“뭐가… 아닌데요?”

숙소로 오면서 주이든이 핸드폰을 열심히 하긴 했다. 설마 내가 없을 때 전화를 하고 그런 건 아니겠지? 주이든에 대한 의심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이든이가…….”

“목현 형!”

“아니지, 아니야.”

주이든이 전화해서 소문을 냈네… 어차피 숙소에 오면 멤버들한테 말하려고 했으니까 수월하게 설명은 끝냈다.

“…요셉 형은 언제 와요?”

“정요셉? 지금 오고 있다던데.”

정요셉도 드라마 촬영이 끝났는지 단톡방에 불티나게 톡이 올라왔다.

(주이든) 어디냐?^^

(주이든) 아 ㅋㅋ 정요셉은 바빠서 못 듣겠네

(정요셉) 뭐야?

(정요셉) 뭔데!

(정요셉) 나 빼고 말하지 마!

(정요셉) (=;ェ;=)

톡을 보자마자 벌써 귓가에 정요셉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나) 빨리 오기나 해요

(정요셉) 부릉부릉 요셉이 가는 중~

밤 10시가 넘긴 시각, 복도에서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현관문이 열렸다. 정요셉이 허겁지겁 신발을 벗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인데~?”

“나비한테 들어.”

화목현은 컵라면을 먹고 있어서 설명을 나에게 넘겼다.

“컨셉 투표로 컨셉을 정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우리 막내가 컨셉 투표를 해서 이겼다고~?”

“아직 이긴 건 아니고요…….”

“그러면? 웬 컨셉 투표야?”

가방을 나에게 넘기더니 정요셉이 무작정 나를 흔들었다.

“설마~ 우리 막내가 KIN 프로듀서랑 싸운 거야?”

“제가 KIN 프로듀서 컨셉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더니 투표하자는 말이 나온 거예요.”

“뭐야. 별거 아니었네?”

나를 흔들던 정요셉의 손이 멈추면서 정요셉이 인상을 썼다.

“투표~? KIN 프로듀서도 자신이 없으니까 컨셉 투표를 하자는 거겠지.”

“아닐 거예요.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있어서…….”

“자신이 있다고 한들, 다음 컨셉에서도 투표로 결정하지는 않을 거 아냐. 계속 우리랑 부딪힐 거 같으니까 초장에 잡겠다는 거야.”

“…아.”

일리가 있다. 나를 잡기 위해서. 이정진은 우유를 마시면서 나에게 물었다.

“막내야, 컨셉 투표에서 이기려면 직원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지 않나 싶은데.”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주이든은 마치 돌연프 번외편을 찍는 기분이라며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각자 역할을 분배해서 직원분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될 것 같은데.”

화목현은 컵라면에 밥을 말아 호로록 먹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은 3일이잖아. 나비가 플라워에 맞는 레퍼런스 및 컨셉을 PPT에 정리하고, 나랑 이든이는 꽃집에 가서 장미를 사 오자. 정진이는 계속 편곡을 해주고.”

“요셉이는?”

정요셉은 우수에 찬 눈빛으로 화목현을 쳐다보았다.

“요셉이는 드라마 촬영 언제 끝나더라?”

“그건 잘 모르겠어.”

“드라마 촬영 끝나는 즉시 회사로 와. 너도 같이 장미를 나눠줘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화목현이 컵라면을 다 먹을 때까지 우리는 어떻게 투표에 임할지 토론했다.

“그런데 목현 형, 장미는 언제 나눠줄 거예요?”

“컨셉 투표가 진행되는 날에.”

***

나는 정요셉의 노트북을 빌려서 PPT를 준비했다. 이럴 때 보면 키오 시절이 의미 있긴 했다. HI 엔터에서는 PPT 강습도 해줬으니까.

“막내야, 플라워 편곡 들어볼래?”

이정진이 편곡한 플라워를 틀었다. 크게 바뀐 건 없지만 이정진이 편곡한 플라워가 더 마음에 들었다.

“너무 잔잔한 노래라서 중간에 터트릴 수 있도록 빠른 변주를 넣었어.”

“정진 형, 편곡 좋아요.”

조금만 변주를 줘도 노래는 확 달라진다.

“내가 살짝 가이드도 했는데 들어볼래?”

“네, 당연히 좋죠.”

벌써 가이드도 했다니?

노트북에서 흘러나오는 이정진의 플라워 가이드곡은 훨씬 안정적이었다. 근데 플라워에 있던 랩이 사라져 있었다.

“랩은 왜 없어요?”

“여기엔 별로 안 어울리더라. 그래서 랩은 과감하게 뺐어.”

“그럼 정진 형 파트가 사라지잖아요.”

“어울리지 않는데 굳이 넣는 방향은 별로라고 생각해서.”

하긴, 아련한 발라드에 랩은 깨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걸 이정진이 뺐을 줄은 몰랐는데. 어떻게 보면 자기 파트가 사라지는 거니까.

“내 욕심으로 노래를 망칠 수는 없잖아.”

무슨 욕심도 없어.

“그래도 랩이 있어야…….”

“괜찮아. 내가 랩을 그렇게 잘하는 편도 아니고.”

물론 객관적인 시각도 필요하지만 이정진은 조금 더 욕심을 낼 필요성이 있다.

“사실 난 랩보다는 노래를 더 잘하거든.”

“…예?”

“우리 팀에 랩 포지션이 없어서 팀장님이 랩을 배우라고 한 거거든.”

그래도 웬만큼 랩을 하는 아이돌과 비슷하게 잘하긴 했다. 같은 팀이라는 콩깍지를 벗어도. 나는 PPT를 만들다가 말고 이정진한테 물었다.

“…정진 형은 장미 컨셉 괜찮아요?”

“어, 마음에 들어.”

“정진 형이 보기에도 괜찮은 거예요?”

“응, 사실 KIN 프로듀서가 보여준 컨셉 마음에 안 들었거든. 무슨 국뽕이야. 망할 일 있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하고 생각하는 이정진도 싫은 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나도 멤버들이 좋다고 했다면 무조건 좋다고 했을 거고.”

“…아.”

“KIN 프로듀서의 컨셉대로 쭉 진행했겠지.”

그래서 네스트가 계속 이런 컨셉으로 나왔던 건가. 멤버들이 좋다고 했으니까. 이정진이 블루라이트 안경을 끼더니 입을 열었다.

“네가 들어와서 다행이네.”

그러면서 이정진은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네? 감사해요…….”

응? 나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당황한 나를 보더니 이정진이 씩 웃었다.

“막내야, 내가 좋은 말을 해줬으니까.”

“…네?”

어떤 딜을 걸려고 하는 거지.

“내가 작업한 다른 곡도 들어볼래?”

“…무슨 곡인데요.”

“아직 노래 제목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정진의 당당한 얼굴을 보니 좋은 곡이 뽑힌 모양인데. 아직 노래 제목은 미정이었다. 신나게 달려가는, 속도감이 있는 노래.

“…이 노래 괜찮은데요?”

“그치? 나도 만들어보고 나니까 괜찮은 것 같아서.”

이거, 좋은 방향이 나온 것 같았다. 나는 만들었던 PPT를 삭제했다.

“정진 형, 저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요.”

“뭔데?”

“들어볼래요?”

***

3일 뒤 AA 엔터 회의실.

밤새워서 준비한 플라워 컨셉 PPT는 팀장님에게 전달했다.

팀장님이 말하길, PPT를 전 직원의 이메일로 보낸 다음 컨셉 투표는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진행한다고 했다. 그래서 멤버들은 투표가 끝나가는 시간에 맞춰서 회의실에 가기로 한 상태였다.

“장미 개수 정확하지?”

직원 수에 맞춰 사 온 장미를 회의실 앞에 놔두고 멤버들은 앞치마를 둘렀다.

회의실 앞으로 서서히 모여드는 직원들을 보면서 주이든이 김연호의 어깨를 꽉 잡았다.

“연호 형도 우리 컨셉 뽑아!”

“알았어.”

김연호도 AA 엔터 직원이라 투표에 참여한다고. 내가 차에서 내리자 PPT를 미리 핸드폰으로 보고 있던 김연호가 나한테 물었다.

“나비야, 이걸 다 네가 생각한 거야?”

“…어, 네.”

“대단하다. 이런 걸 다 생각하고. 꼭 뽑을게.”

김연호는 주먹을 쥐고 응원해 주었다. 어째 석연치 않았지만, 그래도 응원인지라 나는 긍정적인 미소를 지어주면서 차에서 내렸다.

“지금 몇 시지?”

“오후 4시 50분.”

슬슬 투표가 끝나는 시간에 잘 맞춰 왔다. 밀린 일을 끝낸 직원분들이 이제 막 투표를 하러 오시는지 회의실 앞의 줄이 길었다.

“방금 투표하고 오셨어요?”

멤버들은 마치 선거 후보자들처럼 직원들의 손을 맞잡으며 장미를 선물했다.

“어, 어… 감사합니다.”

당연히 직원분들은 당황했다. 어느 아이돌이 회사에서 장미를 나눠주고 환심을 사려고 할까.

“투표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하하…….”

그런데 화목현의 진짜 계획은 이러했다.

“나비야, 직원분들 미안해하는 것 같지?”

“…목현 형 말대로 이 방법 괜찮은 것 같아요.”

우리 컨셉을 뽑아달라는 의미가 아닌, 투표에 참여해 줘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이러면 뇌물로 보이지도 않고 미안한 감정을 심기 충분하다면서.

“범나비 미소 봐.”

“이든 형, 제 미소가 왜요?”

“사회생활을 나보다 잘하는 것 같아…….”

원래 영업할 때는 비즈니스 미소가 필수다.

“이든 형도 미소는 좋은데요?”

“진짜?”

주이든이 미소를 짓는다고 입꼬리를 올리는데,

“…괜찮네요.”

“범나비, 반응이 이상하다?”

“아, 아니에요…….”

“야, 너!”

주이든이 소리를 지르는 타이밍에 직원분이 회의실에서 나오셨다.

“투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이든은 나를 보면서 ‘나중에 보자’라며 협박을 했다. 무섭진 않았지만.

“안 되겠다.”

장미를 주는 행동도 뭔가 아쉬웠는지 화목현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어깨띠를 가방에서 꺼냈다. 그 어깨띠 앞에는 ‘장미 컨셉’, 뒤에는 ‘뽑아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목현 형, 무슨 선거 나가?”

“이든아, 원래 이런 건 진짜 선거에 나간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해야지.”

어느덧 오후 5시가 되었다. 컨셉 투표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팀장님이 회의실 문을 열더니 빼꼼히 얼굴을 보여주셨다.

“투표함 연다.”

팀장님은 다시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서 직원분들과 투표용지를 확인했다.

“떨린다… 너무 떨린다… 너무 떨려서 토가 나올 것 같은데… 정요셉 너는?”

“나? 나도 떨리지. 나라를 사랑하는 조선시대 사람 컨셉 같은 걸 해야 하니까. 눈앞이 캄캄하다…….”

KIN이 이긴다면 할 말은 없다만. 나라를 사랑하는 조선시대 사람 컨셉을 소화할 자신은 없었다. 슬슬 투표 합산이 끝났는지 회의실 문이 열렸다.

멤버들과 회의실에 들어가려는데, 시간에 맞춰 KIN이 무슨 악역처럼 등장했다.

“투표 끝났네?”

“안녕하세요!”

우리가 인사했지만 KIN은 우리를 힐끗 쳐다보고 말았다.

“…정말이네? 꽃 나눠주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한 송이 드릴까요?”

화목현은 장미를 들어서 KIN의 손에 쥐여주었다.

“참 애쓴다.”

“애쓰는 게 보기가 좋잖아요?”

화목현은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우리 곁으로 왔다. 투표가 끝났다는 말에 멤버들은 냉큼 회의실 의자에 앉았다. KIN은 맞은편에 앉으며 회의 결과를 기다렸다.

그때 팀장님은 투표용지를 쥐면서 불안한 눈빛으로 KIN에게 말을 걸었다.

“음, 근데… 너는 투표 결과에서 져도 우리 애들 컨셉 계속 맡아줄 거지?”

“제가요?”

KIN은 우리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이번 미니 앨범에서는 손 뗄 건데요.”

“어, 어?”

“팀장님이 내가 싫으면 손 떼도 된다고 했잖아요. 계약 조건이 그렇지 않았나?”

“…그래도 한번 맡은 건 해야지?”

“싫어요. 제가 졌는데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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