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74화 (74/235)

74. 데뷔 컨셉 회의(2)

예전에 내가 의견을 제시했던 몇 개의 컨셉이 있었다. 이후에 더 좋은 컨셉이 나와서 불발이 되긴 했지만.

‘…한번 말해볼까?’

나는 멤버들한테 넌지시 던졌다.

“장미의 심장 컨셉은 어때요?”

“…장미의 심장 컨셉?”

“장미는 색깔마다 꽃말이 다르거든요.”

플라워의 가사 중 ‘너라는 꽃을 품어보고 싶어’라는 가사가 뇌리에 꽂혔다. 사람마다 장미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는 컨셉. 그러면서 최대한 CG를 쓰지 않는 방향으로…….

“음, 그러니까… 심장에 장미가 피어나는 병이 생기는데, 그 발병의 원인을 찾아내는? 그리고 저희한텐 각자의 사연이 있는 거죠.”

멤버들은 내 의견에 답하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혹시 내가 말한 컨셉이 마음에 안 드나?

“나비야, 네 머릿속엔 뭐가 들어 있어?”

“…네? 목현 형?”

“원래부터 컨셉을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평소에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편이라서.”

옆에서 주이든이 혀를 찼다.

“아이돌 2회 차도 아니고… 그런 컨셉을 어떻게 생각했어.”

“…아.”

주이든의 ‘아이돌 2회 차’라는 말에 관자놀이를 긁었다.

“우리 막내가 뭐든지 열심히 하는 성격이잖아~ 나는 그 컨셉 마음에 드는데? 심장에 장미가 피어나는 병이라… 뭔가 로맨틱하면서도 괴기하다.”

“나도 그 부분이 마음에 들어. 로맨틱하면서도 괴기한 게.”

“오, 나랑 목현 형 취향에 딱 맞는 것 같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다. 주이든은 자신의 이마를 때리더니 분하다는 듯이 주먹을 쥐었다.

“와, 나도 컨셉 하나 정도는 생각하고 올걸.”

“이든 형,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그사이에 컨셉을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장미 컨셉보다 좋은 컨셉이 안 나올 것 같으니까 그러지!”

주이든이 성질을 내면서 양손으로 내 머리를 흩트렸다.

“아.”

“복수다.”

복수를 왜…….

내가 손으로 머리를 정리하는 동안에 화목현이 노트북으로 장미 꽃말을 검색했다.

“나비가 말한 컨셉대로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걸 팀장님한테 보고해서 컨셉을 바꾸는 쪽으로 가볼까?”

“아, 근데 지금은 안 돼요.”

“왜?”

왜긴 왜야.

“플라워 작곡가한테 부탁해서 짧게나마 편곡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정진 형, 그렇죠?”

나는 슬쩍 이정진을 보았다. 이정진도 공감하는지 내 말에 의견을 덧붙였다.

“어, 비트를 조금만 느리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플라워는 비트가 좋지만 너무 빠르다. 아련한 댄스곡으로 가고 싶다면 앞부분을 느리게 바꾸면 될 것이다.

“와, 이러니까 꼭 데뷔하는 것 같다. 이번 해에 데뷔하는 거 아니야?”

“데뷔하면 좋죠.”

“노래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어서 신인상을 받으면?”

“…뭐, 받을 수도 있겠죠.”

정요셉의 말처럼 정말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면 신인상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노트북을 보고 있던 화목현이 책을 읽듯이 말했다.

“어, HI 엔터 데뷔 기사가 떴네…….”

원래라면 더 일찍 데뷔했을 텐데. 돌연프로 인지도를 쌓고 데뷔를 한 거니까.

“빨리 나온다, 얘네들.”

“목현 형, 티저는 언제 나온대?”

“어, 이번 주 금요일에 나온대.”

“내일이잖아?”

주이든이 핸드폰으로 달력을 확인하더니 눈이 토끼처럼 커졌다.

“…와씨, 우리는!”

“우리 이든이, 진정해. 부러워하면 지는 거야.”

“부러워하면 지는 건 맞지만… 엄청 부러운데?”

…키오 시절의 데뷔 컨셉은 피노키오와 피터팬을 섞은 동화 속 이야기였다. 아직 어린 키오 멤버들을 위해서 소년미가 넘치는 컨셉으로 정했었다.

“…이러다가 돌연프 동기들이랑 싸우겠네.”

화목현의 말처럼 돌연프 동기 싸움이 될 것이다.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에서 나온 그룹들은 올해, 혹은 다음 해에 컴백하니까.

어쩌면 HI 엔터처럼 빠르게 데뷔하고 팬을 확보하는 방법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HI 엔터가 이런 쪽으로는 머리가 좋단 말이지.’

키오 멤버들 실력도 나쁘지는 않고.

“난 노래 실력이나 키워야겠어! 정요셉!”

“왜, 우리 이든이? 나한테 또 노래 연습하자고 하는 건 아니지? 나 내일 드라마 촬영이 있는데?”

“아! 너는 안 되겠네… 범나비!”

갑자기 주이든이 내 멱살을 잡으며 흔들었다.

“나랑 노래 연습하자!”

“어떻게요?”

“나한테 다 방법이 있으니까 형님한테 맡겨.”

어떤 방법?

“그 전에 저는 팀장님 좀 뵙고 연습실에 갈게요.”

“무슨 말을 하려고?”

“…음, 이것저것?”

나는 미소를 유지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

팀장님을 만나서 간단하게 KIN의 컨셉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바꿔도 되냐고 물었다. 왠지 안 된다고 할 것 같았던 팀장님은 흔쾌히 바꾸라고 말했다.

‘컨셉이 마음에 안 들면 바꿔야지.’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좋았으나 팀장님의 뒷말이 무서웠다.

‘KIN 프로듀서한테 말해보고.’

KIN의 말을 듣긴 하겠다는 거네. 어떻게든 KIN의 컨셉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잠시 생각에 빠졌을 때 연습실에서 같이 달리던 주이든이 내 팔뚝을 세게 쳤다.

“…그러다가 넘어지면 큰일이거든?!”

“아.”

“어디서 얼이 빠진 표정을 짓고 있어! 열심! 또 열심!”

“열심, 또 열심…….”

“범나비! 어디서 정신을 팔고 다녀? 벌써 힘든 건 아니지?”

고작 연습실에서 세 바퀴를 달렸다고 힘들지는 않았다.

“힘든 게 뭐죠?”

“…이럴 때마다 다른 사람 같아.”

“저는 잘 몰라서요.”

내가 속도를 내면서 연습실을 돌아다니자 주이든이 뒤에서 속삭였다.

“한 살이라도 어려서 좋겠다…….”

화낼 줄 알았더니 주이든은 내 젊음이 부럽다며 칭얼거렸다.

“근데 이든 형, 매번 연습실을 달려요?”

“…맨날 달리지!”

“노력파였네요.”

“노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노력하는 사람인 줄은 알았으나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든 형, 춤은 잘 추잖아요.”

“…너 은근히 내 칭찬도 하네?”

“저도 칭찬은 잘해요.”

주이든은 갑자기 바닥에 앉자며 나에게 손짓했다.

“원래 잘 추는 게 아니라 엄청~ 노력한 거야. 다른 연습생보다 조금이라도 잘해야지 데뷔할 수 있으니까. 여기서는 그럴 수밖에 없고.”

“…그렇죠.”

“그래서인지 엄청 불안했어. 내가 언제 데뷔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할 줄 아는 건 연습뿐이니까.”

“…….”

“그리고 내가 데뷔하면 실력이 어중간하다는 말은 듣기도 싫었거든!”

주이든의 춤 실력으로는 괜찮을 텐데. 주이든이 주변 눈치를 보더니 나에게 조용히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 사실 박치야.”

“…박치요?”

“어, 그 박치.”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지 않나? 믿을 수가 없어서 다시 주이든한테 물었다.

“이든 형, 나한테 거짓말하면 안 돼요.”

“아닌데? 거짓말 아닌데!”

“놀리는 거면 혼나요.”

혼난다는 말에 주이든의 웃음보가 터졌다.

“왜?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냐?”

“네, 거짓말 같아서요.”

“거짓말 아니야!”

“그러면 어떻게 HOR 엔터에 들어간 거예요?”

“노래로 들어갔는데.”

춤이 아니라 노래였다고? 이건 더더욱 놀라운 사실이다. 주이든이 노래를 잘하긴 하지만 포지션은 랩이 아닌가.

“너는?”

“저요?”

“너도 힘든 일이 있을 거 아니야.”

“없어요.”

그러자 주이든이 이마에 주름이 잡힐 것처럼 눈썹을 치켜세웠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힘든 일이 없다는 건 이상한 일이야.”

“갑자기 이든 형이 형처럼 보이네요.”

“야! 말 돌리지 말라고!”

화목현도 그렇고, 주이든도 그렇고… 내가 애처럼 보이나. 부엌에서도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그랬는데.

“머릿속엔 아이돌에 관련된 것밖에 없어?”

“…그런 건 아닌데.”

아이돌을 할 수 없다는 자체가 나에게는 힘든 일이다. 그래서 이곳으로 온 것이다. 이번에는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근데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목적은 없고? 최고의 보컬이 되고 싶다든가…….”

지금은 시스템이 하라는 대로 아이돌의 길을 걷고 있지만 내가 회귀한 목적은 단 하나였다.

“그냥 아이돌이 되고 싶어요.”

“어떤 아이돌?”

“성공한 아이돌이요.”

간단하면서도 이루기 힘든, ‘성공한 아이돌’이라는 타이틀. 주이든의 눈썹이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오더니 주이든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완전 어려운 고민이네.”

“…그렇죠.”

“그래서 기계처럼 데뷔 컨셉도 고민하고 그랬구나?”

기계라니. 나는 정정하기 위해서 입을 뗐다.

“데뷔 컨셉은…….”

“그래, 알아. 얼마나 성공한 아이돌이 되고 싶으면 장미 컨셉 같은 것도 생각해 보고 그랬겠어. 또 다른 컨셉도 있지?”

“네… 다른 컨셉도 있긴 해요.”

“이제 네 마음 잘 알았어.”

이거, 주이든한테 말린 느낌인데.

“그래서 혼자 울기도 하고.”

“안 울었는데요?”

“숙소에서 엄마가 보고 싶다고 엉엉 울었잖아.”

내가? 언제? 내가 한 적 없는 행동들이 주이든의 입에서 쏟아졌다.

“누구한테 들었어요?”

“정요셉한테?”

“안 그랬어요!”

정요셉… 모든 헛소문의 근원.

평화로웠던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스트레스가 몰려오네. 그때 연습실 문이 열리더니 팀장님이 들어오셨다.

“어, 여기에 있었네?”

“팀장님!”

나랑 주이든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나비야, 잠시 대화 좀…….”

“무슨 대화요?”

팀장님에게 다가가자 주이든이 내 앞으로 다가와 나를 보호했다.

“무슨 대화인데요?”

“아, 컨셉 때문에 말할 게 있어서.”

대화의 주제가 컨셉이라. 또 무슨 일이 있길래?

“이번에 나비가 KIN 프로듀서 컨셉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자발적으로 나섰다면서.”

“네.”

“하… 그래서 걔가 그렇게 하자고 했네.”

팀장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이 없어서 간단하게 말할게.”

KIN이 뭐라고 했길래 팀장님의 낯빛이 좋지 않을까.

“이틀 뒤에 KIN 프로듀서와 나비가 가져오는 컨셉을 투표로 정하자는 말이 나왔어.”

“…투표요?”

“다른 엔터에서도 컨셉 투표는 자주 하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결정하기 힘든 일들은 투표를 통해서 결정되고는 했다. 그런데 KIN이 먼저 투표를 제안했다고? 그때 띠링, 소리를 내면서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문제 15, 컨셉 투표에서 KIN을 이기기!

페널티:힌트를 얻지 못한 채 다시 컨셉 회의 시점으로 회귀

정답 풀이:랜덤 박스 1개」

…KIN을 이겨야 하는데. 그래야 회귀는 물론, 이상한 컨셉도 안 할 텐데 말이야.

“아마 전 직원이 투표에 참여하게 될 거야, 나비야”

KIN은 모든 직원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당연하겠지. KIN은 후스트 데뷔 전부터 AA 엔터에 있던 사람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투표는 불공평할 수밖에 없다. 내 편이 없으니까. 그래서 팀장님은 나한테 불리하다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말해주려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나비야, 자신이 없으면 투표를 안 하는 방식으로…….”

그런데 안 해볼 이유도 없잖아.

“팀장님, 투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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