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72화 (72/235)

72. 정요셉의 도시락

막장 드라마의 사용법 드라마 촬영장.

“안녕하세요. 네스트의 정요셉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정요셉은 삭막한 드라마 촬영장이 싫었다. 멤버들이 있으면 웃을 일만 있을 텐데. 정요셉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면서 촬영장 대기실 소파에 앉았다.

“형이 보기엔 제가 아이돌 같아요? 배우 같아요?”

그나마 김연호가 있어서 정요셉은 외롭지 않았다. 김연호까지 없었으면 외로워서 계속 멤버들한테 연락을 취했을 것이다. 김연호는 준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스태프들한테 돌리면서 대답했다.

“당연히 아이돌이지, 요셉아.”

“연호 형… 감동이야.”

“그럼 나는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

“안 돼~ 날 혼자 두고 가지 마~!”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힝…….”

짧은 시간일지라도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정요셉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말했다.

“아, 멤버들 보고 싶다.”

정요셉은 드라마 대본을 외우다가 말고 핸드폰을 꺼내 단톡방에 톡을 보냈다.

(정요셉) 멤버들 보고 싶어

(범나비) 진짜요?

(정요셉) 어 굉장히~~~~

(범나비) 참아요.

다른 멤버들은 보지도 않네. 섭섭해! 너무 섭섭해! 정요셉은 발을 동동 굴리면서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섭섭해! 섭섭해! 내가 보고 싶지도 않나!”

정요셉이 멤버들에 대한 불평불만을 털어놓을 때였다. 갑자기 대기실의 문이 활짝 열렸다.

“우리 정요셉 배우!”

대기실로 감독이 들어왔다. 정요셉은 제법 깍듯하게 허리를 숙였다.

“감독님, 안녕하세요.”

“우리 정 배우~ 이제 두 번째 만남인데 그렇게 딱딱하게 인사하다니 섭섭해~”

“…아하하, 그런가요.”

어차피 스태프들한테 소개하려고 대기실에 들어온 게 분명했다. 정요셉은 내심 귀찮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어, 요셉아! 안녕?”

그런데 뒤에 이서혁이 있었다. 이서혁을 보는 순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친해진 상태였으니까. 오히려 좋았다.

“여기 이서혁 배우.”

정요셉은 냉큼 이서혁한테 반갑게 인사했다.

“서혁 형~ 오랜만이에요!”

“그래, 요셉아. 오랜만이다?”

“진짜 오랜만이에요.”

“알지. 나비는 잘 지내?”

“우리 막내는 잘 지내죠.”

“걔는 나한테 답장도 안 하더라.”

감독이 끼어들 틈도 없이 정요셉과 이서혁이 대화를 하자 감독이 잔기침을 뱉었다.

“큽… 요셉아, 그나저나 오늘 팬들이 보낸 도시락이 온다고 하던데.”

“도시락이요……?”

처음 듣는 소식이다. 정요셉은 눈동자를 굴리면서 생각했다. 누가 보냈지? 아무리 생각해도 보낼 것 같은 사람이 없어서 정말로 팬들이 보낸 건지 알고 싶었다.

“언제 온대요?”

“점심시간에 맞춰 온다고 했는데.”

점심시간에 맞춰 온다! 정요셉은 벌써 흥이 솟았다.

“요셉아, 너 그거 들었어?”

“뭘요?”

“나비가 온다고 하던데.”

“우리 막내가요?”

정요셉은 그런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 이윽고 정요셉은 깊은 곳에서 섭섭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나한테만 말을 안 해주다니…….

“도시락 어디서 받아요?”

“따라와.”

이서혁과 감독님 뒤를 졸졸 따라가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스태프들이 도시락을 들고 고맙다며 인사해 주었다.

“정요셉 씨, 도시락 감사해요.”

“아, 아니에요! 맛있게 드세요.”

도시락을 받으러 간 곳에서는 공작새, 곰, 호랑이, 참새 인형 탈을 쓴 4명의 스태프가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었다.

“어?!”

인형 탈을 쓴 스태프는 정요셉의 개인 카메라 감독이었다. 개인 카메라 감독을 발견한 정요셉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감독님! 감독님! 갑자기 왜 오셨어요?”

개인 카메라 감독은 말을 못 한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때 호랑이 인형 탈 스태프가 정요셉한테 도시락을 건네주었다. 그것도 소불고기 도시락을!

“와아~ 감사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소불고기 도시락을 주시다니.”

도시락을 보니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더군다나 팬들이 보낸 도시락이라니. 얼마나 소중한 도시락인가! 정요셉이 대기실에서 도시락을 까먹으려는데 참새 인형 탈 스태프가 정요셉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 도시락 감사합니다.”

그런데 참새 인형 탈 스태프가 손을 저었다.

“이게 아니라고요?”

참새 인형 탈 스태프는 도시락을 보라는 듯 도시락을 계속 손으로 가리켰다. 뭘 보라는 걸까? 정요셉은 고개를 숙이며 도시락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네스트》

“네스트?”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정요셉은 참새 인형 탈 스태프를 쳐다보았다.

“무슨 뜻이에요?”

참새 인형 탈 스태프는 계속해서 손으로 네스트를 가리켰다. 그러다가 정요셉은 인형 탈을 쓴 4명의 스태프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잠깐만, 4명?”

네스트… 4명… 이건? 정요셉은 화들짝 놀라며 참새 인형 탈 스태프의 손을 잡았다.

“설마 멤버들?”

제일 먼저 인형 탈을 벗은 화목현이 정요셉한테 말했다.

“요셉아!”

“목현 형!”

“정말 몰랐어?”

“정말 몰랐지! 오늘 다 같이 연습실에 간다고 그랬잖아~”

섭섭했던 마음이 녹아내리면서 정요셉은 배시시 웃었다. 공작새 탈은 화목현, 곰 탈은 이정진, 참새 탈은 주이든. 그리고 마지막으로 범나비가 호랑이 탈을 벗었다.

“어떻게 왔어?”

“글쎄요. 비밀이에요.”

그날 감독님한테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게 분명했다. 정요셉은 범나비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면서도 입술에서 웃음이 실실 나왔다.

“형, 기분 좋아요?”

“당연하지~”

“형이 좋으면 됐죠, 뭐.”

범나비의 볼을 꼬집으면서도 정요셉은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화목현이 정요셉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요셉아, 이리로 와.”

“네~”

무슨 말을 해도 기분이 좋은 정요셉은 화목현의 옆에 섰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저희 팬들이 요셉이가 드라마 촬영을 한다고 도시락을 준비해 줘서 손수 배달하러 왔습니다.”

***

이백수는 점심에 눈을 뜨자마자 네스트 커뮤니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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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오늘 막장 드라마의 사용법 촬영장에 네스트 왔음!

스태프들 SNS 보니까

네스트 팬들한테 감사하다는 피드 올라옴

근데 우리가 촬영장에 도시락을 보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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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이 보냈다고?”

네스트 데뷔 떡밥이 뜰까 봐 커뮤니티에서 잠시도 벗어나질 않았다. 그런데 도시락 서포트라니? 이백수는 듣도 보도 못했던 서포트였다.

-네스트 팬들이 막장 드라마의 사용법 촬영장에 도시락 보냈음?

└ ㄴㄴ 아니?

└ 보낸 적 없을걸?

└ 팬들이 보낸 건 맞나…

-어? 애들 블로그 글 보니까 네스트가 보냈네 팬들 이름으로

└ 미친 네스트가 보낸 거였어?

└ 헐

└ 뭐야 무슨 일이야?

블로그에 올라온 건 인형 탈을 쓴 멤버들과 정요셉이 막장 드라마의 사용법 촬영장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나비가 이서혁이랑 찍은 사진도 올라오고.

-아 인형 탈 ㄱㅇㅇ

└ ㅠㅠㅠㅠ 존나 귀엽게 논다 얘들아

-요셉이 신났다 ㅋㅋㅋㅋㅋ

└ ㄹㅇㅋㅋㅋㅋ 방긋방긋 웃고 있네 멤버들 와서 좋았나

└ 멤버들 없으면 분리불안 느끼는 우리 셉이ㅠ

-나비랑 서혁이랑 친한 것 같아서 다행이다 요셉이 혼자 드라마 촬영하면 힘들었을 텐데

└ 22 ㅎㅎ

└ 탐정 요셉이 드라마 감독이라서 걱정했는데 이서혁 있어서 마음이 놓여

└ 이서혁이 왜?

└ 이서혁 기 존나 세거든…

HOR 엔터랑 고소 진행 중이면서 배우로 활동하는 건데 기가 존나 세긴 하지. 이백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스트 정산했나? 도시락을 보냈네 ㄷㄷ

└ ㄹㅇ 정산했나?

-요셉이 드라마 한다고 데뷔 늦어질까 봐 두려웠는데 ㅠㅠ 떡밥 계속 나와서 좋다

-아 블로그 누가 추진했는지 음악 방송에서 물어봤었나?

└ 물어봤는데 얘들이 그냥 웃었대ㅋㅋㅋㅋ

-블로그 게시물 제목이 예고네? 뭘까… 계속 떡밥 터져서 좋긴 함ㅠ

└ 울 애들이 잘하는 듯 ㅋㅋ

└ 22 떡밥 없을 줄 알았는데

AA 엔터가 이렇게 데뷔를 늦게 추진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돌연프가 끝났을 즈음, 다른 엔터들에서는 데뷔 떡밥이 올라왔으니까. 비교적 빨리 떨어졌던 HI 엔터도 데뷔 티저가 올라왔고.

“빨리 데뷔나 할 것이지…….”

아직도 연습생 신분인 애들이 네스트라는 그룹명만 있으니, AA 엔터의 행보가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본업을 잘해야 팬 유입이 크지, 예능과 드라마를 병행하는 건 위험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알아보기는 하겠지.”

이백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우리 애들은 언제 데뷔해?

└ 글쎄…

└ 그런 슬픈 이야기는 그만하자…

└ 이러다가 1년 뒤에 데뷔하는 거 아니지?ㅎㅎ

└ 그러면 나 탈덕할 듯 ㅋㅋ

-이제 뭐 돌연프 끝난 지도 두 달이라…

└ AA 엔터가 뭐라도 하겠지ㅎ

└ 엔터가 이미 좆소인데 뭘 하겠음~

이백수는 베란다에 물을 떠놓고 빌었다.

“제발… 어떤 데뷔 떡밥이라도!”

이제는 제발 덕질을 하고 싶었다.

***

마지막으로 촬영이 끝난 배우에게 도시락을 나눠주는데 감독과 눈이 마주쳤다.

“역시 아이돌! 비싼 소불고기 도시락도 받고 말이야.”

“아닙니다.”

“다들 훤칠하게 생겨서 보기가 좋아.”

감독은 소불고기 도시락을 3개나 받아 가셨다. 저녁과 새벽에도 먹으려고 그러나.

“그래도 인기가 많은 아이돌인가 보지?”

“…아, 아닙니다.”

“겸손할 줄도 알고. 역시 인기가 많으면 다르긴 다르네.”

도시락 서포트 하나로 인기 많은 아이돌로 이미지가 바뀌다니. 감독은 잘 먹겠다는 말을 하면서 콜라까지 모조리 가져가셨다.

“우리 착한 동생 범아~ 도시락 잘 먹을게.”

“어, 서혁 형…….”

이서혁이 눈웃음을 치더니 이를 악물었다.

“어? 서혁 형? 어제 내가 보낸 톡은 확인도 안 했더라?”

“…죄송해요. 도시락 때문에 답장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 내가 너를 기다려야지. 난 인기 없는 배우니까.”

“진짜 죄송해요.”

콜라를 가져간 이서혁이 나에게 또 질문을 던졌다.

“너는 언제 데뷔하냐?”

“글쎄요. 언젠간 하겠죠.”

“예능은 찍고 있잖아.”

“아, 네…….”

예능도 찍긴 했지만, 네스트 데뷔가 더 중요하긴 했다.

“그거 알아? HOR 애들도 데뷔한다고 하던데.”

“…새로운 연습생으로?”

“아니, 그 문제아 연습생들 그대로.”

그건 별론데. HOR 엔터는 무슨 생각으로 연습생을 안 바꾸는 걸까. 팬들이 많아서? 그래 봤자 계속 우리랑 엮일 텐데.

‘노이즈 마케팅을 하려는 건가?’

커뮤니티에도 계속 글이 올라올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대중들의 인식에 안 좋게 박힐 거고.

“서혁 형, 정보 감사해요.”

“음? 고마우면 밥 한 끼 사. 알았지?”

“네, 데뷔하고 살게요.”

“그래, 데뷔해도 내 톡 무시하지 말고.”

이서혁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자연스럽게 떠났다. 나도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이 도시락, 우리 멤버들의 돈으로 준비한 건가?”

“아니, 투두 네스트 소원권 8개를 썼지.”

정요셉은 입을 벌리면서 도시락과 멤버들을 번갈아 보았다.

“나 때문에 소원권 8개를 쓴 거야?”

“응, 요셉아.”

화목현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정요셉이 수줍게 입꼬리를 올리며 눈을 껌뻑였다.

“진짜~?”

소름 돋는 광경에 주이든이 기겁했다.

“멤버들이 날 이렇게나 좋아할 줄은 몰랐다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좋아하는 티를 낼 걸 그랬네.”

“아! 리더 형! 쟤 또 좋아한다!”

그러자 정요셉이 차분한 톤으로 주이든을 토닥였다.

“우리 이든이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이건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물어보는 거란다~?”

“아악!”

주이든이 광기를 일으키며 내 뒤로 숨었다.

“이든아? 내가 뭘 했다고.”

주이든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주이든 없다.”

“…이든 형, 몸이 너무 잘 보이는데요.”

“없다면 없는 줄 알아.”

“아, 네…….”

내가 정요셉과 주이든 사이에서 시달리고 있을 때였다.

“나비야, 도시락.”

“아, 감사합니다.”

이정진이 내 도시락을 챙겨서 나한테 건네주었다. 열심히 도시락을 까먹는 사이에 김연호가 다가와 우리 옆에 앉았다.

“연호 형, 밥은요?”

화목현의 질문에 김연호가 고개를 저었다.

“얘들아, 내일 오전에 네스트 데뷔 컨셉 회의가 있다고 팀장님이 말하셨거든. 그러니까 내가 아침 8시에 연락할게.”

‘데뷔 컨셉 회의’라는 단어에 목에 소불고기가 걸렸다. 멤버들도 놀랐는지 멍하니 김연호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데뷔 컨셉 회의를 해요?!”

“팀장님이 네스트 곡 컨셉이 잡혔다고 내일 회의에 참석하라고 했어.”

드디어 컨셉 회의다, 드디어. 어떤 컨셉이 언급됐는지 김연호에게 물어보았다.

“연호 형, 어떤 컨셉이 나왔는지 들었어요?”

“어… 잠깐 회의실에 들어갔다가 미래랑 게임, 그리고 아포칼립스라는 단어를 들었어.”

미쳤나?

“공룡이라는 단어도 들은 것 같아.”

드디어 AA 엔터가 미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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