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의 1군 가이드-71화 (71/235)

71. 투두 네스트 1화 – 아파트편(4)

정요셉은 붉은색 일기장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일기장 읽을게.”

정요셉은 짧게 기침을 하더니 일기장을 읽기 시작했다.

《12월 31일

숨바꼭질이 재밌다.

그래서 숨바꼭질을 하러 아파트에 들어왔다.

이웃들은 나를 좋은 술래라고 생각한다.》

《2월 28일

집에 있으라니까.

이불에 들어가 있으면 안전할 텐데.

왜 나와서는.》

《9월 30일

작은 통로를 만들었다.

3층으로 내려갈 수 있는 통로를.

왜 310호 이웃은 일기를 쓰고 있을까.》

《4월 3일

드디어 경찰에 신고하는 이웃이 생겼다.

어떻게 경찰에 신고할 수가 있지?

바보인가.

아니다.

재밌다.》

정요셉이 다음 페이지를 넘기자 새로운 글을 발견했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다. 9413 9413 9413 9413 9413 9413 9413 9413 9413 9413 9413 9413 9413 9413 9413…….》

…9413?

“나 알아! 이 번호 알아!”

주이든이 입가에 침을 바르며 외쳤다.

“우리 엄마가 알려준 삐삐 용어야!”

아, 삐삐.

“구사일생이라는 뜻이라고, 위급한 상항이 끝났다는 말이라고 했었어……!”

일기장에 여러 번 썼다는 건 그만큼 기쁘다는 뜻이겠지. 위급한 상황이 끝났으니까. 정요셉이 일기장을 탈탈 털어봤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다른 방도 수색해 볼까.”

“목현아, 내가 다른 방을 뒤져볼게.”

다른 방을 살펴본다고 떠난 이정진의 비명 소리에 깜짝 놀랐다. 멤버들이 이정진이 있는 곳으로 따라가자 경찰 복장을 한 마네킹이 몇 군데가 부러진 채 방 안에 누워 있었다. 그래서 위급한 상황이 끝났다고 한 건가.

경찰을 죽여서.

이정진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심호흡을 했다.

“진짜 육두문자 나올 뻔.”

이정진이 진정하는 사이 화목현이 작은방에 들어가 서슴없이 마네킹을 뒤졌다.

“목현 형, 뭔가 걸리는 거라도 있어요?”

“어, 있어.”

그리고 마네킹이 입고 있는 조끼에서 ‘옥상’이라고 적힌 열쇠 꾸러미를 발견했다.

“열쇠 꾸러미?”

정요셉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열쇠 꾸러미를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이렇게 손쉽게 열쇠를 획득할 리가 없긴 한데…….

“열쇠 몇 개예요?”

“…21개.”

운이 좋으면 빨리 끝나겠지. 하지만 운이 안 좋으면… 나는 고개를 저어서 끔찍한 미래를 떨쳐냈다.

“얘들아, 쪽지도 발견했어.”

정요셉이 마네킹의 손바닥을 펼치자 필사적으로 쪽지를 숨긴 흔적이 있었다.

《도망쳐.》

도망치라는 내용의 쪽지를 읽는 순간,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웨이이이이엥!

그러자 복도에서 스프링클러가 터지면서 물이 분사되었다.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도록 만든 장치인가.

“4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에 종이 상자가 있지 않았어요?”

종이 상자는 물에 젖으면 부피가 작아진다. 그렇다면 술래가 올라올 확률이 높아진다는 건데.

“옥상으로 가자!”

내 말뜻을 알아차린 화목현은 황급히 술래의 집에서 도망쳤다.

***

스프링클러 때문에 아파트에 물난리가 났다. 5층 계단을 올라가는데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끝없이 내려와 올라가기가 버거웠다. 드디어 몇 번의 고난을 이겨내고 눈앞에 옥상에 도착했다.

“꽂는다.”

먼저 앞으로 나섰던 화목현은 힘겹게 옥상 문의 자물쇠를 잡고 열쇠를 꽂았다. 그러나 자물쇠에 맞는 열쇠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갑자기 폭포처럼 쏟아지는 물줄기에 중심을 잡던 주이든이 미끄러졌다.

“으악!”

“이든 형!”

“…어, 나는 괜찮아.”

그때였다. 정요셉이 뒤를 돌아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요셉아, 무슨 소리?”

“정진 형은 이 소리 안 들려? 이 소리!”

물이 쏟아지는 소리에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작게 계단 난간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깡.

깡.

깡.

이 소리… 술래가 올라오고 있다. 모두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술래의 머리가 보이자마자 멤버들은 벽에 가깝게 몸을 붙였다. 최대한 술래가 우리를 못 보도록.

쏟아지는 물줄기에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는 상황에서 화목현은 자물쇠에 마지막 열쇠를 꽂았다.

“얘들아, 자물쇠 풀었어!”

기적이라면 기적.

마지막 열쇠도 자물쇠에 맞는 열쇠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상황이었다.

“잠깐만.”

화목현이 있는 힘껏 열쇠를 돌리는데, 옥상 문 문고리가 옆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얘들아, 열리지 않는데?”

화목현이 다급하게 문고리를 잡고 흔들었다. 이정진도 가세하여 문고리를 옆으로 돌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술래가 한 칸씩 올라오는데?”

주이든의 외침에 모두가 술래가 계단을 한 칸씩 오르는 걸 확인했다. 그러자 화목현이 문고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죄송합니다!”

화목현이 발을 들어서 문을 세게 찼다. 제작진이 문 앞에 뭔가를 쌓아둔 모양이다. 자물쇠가 풀리긴 했는데 문은 열리지 않는 걸 보면.

“…술래를 어떻게 막지?”

옥상이라 술래를 막을 만한 도구가 없었다. 그나마 술래를 막을 수 있는 건 물에 젖은 종이 상자뿐. 벽을 두드리는 소리는 점차 가까워졌다.

“일단 종이 상자로 앞을 막죠!”

나의 제안에 정요셉과 주이든이 종이 상자를 열심히 옮겼다. 어차피 술래는 한쪽 다리를 다쳤으니 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충분히 막을 시간이 있었다. 나는 정요셉과 주이든에게서 받은 종이 상자를 묵묵히 계단에 쌓았다.

“범나비, 이러면 됐겠지?”

“네, 그 정도면.”

물살에 뒤로 넘어지려는 주이든이 보였다. 잘못하다가는 주이든이 넘어질 수도 있는 상황. 나는 눈을 뜰 수 없는 상태에서 간신히 주이든의 손을 찾아 잡아당겼다.

“형, 괜찮아요?”

“어! 고마워!”

종이 상자가 겹겹으로 쌓여 있어서 있는 힘껏 밀지 않는 이상 술래도 못 올라올 것이다.

깡.

깡.

술래의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끼익, 기름칠이 되지 않은 문이 열리면서 화목현과 이정진이 소리쳤다.

“얘들아!”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옥상 문이 열렸다.

***

기진맥진이라는 말이 정답일 것이다. 옥상에 도착하자 제작진이 환호와 박수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김연호가 달려와 우리한테 수건을 줘서 물로 젖은 몸을 닦았다.

“진짜, 연호 형!”

“…어?”

“모르는 척하지 마세요. 이제 연호 형도 안 믿어!”

주이든이 김연호의 팔뚝을 때리면서 어리광을 부렸다.

“네스트, 5분을 남겨놓고 탈출 성공!”

‘탈출 성공’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멤버들은 바닥에 드러누웠다. 나만 혼자서 일어나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이렇게 네스트는 찢어진 소원권 5개를 적립했습니다.”

다행히 찢어진 소원권을 얻어냈다. PD가 스케치북을 통해서 몇 개를 적립했는지 알려주었다.

《찢어진 소원권 적립

화목현 : 2

이정진 : 2

정요셉 : 2

주이든 : 2

범나비 : 2

총합계 : 10》

나는 스케치북을 보면서 질문했다.

“PD님 찢어진 소원권 8개를 얻으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하셨죠?”

“맞습니다.”

지금 총 10개가 있으니까, 그러면 2개가 남겠네. 남은 건 제작진들이 알아서 해주겠지. 나는 다시 몸에 남은 물기를 닦았다. 그때 눈앞에 시스템창이 반짝였다.

[정답, 소원권 8개를 얻었습니다!

‘팬들이 보낸 도시락’이라는 명목하에 정요셉은 감동할 겁니다.

더불어 정요셉의 드라마 촬영 때문에 데뷔 무대에 차질이 생기지 않습니다.]

【랜덤 박스 1개를 얻었습니다.】

랜덤 박스 하나… 나는 물기 닦은 수건을 김연호한테 전달하면서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러자 옆에서 주이든이 PD를 노려보았다.

“PD님! 분명히 놀러 간다고 했잖아요!”

“방 탈출, 재밌지 않았나요?”

“…원래 방 탈출은 이렇게 무섭지 않잖아요.”

조금 정신을 차린 주이든이 앙칼진 목소리로 항의했다. 이게 무슨 놀러 가는 컨셉인가. 방 탈출도 이렇게 어렵진 않다. 멤버들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PD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오늘 고생한 술래님께 박수를!”

제작진과 멤버들은 술래를 보며 손뼉을 쳐주었다. 술래는 고개를 숙이며 자기도 무서웠다는 말을 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네스트 여러분, 저기를 봐주세요!”

PD가 오른쪽을 손짓했다. 자연스럽게 멤버들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제작진은 식탁에 올라가 있는 검은색 천을 내렸고. 그곳에는 소고기가 있었다.

“…소고기?!”

소고기를 보자마자 정요셉이 벌떡 일어났다. 소고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정요셉의 눈이 돌아갈 만했다.

“아파트편을 무사히 마친 네스트를 위한 작은 선물입니다.”

오늘이 특히 빡세긴 했다. 추리하고, 도망가고, 물에 맞고.

“저… PD님, 이거 아이돌 예능 맞죠?”

“…어, 네. 아이돌 예능이 맞습니다.”

아이돌을 이렇게 빡세게 굴리는 제작진도 처음이다.

“저, PD님, 그런데 404호에 있던 사진들은 언제 찍으셨어요?”

“맞아! 나도 궁금했는데!”

주이든도 내 말에 동조했다.

“김연호 매니저님께 부탁드렸습니다.”

와… 언제? 우리는 배신감에 물든 눈빛으로 김연호를 노려보았다. 다음엔 좀 편안한 촬영이었으면 좋겠는데.

“다음 촬영 때는 제발 놀러 갔으면 좋겠는데요…….”

나의 간곡한 부탁에 PD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다음 촬영도 빡세겠네. 어차피 다음 촬영이 마지막 촬영이긴 하지만. 나는 수건을 바닥에 깔고 앉았다.

‘다리가 아파.’

옆에서 주이든이 상체를 일으키며 PD한테 물었다.

“PD님, 다음 촬영이 스릴러는 아니죠?”

“어… 스릴러는 아니겠죠.”

PD의 태도를 보니, 다음 촬영도 힘들 것 같다. 투두 네스트 촬영 날에 영양제라도 먹어야겠네.

소고기를 가져온 정요셉은 PD를 보면서 허리를 숙였다.

“그래도 소고기를 주신다면 그 어떤 가혹한 탈출이라도 하겠습니다.”

정요셉은 소고기를 품에 안으면서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혹시 다음 촬영 스포는 가능한가요?”

역시 리더다. 화목현의 질문에 PD는 방송작가와 속삭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윽고 몇 분이 흘렀을까. PD가 입을 열었다.

“다음 촬영 키워드를 보실래요?”

PD가 프린터로 뽑은 사진을 건네주었다. 나는 사진을 받아 와 멤버들과 함께 확인했다. 그런데 사진 속 배경이 밭이었다. 설마…….

“농촌 예능을 찍으러 가는 건 아니죠?”

내가 그렇게 말하자 PD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농촌 예능 맞네.

“그럼 여기서 투두 네스트 아파트편 촬영 마무리하겠습니다!”

“아니, 다음 촬영지를 알려주세요!”

그렇게 급하게 촬영이 마무리되고 정요셉이 소고기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나는 화목현한테 다가갔다.

“목현 형, 소원권.”

화목현은 정요셉을 힐끗 쳐다보았다.

“요셉이가 우리한테 신경을 쓰지 않네.”

“네, 그러니까 지금 물어보는 게 어떨까요.”

“일단은 멤버들을 모으고.”

정요셉이 피곤하다면서 자연스럽게 차에 오르자, 나는 멤버들한테 접근했다.

“형들, 그 소원권 아시죠?”

소원권이라고 언급만 했을 뿐인데. 이정진과 주이든은 눈치를 챘다.

“나는 원래 보내고 싶긴 했어!”

주이든은 멤버들한테 밥차나 커피차를 보내는 게 소원이었단다. 그렇게 주이든은 가볍게 통과했고.

“나도 괜찮아.”

이정진의 허락도 받았다.

“목현 형, PD님한테 가보죠.”

정요셉을 제외하고 곧바로 멤버들과 PD한테 다가갔다. PD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껌뻑였다.

“PD님, 소원권으로 제안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어, 잠시만요.”

PD는 우리가 접근하자 카메라를 켰다.

“카메라 좀 켤게요.”

역시 PD는 남다르다.

“무슨 일로 저한테 오셨나요?”

“소원권 8개를 모으면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우선 화목현이 분위기를 잡고 내가 앞으로 나와서 말을 이었다.

“소원권 8개를 써서 이번에 막장 드라마의 사용법 드라마 촬영장에 도시락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오, 어떤 이유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이번에 요셉 형이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많이 힘들어 보였거든요. 오랜만에 연기를 하는 건데 멤버들이 도시락을 나눠주면 기운이 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렇게 말하자 PD는 나를 응시했다.

“이거, 투두 네스트의 비하인드로 나가도 될까요?”

PD의 역제안에 멤버들이 찬성했다.

“그런데 다른 소원을 말해도 될 텐데.”

“괜찮아요! 소고기를 얻었잖아요!”

주이든이 활기차게 대답했다. 긴장됐던 분위기가 주이든의 한마디에 풀리면서 모두가 미소를 지었다.

“소원권 8개를 소모했습니다.”

PD가 스케치북에 적혀 있던 소원권 개수를 10개에서 2개로 바뀌었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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