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투두 네스트 1화 – 아파트편(3)
그런데 술래가 우리를 보자마자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간을 보는 건가?’
주이든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지? 우리가 무서웠나?”
“우리 이든이, 뭘 모르네. 술래가 우리를 봐준 거지.”
“우리가 무서웠을 수도 있지. 쪽수는 우리가 많으니까.”
“살인마가 그런 걸 따질 것 같아?”
정요셉의 말처럼 살인마는 쪽수를 따지지 않을 것이다. 그저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한 걸 수도. 이미 술래는 우리를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기도 했고.
‘지금 몇 시지?’
아까 20분이 남았다고 했으니까.
‘시간이 촉박하다.’
제한 시간이 너무 짧긴 하다.
“310호로 빨리 가자.”
화목현의 말에 모두가 3층으로 올라갔다.
***
3층은 2층보다 분위기가 삭막했다. 창문이 다 깨져 있었으니까.
“잠깐만.”
주이든이 홀로 4층까지 올라가다가 다급하게 말했다.
“뭐야…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막혔는데?”
우리도 4층에 올라갔다. 자세히 보니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상자로 막아놔서 우리가 올라갈 수 없도록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올라갈 수가 없네.”
“다른 통로라도 있나?”
다른 통로라면 310호밖에 없지 않은가.
‘310호로 가라고 했으니까…….’
거기에다가 310호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더 수상했다. 홀로 310호를 보고 있던 정요셉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310호가 수상한데?”
막상 310호가 열렸다고 해도 가기가 두려운 건 사실이었다.
‘숨이 막히네.’
나는 목이 답답해서 셔츠 단추 몇 개를 풀었다. 그때 이정진이 불쑥 말했다.
“310호에 위로 올라갈 수 있는 통로가 있겠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치? 4층도 막혀 있고, 310호로 가라고 했으니까.”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멤버들과 310호에 들어가자마자 온 집 안을 뒤졌다. 서랍을 뒤지는데 정요셉이 내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우리 꼭 강도 같다~?”
“그러게요. 아무도 없는 집을 이렇게 뒤지니까.”
그러더니 정요셉은 벽에서 움직이는 카메라에 대고 경고하듯 말했다.
“하지만 여러분, 실제로 이렇게 행동하면 범죄입니다.”
“요셉 형, 어딜 보고?”
“뭐, 카메라에 대고 이렇게 말하면 내보내 줄 것 같아서~”
마무리로 정요셉이 카메라를 보면서 윙크했다. 그다음으로 작은방에 가서 옷장을 열었다가 닫는데, 옷장에서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덜거덕?’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정요셉한테 물었다.
“요셉 형, 덜거덕 소리 들었어요?”
“어, 들었어!”
“일단 형들 부를까요?”
“부르고 옷장을 뒤져보자.”
곧바로 나는 거실에 있던 멤버들을 불렀다. 이정진이 나에게 질문했다.
“막내야, 무슨 소리가 났는데?”
“덜거덕거리는 소리요.”
“덜거덕?”
“뭔가 자물쇠가 걸려 있는 듯한 소리였어요.”
내 말에 이정진이 눈동자를 굴렀다. 때마침 방송 스피커에서 술래의 목소리가 울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여기까지는 아까와 똑같은 노래.
-꼭, 숨어. 10분 남았다.
그 말에 멤버들과 눈빛 교환을 했다. 슬슬 술래가 우리를 찾아올 거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되겠네.
“정진 형, 그 104호에서 읽었던 쪽지에서.”
“몸을 숨기라는?”
“어! 옷장에 이불이 있으니까 그걸로 어떻게든 몸을 숨기면 되지 않으려나?”
몸을 숨기면 술래가 잡을 수 없다는 조건. 그걸 떠올린 정요셉과 화목현은 옷장에서 이불을 꺼내 바닥에 놓았다. 서서히 다가오는 시간의 족쇄에 나는 숨을 골랐다.
“저는 옷장을 더 뒤져볼게요.”
화목현이 손을 들었다.
“그럼 나는 쪽지를 찾으러 가볼게.”
“나도 갈래!”
쪽지를 찾으러 주이든과 화목현은 다른 방으로 떠났고, 작은방엔 나와 정요셉, 그리고 이정진이 남게 되었다.
“내가 옷장을 잡고 있을게.”
옷장 아래가 망가졌는지 계속 흔들렸다. 그게 거슬렸는지 정요셉은 손으로 옷장을 꽉 잡았다. 뭔가 수상해…….
“저는 더 뒤져볼게요.”
아무것도 없는 방에 덩그러니 멀쩡한 옷장이 있을 리가 없지. 나는 텅 빈 옷장 안에 들어가서 옷장 여기저기를 만져봤다. 아까 그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자물쇠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막내야, 아무것도 없어?”
“잡히는 건 없어요…….”
이럴 리가 없는데. 마지막 희망을 담아 옷장의 모서리 부분을 주먹으로 쳤다. 그러자 모서리 부분에 구멍이 뚫렸다. 그곳은 청색 테이프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이게 뭐야?
누가 봐도 뜯어보라는 듯한 청색 테이프를 잡고 뜯자 작은 통로가 나왔다.
“형들…….”
작은 통로는 위로 가는 출구였고, 그곳에 열쇠가 있었다.
“여긴 뭐야?”
정요셉이 작은 통로를 확인하면서 감탄했다.
“안쪽에 잠글 수 있는 버튼이 있네.”
이정진이 안쪽에 있는 버튼을 만지고 있는데 정요셉이 우리한테 다가왔다.
“잠깐만.”
그러고는 이정진한테 핸드폰을 받아 아파트 내부 사진을 확인하더니 어떤 부분을 확대해서 나와 이정진에게 보여주었다.
“이 부분.”
정요셉이 보여준 사진에는 두 개의 선이 있었다. 확대를 안 하면 볼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까도 보긴 했는데 이런 통로가 있는 줄은 몰랐거든.”
“위로 향하는 통로겠네요.”
“어,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막혔잖아.”
안 그래도 시간이 촉박한데. 나는 통로에서 열쇠를 가져와 이정진에게 맡겼다.
“정진이 형이 가지고 있어요.”
“왜 나한테?”
“정진 형이 물건을 제일 안 잃어버릴 것 같아서요.”
내 말에 설득당한 이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다른 곳으로 쪽지를 찾으러 떠났던 화목현과 주이든도 작은방에 들어왔다.
“쪽지 찾았어!”
“목현 형, 어디서 찾았어?”
“부엌 서랍에서 발견했어.”
화목현이 쪽지를 흔들었다.
“우리는 쪽지 발견했는데, 너희는?”
“우리는 열쇠 발견했어요.”
“옷장에 열쇠가 있었구나.”
“근데 열쇠만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옷장을 턱짓하자 화목현과 주이든이 옷장 안의 통로를 보고는 눈이 커졌다.
“뭐야, 여긴?”
“위로 올라가는 통로요.”
“…어떻게 위로 올라가나 했더니.”
“그리고 안쪽에 있는 버튼은 아마.”
술래를 부르는 버튼이지 않을까 싶었다. 괜히 버튼이 있을까.
“그렇다면 이 버튼은 최대한 건드리지 말죠.”
“…그래, 괜한 어그로가 끌릴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버튼이 중요한 시점이 아니었다.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시간은?”
“10분 정도 남아서 시간은 충분해요.”
“그렇다면 일단은 쪽지부터 확인하자.”
화목현은 쪽지를 펼쳐서 읽었다.
《4월 4일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은 나에게 물었다.
그 술래를 만난 적이 있냐고.
처음에는 이웃이 죽는 주기가 30일이었다.
그런데 점점 주기가 좁혀지더니 20일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경찰은 말했다
“404호로 가보세요.”》
404호? 가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겠지.
작은 통로의 문을 열어서 한 명씩 들어가려는 찰나였다. 저 멀리서 와다다다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이 헐떡이는 소리가 났다.
“꼭꼭 숨어라.”
화목현은 눈치껏 작은방의 문을 닫았다.
“여기 있었잖아?”
쾅!
쾅!
쾅!
술래가 방문을 뚫을 것처럼 거세게 때렸다. 그 틈에 우리는 주이든부터 4층으로 올렸다.
“나, 먼저 갈게.”
주이든이 먼저 통로를 통해 4층으로 올라가고 그다음으로 정요셉이 올라갔다. 눈을 살짝 돌리자 문이 뚫려 있는 곳을 통해 술래와 눈이 마주쳤다.
“…….”
“…….”
순식간에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화목현이 이불을 가져와 뚫린 구멍을 막았다.
“나비야, 올라가!”
“…네!”
이럴 때가 아니다. 올라가야지. 비좁은 통로 안에 있는 사다리를 오르며 화목현을 불렀다.
“목현 형!”
“올라갈게!”
포기를 모르는지 술래는 계속 방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뒤쪽으로 화목현의 얼굴이 보였다.
“형, 따라와요.”
“어! 가!”
화목현이 작은 통로의 문을 닫는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4층까지 올라와 정요셉의 손을 잡을 때였다.
쾅!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에 눈이 커졌다.
“나비야, 올라가고 있어.”
“…네.”
화목현의 목소리에 안심했으나 이내 작은 통로의 문을 잡고 흔드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화목현도 내 손을 잡고 통로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여기 막자.”
근처에 있는 책장을 밀어서 위로 올라올 수 없도록 만들었다. 계속해서 술래가 통로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포기를 했는지 그 뒤로는 두드리지 않았다.
“…하.”
그제야 화목현이 자리에 앉고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떨려 죽는 줄 알았네.”
“저도요…….”
진이 다 빠졌다. 나는 한숨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도착한 공간은 4층 복도가 아닌, 붉은색 조명이 달린 방이었다. 한쪽 벽에 붙어 있는 여러 장의 사진과 테이블 위에 있는 정착액을 보고서 확신할 수 있었다. 여긴 사진을 인화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화목현도 내 옆에 서서 주변을 탐색했다.
“여기가…….”
“사진을 인화하는 공간이요.”
“…사진을 이렇게 많이?”
나와 화목현이 어떤 사진인지 확인하려는 찰나였다.
“…아니, 이게 뭐야!”
주이든이 벽에 붙은 사진을 보고서 기겁했다. 무슨 사진이길래?
나와 화목현이 주이든 쪽으로 가서 사진을 확인했다. 멀리서 찍은 것 같은 숙소에 널브러진 가방 사진, 우리가 자고 있을 때 찍은 사진, 그리고 손바닥을 찍은 사진이었다.
‘언제 이걸 찍은 거야?’
그러자 정요셉이 나에게 숙소에 널브러진 가방 사진을 들이댔다.
“이거, 우리 막내 보부상 가방 아니야?”
“…제 가방인데요? 제 가방이긴 한데…….”
나는 저렇게 숙소 바닥에 가방을 올려둔 적이 없었다. 오로지 등에 메거나 소파에 올려두기만 했는데.
‘사진이 너무나도 인위적이잖아…….’
마치 누가 내 가방을 일부러 숙소 바닥에 놔두고 찍은 것처럼.
“저는 바닥에 가방을 놔둔 적이 없어요.”
“…없다고?”
“누가 이렇게 놔둔 것 같은데요.”
물론, 술래가 바닥에 가방을 놔두고 찍은 사진이겠지. 정요셉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사진을 다시 원래대로 가져다 놓았다. 그때,
“이거 요셉이 손바닥 아니야?”
화목현이 보여준 손바닥 사진의 엄지에는 작은 점이 있었다.
“그러게… 이 손바닥, 내 손바닥 같은데?”
그 말에 정요셉은 벽에 걸린 손바닥 사진을 떼어내 자기의 손바닥과 대조했다. 정말로 정요셉의 손바닥에 있는 점과 사진 속의 점이 일치했다. 그러자 옆에서 주이든이 소리가 나도록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사진들, 우리를 가리키는 것 같은데……?”
주이든의 말에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건 애초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당연한 거겠지만.’
직접 이 상황에 직면하고 나니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진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방 여기저기에 사진이 있었다.
“이 집이 술래의 집인 건 확실하네.”
술래가 죽인 사람들의 흔적이 있는 사진도 있었기에 우리는 그곳이 술래의 집이라고 굳게 믿었다. 홀로 사진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던 이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책장 서랍에 있는 사진만 이상한 걸까.”
뭔가 선으로 이어져 있는 듯한 사진. 그 사진에는 ‘거실’, ‘안방’ 같은 단어가 적혀 있었다. 이거, 제작진이 준 힌트 같은데…….
“뭔가 힌트 같아서 이어보긴 했거든. 잘 봐.”
20장이 넘는 사진을 이었더니 선이 무언가를 향했다. 우리는 바닥에 사진을 놓고 검은색 커튼을 지나 거실로 가는 이정진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다. 그 사진은 술래의 안방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야.”
술래의 안방.
“트릭이 아닐까.”
화목현의 의심에 주이든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들어갔다가 큰코다치면 어떡해!”
“우리 이든이가 겁이 많네.”
“술래가 떡하니 있을 수도 있잖아. 어떻게 이 사진만 보고 믿을 수가 있어.”
“지금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게 있을까?”
“…아, 씨! 몰라!”
주이든은 머리를 헝클이며 입꼬리를 내렸다.
“이든 형 말도 맞고, 요셉 형 말도 맞아요. 그래도 시도는 해보죠.”
이정진이 안방의 문고리를 잡고 열었다. 술래의 방은 전체적으로 붉은색이었다.
“으… 뭔가 피 같다.”
주이든이 팔을 문지르며 말했다.
“일기장 발견!”
그때 정요셉이 책상 서랍에서 일기장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