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투두 네스트 1화 – 아파트편(1)
본격적인 투두 네스트 첫 촬영이 있는 날. 이번에는 방송국이 아닌 숙소 앞에서 제작진을 만났다. 그리고 제작진과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마이크를 차기 시작했다.
“…벌써 마이크를 차요?”
“촬영을 바로 시작할 거라서 미리 마이크를 차는 거예요.”
의심스러운데…….
항상 의심이 시작되면서부터 일이 일어났다. 한번 당했던 몸이기도 하고, 이번에는 PD가 우리를 어떻게 굴릴지 예상이 가지 않아 더더욱 무서웠다.
“PD님, 저희 이상한 곳에 가는 건 아니죠?”
화목현이 마이크를 차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PD에게 묻자,
“그럼요. 이번에는 이상한 곳에 가는 게 아니라 놀러 갑니다.”
PD는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말 놀러 가는 거 맞아요~?”
“당연하죠. 그동안 우리 네스트가 돌연프로 많이 힘들었는데 놀러 가서 몸을 풀어야죠.”
왜 몸을 굴린다는 것처럼 들리지. 멤버들도 똑같은 생각을 한 건지 표정이 하나같이 굳어 있었다.
“진짭니다.”
PD의 웃음이 참으로 사악했다.
“어떤 식으로 노는 건데요?”
“글쎄요. 다리의 피로가 풀리고 성취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설명하면 되려나요?”
아리송한 PD의 말에 절대 놀러 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요셉이 팔을 번쩍 들며 외쳤다.
“저 PD님 전 작품 다 봤거든요~ 놀러 간 적이 없던데요!”
“에이, 예능인데 매번 비슷하게만 할까요?”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니에요.”
…연예계에서 제일 믿을 수 없는 사람이 PD와 작가였다. 한시라도 의심을 멈추면 안 된다.
“투두 네스트! 촬영 시작합니다.”
PD의 한마디에 카메라의 불이 켜졌다. 화목현의 신호에 멤버들과 같이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네스트입니다.”
인사가 끝나자 PD가 쟁반 위에 봉투 3개를 올려두었다.
“이 봉투 안엔 참과 거짓이 들어 있습니다.”
참과 거짓이 섞여 있다?
“그렇다면 네스트의 금손은 누구죠?”
“금손이 누굴까~?”
정요셉의 말에 일제히 멤버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
“범나비가 제일 잘 뽑아요!”
“이든 형, 제가요?”
“응!”
금시초문인데… 이렇게 된 이상 잘 뽑아야 하는데. 왠지 저 봉투 3개는 페이크 같다. 다 똑같은 게 들어 있을 것 같은데.
“그럼 네스트의 막내 범나비 씨, 뽑아주세요.”
나는 가다가 말고 PD에게 물어보았다.
“설마 이 봉투에 다 거짓이 들어 있지는 않겠죠……?”
“…에이, 벌써 의심한다고요? 저희는 출연자한테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맞잖아요. 출연자 뒤통수 전문 제작진… 봉투에 정말 참이 들어 있다면 내 운에 맡겨야 하는데.
“잠시 핸드폰으로 운세를 봐도 될까요?”
믿을 구석은 사주밖에 없었다.
“저희가 읽어드릴게요.”
옆에서 방송작가가 PD의 붉은색 핸드폰으로 오늘의 운세를 확인했다.
“앞을 잘 확인하고 다녀야 하는 시기입니다. 이럴 땐 주위를 잘 살펴보면 보물을 찾을 수 있어요. 오늘은 운이 세게 들어오는 날이니 당신의 신중한 선택에 따라서 하루가 바뀔 겁니다. 행운의 아이템은 자기 자신이라고 하네요.”
내 직감을 믿으라는 말이네. 굳이 봉투를 뽑으려면 중간이 최고다.
“저 두 번째 봉투를 고를게요.”
쟁반 위에 올려진 두 번째 봉투를 가지고 멤버들한테 다가갔다.
“범나비 씨, 봉투를 열어도 됩니다.”
나는 침을 삼키며 봉투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아파트》
아파트?
“PD님, 아파트가 뭐예요~!”
정요셉이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우리가 향할 장소입니다.”
놀러 가는 장소가 아파트라고? 화목현이 작게 기침했다.
“PD님, 혹시 투두 네스트 소원권 8개를 모으면 아무 소원이나 말해도 되나요?”
“네, 집 사달라는 것 빼고는.”
간단한 소원은 이뤄줄 수 있다는 거네.
“우리 막내가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나~”
내 옆으로 다가온 정요셉이 무슨 소원을 이루고 싶은지 말해보라고 했다.
“갖고 싶은 물건이 있어서요.”
“갖고 싶은 물건?”
“네, 엄청 큰 거예요.”
정요셉이 서운하다는 듯이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을 캐내려고 했으나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당연했다. 정요셉에 관한 일 때문에 물어본 거니까.
“네스트 여러분, 그럼 촬영 장소로 가볼까요?”
***
점점 도시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어 앞좌석에 앉은 정요셉이 김연호에게 물었다.
“연호 형은 들은 거 없어?”
“들은 거?”
“그러니까 어디로 가는지 정도는 알려줄 수는 있잖아?”
“나는 모르지. 그냥 네비에 주소만 쳐주시고 가셨거든.”
“연호 형도 수상해~”
솔직히 말해서 김연호는 우리와 몇 번 보기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설마 거짓말을 할까. 김연호의 말투로 보면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힐링하고 왔으면 좋겠다!”
주이든의 외침에 이정진이 조용히 말했다.
“지금 산으로 가고 있잖아.”
이정진의 말처럼 정말 산으로 가고 있었다. 산은 산인데… 점점 깊숙이 들어가고 있는데? 어두운 숲길을 지나자 낡은 아파트가 보였다.
“어? 얘들아, 도착했는데?”
네비에 찍힌 곳에 도착했다. 먼저 화목현이 차에서 내려 낡은 아파트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는 김연호한테 한 번 더 물었다.
“연호 형? 여기가 맞아요?”
“…어, 여기가 맞아.”
“이상하다? 스태프분들이 안 보이는데.”
김연호가 네비에 찍힌 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진짜 여기야.”
차에서 내려 아파트를 보자마자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곧 허물어질 것 같은 낡은 아파트 단지, 사람은커녕 귀신이 살 법한 동네였다. 공포영화를 찍기 딱 좋은…….
나는 아파트에 다가가 벽면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아파트가 낡고 낡아서 벽을 조금만 만져도 콘크리트 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이런 곳에서 무엇을 하겠다고?
곧 마이크가 찢어지는 소리가 울리고.
-안녕하세요. PD입니다.
방송 스피커에서 PD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음질이 좋지 않아 PD의 목소리가 계속 툭툭 끊겼다.
-이제부터 404동 아파트의 옥상 열쇠를 찾아 옥상에 들어오면 탈출 성공입니다. 먼저 404동 104호에 가셔서 핸드폰과 아파트 내부 사진을 얻으세요. 제한 시간은 1시간. 여러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그렇게 소리가 끊겼…을 줄 알았다.
지지직.
이상한 소리가 울려서 인상을 찌푸렸다. 오디오가 찢어질 것 같은 소리가 귀를 때렸다.
귀를 막으라는 이정진의 신호에 손바닥으로 귀를 막았다. 곧 소리가 끊기더니 스피커에서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무거운 물건을 질질 끄는 소리가 들리고는 노랫소리가 끊겼다. 그러니까 아파트에 술래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거지……? 우리는 여기서 열쇠를 얻어서 탈출해야 하고.
404동에서 바스락거리는 바람 소리가 들리자 주이든이 몸을 움찔했다.
“안, 안 무섭다……!”
“우리 이든이, 별로 안 무서울걸?”
“사, 사실 살짝 무섭다? 나 이런 거 싫은데!”
정요셉은 주이든의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
“얘들아!”
화목현의 부름에 정신없던 멤버들이 화목현에게 시선을 옮겼다.
“…살짝 정신이 없긴 하지만, 일단 우리끼리 뭉쳐야 옥상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몰입이 확 되는 바람에 정신이 없긴 했다. 나는 앞머리를 뒤로 넘기며 불필요한 감정을 없앴다.
“정진이, 요셉이, 이든이, 나비… 그리고 나까지. 다 있네.”
화목현이 김연호까지 확인하려고 했으나, 어느 순간 김연호가 사라져 있었다.
“연호 형 어디 갔어……!”
이런… 우리가 타고 온 차까지 없어졌다. 김연호가 차에 올라타서 전화하는 것까지는 보았는데. 김연호도 제작진과 한통속이었다.
“가버린 것 같은데요. 우리 가방도 가져가고.”
“와! 핸드폰도 가져갔어!”
…나갈 구멍을 아예 차단했네.
“일단은 104호로 가자.”
화목현의 말에 멤버들도 몰입이 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낡은 404동 아파트 중간 입구에 들어가자 문이 열려 있는 엘리베이터가 보였고, 그 엘리베이터 안에 수첩이 있었다.
“어~ 엘리베이터 안에 수첩 있다!”
관찰력이 좋은 정요셉이 엘리베이터 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화목현이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려는 정요셉을 막았다.
“잠깐만.”
“왜?”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잖아. 어쩌면 엘리베이터에 갇힐 수도 있고…….”
의심이 많은 화목현은 엘리베이터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수첩을 가져왔다.
“자, 수첩 확인.”
수첩을 열자 거실이 찍혀 있는 사진과 글이 있었다.
“104호 거실에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아이의 인형은 건드리지 말도록…이라고 적혀 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사진에는 곰인형도 보였다. 이정진은 정요셉이 손에 쥐고 있는 사진을 빼앗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 잘 보면 인형 옆에 그림자가 있는데?”
“…정진 형! 무섭게 왜 그래!”
주이든은 내 뒤로 몸을 숨겼고, 나는 사진을 살펴보았다. 이정진의 말대로 정말 인형 옆에 그림자가 있었다.
“스태프 그림자인가?
“스태프 그림자가 아니라면?”
내 뒤에서 주이든이 작게 속삭였다. 그림자의 길이를 보니 아이의 그림자인 듯했다. 깨달음을 얻자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확 올라와 팔에 닭살이 돋았다.
‘…인형을 들춰서 확인할 수밖에 없나.’
원래 공포 영화를 보면, 건드리지 말라는 물건을 건드렸을 경우 큰일이 나던데. 나는 목운동을 하면서 긴장감을 풀었다.
“형들, 104호로 가보죠.”
멤버들은 한층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1층 계단으로 올라가서 집집마다 호수를 확인했다. 주이든이 먼저 104호을 발견했다.
“104호!”
104호 현관문은 열려 있었고, 다들 먼저 들어가길 꺼렸다. 누가 들어가고 싶겠나. 연기에 그을린 벽면 또한 분위기가 섬뜩하기 그지없었고.
“내가 먼저 안을 볼게. 그 숨바꼭질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
화목현이 상체만 앞으로 숙이며 104호의 내부를 힐끗 보았다. 그러고는 화목현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현관문을 향해 턱짓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인형도 없어요?”
내가 질문했더니 화목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면 104호 안으로 들어가 보죠. 왠지 찝찝해서.”
“맞아. 나도…….”
나랑 주이든도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고 하니 화목현이 앞장섰다.
“얘들아, 들어와.”
안으로 들어가자 불에 그을린 흔적이 벽면 곳곳에 보였다. 열린 방 안에는 어떤 물건도 없었고, 수첩에 있던 사진처럼 거실에 곰인형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곰인형 눈빛이 뭔가 이상하지 않아?”
“위를 보고 있어서 무섭긴 하네요.”
“그치? 약간 귀신을 보는 것 같잖아…….”
개미가 몸 위를 기어 다니는 것처럼 주이든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면 저 곰인형을 확인해야겠지…….”
“…그렇겠죠.”
“밑을 볼까?”
무섭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방송이 될 리가 없다. 차라리 빨리 끝내는 게 낫지.
“형들, 저 곰인형 들어볼게요.”
내가 말하자 화목현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요셉이랑 내가 현관문 확인할게.”
“예~”
그렇게 화목현과 정요셉이 현관문과 신발장 근처를 확인하러 갔다. 이미 이정진은 열린 방 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제일 큰 문제는 곰인형인데…….
“이든 형은 뒤로 조금 물러나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어, 알았어!”
주이든이 내 곁에서 떨어지고, 곰인형을 드는 순간이었다.
“얘들아,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막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