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정요셉(4)
음방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 투두 네스트 0화가 방영되는 날. 멤버들과 숙소 거실에서 치킨과 맥주를 먹으면서 TV로 투두 네스트 0화를 봤다. 나는 맥주 대신 보리차를 마시고.
《선택과 집중》
1. 자신을 희생한다.
2. 1억을 버린다.
그 장면에서 60초 광고가 튀어나왔다. 광고 잘하네. 화목현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맥주를 들었다.
“자, 얘들아, 건배할까? 나비는 보리차 들고.”
나는 보리차가 담긴 잔을 위로 들었다. 그대로 멤버들과 잔이 부딪치고 보리차를 홀짝 마셨다.
“역시 일하고 난 뒤에 마시는 술이 맛있지.”
“그렇게 먹다가는 골로 가요.”
정요셉은 나를 보면서 비웃었다.
“아직 보리차밖에 못 먹는 우리 막내가 그런 소리를 한다니, 말이 잘 안 들리네~”
“…정말.”
정요셉은 오늘 드라마 첫 촬영을 하고 와서 그런지 맥주를 물처럼 마셨다.
“역시 힘들 땐 맥주지.”
내일은 투두 네스트 촬영이 있어서 저렇게 마시면 안 되는데…….
“내일 투두 네스트 촬영 있잖아요.”
“아~ 우리 막내, 형 걱정하는 거야?”
“컨디션 조절해야죠.”
“…진짜 그거 때문이야?”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거예요.”
‘형을 책임질게요’ 같은 대답이라도 원하나. 정요셉은 내 입에 감자튀김을 넣어주면서 대답했다.
“많이 마시면 제가 형을 책임지겠습니다? 이런 말 정도는 해줘야지.”
“…아, 진짜.”
내가 기겁하면서 감자튀김을 오물거렸다.
“드라마 촬영을 갔다 오더니 꼰대가…….”
“꼰대 아니야.”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던데.”
“오늘따라 우리 막내가 시비를 거네?”
“시비 아니거든요.”
가만히 있던 주이든이 푸학! 웃음을 터트렸다.
“범나비 말이 맞지. 정꼰대 씨?”
“이럴 때는 둘이 잘 맞지?”
“에이, 원래도 잘 맞았어.”
정요셉과 주이든이 싸우려는 기미가 보이자 중간에서 이정진이 투두 네스트를 보자며 둘을 중재했다.
“아, 그건 그렇고. 우리 막내는 언제 나랑 같이 술을 마실까?”
“내년이겠죠?”
“내년에 두고 보자? 응?”
“…예.”
어차피 내년이 되어도 술은 마시지 않을 계획이다. 아이돌한테 술은 사치니까. 술 마시다가 사고 치는 아이돌이 얼마나 많은데.
치킨 닭 날개를 입에 넣으면서 가만히 있는데 주이든이 내 허벅지를 때렸다.
“우리가 밖에서 제작진이랑 얼마나 오랫동안 싸웠는데! 저기 봐!”
주이든의 시선을 따라서 TV를 보자 눈이 커졌다. 멤버들이 자기가 희생하겠다며 제작진과 딜을 걸고 있었기 때문에.
[PD : 범나비를 구출하려면 1억을 포기해야죠.]
[이정진 : 1억도 포기하기 싫다면요?]
이정진이 1억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나를 데리고 오겠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정요셉 : 차라리 제가 들어갈게요~]
[주이든 : 솔직히 그건 선을 넘었죠! PD님!]
뒤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화목현이 앞으로 한 발짝 나오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화목현 :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에서 이미 1억을 주기로 약속한 시점에서 저희를 궁지에 몰아넣고 이런 선택을 하라는 건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차라리 나비보다 나이가 많은 저희가 들어갔으면 모르겠지만. 나비는 아직 성인도 아닌데 저런 어두운 공간에 놔두면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다고 보는데요.]
[PD : 그래서 정신과 상담과 구급차를 준비해 뒀습니다.]
[화목현 : 그런 문제가 아니라…….]
[~제작진을 설득하는 화목현~]
PD도 밀리지 않았다. 그나저나 계속 제작진을 설득하는 멤버들을 보니까,
‘신기하네…….’
방송용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말하는 멤버들을 보니 마음이 이상했다.
[PD : 어차피 범나비 씨가 고른 거잖아요.]
[정요셉 : 골라요? PD님, 골랐다고요? 저건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잖아요! 어쩔 수 없이!]
적극적으로 나를 보호하는 멤버들을 보니 속이 울렁거렸다.
‘체했나?’
소화제가 필요한 그 시점,
[주이든 : 울 막내가 저기에 있다잖아요!]
[정요셉 : 그래요! 울 막내!]
‘울 막내’라는 말을 듣자 속이 정말로 안 좋아졌다. 때마침 PD가 스케치북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나에게 보여주라고 멤버들에게 말했다. 나는 멤버들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질문했다.
“형들, 왜 딜을 걸었어요?”
“혹시라도 막내가 위험할까 봐.”
가만히 있던 이정진이 말했다. 주이든은 위에서 내 어깨를 꽉 잡으면서 물었다.
“너는 왜 혼자 남는다고 했어.”
“아니, 저는 그냥 자극적인 화면이 나오면 좋을 것 같아서…….”
“그냥? 그냥?!”
“…아니, 1억을 안 준다고 하시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걸 왜 너 혼자 생각해.”
마치 폭탄이 터진 것처럼 멤버들이 돌아가며 나를 혼내고 있었다.
“다음에도 이런 상황이 생기면 그냥 즉시 1억을 받는다고 해. 혼자 갇혀 있지 말고.”
닭다리를 뜯던 화목현도,
“우리 막내의 정신을 개조할 때가 온 것 같아. 어떻게 하면 저렇게 무심하게 살 수 있을까~?”
맥주를 마시던 정요셉도,
“…진심으로 범나비 머리를 열어보고 싶다니까!”
나를 쳐다보면서 혀를 차는 주이든도,
“나비는 안 되겠다.”
화목현은 저 말만 하고 조용히 TV를 봤다. 왜 내가 혼나고 있는 걸까…….
[범나비 : 저, 1번을 고르겠습니다.]
그 장면이 나오자마자 주이든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와, 저때 진짜로 머리가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니까!”
“사람이 돌아버리면 안 돼요.”
물론 나 때문이겠지만.
“이거 봐… 내가 너 때문에 조만간 속병으로 죽는다.”
“…제가 뭘 했다고.”
주이든이 투두 네스트를 보면서 나한테 성을 냈다.
“제가 뭘 했다고…….”
“…제가 뭘 했다고?”
“막내면 막내답게 행동해! 이런 상황에선 당연히 늙은 형들이 희생해야지. 다음부터는 그렇게 해!”
예능을 너무 감정적으로 하면 좋지 않으니까. 그저 내가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게 잘못이었나…….’
그랬다면 사과하는 게 낫겠지. 나는 젓가락으로 닭다리를 들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생각 없이 행동하지 않았나 반성했어요.”
“…흐음?”
정요셉이 맥주를 내려놓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우리 막내, 사과하는 방법도 잘 모르네?”
“사과하는 방법이요?”
“그럴 땐 그냥 고맙다고 하는 거야.”
사과하는 방법…….
“자, 해봐.”
정요셉이 손가락으로 멤버들을 가리켰다.
“…형들, 고마워요.”
“그렇지.”
멤버들도 나랑 똑같이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내 그릇에 치킨을 올려두었다.
“뭐예요…….”
그리고 뒤이어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문제 14, 투두 네스트 소원권 얻기!
투두 네스트 소원권(0/8)
페널티:정요셉의 드라마 촬영 때문에 데뷔 무대에 차질이 생김」
***
투두 네스트가 끝나고 나 홀로 부엌에 들어가 그릇을 씻었다. 내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였다. 그릇을 씻으면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서. 열심히 씻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았다.
“나비야, 여기서 뭐 해?”
“목현 형…….”
화목현이 살짝 취했는지 반쯤 감긴 눈으로 의자에 앉았다.
“나비가 설거지하고 있으니까 구경이나 할까?”
“마음대로 하세요.”
은근 화목현은 술이 센 모양이다. 다른 멤버들은 눈이 감긴다며 각자 침대에 누웠는데 말이다.
“목현 형은 술을 잘 마시네요.”
“잘 마시긴. 그냥 몇 잔 정도 마시는 거지. 돌연프에서는 술을 못 마셨잖아”
“그래도 내일 예능 촬영인데.”
“적당히 마시는 술은 건강에 좋아.”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화목현을 쳐다보았다.
“나비는 몇 개월만 더 기다리면 마실 수 있겠네.”
“어차피 술은 안 마실 거예요.”
“왜? 아까는 요셉이 이길 자신 있다며.”
“그거야 그냥 해본 말이죠.”
화목현은 미소를 지으면서 내 빈틈을 파고들었다.
“나비야, 오늘 요셉이 무슨 일 있었지?”
“…어, 아니요.”
내가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대답을 회피했지만 화목현한테는 먹히지 않았다.
“요셉이를 오래 봐서 그런가. 오늘은 애가 유달리 더 밝아 보였거든.”
“…그래요?”
“네가 오늘 스튜디오에 갔다왔다길래 혹시 거기서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물어봤어.”
더 밝아 보여서 알아차렸다? 눈치 하나는 빠르다니까.
“차라리 요셉 형한테 물어보는 건 어떠세요?”
“…흐음, 나비가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는 거네.”
술을 마셔서 그런가 화목현의 말이 직구 그 자체였다. 나는 스트라이트 존이고.
“목현 형, 그런 비밀은 아니고요.”
“알았어. 나비가 할 말은 아니라는 거지?”
“목현 형…….”
가만히 있던 화목현이 나를 보면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래도 은근 섭섭하네.”
“…섭섭하다고요?”
“우린 다 같이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말도 못 해주다니.”
아니, 이렇게 말하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잖아. 나는 차분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 하고 싶은 말이 있긴 한데…….”
“뭔데?”
시스템창에 떠올랐던 소원권에 대한 내용을 화목현한테 넌지시 흘렸다.
“목현 형, 투두 네스트 소원권으로 막장 드라마의 사용법에 도시락을 보내면 어때요?”
“아… 거기에 도시락을?”
“네, 그걸로 보내면 괜찮을 것 같은데…….”
“나는 좋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 점은,
“요셉 형 모르게 보내고 싶어요.”
“우리가 보냈다는 걸?”
“그걸 요셉 형이 몰라야 재밌잖아요.”
그러자 화목현이 맥주를 마시지도 않고 나를 빤히 보았다. 무슨 꿍꿍인지 화목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비가 은근 멤버들을 잘 챙긴단 말이야.”
“…제가요?”
“그럼 여기에 너 말고 누가 있어? 애들은 다 자고 있는데.”
“아니에요.”
그냥 시스템창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받으니까. 그래서 그런 거다. 화목현은 맥주를 마시면서 나를 힐긋 쳐다보았다.
“멤버들끼리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챙겨주는 아이돌 그룹은 잘 없어.”
그렇게 화목현과 나는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그냥 웃어버렸다.
“내일 투두 네스트 촬영 날이니까, 내가 정진이랑 이든이한테도 말해볼게.”
“제 의견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뒤로 돌아가던 화목현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비야, 내가 항상 생각하는 건데.”
“…네?”
“우리가 남은 아니잖아.”
나는 멀뚱히 서서 화목현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치?”
“그렇죠…….”
“네가 말했던 것처럼 이제 우리는 가족이잖아.”
“…….”
“내 말은, 우리한테 의견을 낼 땐 막내처럼 굴어도 된다는 거야. 어리광을 부린다든가.”
어리광을 부리라고? 어리광이라면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싶다고 떼를 쓰는 장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고. 나는 화목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목현 형, 저 찢어진 소원권 써야 할 것 같아요.”
“…그걸?”
“알았죠……?”
말끝을 길게 하며 어리광을 부렸다. 그렇지만 화목현의 웃음기 가득한 눈을 보자마자 한숨부터 나왔다. 그래, 내가 무슨 어리광을 부린다고…….
“저 자러 갈게요…….”
개쪽팔려. 나는 얼굴을 가린 채 방으로 들어갔다. 내일 투두 네스트 촬영이나 잘하자…….